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해당 인터뷰는 <랑종>에 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랑종>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은 첫 번째,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점이고 두 번째는 온갖 터부를 건드리는 정서와 표현 수위다. 불쾌함과 찝찝함에 ‘왜?’라는 물음표가 저절로 따라붙는데 반종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꼭 필요했다”
역대급이라는 일각의 시선이 있는가 하면, 근친과 난잡한 성관계, 동물살해 등 불쾌를 넘어 혐오감이 들 정도라는 의견도 있다.
“우선,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해당 사건들은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랑종(무당)에게 들었던 내용이나 관련 자료에 근거한 것들이다. 장면의 연결과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으로 결코 자극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정적이거나 무서운 장면은 의도적으로 CCTV 화면을 통해 어둡거나 희미하게 하는 식으로 톤 조절을 거쳤다.”
수위 조절에서 나홍진 감독은 오히려 톤다운을 주장했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진실은 뭔가. (웃음) 의견이 갈리는 점은 없었는지.
“나 감독님과 수위조절에 대해 정말 의견을 많이 나눴다. 그 결과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스토리에 관련된 꼭 필요한 화면만 넣었다. 또 굉장히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스럽게 촬영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 처음부터 합의된 건가.
“원작(시나리오) 자체가 페이크 다큐 형식이었다. 사실 픽션으로 가는 게 어떨지 여러 번 생각했었다. 나 감독님과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눈 후 우리가 원하는 목표, 즉 영화가 가장 파워풀해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합의했다. 관객이 태국의 무속과 신앙에 대해 직접적으로 느끼고 실제적인 공포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최후의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모습을 담았는데 이는 요즘의 (위험을 무릅쓰고 영상을 만드는 일부 유튜버나 스트리머 등) 추세를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다.”
페이크 다큐로 작업하면서 중점을 둔 지점은.
“밀착 기록형식을 취하면서 어떻게 촬영해야 리얼리티를 살리고 무섭게 보일지에 집중했다. 신앙을 드러내고, 퇴마 등 여러 의식을 파워풀하고 현실감 있으면서도 신성하게 보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를 든 사람 앞에 예상치 못한 존재가 등장하고 그러면서 화면이 흔들리고 피가 튀는 등으로 공포를 조성하고자 했다.”
|
국내에서 최고로 ‘무서운’ 영화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작품 중 하나가 <셔터>(2004)다. 젊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1979년생)의 이름을 단숨에 각인한 공포물. 이후 <샴>(2007), <포피아>(2008) 등 공포물을 연이어 선보이며 태국을 동남아 공포의 본원으로 올려놓았다.
태국 공포, 생활상과 밀접
엔딩에서 ‘바얀 신을 느낀 적이 없다’는 랑종 ‘님’의 고백은 굉장한 반전이었다. 모든 생명과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범신론적인 태국 민간 신앙과 맞물리면서 인간도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걸 역설한다고 할지, 개인적으로 여타 빙의· 퇴마 영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아닌가 한다.
“그 장면은 극의 완성도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기 위해 꼭 필요하고, 영화의 의도를 반영한 매우 중요한 장면이다. 관객이 그간 지켜온 신념과 믿음, 신앙 그리고 의심과 배신 등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와 관련한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
공포영화의 쾌감이라고 할지, 묘미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공포영화의 매력은 당연히 공포감이다. 그런데 관객에게 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한때 공포 장면의 패턴이 너무 겹치고 유사해져서 즐길 만한 공포영화가 줄어들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낀 때가 있었다. 줄어들고 줄어들어 점점 없어지는 지경까지.(웃음)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셔터>와 <샴> 이후 공포영화 연출에 염증이라고 할지, 따분해져서 다른 장르로 눈을 돌렸다. 이런 시간이 흐른 후 <곡성> 등 신선한 스타일의 공포영화를 접하면서 다시 새롭게 (공포물에) 매력을 느꼈다. 요즘에는 예술적인 요소가 강하고, 유니크한 분위기와 영상을 통해 인간의 원죄를 다룬다고 생각한다. 이번 <랑종>은 차별화되고 특색 있는 공포를 만든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산지역을 공간적인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산지역은 태국의 동북부 지역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분위기가 영화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태국의 샤머니즘을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랑종을 만났는데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흥미롭거나 인상 깊었던 일이 있다면.
“오랜 시간 조사하면서 그간 잘 알지 못했던 태국의 무속신앙과 무속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그분들 중 금전적인 이유를 떠나 정말 순수한 의도로 무속인의 삶을 사는 분도 있다. 예를 들면 30바트(약 1,000원) 정도만 받고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분이 있는데, 진짜로 치료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 치료를 받고 실제로 나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리적인 면에선 확실히 치료 효과가 있는 것 같더라. 랑종은 해당 주민들에게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 같은 역할도 하지 않나 싶었다.”
|
여러 원혼에 빙의 된 ‘밍’의 변화 과정을 매우 자세히 보여준다.
배우와 감독, 그리고 프로듀서인 나 감독님이 협업해서 나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빙의나 이상 증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나릴야 배우와 같이 태국에서의 유사 사례와 이를 담은 영상 등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나 감독님 역시 스탭들에게 조언을 전하고, 자료를 직접 찾아 보내주는 등 여러모로 도움 주셨다.”
‘밍’으로 분한 나릴야 군몽콘켓 배우가 굉장히 강렬한 연기를 펼치는데, 가이드라인만 주고 촬영했다고.
“영화의 리얼리티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이후는 자연스럽게 끌어가도록 했고, 대사는 중요한 대사만 포괄적으로 정하고 들어가 애드립할 기회를 많이 줬다. 물론 촬영 후 톤과 분위기, 전체적인 어울림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조절해 나갔다.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초반 장례식 장면에서 ‘밍’이 노인에게 욕을 퍼붓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도 가이드만 정하고 촬영한 거였다.”
아시아 여타 나라들과 다른 태국 공포의 차별점 혹은 태국 공포의 근간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음…개인적인 의견이다. 태국사람의 생활상과 밀접하게 관계있다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신앙이 믹싱돼 있고, 또 그만큼 노출도 많이 돼 있다. 이번 리서치하면서 알게 된 점이 마을마다 여러 귀신을 믿는데 또 바로 옆에는 교회가 있고, 조금 지나면 절이 있고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태국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귀신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데다 커서도 술 마실 때 등 괴담을 듣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 이런 생활상이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잘 만드는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랑종>은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라 <곡성>과의 비교는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다. 영화의 톤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나 <곡성>과 유사성이 있다는 게 중론인데, 기자간담회에서 두 감독 모두 <곡성>과는 최대한 멀어지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컷 한 컷 심혈을 기울여, 나 감독께
<곡성>이 열린 결말에 여러 상징으로 해석의 여지가 컸다면, <랑종>은 직선적이고 상당히 암울한 결말이라는 인상이다. 영화에 담고자 한 철학은.
“이번 영화에서는 인간과 악령, 원죄 등 ‘악’에 대해 풀어나갔다. 악과 원죄에 대해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자고, 우리가 결론을 내리지 말자고 나 감독님과 의견을 모았다.”
<랑종>의 제작 소식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였다. 히스토리를 풀어놓는다면. 궁금하다. (웃음)
“나 감독님과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태국문화센터에서 한국영화전을 진행했고, 내게 작품 선택권이 있어 <추격자>(2008)를 선정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나 감독님이 방콕을 방문해 직접 행사에 참여해 주셨다! 기쁜 마음에 그간 내가 작업한 작품을 DVD에 담아 선물로 드렸고, 그렇게 인연이 끝나나 보다 싶었는데 4년 후 <랑종>을 제안주셨다. 덕분에 같이 작업을 하게 됐는데, 평소 나 감독님의 팬이라 정말 기뻤다.”
나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우선, 감독님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 보면 볼수록 재미의 깊이가 더해진다.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는 이 원작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많이 생각했다.”
영화가 언론에 공개 후, 반응이 뜨겁다. 좀 찾아봤는지.
“기대 이상의 뜨거운 반응에 감사하다. 내가 만든 영화가 해외에서 먼저 개봉하는 경우가 처음인 데다, 너무나 유명한 나 감독님과의 협업도 처음이라… 특정한 리뷰나 피드백을 기대하기보다는 많은 분이 관람하고 결말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한다면 좋겠다.”
국내외적으로 <랑종>에 대한 기대가 크다. 부담스럽진 않나. 또 한국에서 <셔터>가 공포의 대명사로 회자되는데 알고 있는지?
“<셔터>와 <샴>을 꽤 많은 분이 보셨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랑종>의 개봉을 앞두고 한 유명 아이돌이 내 이전 작에 대해 너무 무섭다고 거론해서, 굉장히 흥분되고 동시에 부담과 걱정도 된다. 그런데 개봉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많이 지나갔고 지금은 설렘이 더 크다.
<랑종> 작업하면서 특히 힘든 시기가 있다면.
“힘들기보다 가장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시기는 촬영하면서다. 한국의 천재 감독이자 내 아이돌(우상)인 감독님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 컷 한 컷 신경쓰고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략적인 제작규모는. 또 통상 태국에서 만드는 작품과 제작규모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순제작비는 23억이다. (기자 주: 반종 감독 대신 홍보사가 공식 확인한 내용) 보통 태국영화의 예산이 100만 달러 정도니, 이번엔 2배 이상이 든 셈이다. 덕분에 굉장히 많은 로케이션 촬영을 할 수 있었고, 또 파워풀한 영상을 위해 로케이션을 다니다 보니 제작비가 올라간 부분도 있다.
다른 나라와의 협업, 특히 한국과 협업하면서 연출을 포함해 기존 방식과 다르거나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태국 내에서 작업할 때는 제작사가 내 크레딧에 신뢰가 큰 편이라서 믿음(의지)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웃음) 이번에는 외국(한국)과의 협업에 나 감독님의 유명세, 또 코로나로 인해 나 감독님이 태국 현장에 못 오시는 바람에 촬영 영상을 화상을 통해 확인하는 등 디테일한 면에서 이전 작업보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았다.”
마지막으로 나홍진 감독과 협업한 소감 한마디!
“협업을 단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중압감? 압박감이다. 워낙 감독님의 작품이 마스터피스이고 뛰어난 분이라 이런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굉장히 값진 경험이었다.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느낀 점은 정말 좋은 분이라는 거다. 나를 신뢰해 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감독님이 일방적인 오더를 내리고 그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교환하며 완성한 작품이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진제공_(주)쇼박스
2021년 7월 1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