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 이학주를 종종 수식하는 표현 중 하나다. 이에 걸맞게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선한 역과 악한 역을 두루두루 섭렵해 왔다. 일찍이 드라마 <38 사기동대>에서 한동화 감독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는 이학주가 디즈니+ <형사록>에 합류, 오랜만에 형사물에 복귀했다. 이성민을 비롯해 평소 존경하는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고 전하는 그의 이번 미션은 일명 떡밥투척! 시청자에게 미스터리한 인물 ‘친구’의 정체에 대해 혼선을 최대한 주는 것이었다고. 갓 결혼한 따끈따끈한 새 신랑인 이학주를 만났다.
“친구의 정체는 저도 중간 정도에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천사장(윤제문)이지 않을까 예상하며 대본을 읽었죠.” <형사록>은 베테랑 형사 ‘택록’(이성민)이 미스터리한 인물 ‘친구’에 의해 동료의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수사드라마다. 모든 캐릭터가 의심이 가는 한편 모든 캐릭터가 결백한, 모순적인 상황에서 서스펜스를 길어 올린다. 이학주는 금오서에 새로 부임한 신참 형사 ‘경찬’을 연기했다. 경찬은 평소 좋아하는 선배인 택록과 함께 일하고 싶어 자원한 참이다.
“헷갈리게 하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의뭉스러워 보일 수 있는 장면을 하나라도 더 찾아서 혼선을 유발하려고 했습니다.” 선배인 ‘성아’(경수진)에게 택록을 믿느냐고 떠보고, 뭔가 시원하지 않은 톤으로 서장의 호출을 대충 얼버무리는 것 같은 명확하지 않은 언행은 이러한 지점을 찾은 결과 나온 장면이다.
“많은 분이 저를 ‘친구’라고 의심해 주셔서 다행히 미션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웃음) 예상보다 많은 의심을 받아서 놀랐다는 이학주, 6화에서 경찬이 숨겨온 꿍꿍이가 밝혀지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가 친구인지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있어 또 한 번 놀랐다고. 그런데 혐의에서 벗어났다지만, 그는 과연 정말 친구가 아닌 걸까?
웨이브 오리지널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와 멋진 슈트핏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 이번 디즈니+ <형사록>까지 국내외 OTT 플랫폼이 제작한 작품에 참여해 온 그이다. 시청률을 통해 바로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지상파 드라마와 달리 디즈니+는 매주 순차 공개하는 방식이라 시청자의 반응을 체감할 이렇다 할 지표가 없다.
“친구나 가족, 주변의 반응이나 댓글을 보고 대략 파악합니다. <형사록>이 처음 방영할 즈음 광고가 실린 버스도 다니고, 스포츠채널에도 광고가 떠서 많이 보는구나 싶었죠.”
“배우로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나 플랫폼에 따른 차이를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만, <형사록>은 좀 특별한 감정이 들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주말 아침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입장에서 디즈니는 뭔가 굉장히 멀고 큰 존재인데, 내가 이곳의 드라마를 한다고? 신기했어요.”
친구라는 미스터리한 적을 추리해 가는 흥미로운 스토리, <38 사기동대>로 맺은 한동화 감독과의 인연, 그리고 이성민 진구 경수진 등 꼭 한 번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궁금한 배우진. 이학주에게 <형사록>은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이성민 선배를 계속 놀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던 것 같아요. 사실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큰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실수하지 않고,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얼어 있던 이학주. 그때마다 이성민이 먼저 다가와 장난을 치면서 편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렇게 장난치던 이성민이지만,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 표정이 돌변한다고.
“레디 고! 하면 바로 폭발력 있는 연기가 나와요. 정말 순간적인 집중력이 대단하십니다. 이번에는 특히 다음 장면으로 이어가기 위해 이 장면에서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지 말씀해주신 점이 많이 도움됐어요.” 이성민 왈 ‘드라마의 장점은 배우가 뭔가를 찾아서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고. 가령 배우가 판단해 대본에 없는 ‘잠깐의 정적’을 삽입한다면 이러한 작은 요소가 극에 한결 긴장감을 부여한다는 설명이다.
“진구 선배를 많이 뵙지는 못했지만, 항상 ‘이건 이렇게 할 건데’ 얘기하면서 편하게 대해줬어요. 굉장히 나긋나긋한 톤으로 칭찬을 많이 하고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분이에요. 수진 누나와는 뭐, 촬영이 끝날 무렵에는 단짝이 됐죠.” (웃음) 이학주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장난꾸러기야~’ 하며 항상 재밌어했다는 진구, 평소 이미지와 언뜻 매칭되지는 않으나 뭘 해도 웃어주는 넉넉한 품을 지닌 선배였다고 한다.
검은색 계열의 점퍼를 입은 형사들 사이 유난히 눈에 띄는 한 사람, 바로 흰 재킷을 입은 경찬이다. 기존 형사나 경찰과는 달리 보이도록 의도한 스타일링이었다. 경찬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심으려 한 부분도 있다.
“첫 화에 등장하는 경찬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경찰과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어요. 좋은 차를 타고 원하는 곳에 배치될 정도로 빽도 좋잖아요. 겁먹은 상황에서는 허세를 부린다고 할지, 어울리지 않는 욕설도 하고요.”
택록은 주변의 사람 모두를 ‘친구’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본다. 택록과 경찬이 숲속에서 세게 붙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꼽는 인상적인 장편 중 하나다. 택록이 시키는 대로 달려가는 이학주의 폴짝폴짝 뛰는 뒷모습이 의외로 귀욤미를 발산한다.
“폴짝이라니!(웃음) 동작을 위해 파쿠르를 좀 배웠어요. 파쿠르라는 운동이 맨몸으로 지형지물을 뛰어넘는 운동이거든요. 덕분에 가볍게 뛰게 된 것 같아요. 사실 그 장면은 어려웠던 장면이에요. 택록의 의심에 과민하게 반응해서 데시벨을 높여 소리쳐야 하는데, 선배에게 고함쳐야 하는 상황에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재미있었단다.
‘휴머니즘으로 버무린 장르물’ 연출을 맡은 한동화 감독이 소개한 <형사록>이다. 늙은형사를 전면에 내세워 여타 형사물과 차별화를 꾀했고, 추리적인 요소로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했다.
“감독님은 얼핏 보면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데 잘 웃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분이에요. 현장 분위기도 참 편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현장에서 들려주는 그간의 경험담도 흥미롭고, 즉흥적으로 이것저것 제안하는 걸 보면 임기응변도 정말 대단하세요.” 한동화 감독은 오디션에 참여한 많은 지원자 중 ‘눈에 들어서’ <38 사기동대>에 이학주를 캐스팅했다. 이후 이학주가 점차 여러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는 걸 보면서 ‘나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흐뭇해한다는 후문이다.
“<38 사기동대>가 벌써 7년 전이네요. 지금은 좀 더 구체적으로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 보는 편이에요. 이게 연기로는 비슷하게 표현될지도 모르겠지만, 준비는 확실히 더 체계적으로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그때그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의지했다면, 생각이란 건 휘발되는지라, 지금은 대본에 써가면서 나중에 잊지 않고 반영합니다.”
경찰 캐릭터가 처음도 아니고 한동화 감독과 첫 호흡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형사록>은 유난히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이학주. 그 이유는 뭘까.
“함께한 선배님들 모두 개성이 뚜렷한 분이잖아요.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저는 이런 스타일이 아니더군요. 저만의 개성이랄지 특징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장면마다 캐릭터를 부각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난히 긴장했고, 선배님들은 긴장한 저를 풀어주려고 노력하셨죠.” 경찰 캐릭터에 심리적인 진입장벽이 있었는데, 딱 봐도 경찰처럼 보이는 선배들과 함께하다 보니 혼자 느끼는 부담감이 컸다는 대답이다. 더불어 예전에는 직업을 연기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지금은 직업에 따른 말투와 제스처 등은 참고하면서 무엇보다 캐릭터 자체를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고 한다.
지난 9월 팬들에게 직접 쓴 손편지로 결혼 소식을 알렸던 이학주가 드디어 11월에 결혼, 유부남 대열에 합류했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돼서… 뭔지 모를 안정감은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고,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배우자에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한다는 이학주, 종종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 좀 하지마’라는 조언을 듣는단다.
신혼여행도 미루고 열일하고 있는 그에게 2022년은 너무 행복한 한 해였다고. 마지막으로 이학주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자기 직업에 대해 열의를 가진 사람이요. 요즘에는 더더욱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자신감이 있든 없든 움츠러들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현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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