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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끝에 얻은 소중한 결실 <결백> 박상현 감독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박상현 감독은 1997년 영화 마케팅으로 업계에 발을 들였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0)과 김지운 감독의 <쓰리>(2002) 제작부를 거쳤고, 감독 데뷔를 꿈꾸며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2006)과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2007) 조감독 생활을 했다. 단편 영화 <스탠드 업>(2009)을 찍어 그해 미장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코미디)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장편 데뷔는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촬영한 할리우드 영화 <본 레거시> 조감독과 최호 감독의 <빅매치>(2014) 프로듀서 역할까지 거치고 나니, 결심이 섰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연락처를 바꾸고 잠수를 타면서” 필사의 시나리오를 썼다. 배종옥, 신혜선, 허준호 주연의 영화 <결백>이다.

오랜 시간 여러 역할로 영화 산업에 몸담아온 시간을 증명하듯, 박상현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코로나19로 시작된 한국 영화 수난 시절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냉철하게 파악하는 중이다. 대작이 자리하는 전통적인 여름 성수기 7, 8월이 도래하기 전, 지난 몇 달간 침체한 극장가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중급 규모’ 영화로서 <결백>이 관객의 충분한 관심을 끌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영화계의 일원으로 살아내고 버텨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첫 장편이 많은 이들의 따뜻한 시선 안에 오랫동안 머물기를 기도한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영화계에 여러 역할로 몸담아 온 뒤 <결백>으로 첫 번째 장편을 선보인다.
늘 주변에서 (기자간담회에 임하는 감독님을) 지켜만 봤는데 계속해서 플래시가 터지는 현장에 있으려니 당황스러웠다.(웃음) 기자님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한 칸씩 띄어 앉은 모습을 보니 요즘 영화관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렇구나, 싶은 생각에 슬프기도 하고 (그럼에도 자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많이 든다. 워낙 엄중한 시기에 개봉하는지라 마음이 조심스럽다. 그래도 7, 8월이라는 큰 시장에서 개봉하는 제작비 200억에 가까운 작품들을 생각하면 <결백>을 포함한 6월 개봉작이 (극장가 분위기를) 받쳐줘야 한다. 지금 이 시점이 (코로나19로 침체한 영화계의) 분기점이자 (회복으로 가는) 교두보다.

복잡한 심경일 것 같다. 긴 시간 영화계 경력을 쌓고 기어코 첫 작품을 내놓았을 때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다니…
왜 나한테는 쉬운 길이 없나. 40대 중반이 다 되도록…(웃음) 그래도 (앞서 개봉한) 손원평 감독님의 <침입자> 예매율과 첫날 스코어를 보면서 안도하고, 축하하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후 하루 관객 수를 5만 명 수준으로 모은 건 처음일 것이다. 나도 이번 주말에 <침입자>를 보러 가려고 한다. 정진영 선배(배우 겸 감독)의 <사라진 시간>과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님이 제작한 <#살아있다>도 극장에서 볼 것이다.


타인과 접촉할 필요 없는 OTT 플랫폼 콘텐츠를 선호하는 흐름이 확실히 자리 잡고 있다. 여러모로 걱정도 될 것이다.
관객과 만나고 소통하는 창구가 너무 다양해졌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앉혀놓고 몰입하게 한다는 게 매력인데, 그런 지점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많은 창작자가) 다른 창구를 찾지 않을까. 요즘은 65~75인치 TV가 너무나 흔하고 설비 하나만 설치해도 사방에서 음향을 들을 수 있다. 나도 지인에게 너무 영화(라는 플랫폼)만 고집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굉장히 보수적으로 생각했던 지점까지도 이제는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라는 것은 여전히 (가장 최고 수준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이 다음 작품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결백>은 모녀 관계를 중점으로 다룬 드라마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엄마 ’화자’(배종옥)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일하던 유능한 변호사 딸 ‘정인’(신혜선)이 나서는 상황을 다룬다.
인물의 전사를 살펴보면, ‘화자’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인물이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똑똑한 여인이고 무엇보다 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정인’은 엄마의 그런 점을 물려받아 변호사가 됐다. 상고를 졸업해 집안에 보탬이 되라며 자신을 핍박하던 아버지에게서 (겨우) 벗어났지만, 가족이라는 끈으로 엮인 실타래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엄마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추인회’(허준호) 시장 세력은 폐쇄적인 시골 마을을 지배하는 전형적인 권력을 보여준다. ‘정인’의 행보에 장애물로 작용하면서 극적인 재미를 안긴다.
농촌이라는 곳은 작은 부락으로 이루어진 폐쇄적인 곳이라는 느낌이 크다. 때로는 의뭉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지점도 있다. 시골 마을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사연과 추악한 진실이 있다. 거기에 권력을 갖고 싶었던 남자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담았다.



그 욕망에 맞서 진실을 밝히려는 ‘정인’은 여러 차례 구타를 당한다. 그가 도시에서 얼마만큼 유능한 변호사였든지 지역사회에서는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성적인 희롱이나 폭력을 가하는 지점은 깔끔하게 배제됐다.
폐쇄적인 지역의 권력 구조는 보통 남자들이 쥐고 있다. 아무리 서울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라고 해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로 인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끼>(2010)가 보여준 장면이 그렇다. 다만 <결백>에서는 (성적인 희롱이나 폭력을 보여주는 연출을) 처음부터 지양했다. 극 중 ‘태수’가 ‘화자’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는 건 굳이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뉘앙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극적인 장면이 나온다면 관객도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다.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 조연출 경험 이후 왠지 모르게 자극적으로 보이는 연출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미 단편 <스탠드업>에서 발기 부전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노골적인 표현을 해봤으니, 그 정도 해봤으면 된 것 같다.

엄마의 무죄를 증명하려는 ‘정인’의 법정 활동을 보여주던 영화는 후반부에서 모녀 관계를 돌아보는 휴먼 드라마로 전향한다.
주인공은 결국 직업적 딜레마에 빠진다. 그 대신 자신의 엄마가 지금까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고 감정적인 해소를 경험한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시작할 때 나오는 ‘결백’이라는 글자와 엔딩에서 찰칵 소리와 함께 나오는 ‘결백’이라는 글자의 모양이 다르다. 뒤의 것에 살짝 스크래치를 냈다. ‘정인’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결백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관객 입장에서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이끌고 싶었다. 상업 영화의 큰 틀 안에서 배우의 입을 통해 명징하게 (무언가를) 보여 주려고 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선보이게 된 첫 장편인 만큼,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기를 바라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영화계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1997년이다. 영화 마케팅사를 거쳐 여러 작품의 제작팀 프로듀서로 일했고 조감독 경험도 많다. 데뷔 준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처까지 바꿔가면서 <결백>을 썼다. 그러니 나도 나름의 영화 역사가 있지 않겠나.(웃음)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을 이제야 되돌아본다. 데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그런 분들께 전화를 걸기가 참 어려웠다. <결백> 시사회를 앞두고 임상수 감독님, 임순례 감독님은 물론 나의 사수가 되어주신 선배들께 전화를 드리려고 한다. 소소한 행복이라기보다는, 마음의 빚을 해소하는 시간을 얻게 돼 감사한 마음이다.

사진 제공_(주)키다리이엔티


2020년 6월 10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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