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결백>에서 카리스마 있는 변호사 ‘정인’역을 맡아 연기했다. 누명을 쓰고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명된 엄마 ‘화자’(배종옥)를 보호하고 진실을 추적한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검사 ‘은수’ 역할을 연기했다. 기본적인 결이 비슷해 도움이 좀 됐다. 다만 어릴 때부터 좋은 집안에서 자란 <비밀의 숲> ‘은수’와 달리 <결백>의 ‘정인은’ 굉장히 못사는 시골 출신이다. ‘정인’이 마음의 골이 더 깊고 성숙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유머러스한 사람은 아닐 것이고, 자기 트라우마 때문에 남에게 속을 잘 드러내 보이지 않고 약간의 자격지심도 있을 것이다.
똑 부러지고 종종 냉철해 보이는 당신의 이미지와 ‘정인’이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정확하기로 유명한 발음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아휴, 감사하다.(웃음) 평소에는 발음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데, (관객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면 발음이 좋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 싶다. 드라마 <단, 하나의 사랑>에서 발레 연기를 준비하느라 살을 많이 뺐을 때 <결백> 촬영을 한지라 더 날카로워 보였던 것도 같다. 그동안 날이 서 있는 캐릭터를 꽤 연기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평소 느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거울을 보고 어떤 각도에서 어떤 근육에 힘을 줘야 날이 서 보이는지 연습을 많이 한다.
배종옥과 모녀 관계를 연기한다. 최초의 만남인데.
지금까지 ‘배종옥’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 부분도 있다. 사람들도 선배님을 보고 카리스마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선배님이 너무 좋았다. 진짜 웃길 때만 웃는 분, 거짓 웃음을 안 짓는 분이다.(웃음) 그런 분을 보면 왠지 웃겨드리고 싶다. 영화 홍보 과정에서 지켜보니 너무 귀여우시다. 옆에서 쿡쿡 찔러보고 싶을 정도로. 사실 촬영 도중에도 ‘앵겨’보고 싶었는데 서로의 역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역할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도중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뒀다는 의미겠다.
선배님은 당신이 노역 분장하는 걸 못 보게 하셨다. ‘정인’은 오랜만에 만난 엄마 ‘화자’가 폭삭 늙어버린 모습을 봐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그게 연기에 정말 큰 도움이 되더라. 텍스트(시나리오)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시각적) 영향이 느껴졌다. 서먹서먹한 모녀 사이를 보여줘야 해서 (실제) 대화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저 선배님 입장에서 나와 함께 연기하는 게 불편하지 않기를 바랐고, 내가 선배님께 피해를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다.(웃음) <결백> 이후 다른 드라마를 함께 하게 돼 많이 만나고 호흡을 맞춰 더 좋다.
‘정인’은 엄마의 무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아버지 ‘태수’와 ‘추인회’(허준호) 시장 세력 사이에 얽힌 과거는 물론 엄마의 진실까지 알게 된다.
‘정인’은 (그 사실을 알고) 결국 자신의 직업적 신념과 도덕성을 저버리게 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둠 속에서만 살아왔던 엄마에게 마지막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성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엄마의 일이라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화자’가 결백하냐 아니냐는 크게 상관이 없지 않을까. 옳고 그름에 치중하기보다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이니만큼 주변 분들과 대화도 하고 자기 인생을 되뇌어 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또 다른 주연 배우인 허준호와의 만남도 큰 배움이 됐을 것 같은데.
평시에는 굉장히 유들유들하시다. 항상 웃고 있고 촬영장에서도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신다. 그런데 ‘추인회’ 연기만 했다 하면 너무나 비릿한 거다. 극 중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가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달라고 말하는 신이 있는데, 내가 예상한 것과는 너무 다른 톤으로 연기를 하셔서 속으로 기가 눌렸다. 나는 그와 대립을 해야 하는 역할인데!(웃음) 겨우 정신을 붙잡고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법정 신에서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건방지게 연기를 해야 하는데, ‘아 이것 참 걱정되네…’ 했던 생각도 나고.(웃음)
코로나19로 첫 영화 주연작 개봉이 여러 차례 밀리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았을 것 같다.
‘밀당’을 하는 느낌이 있었다. 개봉을 한다고 하면 확 설렜다가, (개봉하지 못한다고 하면) 안달이 났다. 사실 코로나19로 굉장히 많은 휴식 시간을 얻은 건 사실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분들도 많은데 이렇게 말하는 게 마음이 쓰이지만… 긴 시간 동안 남들이 보면 흉볼 수도 있을 정도로 나태한 삶을 살았다.(웃음) 아무것도 안 하니까 몸과 건강은 확연히 좋아지더라. 촬영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잠이 부족하고, 목도 쉬고 체력도 달린다. 쉬니까 살도 붙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더라.(웃음)
드라마 <황금빛 내인생>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사의 찬미> <단, 하나의 사랑>까지 해를 거르지 않고 드라마를 촬영했다. 영화 <결백> 주연까지, 빠르고 단단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다.
운이 좋게 ‘착착’ (단계를) 올라와서 감사한 마음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름대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직업을 꿈꿔온 사람이기 때문에 인생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린 것과 마찬가지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오디션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누가 오디션을 봤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고.(웃음) 영화, 드라마의 주연을 맡게 된 게 너무나 감격스럽다. 그러다 보니 내가 출연하는 작품에 조단역으로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와주는 연기자들도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오디션에 합격해서) 미팅 장소에서 만나면 그들이 너무 예뻐 보인다.
다음 작품 일정은.
처음으로 (퓨전)사극에 출연한다. 한복을 입고 5:5로 쪽을 져야 한다. 내가 맡은 캐릭터는 사극 톤을 쓰지 않지만 설정이 독특해서 표현하기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웃음)
사진 제공_(주)키다리이엔티
2020년 6월 11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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