[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말랑카우’, 말랑하면서 소처럼 일한다는 별명의 박지훈! 아역배우부터 ‘프로듀스 101’과 그룹 ‘워너원’을 거쳐 솔로 데뷔, 이어 연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온 그에게 이번 <약한영웅 Class1>(이하 <약한영웅>)은 터닝포인트 같은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귀여운 이미지와는 다른 강렬한 얼굴을 대중에게 각인한 덕분이다. 원작인 인기 웹툰의 주인공 ‘연시은’에 깊은 눈빛과 저음의 보이스를 입혀 박지훈만의 캐릭터로 재탄생, 호평과 더불어 그간 선보인 웨이브 오리지널 작품 중 가장 큰 반향을 불러모으는 중이다. 처음 받는 극찬에 얼떨떨하다는 박지훈을 만났다. 학창시절에는 친구가 별로 없었으며,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SNS는 잘 하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중 제일 화제가 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반응이 좋다.
과분한 사랑에 감사하다. 어떤 분이 이번에는 박지훈이 아니라 연시은이 보인다고 하셨다. 처음 받아보는 극찬이라 얼떨떨하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웨이브 공개에 앞서 10월 초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과 먼저 만났는데 마주한 소감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이렇게 작품을 가지고 방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 정말 긴장했었다. 나중에 이런 긴장한 얼굴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더라.(웃음)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걸 봐서 관객이 어떻게 볼지 궁금했고,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기대와 걱정이 공존했었다. 흔히 영혼을 갈아 넣는다는 표현을 하는데… 성장에 있어 첫 계단이 돼 준 것 같아 고마울 뿐이다.
‘프로듀스 101 시즌2’ 때부터의 팬들이 더욱더 흐뭇하게 당신의 성장을 지켜보는 듯하다. 이번에 연기적으로 얻은 부분이 있다면.
그룹에 이어 솔로 활동, 그리고 연기하면서 좋은 분을 만나고 배우며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범석’역의 홍경 형을 보며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배웠다. 형은 정석 같이 연기하면서 장면 장면에 있어서 몰입감이 뛰어나고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다. ‘수호’역의 현욱은 워낙 사전 준비를 철저하게 해 오는 편이라 그를 보고 하나의 대사 안에 많은 부분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원작 웹툰이 워낙 유명한 데다 주인공 ‘연시은’은 가녀린 외형을 두뇌로 커버하는 특출난 캐릭터이다. 드라마로 옮기면서 차별화한 부분은.
원작을 알고 있으나 보진 않았고, 이번에 준비하면서 초반을 조금 봤다. 웹툰의 ‘시은’은 덩치 크고 싸움 잘하는 나쁜 놈들도 쉽게 물리치는 워낙 사기캐(사기캐릭터)라 그대로 옮기면 드라마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캐릭터가 너무 강렬하니 시은이 맞고 당하는 부분을 첨가하는 방향으로 갔다. 한편으로는 수호와 범석과 나누는 현실적인 우정에 중점을 뒀다. 학창시절에 겪을 만한 경험과 감정을 담은 드라마로 접근했다.
시은은 격렬한 감정을 품고 있으나 직접 표출하지 않는 데다 대사도 별로 없는데 어떻게 표현해 갔나.
감독님께서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되, ‘시청자가 시은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도록 하라’셨는데 마치 숙제를 내준 듯했다.(웃음) 다른 인물들은 말로 할 때 시은은 눈으로 이야기하는 친구라, 우선적으로 상황에 몰입하고 집중했던 것 같다. 그간 귀여운 이미지가 강해서 <약한영웅>을 통해 감독님이나 많은 분께 비단 귀여운 이미지만의 배우는 아니고, 이런 눈빛과 이미지를 소화할 수 있는 친구라는 걸 보여드리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캐릭터에 이입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그래서인지 촬영이 아닌 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자주 났던 것 같다. 감정을 폭발하는 격렬한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였다. 이런 몰입의 순간을 처음 경험하다 보니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기절할 것 같이 체력적, 감정적인 소모가 컸는데 이 역시 새롭게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혹시 참고한 캐릭터나 배우가 있을까.
눈빛 연기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의 권상우 선배님의 눈길을 연구(?)했고, 액션씬은 영화 <아저씨>(2010)에서 원빈 선배님의 냉철한 눈빛과 무표정한 표정을 시은에게 가져오려고 했던 것 같다. 두 선배님 같은 눈빛과 아우라를 담고 싶었다.
대사가 적은데다 그마저 짧디 짧다. ‘왜’, ‘뭐’, ‘부탁했잖아’ 등등의 나열이라 톤을 잡기가 힘들었을 텐데 자연스럽더라. 또 시은이 싸움 전략을 짜는 부분은 내레이션으로 처리했는데 이 또한 잘못하면 되게 붕 뜰 수 있는데 착 감겼다.
시은이 말을 많이 해본 친구는 아닐 것 같아서 대사는 짧고 간결하면서 어느 정도 소심하게, 눈빛은 공허하게 가져갔다. 내레이션은 사실 그 내용에 대해 잘 몰라서 녹음하기 전에 자료를 찾아 숙지하고 입에 붙도록 여러 번 반복하며 연습했다. 공부 상위 1%인 시은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지식처럼 느껴지도록 최대한 노력했다.
거의 안 한 것 같은 메이크업과 허옇게 튼 입 주변 그리고 주구장창 걸친 후드집업 등 그간의 화사한 모습과는 딴 판이다. 캐릭터를 외적으로는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멋있고 예쁜 모습보다는 시은의 푸석푸석한 감정이 외형적으로 드러나길 바랐다. 걸음걸이와 체형도 고려한 게 주로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이니 어깨는 약간 구부정하고, 시선은 바닥을 향한 채 걷는 식으로 표현했다. 촬영에 앞서 액션스쿨을 다니면서 5kg 정도 빠졌던 것 같다. 한 번은 그러니까 시은이 수호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에서 집업을 벗었는데 감독님이 등근육이 잡힌 걸 보고 놀라서 급하게 후드를 입고 찍은 적이 있다. 근육과 시은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웃음)
<약한영웅>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얼굴이 있다면.
마지막 8화에서 ‘범석’(홍경)을 차마 때리지 못하고 일그러진 얼굴이 생소하더라. (말했듯이) 격렬한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 저런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도 못 했다. 보면서 ‘내게도 이런 얼굴이 있구나’하고 느낀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다. 순간적으로 억울, 분노, 처절함 등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야 했다. 상황에 몰입한 결과 다행히 잘 표현된 것 같다.
시은은 왜 범석을 때리지 않았을까. 수호를 쓰러뜨린 장본인인데.
처음에는 시은이 범석을 때리고 돌아서는 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고구마 같은 답답함과 찝찝함이 남아도 때리지 못하는 편이 무언가 더 절실하고 여운이 남겠더라. 그래서 시은의 일그러진 표정과 ‘우리 한때 친했잖아’라는 대사로 복잡한 감정과 원망의 마음을 농축했다.
액션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액션은 주로 수호가 하고 뛰어다니기도 많이 해서 현욱이 힘들었을 거다. 날씨가 더웠던 걸 빼고는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았는데 액션하면서 도구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여러 번 연습했다. 시은이 주로 펜을 이용하는데 (내가) 평소 공부를 많이 안 해서 펜이랑 친하지 않다. (웃음) 잡는 게 어색해서 평소에 계속 잡고 있었다. 또 1화 첫 액션인 ‘영빈’(김수겸)의 얼굴을 커튼으로 돌돌 말아서 묶어 때리는 장면은 여러 번 리허설했다. 생각처럼 잘 말아지지 않아서, 무술 감독님과 상의해서 다양하게 시도한 결과 다행히 실루엣을 잘 잡을 수 있었다.
시은-수호-범석은 처음에는 어색하다 점차 친해지는 모습이 잘 보여서 좋았는데 함께한 최현욱과 홍경 배우와의 실제 호흡은 어땠나.
극 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도 찍으면서 점점 더 친해졌다. 특히 범석이 현욱에게 폭발하는 노래방 장면을 찍을 때는 현장 열기가 정말 뜨거웠던 기억이 있다. ‘호흡이란 이런 거구나’ 느꼈던 것 같다. 회차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끈끈해졌고, 이런 호흡이 액션과 감정을 나누는 장면에 녹아들지 않았나 싶다.
세 친구는 10대만이 가능한 순수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우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학창시절이 좀 떠오르던가.
사실 연습생 생활을 너무 일찍부터 시작한 데다 조퇴를 자주 해서 친구가 많이 없었다. 그렇지만 시은의 감정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수호는 외로운 시은에게 다가온 첫 우정이라 그를 위해 싸우고 그토록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은과 좀 닮은 면이 있나.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룹에서 솔로로 활동하며 과묵해진 면이 있는 게 MBTI가 E(외향성)에서 I(내향성)로 바뀌기도. 혼자 숙소에서 게임한다고 붙여진 별명 ‘숙소 지훈’처럼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시즌2에 대한 문의가 많은데.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이번 <약한영웅>이 많이 사랑받으면 가능하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목표를 정하고 움직이기보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연기도 마찬가지인데 <약한영웅>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생겼다. ‘길수’(나철) 같은 악당이다. 돈이라면 사람 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분지르는 모습을 보며 진짜 악한 역할을 한 번 해보고 싶더라.
데뷔 때부터 귀여운 이미지가 강했다. 그간 해온 웹드라마에서도 이러한 이미지의 연장이었는데,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했나.
귀여운 이미지가 싫다기보다 점차 연기 활동을 늘리고 나이가 들면서 ‘나도 다른 이미지의 역할도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커졌다. 이번 작품을 ‘터닝 포인트’라고 말한 것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이렇게 표현한 거다.
아역배우부터 이번 터닝포인트까지 그간의 활동을 돌아본다면.
어렸을 때는 배우를 목표로 중학교 때는 춤이 좋아서 아이돌로 전향해 지금은 가수와 배우라는 두 영역에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별명 중 하나가 ‘말랑카우’인데 말랑하지만, 소처럼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다. 이제껏 쉼 없이 달려왔으니 이제는 조금은 쉬어도 되지 않을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마지막 질문이다. 별명 그대로 쉬지 않고 일했는데 만약 3일의 휴식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낼까.
음…하루는 집에서 뒹굴고, 이틀째는 밖으로 나갈 듯하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골목의 예쁜 카페도 가보고 싶고 또 사람이 북적이는 곳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날은 집에 있어야 할 듯! (웃음)
사진제공. 웨이브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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