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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정.해.인” 외칠 만큼 긴장했던 현장 < D.P. > 정해인
2021년 9월 6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말년 병장 ‘황장수’(신승호)가 갓 들어온 이등병 ‘안준호’(정해인)를 실감 나게 갈구는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오면, 과장을 조금 보태 군대 다녀온 남성 100중 99는 이 콘텐츠가 재생되는 화면 앞으로 ‘자동 소환’될 것 같다. 대한민국 병역의 의무를 마친 이들의 팍팍했던 경험을 ‘고증’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하며 뜨거운 입소문을 끌어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 D.P. > 이야기다. 선임 ‘한호열’(구교환) 상병과 탈영병을 추격하는 d.p(Deserter Pursuit)조를 맡게 된 ‘안준호’역의 정해인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서 보여준 사랑꾼 이미지를 넘어서, 영화 <시동>(2019)에서 보여준 다소 불량했던 순간순간의 표정을 보다 묵직한 얼굴로 발전시켰다.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 군 생활을 피해 도망친 탈영병 각각의 사연을 알게 되는 마음 깊은 주인공의 모습으로 말이다. 내무반을 똑같이 재현한 세트장 첫 촬영에서 자기도 모르게 “일병 정.해.인”을 외친 뒤 어안이 벙벙한 부끄러움을 경험했다는 그의 흥미로운 < D.P. > 촬영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본인 군 생활 당시가 많이 떠올랐을 것 같은 작품이다.
정말 많이 생각났다. 이등병 때는 고참이 내 어깨에 손만 얹어도 무조건 관등성명을 대야 했던 기억도 나고, 주변을 살피고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되게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내무반의 공기가 당시 나에게는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웃음) 그런데 내무반 첫 촬영에서 세트가 너무 리얼하고 선임 역을 맡은 배우들까지 연기가 너무 진짜 같다 보니 긴장이 됐다. 나도 모르게 “일병 정.해.인”이라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나도 (사람들이 d.p.를 보고 자주 말하는) PTSD가 왔다고 해야 될까…(웃음) 너무 긴장하니까 내 이름이 나오더라. ‘안준호’로 몰입했어야 하는데 ‘정해인’으로 몰입해서 참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그 신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황장수’ 병장 역을 맡은 신승호는 정작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고 하던데.(웃음)
정말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은 훌륭한 배우다. 아직 군대에 안 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했다. 좀 불편하고 거북할 수 있는 연기인데도 잘 소화했는데 캐릭터 분석이 완벽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준희 감독님의 디렉션도 유연하게 받아내는 상황이 많았다. 실제 성격은 무척 예의 바르고 착하다. 첫 날 첫 촬영부터 내 가슴팍과 뺨을 때리고, “위치로”라는 대사를 하면서 못 앞에 세워놓고 괴롭혀야 하는 신을 찍어야 해서 (신)승호와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날 좀 더 편하게 때리고 터치할 수 있게(웃음) 편하게 해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신이 연기한 ‘안준호’는 어떤 인물인가. d.p.조에 배정돼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본적으로 죄의식이 있는 인물이다. 문제점을 남이나 다른 데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서 찾는다. 영창에 갇혔을 때 환상처럼 (가정폭력 장면이) 보여지는 신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 늘 죄책감이 있고, 그걸 극복하려는 사람 같다. 상황에 부딪히고 문제를 자기 안에서 찾는 건 실제 나와 비슷한 부분이다. 다만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권해효)가 나라면 너무 미웠을 것 같은데 ‘안준호’는 나름대로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픔이 있는 복잡한 인물이라 연기하면서 여러 가지로 쉽지 않았다.

가장 공감됐던 탈영병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허치도’(최준영) 병장 이야기가 큰 울림이 있었다. 나도 할머니와 같이 자랐고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조석봉’(조현철) 일병 에피소드는 마음이 많이 안 좋고 무거웠다. 촬영하면서도 갑갑했고, 슬펐고, 화가 나서 너무 어려웠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내가 그렇게 울 줄 몰랐다. 리허설 없이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할 정도로 괴로운 연기였다. 당사자를 직접 연기한 조현철 배우님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정말 어려운 연기를 배역에 맞게 잘 해주셨다.


다소 충격적인 시즌 1의 마지막 편 이후, 당신을 비롯한 등장인물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까.
마지막 장면을 연기했던 배우로서 그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시즌 2에 대한 간절한 희망이 있다.(웃음) 한준희 감독님께 여쭤보니 대본을 쓰고 있다고 하시더라. 시즌 1에서는 ‘안준호’의 군인 이전 민간인 모습과 이제 막 훈련병이 돼 훈련받는 모습이 잘 나왔는데,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웃음) 그런 서사가 밑바탕이 돼 다양하게 성장한 모습이 나올 것 같다.

시즌 2에서는 ‘안준호’가 이등병을 지나 상병이나 병장이 돼 있을 텐데.
원작 웹툰에서는 ‘안준호’가 이미 상병이고 능글능글하게 후임을 대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장면이 시즌 1에서는 안 나왔기 때문에 아마 시즌 2에서는 원작과 같은 방향성 안에서 그려지지 않을까. 원작에 없었던 ‘한호열’ 상병 역을 맡은 (구)교환이 형이 이미 그런 모습의 표본을 잘 제시한 것 같다. 형과 얘기하면서 어쩌면 ‘안준호’와 ‘한호열’은 같은 인물 아닐까? 한 명을 이렇게 쪼개서 표현한 것 아닐까? 하고 이야기했던 적도 있다. 나도 앞으로의 두 사람 모습이 참 궁금하다.


언급한 것처럼 d.p.조 선임이자 ‘짝궁’인 ‘한호열’ 상병 역의 구교환과 연기 합이 좋았다. 구교환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나가고 정해인은 진지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더라.
교환이 형은 정말 위트있고 유머러스한 배우다. 형 덕분에 촬영장 가는 길이 되게 설렜고 기대됐다. 과연 오늘은 어떤 대사를 할까, 이 대사는 어떻게 표현할까(웃음) 하면서. 사실 나는 이등병 역할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었다. 대신 눈과 귀를 항상 열고 상대 배우의 액션을 관찰한 뒤 리액션을 많이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교환이 형이 하는 연기를 계속 관찰하면서 잘 받아내려고 해서 형도 (나와 연기한걸)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두 사람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장면도 꽤 있을 법한데.
(‘한호열’이 창고에서 ‘안준호’를 괴롭히는 척 소리 내던 장면에서) 애드리브가 편집되지 않고 많이 살았던 것 같다. 본래는 교환이 형이 물건을 던지는 순서, 던지는 방향, 내가 어느 타이밍부터 맞는 소리를 내야 하는지는 다 계산된 장면이었다. 그런데 교환이 형이 갑자기 물건을 나한테 던지듯 건네는 장면이 있다. 이걸 나더러 던지라는 건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를 돌발 행동이라 주먹으로 쳤다.(웃음) 또 있다. ‘박범구’ 중사(김성균)가 우리 둘을 터미널에 내려준 뒤 걸어갈 때. 교환이 형이 ‘너 음식 뭐 좋아하냐, 매운 라면 좋아하냐’ 묻고 나는 ‘다 좋아한다’면서 애드리브 파티를 열었는데 그게 다 편집돼서 아쉬웠다.(웃음) 그런 뒤에 ‘한호열’네 집에서 실제로 라면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거였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이 즐거움을 주는 한편 < D.P. >라는 콘텐츠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는 군 가혹행위라는 무거운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내가 08 군번이고 2010년에 전역을 했다. < D.P. >의 배경은 그 뒤인 2014년도다. 그러니 내가 군 생활을 하기 전에도, 하는 시기에도, 하고 나서도 사건사고가 실제로 있었다는 거다. 군대의 어두운 면과 부조리한 현실을 직면하는 작품인 만큼 연기하는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다. ‘안준호’라는 캐릭터를 정말 진지하게 대하면서 연기했다.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촬영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요즘 군대는 많이 바뀌었고 병영 문화도 많이 개선됐다고 알고 있다. 과거보다 더 많이 개선돼서 이제는 가혹행위라는 게 정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뜨거운 공감을 끌어내고, 군대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저래?’ 하고 되묻게 되는 충격적인 콘텐츠인 것 같다.
물론 군대라는 곳은 (작품처럼) 정말 부조리가 많은 곳이고 힘든 기억도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그래서 군대에 이미 다녀오신 분들, 이제 가야 하실 분들이 더 열렬한 반응을 해주시는 것 같다. 많은 호평을 해 주신 덕에 이런 인터뷰 기회도 생긴 것 같아 출연한 배우로서 많이 얼떨떨하고 기분도 좋다. 다만 (경험자로서) 그래도 그렇게 안 좋은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전역 후에) 선임, 후임을 만나서 그때 그래도 참 재미있었다는 식으로 떠올리는 좋았던 기억도 있으니까. < D.P. >는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어찌 보면 ‘창작물’이기 때문에, 보는 분들이 더 빠져들어서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배우 인생 처음으로 다소 불량한 얼굴을 보여줬던 <시동> 인터뷰 당시 배우로서 자존감을 가장 잘 지키는 건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 D.P. >를 통해서 전에 없던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준 상황에서 이 연기 철학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럼, 물론이다. 자기 일을 잘 했을 때의 성취감은 아마 어떤 직업이든 다 비슷할 거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건 연기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가 나온 작품을 보고 재밌다고 말해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럴 때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여러 기쁜 감정이 든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번 하게 되는 순간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봄밤>에서 사랑꾼 이미지를 굳혔다. 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동>과 < D.P. >를 선택한 건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물 흐르듯이 간 것 같다. 내 의지로 선택했다기보다는 감독님과 작가님이 정해인이라는 배우에게 이런 모습도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신 것 같다.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구독자에게 눈도장을 찍게 됐는데, 해외 진출 계획도 있나.
안 그래도 요즘 영어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다.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너무 좋겠다.(웃음)


사진 제공_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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