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90년대생 게이의 삶, 사랑, 청춘 <메이드 인 루프탑>
김조광수 감독이 지난 23일(수) 두 번째 연출작 <메이드 인 루프탑>을 선보였다. 젊은 성 소수자 연인을 주인공으로 한 퀴어 로맨스물이자 청춘의 성장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 10일(목) 화상 인터뷰로 무비스트와 만난 김 감독은 이번 영화를 “90년대생 게이의 삶, 사랑, 청춘”을 다룬 영화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성소수자 영화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2012) 연출 이후 90년대 게이들로부터 “자기 얘기도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듣고 이번 작품 연출을 결심했다.
김 감독은 “90년대생 게이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10대 때 거의 정리한다. 이전 세대는 30대가 다 되도록 정체성 고민이 삶을 짓눌렀고 게이로 사는 것 때문에 언제까지 힘들어야 하는지 생각했는데, 확실히 큰 차이가 있더라”고 말한다.
“정체성 고민이 내 앞길을 막는 것까지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이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길 바랐다. 그러면 (분위기가) 너무 무거웠던 지금까지의 한국 퀴어영화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메이드 인 루프탑>은 연상의 남자 친구와 3년째 연애 중인 취준생 ‘하늘’(이홍내)과 화려한 유투버로 살아가던 일상에서 설레는 인연을 만난 ‘봉식’(정휘)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늘’은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남자 친구의 입장을 헤아리려 하고, ‘봉식’은 성 소수자로 살아가며 겪게 된 개인적은 아픔을 감추고 살아간다.
두 사람은 여느 20대와 마찬가지로 취업과 미래를 고민한다. 성 소수자이자 청년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복합적인 면면이 함께 담겼다.
김 김독은 “퀴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다룬 영화를 밝고 명랑하게 만들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그들이 1년 내내 울고만 있는 건 아니다. 차별이 심하고 현실도 어둡지만 밝게 살아가는 게이도 분명 있다”고 말한다.
또 “주변에 ‘하늘’과 ‘봉식’ 같은 후배들이 꽤 여럿 있다. 그들 사랑의 판타지를 맘껏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메이드 인 루프탑>이 김 감독에게 “청춘영화이면서 동시에 로맨틱 코미디”일 수 있었던 이유다.
제작 아이템 무궁무진, 연출은 성 소수자 영화로
김조광수 감독은 연출자이기에 앞서 영화 제작자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영화사 청년필름 이름으로 제작한 <조선명탐정>은 ‘각시투구꽃의 비밀’, ‘사라진 놉의 딸’, ‘흡혈괴마의 비밀’까지 세 편의 시리즈를 내놓으며 흥행했다.
<와니와 준하>(2001) <분홍신>(2005) <올드미스 다이어리>(2006) <의뢰인>(2011)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 <악질경찰>(2018) 등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하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김 감독은 “제작 쪽에서 무궁무진한 아이템을 풀어냈다. 청년필름이 영화를 제작한지 21년이 됐고 지금까지 21편을 만들었으니 1년에 한 편 정도는 꾸준히 제작했다”고 회상했다.
반면 직접 메가폰을 잡은 두 편의 연출작은 모두 성 소수자를 다룬 영화다. “아직도 성 소수자 영화가 많지 않으니 나라도 꾸준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다.
성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도 그가 성 소수자 영화를 꾸준히 연출하려는 이유 중 하나다.
김 감독은 “지난해 이른바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마치 게이들만 클럽에 가고 (감염병에 대한) 주의를 안 하는 사람인 것처럼 딱지를 붙였다”고 지적했다.
“클럽에서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은 게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들이 선제적으로 검사를 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든 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라는 말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공중파 상영 당시 동성 키스신을 삭제한 것도 “차별”이라고 짚었다. “이미 극장에서 천만 관객이 본 영화인데 그렇게 겁낼 필요가 있었을까” 되묻기도 했다.
다만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부정적인 기류만 있는 건 아니다. 상업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공중파 드라마 <마인>(2021) 등 최근 성 소수자를 의미 있게 다루는 주류 콘텐츠의 비중은 점차 확대되는 흐름이다.
김 감독은 “과거 퀴어라는 소재는 주로 독립 영화에서만 다뤄지거나, 주류 콘텐츠에 등장하더라도 희화화나 반전의 소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뮤지컬에서는 퀴어가 주류인 경우도 있다”고 변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다음 영화는 퀴어판 ‘미생’
김조광수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은 “퀴어판 ‘미생’”이 될 전망이다.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퀴어가 정규직이 되려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영화다. (이성애자와) 똑같은 비정규직일지라도 퀴어인 동시에 비정규직인 사람에게는 다른 면(고민)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기획 계기를 전했다.
신작에는 노동 문제와 함께 사랑 이야기도 담길 예정이다.
김 감독은 “웹툰 원작이 있으니 (시나리오 작업부터 제작까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출연 배우는 확정됐을까.
김 감독은 “눈여겨본 배우가 있다.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아직 캐스팅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관련 기사가 나오면 ‘아 그때 눈여겨본다던 배우가 그 사람이었구나’ 할 것”이라며 웃었다.
<메이드 인 루프탑>을 개봉하고 세 번째 연출작까지 구상 중인 시점에서 김 감독은 “그동안 영화를 찍지도 못하면서 감독이라고 불리는 게 타당한 일인지 생각했지만 이제는 감독이라고 불려도 덜 쑥스러울 것 같다”는 소감도 전했다.
그에게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가끔 내 영화가 좋았다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주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럴 때 기분 좋아진다.”
개중에는 “두려움 없이 사는 게 부럽다”고 말을 걸어오는 청소년들도 있다고 한다.
김 감독은 “그럴 땐 ‘나도 항상 두렵다’고 말해준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내가 낙천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면의 즐거움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진_(주)엣나인필름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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