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관객 또는 시청자의 시간 그리고 돈에 걸맞은 값어치를 하는 연기자가 되는 게 내 목표였다. 감히 내가 나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연기 18년 차를 맞은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그 값어치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흔들림 없는 연기만큼이나 단단한 표현이다. <26년>(2012) <연평해전>(2015) <원라인>(2017)으로 꾸준히 주연 자리에 선 진구는 자신의 현재를 짚어보는 데 자신감이 있었다. 드라마 <올인>(2003)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주인공 ‘인하’의 아역으로 데뷔한 그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과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 등 굵직한 한국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며 또렷한 캐릭터를 빚어왔다. 여러 경험 끝에 만난 건 조금은 결이 다른 작품 <내겐 너무 소중한 너>다. 시청각 장애인 꼬마 ‘은혜’(정서연)를 돌보게 된 영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재식’역을 맡아 아픈 아이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남자의 면모를 따뜻하게 드러낸다. 조금은 새로운 경험이었던 <내겐 너무 소중한 너>의 작업 과정과 연기에 관한 그의 생각을 조금 더 들어본다.
코로나19로 대면 인터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화상 인터뷰는 처음일 텐데 경험해보니 어떤가.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화상 인터뷰인데, 솔직히 별로다.(웃음) 원래는 카페 같은 곳을 빌려서 같이 커피도 마시고 눈도 마주치면서 웃기도 하고 진지하게 고민도 하지 않나. 그게 좀 더 생동감도 있고 기자 한 분 한 분도 기억에 남는데 지금은 좀 고립된 것 같다. 사실 어색한 게 제일 크다. 빨리 마스크 없이 직접 뵙고 인터뷰하고 싶다.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영세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던 ‘재식’이 자살한 소속 아티스트가 남기고 간 시청각 장애인 딸 ‘은혜’를 돌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이 든 남자가 여자아이와의 관계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전개는 <아저씨> <7번방의 선물> <소리도 없이> <담보> 등 숱한 한국 작품에서 차용된 구조다. <내겐 너무 특별한 너>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언급한 작품 중에는 본 것도 있고 못 본 것도 있다. 차별점이라면 지금까지 쌓아온 내공과 연륜이 있는 진구라는 연기자가 작품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좀 더 재미있고 신선하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존재했다는 점 아닐까. 그 과정을 통해서 관객을 이해시키고 재미를 줄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작품을 선택했다. <레옹>(1994)이나 <맨 온 파이어>(2004)처럼 성인 남성과 소녀가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를 참 좋아했는데 장르는 다르지만 비슷한 구도라는 점도 끌렸던 이유다.
돈을 좇는 가난한 남자와 장애를 지닌 어린아이가 가까워지는 평범치 않은 과정인 만큼 설득력이 중요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친밀감 있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설정에) 판타지적인 부분도 있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부모님도 지체 장애가 있는 분들을 집에서 돌보는 봉사를 해오셨다. 집안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도 말이다. 내가 ‘이모’라고 부르는 세 분 정도가 집에 오셨고,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공부를 가르쳐 준 기억도 난다. 어른이 돼 직장인(직업인)이 되고 아이까지 키우며 살아보니 내 어머니께서 그 당시 작은 기적을 행하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영화 속 이야기처럼 현실에도) 우리 모르게 작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많다. 그걸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는 우리들의 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꼬마 소녀 ‘은혜’ 역을 맡은 정서연과 찰떡같은 호흡을 보여주는데,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한 지점은.
동갑내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서연이가 감독님과 소통하는 게 힘들어 보인다 싶을 때마다 그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촬영 전부터 자주 만나서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이야기도 나눴다. 시간이 될 때마다 항상 같이 있었던 게 제일 큰 소통법이었다. 어느 어른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현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서연이가 울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는 것 같다. 성공적으로 ‘케어’한 것 같다.
작품을 제작하고 공동연출을 맡은 이창원 감독이 이 작품의 영화화를 위해 10여 년 동안 애썼다고 들었다. 출연을 결심하면서 그와 소통한 내용이 있다면.
감독님은 이 작품을 통해서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법이 하루속히 만들어졌으면 하셨다. 그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말도 많이 하셨다. 내게는 ‘어떤 연기를 해달라’는 주문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 거로 기억한다. 권성모 감독님이 (공동연출로) 투입되면서 좀 더 밝고 친숙한 내용으로 각색된 것 같다. 10여 년 전 이창원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쓴, 좀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단어를 요즘 스타일로 각색하면서 고쳐나간 거로 안다.
진구 하면 누아르, 액션 장르의 작품이 먼저 떠오르는데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그간의 출연작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예전에는 선이 굵고 소위 말하는 ‘남성영화’에 출연하는 걸 선호했다. 보는 것도 그런 장르를 좋아했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과 6~7년쯤 지내다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코미디 영화를 찾아서 보게 되더라. 관객으로서 웃음 요소가 많고 보기에 편안한 영화를 보게 된다. 물론 여전히 못되고 거친 역할을 좀 더 해보고 싶지만 아이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게 돼 기분이 좋기도 하다.
여러 출연작 중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있나.
가장 인상적인 건 데뷔작 <올인>에서 이병헌 선배의 아역을 맡았을 때다. 가장 소중한 기억이자 순간이다. 그 작품 덕분에 연기자라는 직업을 갖게 됐고 여러 사람들에게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 뒤로 출연한 작품은 모두 ‘사랑스러운 손가락’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시청각장애인지원법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을 준 특별한 작품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제작 중인 박훈정 감독의 <마녀2>에 출연했다. 수염을 기른 상태인데, 촬영은 다 마쳤나.
2020년 여름 이후부터 연말까지 <내겐 너무 소중한 너>를 작업했고, 올해 시작하자마자 <마녀2> 촬영했다. 다 끝나고 보니 지금이다. 수염은 <마녀2> 때문에 기른 것 맞다. 아직 자르지 못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마녀2> 촬영을 무사히 종료했다는 거다.
데뷔한지 18여 년이 흘렀는데, 배우로서 지금까지의 시간을 평가해본다면.
관객 또는 시청자의 시간 그리고 돈에 걸맞은 값어치를 하는 연기자가 되는 게 내 목표였다. 감히 내가 나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연기 18년 차를 맞은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그 값어치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인가.
직업과 참 잘 맞는다. 사람은 여러 성향이 있지 않나. 나는 매번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고 운동, 모험을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내용, 대사, 행동을 담은 책(시나리오)을 매번 만나고 서로 다른 감독, 동료, 스태프와 여러 현장을 다녀야 한다는 점이 나를 만족시키는 것 같다. 아이들이 배우를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말하겠냐는 질문도 굉장히 많이 받았는데,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초반 자리잡기까지는 힘들겠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무슨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하든 잘 해내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 계획은.
딱히 보고 있는 책이 없다.(웃음) 당장 촬영을 들어가기로 한 작품도 없다. 아마 올 여름은 푹 쉴 것 같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운동을 안 했는데 다음 작품을 위한 개인 정비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OTT 플랫폼에서 제작, 투자, 배급하는 시리즈물이나 숏폼 콘텐츠도 많은데 극장 아닌 플랫폼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당신을 만나볼 수 있을까.
아직은 출연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낯선 부분도 있겠지만 좋은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출연 의사가 있다. 요즘은 분량을 따지는 시대가 아닌 거로 안다.(웃음) 워낙 좋은 책(시나리오)이 많이 있으니 나도 언젠가 출연하고 있을 거라고 미리 짐작해 본다.
즐겨 보는 콘텐츠가 있는지.
예능을 너무 좋아해서 몰아보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무거운 시사를 가볍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시사 프로그램이나 퀴즈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한다. 지금은 ‘알쓸범잡’으로 바뀌었는데 ‘알쓸신잡’ 시절 출연진들의 케미스트리도 너무 좋아했다. 요즘은 <놀면 뭐하니?>와 <런닝맨>을 몰아서 보는데 예능 프로그램은 볼수록 참 매력적이다. 나도 그 안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 <요트원정대: 더 비기닝>에 출연한 것도 그런 맥락이겠다.
시청자에게 큰 즐거움을 드리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예능 울렁증이 좀 있어서 출연을 많이 고사했다. 그런데 ‘요트원정대’는 예능보다는 모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더라. 살면서 그런 특별한 경험을 해볼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더라. 재미있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매일 밤 잠들기 직전. 농구를 보면서 누워있을 때도. 편안하게 누워 잠들거나 놀 수 있다는 게 소소하게 행복하다.
사진 제공_(주)파인스토리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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