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를 본 소감은.
내가 나오는 신만 촬영하고 나머지는 못 본 부분이 많았는데 다 보니 코미디라기보다 짠한 휴먼드라마 같아 더 좋았다. 막대기 던져 달라며 조르던 군견 ‘알리’가 나중에 다쳐 누워 있는 걸 보니 뭉클했다. 반려견을 키우고 입는 입장이라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낙하산 국정원 요원 ‘만식’을 맡았다.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매번 유치하면서도 현란한 모습으로 임팩트(?)있게 등장한다.
사실 말도 안 되고 심하게 오버하는 센 캐릭터 아닌가. 거물급 자녀가 아닐지 혼자 상상해봤다.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인물로 이런 면에선 좀 닮기도 했다. 열심히 하는데 부족하다고 느껴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편이거든. 그래서 감독님이 사석에서 나를 보고 캐스팅한 걸 수도 있다. 마지막까지 캐스팅에 난항을 겪은 역이라고 들었다.
난항을 겪을 정도인데 선뜻 응했나.
망가지는 역이라고 생각도 안 했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두려움도 없었다. 비중 있는 역을 맡겨 주신 것에 감사했다. 슬랩스틱도 필요하고 간만에 센 캐릭터라 흥미로웠다. 판더 분장, 반짝이, 사이클 라이딩 복장 등 평소 못 입는 것을 입으니 재미있었다.
말했듯 오버하고 웃긴 캐릭터라 이후 이미지 고착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다행히 (나를) 원래 웃기고 코믹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좋게 봐주는 것 같다. 촬영하면서 코믹 연기 등 많은 것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이철하 감독의 <오케이! 마담>에 캐스팅됐다. 거기서는 처음으로 사투리 안 쓰고 연기한다. 북한 말을 사용하니 잘 봐주시길! 사실 내려놓은 거로 치면 <보안관>(2016)때가 더 그렇다. 워낙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당신의 모습이라 하면…
어릴 때부터 할머니를 생각해 반듯하려 했다.(수정) 그런 게 알게 모르게 쌓여 있어 사고 안 치고 잘 살았다. (웃음) 지금 살아 계셔서 나를 본다면 정말 기뻐하실 텐데 안타깝다. 친척들을 가끔 만나면 가정 꾸리고 잘 사는 게 효도라고 덕담처럼 결혼하라고 거들곤 하신다.
한때 남성적인 면을 부각했다면 근래엔 한층 편한 모습이다.
그게 일부러 더 강해 보이려 했던 것도 있다. 처음 서울 와서 혼자이고 하니 더 그런 거지. 원래 여리고 약한 놈이 센 척하지 않나. 그러다 <보안관>(2016)을 거치며 동료들이 그냥 내 모습으로 가라고 충고하더라. 그렇게 하니 반응도 좋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런 마음의 변화가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다.
솔직히 이전에 캐스팅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제는 편하고 코믹한 캐릭터가 적잖이 들어오는 편이다. 한 여 선배가 ‘네 자체가 장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그렇게 고맙고 좋았다. 억지로 안 맞는 옷을 입는 것보다 잘하는 것을 하면서 발전하고 내공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델로 왕성한 활동 후 연기로 영역을 확장, 최근엔 예능을 섭렵하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스토리 좀 풀어놔 달라. (웃음) 궁금한 분이 많을 거다.
어릴 때는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큰 회사에서 제안이 오기도 했는데 의리 지킨다고 매니저 형을 따라갔다. 거의 원룸에 사무실 차린 수준이었지만 믿고 시간을 보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당시 K-1 소재 드라마 주연을 땄었다. 감독님이 믿고 데려가겠다고 해서 눈물이 펑펑 날 정도였다. 7~8개월 완전히 올인해 격투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촬영 들어가기 2주 전에 드라마가 엎어졌다. 그게 한 2006~7년경이었다. 그 후 좌절감에 완전 패닉 상태로 녹다운 됐다. 일종의 무기력 상태라고 할까. 회사 관련 계약도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고 고향에서 데려온 스타일리스트와 로드 매니저 두 명도 책임져야 했다. 다른 회사에서 받아주겠다는 곳이 있었지만, 빚을 지기 싫은 마음에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해결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잘한 결정이었다.
음…
이후 형들과 쇼핑몰 시작해 열심히 운영하면서 중간중간 모델 활동을 해 나갔다. 일찍 실패를 경험한 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드라마가 예정대로 제작돼 성공하고 그렇게 인기를 맛보다가 중간에 무너졌다면 좌절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오해로 인해 상처받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나 일일이 해명하지 않아도 언젠가 알아주실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내려놓고 모델 일 하고 간혹 뮤직비디오 촬영하고 열심히 행복하게 생활하니 다행히 주변에서 도와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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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 재기(?) 했는데 그간의 세월을 자평한다면.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든 것과 같다. 아무것도 없이 30만원 들고 올라왔으니 말이다. 지금 돌아봐도 신기하다. 중간 몇 년 쉬는 기간엔 정말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다시 올라갈 거라고 전혀 기대도 못 했다. 또 ‘우리 형님’ 이런 느낌으로 꾸준히 응원해주는 동생들이 있다. 그들의 꾸준한 응원에 항상 고맙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무얼까.
사람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높아도 내 옆에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보안관> 당시 이성민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이번엔 무조건 정남이를 밀어준다는 취지로 얘기한 바 있다. 이후 여러 예능에 동반 출연했고, 이번 <미스터 주>까지 같이했는데 그는 당신에게 어떤 선배인가 혹은 평소 하고 싶은데 못 한 말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형은 한마디로 인생의 길잡이, 혼자 걷는 어두운 길을 비춰 준 등불 같은 사람이다. 이번에도 이렇게 비중이 큰 역할이 처음이라 부담이 크다 하니 한번 치러야 할 경험이라며 격려해줬다. 정말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인데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했다. 연기 대선배이자 인생 선배로 형을 만나고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 또 형뿐만 아니라 형수님도 너무 고마운 분이다. 서울 와서 처음으로 가족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명절에 지인들 집에 방문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초대해 주셔서 예전 할머니가 계실 적에 맛본 따뜻함을 형수님을 통해 느꼈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친구 같은 배우다. 연예인이라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닌 옆집 동생 혹은 아재나 형 같은 친근감 있는 배우였으면 한다. 예전에는 모델이면 모델, 배우면 배우 이런 식으로 선을 그었는데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병행하고 싶다. 예능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부르는 호칭보다 불러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현재 1년에 두 번 정도 자선 쇼 무대에 서고 있다. 모델계에서는 선배 입장이라 그때만큼은 장난기 없는 진지한 모습으로 후배 앞에 선다. 그들에게 동기 부여하고 싶은 마음에 몸을 열심히 만든다.
마지막 질문이다.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계속 시나리오가 들어온다는 것. 예전에는 오디션도 많이 찾아다녔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시나리오가 막 쏟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고 두 개 중 하나라도 다행히 캐릭터를 고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는 게 진짜 행복하다.
2020년 2월 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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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