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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오마주> 신수원 감독
2022년 5월 27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오마주>는 중년 여성 감독 ‘지완’이 한국 1세대 여성 감독인 홍은원의 <여판사> 필름을 복원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신수원 감독의 신작이다. <마돈나>(2015), <젊은이의 양지>(2020) 등에서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고 시니컬한 시선으로 그렸던 감독의 전작들과 사뭇 스타일과 결이 다른, 낙관적인 작품이다. 신 감독은 데뷔작인 <레인보우>(2010)와 유사한 결이 있다고 소개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지완’이 주인공이다. <레인보우>의 영화감독 지망생 ‘지완’과 <오마주>의 세 번째 영화를 내놓은 ‘지완’은 영화를 만든 ‘당시’의 신 감독이 투영되고 가공되어 탄생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작고, 잊혀진 것들의 소중함과 안타까움에서 출발했다는 여섯 번째 영화 <오마주>로 관객을 찾은 신 감독을 만났다.

오롯이 ‘지완’(이정은)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만큼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을 텐데 왜 이정은 배우인가.
‘지완’을 올곧이 표현하려면 40대 중후반의 배우여야 했고, 무엇보다 연기가 중요했다. 지완은 현장에서는 감독이지만, 가정에서는 츄리닝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입고 지내는 평범한 주부다. 정은씨는 평범하면서도 굉장히 표정이 풍부하고 전형화되지 않은 면이 있다. <미성년>(2018)과 <기생충>(2019)에서 연기를 너무 잘해서, 특히 <미성년>은 아주 짧게 나오는 데도 너무 인상적이라 들여다보게 됐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의 연기도 놀라워서 언젠가는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정은 배우는 바로 참여를 결정했나.
당시는 정은씨가 영화 <내가 죽던 날>(2002)의 촬영이 막 끝나고, 드라마 <로스쿨>은 촬영 들어가기 전이라 시기가 딱 맞았다. 사실 순제작비가 3억 5천만 원으로 예산이 많지 않아서 배우에게 많이 드리긴 힘든 여건이었다. 그런데도 프로듀서에게 이정은 배우면 좋겠다고 (일단) 던졌다. (웃음) 시나리오를 먼저 건넨 후 만났는데 작품에 애정을 갖고 흔쾌히 수락해줬다. 상업영화만큼의 개런티를 드리지 못해도 돈을 떠나서 참여하는 배우분들이 꽤 있다.

촬영하면서 아주 친해졌을 것 같다. 작업하면서 이정은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지완’이 홍 감독의 필름을 발견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표정이 담겼기 때문이다. 촬영하다 모니터에 빠져드는 바람에 ‘컷’ 타임을 놓쳐 옆에서 신호를 줄 정도였다. 이외에도 여러 장면에서 되게 좋은 얼굴이 나온다. 정은씨와는 작업 케미도 참 잘 맞았고, 나이 차가 별로 없어서 친구처럼 지냈다. 촬영 후에도 시간이 되면 만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같이 놀았다. (웃음) 정은씨가 출연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준비차 제주도에 있으니 놀러 오라고 톡을 했더라. 갑자기 내려가서 흑돼지를 구워 먹고 잠도 자고 즐겁게 보내다 왔다. 정은씨는 소탈한 성격에 오랜 조연 생활로 어려움이 뭔지 잘 알아 현장에서 스탭들을 굉장히 잘 챙긴다. 연기에 있어서는 매우 치밀하고 프로의식이 강하다. 그때도 캐릭터를 소화하고자 제주도 방언을 공부하기 위해 미리 제주도에 머물던 거였다.

그간 <마돈나>의 서영희, <유리정원>의 문근영, <젊은이의 양지>의 김호정 배우 등과 함께 여성 주도 서사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정은 배우라 좀 더 특별한 점이 있을까.
함께 했던 배우와 다음에 또 작업하기도 하고, 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편이다. (웃음) 이번에도 김호정 배우가 극 중 홍원희 감독과 그 그림자로 출연해줬다. 정은씨라 특별한 점이라면, 아무래도 주인공이 영화감독이라 캐릭터에 대한 친밀감이 더 컸다. <유리정원>의 ‘재연’(문근영)은 약간 어려울 수 있는 인물이라 배우와 같이 캐릭터를 찾아갔고, <젊은이의 양지>는 주인공이 콜센터의 장이라 취재했던 이야기를 주로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화와 감독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다. 농담 따먹기처럼 둘이 앉아서 ‘여성 감독으로 사는 게 어때요?’라며 서로 질문도 하고 그랬다. 또 정은씨가 연극을 연출한 경험도 있어서 매체는 다르지만, 연출자로서 느낌을 아니 편하게 주고받았다.

<오마주>를 보면서 감독, 배우, 캐릭터가 겹쳐 보이는 드문 느낌을 받았다. 이정은 배우는 지완과 당신의 싱크로율이 20% 정도라고 했는데 그런가.
음, 이번에는 좀 재미있게 하고 싶어 지완에 약간 코믹한 설정을 가미했다. 남편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등 좀 희화된 면도 있다. 내가 영화감독의 세계를 잘 알고, 또 내 모습이 투영된 부분도 있지만, 그대로 옮긴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다큐가 된다. 그래서 세팅할 때는 참고하더라도 그 안에서 가공과 각색을 거친다. 과거부터 현재, 일상의 경험에서 채굴하듯 캐릭터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캐릭터는 배우를 거쳐 구체화된다.

가정 내에서 실제 모습은 어떤가.
피곤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곤하지 않으면 농담 따먹기도 잘하는 편이다. 집에서 아이들과 주로 영화 관련 이야기를 많이 한다. 누구 연기 잘한다, 새 영화나 드라마 나왔더라, 뭐가 재밌다 등등이다.

<레인보우>(2010)의 주인공 이름도 ‘지완’이다. ‘지완’이라는 이름에 뭔가 의미가 있는 건가.
좀 닭살인데.(웃음) <레인보우>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뜻 ‘지’, 완성할 ‘완’을 써서 ‘뜻을 이룬다’는 의미로 붙였었다. <레인보우>의 주인공도 비록 입봉하기 전이지만 여성 감독이었고, 이번에도 영화감독이라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지완이라고 지었다.

한국의 2호 여성 감독인 홍원희 감독, 세 번째 영화를 개봉하는 ‘지완’ 등 비단 여성이 아니라도 ‘감독’의 애환이 느껴진다. 당신은 어떤가.
한마디로 ‘비정규직, 프리랜서!’라 하겠다. (웃음) 이번이 여섯 번째 영화지만, ‘지완’과 고민하는 지점은 같다. 영화감독으로서 불안한 마음은 항상 존재한다. 제작비, 시나리오, 그리고 관객 모두 걱정거리다. 혹시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다. 극 중 홍원희 감독 같이 잊혀진 사람, 존재, 풍경 등 잊혀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늘 갖고 있는데 이게 <오마주>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됐다. 첫 장편인 <레인보우>를 끝낸 후, 미래가 불투명한 시기에 MBC 다큐멘터리 ‘여자만세’를 찍었었다. 그때 한국 1세대 여성 감독에 관한 사실을 처음 접했고 이때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지금의 나와 결합해 만든 것이 <오마주>다.

불안할 때 스스로를 북돋는 비결이랄지, 방법이 있다면.
지금은 그냥 멍때리고 있든가, 산책하든가, OTT를 보든가 한다. 예전에는 술을 마시기도 했으나 몸만 축나고 안 좋더라. 코로나라 외부 활동을 거의 못 했는데 심정적으로 우울하기는 하지만, 그 시기에 후반 작업을 차분히 할 수 있었다. 걱정이나 불안은 여전하지만 이런 감정 때문에 나를 갈구거나 막 괴로워하지는 않게 됐다. ‘케세라 세라’, 그러니까 ‘흘러가는 대로 두자’는 주의로 좀 바뀌었다. 이러다가 다시 자책 모드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웃음) <오마주>를 크랭크업한 지 1년 반이 넘는데, 지금까지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다. 이렇게 다음 영화까지의 텀이 긴 것은 처음으로 코로나로 인해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그간 전작들을 보면서 장르에 상관없이 추리성을 가미한 서사로 관심을 붙잡아 두는 뛰어난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해 왔다. 장르를 먼저 정하고 들어가는지 평소 글을 쓰는 방식이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코난 도일(기자 주: 명탐정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가)에 빠져 있었고 TV에서 명화극장을 많이 봤는데 이 영향이 아닌가 한다. 장르 소설과 영화에 익숙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스토리텔링되는 것 같다. 손끝이 가는 대로 쓰는 스타일이라 먼저 정하고 들어가거나 하지 않고, 장르적인 부분도 굳이 경계를 나눌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오마주>가 오는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트라이베카영화제에 초청돼 얼마 전 줌으로 사전 인터뷰를 했다. 그때 프로그래머가 ‘오마주는 굉장히 혼합장르로 느껴진다’고 하길래 ‘맞다’고 했다. 장르를 섞는 것도 좋아해서 가끔 스탭들이 말릴 때도 있다. (웃음) 예를 들면 <레인보우>에서 춤추는, 실제와 환상을 섞어서 되게 황당한 장면이 있는데 당시 스탭들이 이상하다고 말렸었다. 그런데 해보고 싶은 마음에 밀고 나갔고, 나중에 본 관객이 많이 좋아했고 나 역시 마음에 들었다.

엔딩 무렵의 폐관을 앞둔 극장 안의 풍경, 그러니까 지붕의 뚫린 공간으로 빛이 부서지듯이 들어오고, 바닥에 조금 고인 빗방울을 고양이 두 마리가 와서 먹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최애 장면이다. 매우 영화적이면서 몽환적이기도 하고 또 고양이를 보며 당신 역시 (고양이) 집사인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공들여 찍은 장면인데 잘 봐주셨다. 사실은 고양이를 찍느라 주인공인 정은씨를 좀 많이 기다리게 했다.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고양이를 섭외한 건데, 찍는 건 쉬운데 물을 먹게 하는 건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어려웠다. 그 장면은 영화에 나오는 시(기자 주: 감독이 ‘비슬라바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발췌했다)와도 잘 맞는다. 이름 없는 하찮을 것들의 소중함을 전하는 시라 이를 표현하려면 뭐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예전에 폐극장에 갔더니 길고양이들이 많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폐허가 된 극장 안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고, 1분도 안 되는 홍은원 감독의 필름을 찾아 헤매고, 이렇듯 작은 존재와 잊혀진 존재의 소중함을 공간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해 봤다. 아, 그리고 고양이나 개를 보는 건 좋아하는 데 키우는 건 자신 없다.

마지막 질문이다. 신수원은 어떤 사람인가.
돈키호테 스타일? 약간 엉뚱한 점도 있고 또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겠지. (웃음) (기자 주: 감독은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지금은 늙어서 말하긴 뭐하지만, 예전에는 피터팬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진제공_준필름/ <오마주> 스틸


2022년 5월 27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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