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판소리 복서>는 펀치드렁크 복서 ‘병구’(엄태구)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판소리 복서를 완성해 가는 이야기로 지난 5월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됐다. 당시 관객 반응은.
재미있다 혹은 슬프다 다양한 반응이 있었고 다행히 좋게 봐주셨다. 기본적으로 웃픈 감정, 즉 웃기면서도 슬프고 짠하게 느끼신 것 같다. 냉정하게 보면 비극인데 희극으로 풀어나가고자 했고 그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박 관장’역의 김희원 배우가 승리드라마가 아닌데 승리한 것 같다고 감상을 밝혔는데 공감되더라.
그렇게 봤다니 다행이다. 양면적인 인상을 주고 싶었거든. 알다시피 판소리나 마당극에 깔린 정서가 참 특이하다. 평민이 양반에게 착취당하는 어찌 보면 암울한 상황인데 웃으며 해학과 풍자로 승화시킨다. 그런 정서를 녹여내고 싶었다.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의 세계관을 확장해 장편화 했다. ‘뎀프시롤’의 뜻이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
‘잭 뎀프시’라는 권투 선수의 필살기에서 따온 용어다. 단어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 제목을 ‘판소리 복서’로 변경했다.
판소리와 권투의 조합은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신선한 소재와 접근인데 그 시작은.
단편 작업을 함께한 조현철 배우가 당시 권투를 배웠다. 연습 중 누군가 근처에서 장구를 쳐 그 장단에 맞춰보니 재미있더라.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전혀 다른 스토리지만, 언뜻 허영만 화백의 오래전 만화 ‘무당거미’가 떠오르더라.
그렇지 않아도 영화 준비하면서 ‘무당거미’, ‘변칙 복서’ 등을 찾아봤었다. 흥미롭더라. 국내에서 권투의 인기가 격투기나 WFC 등에 자리를 내준 분위기다. 한때 권투 소재 콘텐츠가 꽤 많았는데 요즘엔 드문 이유일 거다. 주류에서 밀려난 비애를 담고 싶었다. 또 필름 사진, 권투 등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을 기본으로 유기견, 재개발, 치매 등 사회적인 고민거리를 이야기 안에 녹여보고자 했다.
단편과 장편, 각각 제작비와 기간은 어느 정도 소요됐는지. 또 작업하면서 느낀 차이점은.
단편의 경우 졸업 작품 형식으로 만들 거라 6회차 300만 원 정도 예산이었다. 배우를 포함해 총 스태프가 5~6명 정도로 아주 소규모였다. 이번엔 25회차에 순제는 7억 5천만 원 정도다. 단편하면서 내가 각본과 촬영과 편집 등 대부분 과정을 주도적으로 했다면 장편은 각각을 담당하는 메인 스태프가 있어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다. 이번에 참여한 미술과 조명 감독이 모두 나처럼 입봉 감독이라 내가 큰 방향만 잡고 나머지 부분은 서로 의견을 나눠 결정했다.
영화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지점은.
사건이나 이야기로 끌고 나가기보다 정서로 표현하고 싶었다. 인물이 느끼는 미묘한 정서를 담아내고자 롱테이크 촬영을 많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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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병구’를 물심양면 돕는 ‘민지’(이혜리)가 수동적이고 한편으로 ‘병구’의 도우미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시선도 있다.
보통 판소리 공연 시 1 고수 2 소리꾼이 한 팀을 이룬다. 그만큼 고수가 중요한데 ‘병구’가 소리꾼이라면 ‘민지’는 고수에 해당한다. 판소리 복싱은 두 사람이 함께 이뤄가는 것이지 ‘병구’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지의 모습이 다소 평면적으로 비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민지’에 대한 서사가 더 풍성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점이다.
‘병구’의 판소리 하는 친구가 장편화 하면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별이 바뀌었다.
원래도 그 역할은 여성 몫이었다. 캐스팅했던 배우가 갑자기 빠지면서 급히 지인들을 수소문해 구교환 선배에게 부탁한 거였다. 당시 형이 머리가 길었거든. 처음엔 당황하다 흔쾌히 맡아 주셔서 고맙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이자 선배다.
‘병구’의 수줍은 듯한 어눌한 말투와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엄태구 배우의 허스키한 목소리 톤과 잘 어울리더라.
상업 영화에서 주로 강한 인상을 보여줬지만, 단편이나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왔고 그 모습을 평소 좋아했었다. 이번 어리숙한 ‘병구’와 어울릴 것 같아서 시나리오를 드렸더니 바로 연락을 주셨다. 그 후 일대일로 리딩하며 크게 방향을 잡아 나갔고 디테일한 부분은 직접 살을 붙여 캐릭터를 구축하셨다. 다른 배우와도 마찬가지로 일단 일대일 리딩을 통해 최적화된 모습을 찾아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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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가 기도 중인 ‘박 관장’을 찾아오는 교회 장면이 세 번 등장한다. 조금씩 분위기와 대사가 다른데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다고 느꼈다. 모두 한 번에 촬영한 건가.
하루에 촬영했다. 디테일한 연기로 감정선을 잘 살린 덕분에 원하는 분위기가 나왔던 것 같다. 참고로 ‘병구’가 방에 있는 신도 모두 한 회차에 촬영했다.
그게 가능한가? (웃음) 과거와 현재, 냉정함과 어리숙함, 기쁨과 슬픔 등 전혀 다른 상황의 ‘병구’가 등장하는데, 한 번에 촬영했다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얽매이는 감정과 속박 그리고 강아지를 잃고 슬퍼하는 것, 약 먹는 동작 등등 다양한 행동과 감정을 다 한 번에 표현했다. 정말 대단한 배우의 역량 아닌가!
판소리를 통해 인물의 처지와 심정을 대변한 연출 방식이 돋보였다.
기본적으로 판소리가 3인칭 화자를 내세워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라 이를 영화와 결합해 봤다. 수궁가를 기본으로 글자수와 음정에 맞춰 ‘병구’와 영화 속 상황을 가사로 만들어 판소리로 표현했다.
장구와 북소리 등이 굉장히 흥을 돋우더라.
북, 장구, 꽹과리, 징 등 국악기를 기본으로 했지만 사실 전자음이 생각보다 꽤 들어갔다. <곡성>(2016)의 장영규 음악 감독이 전자음과 서양 악기를 활용해 사운드를 풍성하게 구성했다.
임정환 감독의 <국경의 왕>(2017)에 출연했는데 혹시 배우 활동의 가능성을 열어둔 건가.
정환이가 학교 동기라 우정 출연한 거로 앞으로 배우로서의 모습은 보기 힘들 거다. (웃음)
<판소리 복서>에 대한 기억나는 평이 있다면. 또 감독으로서 추천사 한마디!
음,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많이 공감할 것,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평이었다. 꽤 연배 있으신 분 같은데 ‘병구’의 감정에 이입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 <판소리 복서>는 잊혀진 것,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애상과 과거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 소구 층이 넓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민지’와 ‘병구’에게, 윗세대는 ‘박 관장’에 공감하지 않을까 한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까.
아직 <판소리 복서>에 집중하고 있다. 큰 그림은 있는데 구체화한 것은 없다. 다만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자극적이고 특정된 소재보다 좀 더 보편성을 띤 가족 영화를 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관객과의 소통을 고민 중인데 머리 비우고 생각도 정리할 겸 자주 산책하러 나간다. 마침 산책하기 딱 좋은 계절이라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2019년 10월 23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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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홍보사 머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