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고봉수 감독과 백승환, 신민재, 김충길 배우. 대책 없는 합창대회를 향한 네 남자의 무모한 도전 <델타 보이즈>(2016)부터 레슬링을 사랑하는 소년의 1승 도전기 <튼튼이의 모험>(2017), 흑백 무성 절절한 로맨스 영화 <다영씨>(2018)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투박하고 진솔한 감동을 일궈온 일명 고봉수 사단이 <습도 다소 높음>으로 다시 뭉쳤다. 여기에 깜짝 출연한 전찬일 영화평론가와 이희준 배우가 가세해 천연덕스럽고 찰진 연기로 GV 현장의 티키타카 묘미를 제대로 살린다. 긴축운영과 철통방역을 위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낭만극장’을 무대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의 어느 하루 벌어진 습한 이야기 <습도 다소 높음>의 주역 고봉수 감독과 백승환 배우를 화상으로 만났다.
<델타 보이즈>(2016)때 마포 모 카페에서 두 분과 인터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습도 다소 높음>으로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감독님, 지난해만 해도 준비하는 작품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고봉수 감독(이하 고봉수)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이건 영화로 찍어야 한다는 어떤 사명(?)이 생겨서 말이죠. 좀 급하게 진행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사명감이군요. <습도 다소 높음>의 연출 의도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고봉수 감독 코로나로 외부활동에 제약이 많다 보니 소위 ‘코로나블루’도 생기고 우울감이 커졌잖아요. 이런 마음을 달래고자 기획했습니다. 한편으론 코로나로 인해 영화계가 큰 타격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작은 극장은 몰락할 위기에 처했는데요. 극장을 비롯해 사라지는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안타까움을 영화에 녹여보고자 했습니다.
백승환 배우(이하 백승환) 얼마 전 서울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예전에 <델타 보이즈>를 자주 상영해 준 고마운 곳인데 말이죠. <습도 다소 높음>은 젊은 그대, 힘들어도 그래도 나아가 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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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GV 장면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영화 속 영화인 ‘젊은 그대’는 무용가를 꿈꾸는 힘이 세고 다소 우악스러운 여성 ‘유미’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조폭(?) ‘주환’을 주인공으로 한 장르 애매한 드라마인데요. 전찬일 평론가가 ‘젊은 그대’를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연결해 이야기하는데, 왜 <달콤한 인생>인가요?
고봉수 전찬일 평론가께 ‘젊은 그대’를 먼저 보내 드린 후, 평소 GV에서 하듯이 최대한 선생님 스타일대로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슛 들어가면서 김지운 감독님의 <달콤한 인생>(2005)이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이희준 배우에게는 최대한 교만하게 보이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그 결과 ‘영화를 본 적 없다’가 나온 거죠. 정말 GV 하는 것처럼, 가능한 한 현장감을 전달하고 싶어서 카메라 두 대로 관객과 GV 석을 번갈아 비추면서 촬영했어요.
GV에서 감독이 자기의 영화 세계에 대해 설명하잖아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어쩌고저쩌고 말이죠. 감독님! GV라고 생각하고 <습도 다소 높음>을 소개한다면요.
고봉수 <습도 다소 높음>은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을 오마주한 마지막 장면이 포인트예요. 저희한테 시네마는 말 그대로 천국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자체는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영화 속의 영화 ‘젊은 그대’가 상영될 때는 뭔가 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나거든요. 이를 통해 확실히 영화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판타지이고 천국이 맞다는 걸 전하고자 했습니다.
독립영화감독으로 출연한 이희준 배우의 연기가 매우 찰진데요, 네임드 배우의 파격적인 합류가 아닌가 합니다. 관련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고봉수 이희준 배우가 <남산의 부장들> 촬영 당시 이병헌 배우한테 <델타 보이즈> 얘기를 듣고 재미있게 봤다고 합니다. 마침 낭만극장 사장을 연기한 신민재 배우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길래 다리를 놓아 달라고 부탁했죠. 당시 이희준 배우가 <보고타>의 해외 촬영이 중단돼서 국내에 있었거든요. 다행히 하루 일정이 비는 날이 있다고 해서 서둘러 시나리오를 써서 보냈죠.
백승환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확인했다니까요.
'승환'(백승환)은 기대를 갖고 자신이 출연한 ‘젊은 그대’를 보는데 얼굴이 한 번도 노출되지 않습니다. 막냇동생 보겠다고 상경해 GV에 참석한 두 형은 이희준 감독에게 그 이유를 묻고요. 감독은 배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답합니다. ‘승환’은 어떤 인물인지 캐릭터를 소개한다면요.
백승환 감독님이 처음부터 그는 매우 순수한 총각이라고 소개했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실제로 무명 배우인 승환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러니까 실컷 찍었는데 얼굴이 한 번도 안 나오는 것 말입니다. 아무래도 캐릭터와 실제로 유사한 면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음, 순수라고 하기엔 눈치제로에 지나치게 나이브하지 않나 싶습니다! (웃음) ‘승환’이 입은 붉은색 슈트와 푸른색 배낭 등 스타일이 시선을 확 잡아끄는데요, 나름대로 깔 맞춤했더군요. 또 헤어도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고요.
고봉수 눈치는 없지만 그래도 ‘진심’이잖아요. 진심한 순수라고 할까요. 하하
백승환 헤어의 메이드는 동네 미용실, 아이디어는 감독님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존 트라볼타의 사진을 한 장 보내왔어요. 이런 헤어스타일로 가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의상은… 감독님과 영화를 여러 편 찍었는데요, 이번에 처음으로 의상 감독님이 계셨어요. 두 분이 쑥덕쑥덕 상의하더니, 붉은 정장으로 가자는 거예요. 뭐 따라야죠. 무명 배우의 패기로 해석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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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운영에 들어간 극장 사장(신민재), 유일한 아르바이트생 ‘찰스’(김충길), ‘젊은 그대’의 주인공인 ‘주환’(고주환) 등 개성 있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를 짚는다면요.
고봉수 ‘찰스’는 열심히 사는 여러 젊은이를 대변하는 캐릭터예요. 많은 분이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찰스라고 불린 사연이 있습니다. 의상 감독이 준비한 옷 안에 이름표가 있었는데요, 그 안에 ‘찰스’라고 쓰여있었어요. 재미있겠다 싶어서 가져갔죠. 대사 중 그만둔 동료 로 ‘데미안’, ‘마이클’이 등장하잖아요. 이건 충길 배우의 애드립이었어요. 본인이 찰스니 동료들도 외국이름을 즉석에서 붙인 거죠.
‘주환’은 여성분들의 공분을 사지 않을까 합니다. 결혼 준비는 뒷전이고 속 편하게 영화나 찍으러 다닌다고 약혼자가 비난하는데요. 철없을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와 연기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인입니다.
혹시 ‘주환’은 감독님이 투영된 캐릭터 아닌가요? 극 중 주환의 약혼자로 나오는 분이 감독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또 배우님은 극 중 주환과 같은 경험은 없었나요?
고봉수 엇, 맞습니다. 와이프예요 ‘주환’처럼 결혼이 깨질 지경까지는 안 갔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도 있죠. 영화를 꿈꾼다는 점에서요.
백승환 결혼까지는 아니고요. 만나고 손잡으면서도 사귀는 건 아니라고 못 박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가 배우라서 말이죠.
개인적으로 극장 사장이 볼매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든 감독이든 아르바이트생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함부로) 공평하게 할 말 다 하잖아요. 비굴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고봉수 그는 영세한 자영업자, 그러니까 소상공인을 대표하는 캐릭터죠. 코로나로 인해 가득이나 극장 운영이 어려워져서 어쩔 수 없이 긴축운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에어컨도 안 트는, 못 트는 거예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매력 포인트네요.
엔딩 크레딧을 보면 ‘주환’역의 고주환 씨가 연기 외에도 정말 여러 역할을 담당하던데요. 어떻게 고봉수 사단의 일원으로 합류한 건가요?
고봉수 제 전작 페이크 다큐인 <갈까부다>(2018)의 배급을 맡은 배급사 대표님이고, 또 이번 <습도 다소 높음>의 원안을 기획 개발, 공동 제작하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도움 주신 분이에요. 연기도 부탁드리니 흔쾌히 OK 하셨고요. 연기를 계속할지 또 사단에 합류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직까지는 서먹한 관계라고 할까요. (웃음)
이름부터 낭만적인 ‘낭만극장’은 종로 어디에 있나요? 짧은 촬영 일정과 초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데요. 촬영기간과 예산 규모는요.
고봉수 낙원상가 위에 있고, 현재 시니어 전문 극장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 4회차로 완성했고요, 예산은 지금까지는 항상 밝혔지만, 이번에는 제작사가 따로 있는지라 밝히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는 내내 습기가 느껴지는 작품인데요. 더위로 고생했을 것 같습니다.
백승환 지난해 6월 코로나가 한 풀 꺾였을 때 촬영했는데요, 그렇게 덥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땀에 젖은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물을 계속 뿌리면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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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국면에서 크고 작은 영화들의 촬영이 중단되고 개봉이 연기되는 등 영화계 전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백승환 개인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마음을 내려놓고 잘 헤쳐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촬영 즈음으로는 하루에 몇 시간씩 복싱을 해서 땀 흘리고, 몸을 혹사해 잡념을 떨쳤어요. 그럴 즈음, 영화에 들어간다는 문자를 아침에 받고 참 행복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납니다. 간만에 촬영이라 많이 설렜고, 또 고봉수 사단이 다 같이 오래간만에 하는 작품이라 더욱 기대됐었죠. 그 후에는 사실.. 몸이 좀 아팠고, 다행히 지금은 회복 중에 있습니다. 요즘에는 건강 관리에 전념하고 있어요.
고봉수 코로나 이전보다 극장에 자주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극장에 가는 걸 꺼려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보는 환경은 오히려 개선된 것도 있습니다.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할까요. 요즘에는 극장가서 영화 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다.
영화가 한마디로 ‘땀이 눈물로’라고 할까요. 왜 안습이라고 하잖아요. 습기의 결이 바뀌면서 엔딩으로 갈수록 짠한 마음이 서서히 퍼지더군요. 여기에는 이희준 감독이 약속한 다음 작품이 무산됐다는 전화를 받은 승환이, 실망을 털고 일어나 복싱 유튜브를 찍는 등 파이팅하는 모습이 크게 작용하는데요.
백승환 제가 나와서가 아니라 저도 그 엔딩 장면을 좋아합니다. 저 역시 극중 ‘승환’과 마찬가지로 무명에 가까운 배우기 때문인데요. 그가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도전이자 위로가 됐습니다.
고봉수 저 지금 놀랐습니다! 와이프가 정확하게 그런 표현을 했거든요. 습기가 안구에도 맺힌다고요. 이 자리를 빌려 이수빈 음악 감독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같이 작업했는데요, 부족한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퀄리티 있는 음악을 뽑아 주셨어요. 전 그 음악이 흐르는 극장 정리 시퀀스를 제일 좋아합니다. 사장과 찰스가 하루 상영을 끝나고 극장 문을 닫는 장면 말이죠.
백승환 이전의 감독님 영화는 대체로 남성 팬이 많았거든요. 이번에는 여성 관객도 좋아하지 않을까 합니다. 여성분들이 많이 보셨으면 해요.
사진제공. 백지수표㈜, ㈜ 곰픽쳐스
2021년 9월 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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