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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도 맞사랑도 영화가 좋다 <잔칫날> 김록경 감독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아버지의 장례식을 지켜야 할 아들이 팔순잔치의 MC로 무대에 선다. 입관 절차를 밟아야 하는 상주이건만, 시골 잔치 사회자로 낯선 이들 앞에 서서 농담하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좌중의 흥을 돋운다. <잔칫날>은 아이러니에서 페이소스를 길어 올려 끝내 눈물 한 방울 떨구게 하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배우 겸 연출가인 김록경 감독이 내놓은 첫 장편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부터 완성까지 고인이 된 아버지의 존재가 큰 버팀목이 돼 주었다면서 일정 부분 영화에 투영했다고 말한다. 관객이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떠올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김 감독, 함께한 스탭과 배우 모두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영화가 오롯이 좋아서 영화와 지내온 지난 시간, 긴 짝사랑을 넘어 <잔칫날>로 맞사랑하기를 희망한다.

<잔칫날>이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독상, 배우상 등 4관을 수상했다. 축하한다. 관객과 만나면서 의외의 반응과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관람 후 우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영화를 만들 때는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그 기억에 가슴 아파 눈물 흘릴 거라고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 순간 당황했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소중한 사람과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었기에 눈물도 흘리지 않았나 싶다.

나 역시 눈물을 흘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웃음) 아버지의 장례식날 팔순잔치 진행을 맡은 상주라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박사’라는 가수분이 있다. 그의 트로트메들리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처음 구상했다. ‘경만’(하준)이 시골 팔순잔치 행사에 MC로 나갔는데, 마침 잔치의 주인공이 웃음을 잃은 상황이라 그를 웃겨야 하는 미션을 받는다. 성공보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 할머니를 웃게 하려 하는데, 경만은 왜 그렇게 돈이 필요했을까. 그 이유를 찾는데 선뜻 이야기가 풀리지 않아 글을 쓰다가 덮었었다. 이후 개인적으로 돈이 언제 필요했는지 생각하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떠올렸다.

일정 부분 개인적 경험이 투영됐나 보다.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조문객의 행동과 장례 상황 등에 어느 정도 직·간접적인 경험이 들어가 있다. 장례를 치러 보니 ‘돈’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 고인을 추모하고 상대를 위로하는 마음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경만’과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아버지도 몸이 불편하셨고 ‘너는 자식, 나는 아버지’라는 의식이 강해 항상 (나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분이셨거든. 글을 쓰고 완성하기까지 아버지의 존재가 매우 큰 버팀목이었다. 9일이 아버지 기일이다. 개봉이 9일에서 2일로 앞당겨져 다소 아쉽다.(웃음)

모순적인 상황에서 웃음과 눈물을 일궈냈는데 전체적인 톤과 분위기는 어떻게 가져갔나.
너무 감정적으로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둡고 차갑지도 않게 하고 싶었다. 인위적으로 극화하고 영화적으로 더 표현하고 과장하기보다 사실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려 했다. 이를 위해 나라면 어떨까, 즉 일상에서 유사한 지경에 처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를 고민했었다. 다행히 너무 코믹하지도 또 너무 드라이하지도 않게 균형이 잘 맞은 것 같다.

경만은 아버지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동생 ‘경미’(소주연)만 남긴 채 자리를 비운다. 그가 잔치의 MC로 나선 것은 당연히 돈 때문이겠지만, 그 외 복잡한 감정의 발로가 아닌가 한다. 어떤가.
처음엔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잘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간 거다. 행사를 진행하면서는 할머니를 빨리 웃겨 웃돈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한데 팔순 노모를 위해 성대하게 잔치를 준비한 효자 ‘일식’(정인기)을 보며 그간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아버지를 향한 감정을 정리했겠지. 그러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슬픔을 드러내고 마침내 눈물을 터뜨린다. 그런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겪으며 성장한다.

그 하루를 통해 경만 혼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이었던 ‘경미’의 변화가 눈에 띄더라. 나중에 친척들에게 “부조는 많이 했어요?”라며 쏘아붙일 때는 사이다 같은 시원함도! (웃음)
그 역시 아버지의 장례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캐릭터다. 초반엔 뭔가를 알려고 하거나 주도적이기보다 오빠나 아빠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부분이 많다. 두 사람에게 웃음을 주지만, 수동적인 인물인데 점차 오빠의 빈자리를 채워 나간다. 장례식의 마지막 절차로 고인을 염할 때도 원래는 아버지의 얼굴을 안 보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꿔 얼굴을 보고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또 무명 MC인 오빠를 알게 모르게 챙긴다. 팬클럽에서 보냈다고 화환을 보내고, 친척들 앞에서 오빠를 비호하는 등 내외적으로 한층 단단해진다. 연배는 훨씬 높지만 ‘일식’ 역시 성장하는 캐릭터다. 경만과의 만남을 통해 가족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거든.
 <잔칫날>
<잔칫날>

그러잖아도 궁금했었다. 팬클럽에서 보낸 화환의 정체가! 역시. 소주연 배우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경미가 화환에 어떤 문구를 쓸지 고민했을 것 같더라.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친척들이 하나같이 자리를 지키지 않은 오빠를 탓하며 욕 하고 있으니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우리 오빠 팬도 있다, 그런 마음이랄까. 또 오빠에게는 어딘가 지켜보는 팬이 있다고 알리며 응원하는 거지. ‘경미’역을 캐스팅하기 위해 오디션을 여러 번 봤는데, 소주연 배우가 그때 감정을 잘 보여줬었다. 내가 원했던 것과 유사한 톤과 정서를 지니고 있어 적격이라 생각했고, 기대 이상으로 잘 해줬다.

‘경만’ 역의 하준 배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웃음, 울음, 분노, 행복 등 정말 다양한 얼굴을 보인다.
맞는 얼굴을 찾으려 (배우) 프로필을 수 천장을 봤던 것 같다. 당시 드라마 일정이 있는 상황에서 하준 배우가 흔쾌히 오디션에 응해줬었다. 만나니 호쾌하고 밝고 힘찬 에너지를 지녔으나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도 참 많이 하고 만나기도 자주 만나 영화와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깊이 나눴었다. 남자 둘이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먹기도 했다니까! 촬영에 들어가서는 마치 싸움(?)처럼 신을 만들어 갔다. 진짜 싸웠다는 게 아니고 좋은 장면을 찾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양보 없이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경찰서 신 같은 경우는 한 열 번 정도 찍은 거로 기억한다. 덕분에 잘 나온 것 같다.

부녀회장(이정은), 청년회장(오치운)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 이야기 좀 해 보자. 경만에게 경우 없이 구는 행동에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다. 배우들이 맛깔나게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상황 묘사가 리얼하더라. (웃음)
원래 뭔가 잘못된 일이 생기면 내부에서 원인을 찾기보다 외부로 책임을 돌리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이방인인 ‘경만’을 탓할 것 같더라. 글을 쓰다 보면 그간 연기했던 게 많이 도움된다. 시나리오를 쓸 때 대사를 적은 후 혼자 해보고, 또 호흡도 끊어보고 하면 그 상황이 더 살아나는 감이 있다. 그러면 글에 이입이 좀 더 빨라지고 그만큼 속도가 붙는다.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상황과 정서를 잘 살린 배우들의 공이 물론 크다.

나만의 한 컷을 꼽는다면. 또 화면에 담기지 않은 비하인드를 들려준다면.
마을 잔치 신이다. 잔치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모두 하루 동안 촬영한 거다. 고향 삼천포에서 촬영했는데, 영화 속에서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날 바람이 정말 많이, 세게 불었다. 세워놓은 화환과 무대 장치 등이 넘어가고 날아가고… 배우와 스탭 모두 고생이 많았다. 당시 지인들이 와서 이모저모 도와줬었다. 이전 단편 작업을 삼천포에서 한 적이 있어 내가 영화 찍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거든. 이번엔 규모가 커졌다면서 나름 뿌듯해하시더라. (웃음)

지난여름 개봉한 <여름날>에서 거제청년 역을 비롯해 그간 수십편의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단편에 이어 장편 <잔칫날>을 완성했는데 연출과 연기 중 어느 쪽으로 추가 기우는지.
연기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면 연출은 이야기와 미장센, 전체적인 구성 등 신경 써야 할 지점이 많다. 주변에서 연기를 그만뒀냐고 물어보기도 하더라. 지금은 글을 쓰고 연출하는 데 좀 더 끌린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연출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아버지가 영화를 너무 좋아해 비디오를 항상 같이 봤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영화는 내게 가까운 존재였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영화를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단역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시나리오를 많이 접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적어 나갔는데 이왕 영화일을 하고 있으니 직접 만들고 싶어지더라. 그간 작업을 통해 친분을 맺은 독립영화 감독들과 교류하면서 촬영, 영상, 기법 등 기술적인 면에 관심이 높아졌고 그럴수록 직접 찍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졌다.

<잔칫날> 전후로 영화에 대한 시각이나 태도 등에 변화가 있다면.
단편과 장편은 호흡에 있어 다를 수밖에 없다. 단편이 상대적으로 등장인물이 적고 한정된 데 비해 장편은 인물도 여럿에 서사가 얽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작품 외적으로는 단편을 찍을 때는 촬영 등을 지인들께 부탁하는 입장에서 미안한 마음에 현장에서 잡다한 일을 도맡아 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혼자 해결하려 하니 피디님이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말라고, 스탭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점차 시간이 쌓이면서 공동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탭을 신뢰하고 호흡 맞추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음… 이야기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 같다.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써두려는 생각이고, 써 놓은 것도 있다. 폭력 속에서 자란 인물이 비슷한 상황의 친구와 만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꿈꾸는 이야기인데 다음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알다시피 제작이 나만의 의지로 가능한 게 아니잖나. (웃음)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또 영화 속에 담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지금까지 영화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잔칫날>을 통해 마주보는 사랑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 (웃음) 관객에게 이야기 건네 듯 영화작업을 쭉 이어가고 싶다. 영화 속에 담고 싶은 가치라고 하면 거창하고, 폭력과 가족에 관심이 많다. 여러 매체를 통해 다뤄졌고, 다뤄지고 있지만, 현실에서 계속 발생하는 문제 아닌가. 나 역시 영화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환기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요즘엔 관객들의 반응을 보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한 시사회 때 돌아가는 길에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시사회 참석한 분이 소중한 사람이 생각났다고 글을 올렸더라. 그 후기를 보고 참 감사하면서 행복했다. 또 <잔칫날>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스탭과 배우들 모두 힘을 모아 완성한 결과물이다. 이 자리를 빌려 함께해준 모든 분께 감사를 전한다.

사진제공_트리플픽쳐스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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