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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적인 얼굴로 탄탄하게 극을 견인한 <파로호> 이중옥 배우
2022년 9월 2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치매 노모를 돌보며 낡은 모델을 운영하는 ‘도우’(이중옥). 투숙객 중 한 명은 자살하고, 복도 천장에서는 물이 또 새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사라진 어느 날, 언젠가 본 듯한 기억이 있는 남자 ‘호승’(김대건)이 나타난다. 임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로호>는 한 남자가 어떤 계기에 의해 히스테리가 발현되어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과 상상, 그리고 망상을 오가며 긴장감 있게 그린 심리 스릴러다. <극한직업>(2019)의 ‘환동’역으로 확실하게 눈도장 찍은 후 여러 작품에서 신스틸러로 활약 중인 이중옥이 ‘도우’로 분했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장편 영화에서 다층적인 얼굴로 탄탄하게 서사를 이끌어 간 이중옥을 만났다.

<파로호>는 신예 임상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원래 인연이 있던 건가.
2020년 말 즈음 스스로 약간 정체기를 느꼈고, 연기로 돌파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던 참에 마침 만난 게 <파로호>다. 회사를 통해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읽어보니 너무 좋더라. 독립영화를 해 본 적은 없지만, 꼭 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기존에 해온 작품과는 성향도 캐릭터도 완전히 달라서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마음도 있었다. 임 감독님을 만나니 이런 글을 썼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분이었다. 보통은 30분 정도 미팅을 갖는데, 두 시간도 넘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다만 감독님과 작품 모두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 나보다 좀 더 인지도 높은 배우가 하면 작품에 더욱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그러다 며칠 후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고 기뻤다. 배우라면 욕심날 역할이니 말이다.

어떻게 ‘도우’ 캐릭터에 접근하고 구축해 갔나.
이전까지는 감정을 정리해서 던지고 끝났다면, 이번에는 (상대의 감정을) 받아서 이어가야 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액션이 주였다면, 이번에는 리액션을 하려고 노력했다. ‘도우’(이중옥)가 친구(홍지석), 엄마(변중희), 미용실 사장(강말금) 그리고 ‘호승’(김대건) 함께할 때 그의 전사나 그의 감정 상태가 은연중에 드러나야 했다. 친구의 무시나 엄마와의 갈등 같은 크고 작은 충돌이 거듭되면서, 여린 심성의 도우가 다치고 점차 파괴돼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도우는 먼저 나서기보다 늘 수동적으로 살아온 입장이라, 나 역시 상대가 어떤 자극을 주든지 이를 온전히 받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당신이 그린 도우의 전사를 소개한다면.
극 중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삼십 대 후반의 노총각인 그는 태어나고 자란 화천을 떠나 도시에 갔다 온 적이 있다. 아마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 테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5년 동안 수발 중이고, 모텔은 점차 낡아간다. 개인적으로 모텔과 도우를 동일시했던 것 같다. 도우는 매일 방을 청소하고 침구의 각을 잡고 정리하지만, 모텔은 이곳저곳 자꾸 고장 난다. 마찬가지로 도우 역시 내면(마음)의 방을 정리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잡지만, 물이 새는 모텔처럼 그의 내면 역시 어딘가 삐걱거린다고 생각했다.

아픈 엄마를 돌보는 도우의 처지에 일정 부분 공감되는 지점이 있다. 누구에게도 힘든 일 아닌가. 도우의 히스테릭이 엄마의 실종으로 인해 발현된다고 생각했다.
효자상을 받았다는 기사와 사진도 있고, 도우는 지역에서 효자라고 칭찬받아왔다.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효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강압적인 언행으로 다그치는 등 엄마는 일찍이 도우를 고압적으로 대해 왔을지 모른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서 점차 움츠러들고 자신 없어지고 그럼에도 엄마를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런데 엄마가 치매에 걸렸으니 어떻게 보면 도우에겐 방향점이 없어진 걸 수도 있다.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극한직업>(2019) 외에도 <마약왕>, <천문: 하늘에 묻는다>, <히트맨>, <방법: 재차의> 등 여러 작품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했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오롯이 작품을 이끌었는데, 해보니 어떻든가.
지금까지는 짧은 호흡에 신이 군데군데 파편화돼 있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극의) 흐름을 챙겨야 했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고, 그 방법을 잘 몰라서 조언도 많이 받았다. 다행히 촬영이 진행되면서, 도우의 변화 과정을 고려해 따라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더라. 도우가 호승을 만날 때까지 어떻게 끌고 갈지가 관건이었다. 초중반은 후반을 위한 빌드업으로 파악했고, 그를 만나기 전후로 호흡을 나눠서 가져갔다.

엄마의 실종 이후 미스터리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는데, 여기에 도우는 얼마만큼 개입한 건가.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궁금해할 것 같다. (웃음)
그렇잖아도 무대인사나 GV 등 관객과 대화할 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범인이 누구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시나리오상에는 확실하게 명시돼 있지만, 관객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혼란을 줄 만한 영화적인 장치 혹은 트릭이 있기도 하다. (어쩌면) 모텔에는 처음부터 도우밖에 없었을지도. (웃음)

등장인물 모두 왠지 돌변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용실 사장이 특히 그랬다.
미용실 사장 ‘연교’(강말금)는 루게릭병을 앓는 남편을, 도우는 치매 엄마를 수발하는 처지라 동병상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잘 보면 도우가 유일하게 웃는 장면이 있다. 엄마가 실종되기 전에, 미용실 사장이 엄마의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발라주며 살뜰하게 챙기는 장면이다. 연교는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렵겠지만, 도우의 이상형일 수 있다. 아마도 도우는 연교 같은 여성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지 않았을까. 또 마지막 부분의 도우가 머리를 자르면서 연교에게 ‘뭐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는 장면은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우가 피를 뒤집어쓰는 장면이 두 번 있다. 매우 강렬하고 히스테릭한 도우의 상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촬영하면서 고생했겠다.
연교의 남편이 뿜어내는 피를 정면으로 맞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봐서 알겠지만, 교회 신도들이 미용실에 모여 한마음으로 도우를 위해 기도해주는 장면 아닌가. 모든 배우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 실제로 (도우처럼) 화가 나는 느낌이었다. 한 번에 촬영해야 하는 장면이라 긴장한 데다, 실제로도 짜증이 올라오더라.(웃음) 도우의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장면이 아닌가 한다. 피가 눈에 들어와 충혈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한 번에 끝냈다.

군부대 이전 반대 집회가 한창인 쇠락해 가는 지역인 화천과 겨울 문턱인 스산한 계절 풍경, 그리고 6.25 때 많은 군인이 수장됐다는 파로호까지 시공간과 정서가 영화의 미스터리함을 배가한다. 그런데 촬영은 주로 곡성에서 했다고.
파로호를 비롯해 외부 풍경은 화천에서 찍었지만, 그 외는 곡성에서 진행했다. 영화에 맞는 모텔을 찾으려고 경기 북부부터 훑었는데 분위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었다. 뒤에는 야산이 있고, 강원도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을 찾다가 곡성까지 내려갔다. 실제로 팔려고 내놓은 모텔로 그 상태가 영화 속 상황과 아주 부합했다. 공간의 느낌도 비슷해서 연기하는 데 많이 도움됐다.

여러 작품의 조·단역을 거치며 무명 생활에 지친 순간도 많았을 텐데, 멈추지 않고 전진하게 한 동력은 뭘까.
본격적으로 매체 연기를 하기 직전에는 정말 포기하고 싶었다. 책임질 가정이 있는데 돈벌이를 못 하니 삶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데다 연기도 그렇고 우울감이 컸다. 그러던 2018년 아내가 어디서 공고를 봤는지 오디션을 권했다. <마약왕>이었다. 다행히 <마약왕>의 역할을 좋게 봤는지, 이를 계기로 매체 연기를 하게 됐다. 지금도 고민은 많다. 순간순간 지치기도 하고 그만큼 기쁨도 있고. 연기가 생각처럼 잘 안되면 고통스럽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일도 힘들기도 하지만, 잘되는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배우는 정년 없는 계약직 같아서 잊히거나 가치가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게 된다. 평생 안고 갈 숙제가 아닌가 한다. 이젠 할 수 있는 게 연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연기에 입문했는지 궁금하다.
IMF 끝물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는데 여건이 안 돼서 못 하고, 다른 일을 하던 중이었다. 연극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말릴 줄 알았는데 웬걸 흔쾌히 해보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극단을 소개해 주시기도. 여차저차 공연하게 됐는데 너무 재밌더라. 매일 사무실에서 앉아 있는 일을 하다가 활동적인 일을 한다는 게 좋았다. 그때부터 계속 연극을 하다가… 앞서 말했듯 힘든 시기를 오랜 기간 거쳤다. (웃음)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곧 공개되는 쿠팡플레이 <유니콘>의 스타트업 개발 팀장으로 인사드릴 예정이다. 흔히 시트콤이라고 하는데, 시트콤이라 하면 너무 웃긴 장르로만 국한되는 느낌이 있어 우리끼린 코믹극이라고 정리했다.


사진제공. (주)더쿱디스트리뷰션

2022년 9월 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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