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신세경이 서촌을 탐방한다. 익숙하기도 낯설기도 한 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공간에 들러 잠시 머물고, 그 안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가 있다. <어나더 레코드>는 배우 신세경과 김종관 감독, 그리고 삶의 변곡점을 마주한(할) 사람이 만나 완성한 캐주얼한 다큐멘터리다.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며 가볍게 산책하듯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한 조각과 맞닿길 바랐다는 김종관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어나더 레코드>는 큰 틀은 있되 그 안에서 배우의 평소 모습을 포착한, 새로운 접근의 다큐멘터리다. 시네마틱 다큐라 할만하다. 기획 배경은.
그간 영화 외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유튜브 영상, 뮤직비디오 등을 작업했고 올해는 전시 상영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다.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작업은 새롭게 배우는 게 있어서 좋다. 배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제안을 받았고 극영화와는 다른 포맷이지만, 창작자인 내 개성 안에서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시도했다.
주인공이 신세경 배우인 이유가 있을 터다.
그가 평소 유튜브 등 SNS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 삶에서 일(연기)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지만, 행복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사는지 고민하는 게 읽혔었다. 보통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세경씨는 용기 내어 본인만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서촌을 배경으로 한 이유 또한 있을 터다. (웃음)
생소한 작업이지만, 찍을 즈음 여러 다큐 작품을 보면서 장점을 느끼던 차였다. 정통 다큐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가볍고 캐주얼하게 접근하지만, 삶에 대한 성찰 한 조각이 묻어났으면 했다. 그러려면 기댈 곳이 필요해서, (웃음) 내가 잘 아는 공간인 서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서촌을 담은 아름다운 영상과 이에 어울리는 배우가 시선을 잡아끈 건 사실이다. 그런데 보다 보면 말했듯이 삶의 한 조각에 맞닿는다는 느낌이 들더라.
<어나더 레코드>의 테마는 서촌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 안에서 낯선 사람과 나누는 대화와 교감이다. 세경씨가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의 흐름과 조금은 다를지라도 자기의 행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들이다. 세경씨 또한 다르지 않다. 결국 이 영화는 신세경 배우 내면의 이야기이자, 행복과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공간과 사람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최악의 하루>(2016), <더 테이블>(2017) 등 서촌을 무대로 작업해 왔는데 이번에 촬영하면서 새롭게 발견 혹은 느낀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서촌에 둥지를 튼 사람을 담은 점이 달랐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실제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부분이 내게는 각별하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영화로만 공간에 접근했다면 이번에는 그 공간에서 내가 위로받은 경험이랄지, 위로받은 포인트를 잘 전달하고 싶더라.
당신에게 서촌이라는 공간 자체가 힐링인가 보다. (웃음)
영화계엔 강박적인 삶 속에 매달린 사람이 여럿이고 또 욕망이 강한 사람도 많다. (웃음) 그 안에서 피곤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데 서촌에 살면서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다. 카페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고 밥 먹을 때 쓱하고 계란후라이 하나 얹어 주시기도 하고 그런 이웃 틈에 살며 내 삶의 위기를 이겨낸 것 같다.
방문과 만남, 그러니까 공간과 사람을 캐스팅하는 데 어떤 기준이 있을 것 같다.
세경씨와 만나는 사람 간의 접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포맷 안에서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전작 <최악의 하루>를 보면 주인공은 하루에 세 명의 남자를 만나는데 그중에서 낯선 사람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눈다. 이렇듯 타인이지만 어떤 교집합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흥미로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타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이를 위해 어떤 설정을 했을까?
그래서 (장소와 인물) 캐스팅이 중요했다. 궁합이라고 할지, 서로의 조합이 잘 맞아야 했으니까. 예능처럼 자극적인 미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통상의 다큐보다 헐거운 구성이기 때문에 몇 가지 키워드는 주되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가져갔다. 특히 대화에서 취향과 공감의 포인트가 있었으면 했다. 세경 씨와 사전 인터뷰를 해보니 그녀는 자기 생각을 잘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질문도 많은 사람이더라. 궁금함 그러니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연스럽게 포맷을 만들어 가지 않을까 기대했고 예상대로였다.
신세경이 만난 이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음… 미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이에 강박적으로 휩싸여 살지 않고, 또 행복을 명예나 물질로 한정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서촌에 정착한 이들 중 이방인이 많은데 보면 삶의 변곡점에서 자기만의 흐름으로 행복을 찾고, 지금 그러니까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자기 안의 싸움을 통해 결정한 삶의 방식이겠지. 신세경 배우도 비슷한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으로서는 세경 씨와 평범한 이웃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으면서 삶의 가치에 대해 돌아보는 다큐가 됐으면 했다.
배우와 타로 마스터의 만남으로 여정을 시작하는 점이 특색있더라. 그가 일정표(?)랄지 방문할 곳의 지도를 주지 않나. 타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산책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따라가다 말했듯이 삶의 한 조각을 느꼈으면 해서, 이를 위해 고요하게 시작해 작은 소동을 겪고 다시 고요하게 마무리하는 구성을 가져갔다. 요즘 유행하는 MBTI처럼 타로를 통해 세경씨의 개성을 드러내고, 세경씨와 동갑인 배우 겸 타로 마스터가 친구에게 타로점을 쳐주는 그림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타로 아이디어는 내용은 다르지만, 영화 <5시에서 7시까지 클레오>(1962, 아네스 바르다 연출)에서 떠올렸다.
OTT 플랫폼인 KT Seezn을 통해 공개하는 작품이다. 그간 넷플릭스와 작업하는 등 OTT를 처음 경험하는 건 아니지만, 영화와 차이점이 있다면. 또 <어나더 레코드>를 본(볼) 시청자께 어필 포인트를 짚는다면.
만드는 과정보다 제공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주에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주에 올인한다면 OTT 콘텐츠는 보다 긴 호흡으로 가게 된다. <어나더 레코드>를 이미 본 분도 있을 거고 앞으로도 많은 관객과 만나겠지. 배우 신세경을 좋아해서 보다가 인간 신세경의 평소 생각과 가치에 대해서 알게 될 거다. 또 과감하게 퇴사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운 한편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이런 것들이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청각과 촉각으로 계절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당신에게도 <어나더 레코드>가 터닝포인트일까. 혹은 터닝포인트를 촉진했을까.(웃음)
세경씨가 소속사를 옮기는 등 변곡점에서 안정 속에 도전을 추구하며 고민할 때 이 영화를 만났듯이 나 역시 서촌이라는 ‘안정’ 속에서 다큐라는 도전을 했다. 일도 중요하지만, 때론 ‘쉼’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어나더 레코드>를 촬영하면서 이런 부분에 집중했던 것 같다. 내가 지닌 강박을 내려놓고 먼 호흡으로 미래를 바라보고자 했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강박으로 놓친 부분이 여럿 보이거든. 이제는 그러지 말자고 생각했다.
<어나더 레코드>를 시리즈로 이어갈 의향이 있나. 또 구체적을 밝히긴 힘들겠지만, 포착하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
이번 작업은 재미있으면서도 이를 통해 많은 걸 배웠고 인식의 범위도 넓어졌다. 한 번 해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지만, 알다시피 내가 결정권자가 아닌지라. (웃음) 또 캐주얼한 다큐지만, 이런 작업을 이어간다면 극 영화 작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알고 싶은 배우는 있지만, 말했듯이 밝히긴 힘들다.
마지막으로 소소하게 즐거운 일이 있다면.
주로 가는 곳 중 술집이 많은데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좋지만, 혼자 맛을 음미하고 생각하는 즐거움도 크더라. 커피 한 잔을 여유 있게 즐기는 것도 그렇고 ‘쉰다’는 게 내겐 행복을 주는 것 같다. 그래서 걷다가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시고 하는 등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늘려가려고 한다.
사진제공. KT Seezn
2021년 11월 1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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