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의 단편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극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와 그의 운전사 ‘미사키’(미우라 토코)를 주축으로 진행되는 작품이다.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우연히 시작한 두 사람의 인연은 점차 깊어져, 마침내 상대의 마음속 깊은 슬픔에 맞닿기까지의 여정을 그린다. 올 칸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을 비롯하여 유수의 영화제의 러브콜과 함께 극찬 받고 있다. 화상으로 연결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게 관련 이야기를 들어본다.
#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을 옮기며
소설 속 가후쿠는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과 함께 미결로 남은 의문을 가슴에 봉인한 남자다. 아내는 왜, 어떤 마음으로 때때로 외도를 했을까. 아내 생전에도 사후에도 꺼내지 못한 질문이다.
“가후쿠는 아내 ‘오토’(기리시마 레이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전 그가 자기 자신을 새롭게 직시, 즉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에서 ‘다카츠키’(오카다 마사키)가 던지는 대사, 그러니까 어떻게 자기를 바라보고 마주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개인적으로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이 질문을 받은 가후쿠가 현실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까. 소설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아닌가 합니다.”
“소설을 보면 ‘가후쿠’와 ‘미사키’ 두 인물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밖 풍경이 계속 바뀌고, 그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데요. 이 점이 핵심 포인트라고 봤어요.”
“가후쿠도 미사키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지만, 일단 말을 하면 최대한 솔직하게 진정성 있게 보이려 했습니다. 인물 간의 관계성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데 집중했죠. 원작과 달라진 점이 많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의 관계에 중점을 두고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작가님이 워낙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가시고, 또 골수팬들이 많은 덕분에 더 많은 관심과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과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직접적으로 이야길 나눈 적은 없어요. 처음 판권 허락을 맡을 때 편지를 드렸고 이후 시나리오를 보내드렸죠. 단편집에 수록된 ‘셰에라자드’와 ‘기노’를 참고해도 좋다고 허락하셨고요.”
“완성 후, 시사회에 초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는 못 오셨습니다. 최근의 기사를 보니 작가님이 사모님과 같이 관람했다고,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가 쓴 부분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제 딴에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 다국적 배우가 출연하는 다언어 연극
가후쿠는 연극 연출을 제안받고 간 히로시마에서 운전사 ‘미사키’를 소개받는다.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는 가후쿠. 대만, 한국, 일본 다국적 배우가 중국어, 수어, 일본어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는 다언어 연극을 기획한다. 연극 준비부터 개인적인 시간까지 동선을 공유한 미사키와 가후쿠는 차츰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연극 ‘바냐 아저씨’는 소설에 나오는 걸 그대로 따라간 경우예요. 예전에 읽었던 희곡을 다시 읽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있더군요. 가후쿠는 ‘바냐’에 미사키는 ‘소냐’에 호응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한편 등장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어떤 연극이든 크게 상관없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요, 공동 각본가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추천하기도 했고요. 또 신이 없는 세상에 대한 설정이 ‘바냐 아저씨’의 신에게 기도하는 듯한 마지막 대사와 대구를 이루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연극과 영화의 대사가 서로 매치되면서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싶었죠.”
“연출가로서 가후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다국적 배우로 구성된 다언어 연극을 설정했고요, 한국이나 대만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아시아권 배우가 참여하게 된 거죠.”
<드라이브 마이 카> 속 단연코 눈에 띄는 캐릭터 중 한 명은 ‘이유나’이다. 수어 연기로 오디션을 통해 연극 ‘바냐 아저씨’의 ‘소냐’ 역에 캐스팅된 캐릭터인데, 박유림은 ‘이유나’로 분해 수어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또 문예 감독으로 통역, 캐스팅, 그리고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추천하는 등 가후쿠 옆에서 크게 도움 주는 ‘공윤수’역은 진대연이 맡았다.
“원래는 부산 로케이션을 기획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진행이 어려워졌어요. 당시에 만난 배우들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배경을 부산에서 히로시마로 바꾸되, 캐릭터와 설정은 그대로 살리고자 했습니다.”
“히로시마에서 촬영한 건 해외(부산) 로케이션이 불발되면서 시나리오의 큰 얼개를 바꾸지 않으면서도 문화적인 면이 있는 도시를 찾은 결과예요. 게다가 촬영 협조가 원활한 지역이기도 했고요. 또 가후쿠나 미사키 모두 상처에서 재생해 나가는 인물이라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히로시마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다 싶었어요. 원폭돔을 담은 건 도시의 상징적인 건물이라 히로시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죠.”
“수어는 예전부터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다룬 작품을 접하고 또 그들을 만났을 때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마치 외국사람을 만날 때의 소통 방식과 가깝다고 느꼈어요. 뭔가 부드러우면서도 전해지는 게 있는, 하나의 언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화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여러 언어를 사용하면서 수어도 포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극 중 ‘이유나’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면 그건 전적으로 박유림 배우 덕분이에요. 개인적으로 연습을 정말 많이 해줬고요, 영화에도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저 역시 만족스럽고 고맙습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봉준호 감독 대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갈라프레젠테이션(거장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을 상영하는 섹션)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두 편을 초청했다. 코로나를 뚫고 부산을 방문한 감독은 당시 봉준호 감독과 대담을 나눈 바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봉준화 감독과 나눈 대담은 올해의 경험 중 가장 흥미롭고도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봉 감독님의 질문을 통해 감독님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깊은 시선으로 제 작품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매우 따뜻하게 느낀 시간이라 앞으로 작업함에 있어 크게 힘이 될 것 같아요.”
“봉 감독님이 마치 저를 연출하듯이 대담을 이끄셨는데요, 저에 대한 무한 신뢰와 한편으론 도발을 느낀 현장이었습니다. 마치 ‘너는 이것에 답할 수 있을 거야’, ‘더 할 수 있어’ 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도발에 엄청난 기운과 힘을 받았죠.”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당연히 기쁘고, 여러 사람에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너무 큰 의미를 두려 하지는 않아요. 세계 영화계의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은 역사적인 흐름이 있었고, 최근엔 봉준호 감독님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 등 선배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드라이브 마이 카>로 그 관심이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영화제를 다니다 보면 확실히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체감하는 요즘인데요. 앞으로도 이런 관심과 신뢰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 영화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어? 빨간 자동차였나?’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원작은 노란색 자동차로 스크린으로 오면서 그 색상이 변경됐다.
“특별한 상징은 없어요.”
“SAAB 자동차를 빌리러 갔을 때, 처음에는 노란 차를 빌리려 했거든요. 한데 업체 사장님이 타고 온 빨간 차가 한눈에 들어오는 게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지면서 바로 사로잡혔습니다. (웃음) 또 드라이브하면서 스치는 풍경이 중요한 영화라 화면에서 노란색은 다른 색에 묻힐 수 있겠다는 단순한 이유예요.”
179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등장인물들은 왕왕 긴 호흡의 대사를 주고받음에도 영화는 상당히 고요한 인상을 남긴다. 후반부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장거리 드라이빙 여정을 통해 두 인물 사이의 신뢰는 더욱 다져지는데 이때에 침묵과 대화의 적절한 호흡 조절로 인해 극은 한층 더 깊은 정서를 담는다.
“사실 제 영화가 말, 그러니까 대사가 많은 편임에도 침묵의 영화라는 말씀을 자주 들어요. 특히 <드라이브 마이 카>는 더 그렇고요. 아마도 가후쿠가 말해야 할 것도 말하지 않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캐릭터라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네요.”
“가후쿠는 미사키를 만나고 나서는 특히 타자의 말을 끄집어낸다고 할지, 말하기보다는 듣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에게 자동차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침묵을 공유하는 공간이죠.”
“가후쿠와 미사키는 점차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과 시간을 받아들이고 나눌 수 있게 되는데요. 홋카이도를 갔을 때 순간 아무 소리가 없는 무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런 제 느낌이 영화 속에 표현된 것 같습니다.”
“어딘가 희망이 느껴지는 엔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원작의 세계관과도 일맥상통할 것 같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미사키가 작은 행복을 손에 넣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12월 23일 개봉한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람 포인트를 꼽는다면 배우의 뛰어난 연기입니다. 가후쿠역의 니시지마 히데토시 배우가 뉴욕타임스 그레이트 퍼포머상을 받았는데요, ‘하루키가 쓴 소설의 문장과 글을 배우가 신체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으니 꼭 봐주시길요.”
사진제공. 영화사조아, ㈜트리플픽쳐스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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