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믿음과 현실 사이 갈등하는 개척 교회 목사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명품 조연으로 인정받은 박혁권이 <기도하는 남자> 속 신실한 믿음 지닌 개척 교회 목사 ‘태욱’으로 분해 관객을 찾는다. 영화는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대돼 일찍이 관객과 만난 바 있다.
박혁권은 “개척 교회 목사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 관해 대부분이 공감했고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때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했다”고 GV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현실에서 ‘목사’가 올곧은 마음으로 복음을 설파한다 해도 신도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신도를 모은다는 것은 어찌 보면 영업의 속성을 지녔다. 극 중 ‘형욱’은 진심으로 기도하지만 신도 수는 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믿음은 날카로운 분석이 필요 없다. 논리로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어도 믿음으로 퉁 치고 가야 하는데 ‘태욱’은 성향상 그런 인물이 아니다. 설교 시 비대중적인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만 봐도 그의 이런 단면을 유추할 수 있다”고 캐릭터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태욱’은 믿음보다 이성의 작용이 더 큰, 종교적으로 본다면 절대적 믿음이 부족한 인물일까.
“그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저지른 것 자체로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태욱이 지닌 믿음의 크기와 깊이에 대해 고민했다는 박혁권이 얻은 결론이다.
말했듯 극 중 ‘태욱’이 설교 시 사용하는 말씀은 대중적인 기도문이 아니다. 게다가 일반 대사와 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방법과 시간에 상당히 차이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그는 “보통 대본을 외울 때 바를 ‘정(正)’ 자를 쓰면서 한다. 평소 생활 대사는 30번, 조금 분량이 길면 50번,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적인 용어가 포함되거나 좀 길면 70~100번 정도다. 이번엔 정말 안 외워져 한 200번가량 읽었다”고 전한다.
# 다양한 시선에 보탬이 된다면
영화는 목사를 앞세우지만 목회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도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도 않다. 직업과 상관없이 극단적인 선택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한 모습이다. 돈이 절실한 상황에서 남편 ‘태욱’은 동료였던 목사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 ‘정인’(류현경)은 부자가 된 예전 애인의 돈을 미끼로 한 잠자리 제안을 받는다. 그야말로 부부는 돈과 가치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극 중 목사를 어떤 다른 직업군으로 대체해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상황”이라며 촬영 당시 감독님 이야기 아니냐며 농담하기도 했다고.
<기도하는 남자>는 단편 <애프터 세이빙>(2001), <굿나잇>(2009)으로 주목받은 강동헌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박혁권은 이번뿐 아니라 <나홀로 휴가>(2015), <순애>(2016) 등 독립· 예술 영화로 분류되는 작은 영화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지역도 좁고 대부분이 시설과 사람이 대도시에 모여 있어 독점화하기 좋은 구조다. 어느 정도 (강제적으로) 다양화시키는 정책이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방식으로 사고한다면 재미없지 않나. 다양한 시선이 필요한데 다양화하기 취약한 구조이니 이의 개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고 평소 지닌 생각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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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이해력
연기적으로는 어떨까. 전면에서 오롯이 극을 끌고 나가는 것에 대해 배우로서 만족도가 궁금했다.
“대중적 타깃이 넓지 않기에 연기적으로 딥하게 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 갈등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시나리오를 지도 삼아 나아갔다. 개신교 상황을 잘 몰라 이해 안 되는 부분은 현장에서 대화로 풀었다”
영화는 ‘태욱’의 행동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감정을 깊이 묘사하지 않는다. 때문에 그가 믿음을 저버린 후의 행위에 다소 공감도가 떨어질 수 있는 지점인데, 연기한 입장에선 어땠을까.
“그는 원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다. 봐서 알겠지만, 아내가 무언가를 묻거나 마음에 안 드는 순간에도 말로 표현하기보다 다른 곳을 응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전체적인 상황에 공감해야 연기할 수 있다. 배우는 이해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해력이 중요하다. 캐릭터의 행동, 즉 그를 움직이는 이유를 찾아내는 게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토론을 거쳐서라도 일단 이해하고 들어간다”
# 박혁권
경력이 수십 년 정도 쌓인 배우를 인터뷰할 때 종종 어떤 배우로 남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의 답변은 간단하다. 잘 모르겠단다. 다만,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직업인으로 남고 싶다는 그에게 실제 성격은 어떤 편인지 물었다.
“근거없이 낙관하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나 같은 성격을 부정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네 것, 내 것, 우리 것이 분명하고 네 할 일, 내 할 일, 우리 할 일 구분이 명확하거든. 공간 구분도 철저한 편이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숨 막힌다면서 부정적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웃음)
“아무래도 배우 하면서 캐릭터를 분석하다 보니 이런 면이 더 강화되는 게 있다. 예전에 읽은 한의학 책 중 한의사가 되고 싶으면 형사 생활을 10년 하고 오라는 대목이 있었다. 그만큼 증상과 병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거지. 배우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칭 낯가림이 심하다는 그인데 이번엔 아내 ‘정인’역의 류현경 배우가 워낙 친화력이 좋은 덕분에 진짜 가족 같은 느낌으로 촬영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정치, 사회 관련 유튜브 보는 것을 즐기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간혹 과거를 끌고 와 복기하곤 하는데 이런 시간이 참 행복하다는 박혁권, 최근 무에타이에 빠져 열심히 운동 중이다. 캐나다로 5개월간 휴가 겸 어학 공부 겸 연기 공부하려고 스케줄을 비워 놨었으나 결국은 못 갔다고 아쉬워하며 올여름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또 무대에도 다시 설 기회를 보고 있다고 덧붙인다.
2020년 2월 19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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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랠리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