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로 따뜻한 겨울 풍경 전했던 임대형 감독이 신작 <윤희에게>로 관객 앞에 섰다. 남성 감독으로 여성 서사를 다루면서 임 감독은 엄격한 자기 검열을 거치고, LGBT를 희화 혹은 반전 등 기능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려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한다.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그 시간을 동력 삼아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윤희에게>. 절절한 감정을 담담하게 다스려 차분한 일렁임을 안긴다. ‘윤희’는 감독이 아닌 배우가 만든 것이라고 공을 돌리는 임대형 감독을 만났다.
<윤희에게>가 올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영화제를 비롯해 GV 등 관객과 만나 있다. 특히 마음에 와닿은 평이 있다면.
윤희(김희애), 새봄(김소혜), 준(나카무라 유코), 마사코(키노 하나)의 연기가 자연스럽고 모녀 같다고, 또 경수(성유빈)가 귀엽다는 평가도 기분 좋았다. 의도한 대로 캐릭터가 잘 구현됐고, 배우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다행이다.
영화를 준비하며 의심과 검열을 거듭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원래 부족한 면을 살피는 성향이다. 또 이번엔 남성 감독 입장에서 여성 서사를 다루다 보니 검열과 검증의 과정을 계속 거치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겠더라. 그런 지점을 만들지 않고자 더 세세하게 신경 썼던 것 같다. LGBT를 소재로 하면서 기본적으로 신중히 접근했고 혹시 캐릭터를 희화화 혹은 반전 요소로 기능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다.
<윤희에게>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채 그리워하는 두 친구가 등장한다. 일본과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유는.
윤희와 준의 멜로드라마이기에 심리적 거리감뿐만 아니라 물리적 거리감이 필요했다. 예로부터 한국과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이고, 혼혈인 ‘준’은 그사이에 낀 존재다.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인,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인 취급받는 소수자 중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영화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라 ‘준’이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살았을지가 매우 중요했다.
지금 언급한 지점이 준이 ‘료코’(타키우치 쿠미)에게 하는 ‘드러내지 말라’는 충고에서 충분히 짐작된다.
맞다. ‘준’은 클로젯(Closet) 동성애자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다. 일본에서 20년이 넘게 살았는데도 여전히 일본 가족들에게는 한국인으로 취급받는다. 준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오픈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일본과 한국 모두 이런 측면에선 진보적이지 않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퀴어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지만, 제도적으로 진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 점을 반영했다.
장면 한 컷 한 컷 사진으로 찍은 듯 선명하지만, 윤희와 준의 재회 시퀀스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 없이 절절한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데 보면서 감탄했다.(웃음)
중요한 순간에는 오히려 말이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마음속 이야기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20년간 서로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건 내가 아니라 배우의 몫이라 생각했다. 어떤 기술적인 기교보다 서로 오가는 눈빛, 얼굴에 담긴 표정으로 그냥 보여주고 싶어 배우에 기댔는데 워낙 잘해 주셨다.
엔딩의 윤희가 준에게 보내는 편지 중 ‘나도 가끔 네 꿈 꿔’라는 문구가 정말 마음을 휘저어 놓더라.
마지막 대사는 초고 때부터 생각했던 거다. 기회가 돼 다시 영화를 본다면 더 흥미로운 지점이 보일 거다. 준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가 극 중 쪼개 들어갔지만, 서간체 소설같이 완결성을 지녔다. 윤희와 준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기보다 편지로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려 했거든.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들려줘야 그들의 감정이 정확하게 전달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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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를 다루지만, 학창 시절 동성 간에 우정과 사랑 사이 감정을 경험하는 이들이 꽤 있기에 공감도가 높고, 유사 소재에 거부감을 가진 이도 흡수하지 않나 싶다. 특히 윤희의 대사 중 ‘인생의 가장 충만했던 한때를 선물한 상대’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윤희와 준이 서로 좋은 친구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를 넘어 명백한 연인 관계다. 우정, 정신적 혹은 육체적 등 사랑에 여러 모습이 있겠지만 둘은 연애 관계다. 준이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는 연애편지로 단순히 친했던 사이였다면 그런 편지를 쓸 수 없었을 거다.
감상과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 당신에게 <윤희에게>는 어떤 영화인가.
객관적으로 보는 게 참 어렵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 터인데 주요 인물인 윤희와 준은 사회도 자기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해 자기 학대 혹은 비하를 멈춰야 자신도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다. 게다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 문제를 이기고 나아가도록 북돋아 주고 싶었다.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가.
보고 나올 때 마음이 선해지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 혐오가 만연된 사회고 어느 정도 독을 품고 사는 현실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수긍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런 독한 마음, 응어리가 좀 풀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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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촬영 기간과 예산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올해 1월 크랭크인해 3월 초에 크랭크업, 총 28회차 촬영했다. 제작비는 10억 정도다. 투자받기 힘들었는데 제작사(리틀빅픽쳐스)가 용기 내줬다. 많은 분들이 하나하나 손을 내밀어 가능했다. 특히 힘을 실어주신 김희애 선배님께 감사하다.
윤희 역의 김희애 배우의 연기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그의 어디에서 윤희를 발견했나.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선배님이 만드신 거다. 이런 질문이 나올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말이다. 윤희가 평면적으로,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있을 법한 존재로 만드셨는데 선배님의 철저한 분석과 노력이 있었을 거로 본다. 유명한 배우고 당대의 아이콘이었지만 평소에는 아주 털털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친다. 캐스팅을 수락해준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웃음) 영화 대본을 인정해준 것 같아 구름을 걷는 기분이었고, 그 누구를 만났을 때보다 긴장했었다.
배우와 감독 모두 윈윈했다고 본다. (웃음)
선배님이 없었다면 영화가 없었을 거다. 현장에서도 많이 격려받았고 또 배웠다. 오랜 연기 경력에도 스스로 검열하고 조언에 귀 기울이신다. 아마 그런 것들이 쌓여 지금의 연기력이 가능했을 거다.
전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2017)를 매우 인상 깊게 봤다. 전작과 같이 이번에도 겨울이 배경인데 참 포근한 인상이다.
겨울은 재미난 요소가 많다. 모순형용이지만 추운데 따뜻한 느낌이라고 할까. 겨울이 되면 사람들이 한해를 마감하며 주변을 돌아보고 좀 더 관대해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외로워져 곁에 누가 있는지 생각하며 지난 시간을 반성하게 되는 계절이라 영화에서 표현하기에 매력적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겨울이 배경이지만, 촬영은 사실 3월에 해 눈이 안 와 아쉬웠었다. 그래서 이번에 눈이 아주 쏟아지는 곳을 찾아갔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자신을 소개한다면.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 (웃음)
음.. 어렵다. 내 소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자랑할 구석이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해보자면, 둔재에 가까워 노력하는 타입으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내고 싶지 않은 영화인이다. 딱히 정의롭거나 도덕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지만, 영화를 찍을 때 어떻게 하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인터뷰 내내 궁금했던 게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얼지였다.
취향도 자주 바뀌고 좋아하는 영화도 많다. 예술, 상업 영화 등 경계와 장르 구분 없이 그냥 즐긴다.
지금 생각난 건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 (2011)이다. 핀란드 출신 거장으로 내 온도와 잘 맞는 것 같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관객도 있었다.
차기작 계획은. 또 최근 관심사는.
<윤희에게>를 준비하고 개봉하기까지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 당분간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며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며 내 안을 채우려 한다. LGBT와 페미니즘에 여전히 관심 있지만, 이번 역시 제작 결정까지 힘들었기에 계속 관련 주제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코미디를 좋아해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자기 전에 시트콤 몇 편씩 보는데 요즘은 <모던 패밀리>를 보는 중이다. 굉장히 행복하고 이걸 보려고 살아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웃음) 평소 있는 그대로 사람을 보고자 노력하는데 시트콤 보는 게 많이 도움되고, 입체적이지 않은 평면적인 세계가 주는 안도감이 크다.
2019년 12월 1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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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리틀빅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