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동물, 원> 개봉 후 GV를 통해 관객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관객이 주로 어떤 질문이 하든가.
음, 제목에 ‘동물’과 ‘원’ 사이에 콤마가 있는 이유와 청주동물원을 대상으로 한 까닭을 많이 궁금해하시더라.
오, 나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이유는.
‘동물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틀에 박힌 인상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유원지 혹은 놀이공원이 연상되고 막상 동물은 빠져 있는 느낌이다. 동물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콤마를 넣었다.
청주동물원은 서울대공원, 에버랜드와 함께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래서 청주동물원을 선택한 걸까.
그건 아니다. 청주 미술관에서 무성영화에 일렉트로닉 음악을 접목한 전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청주를 무대로 한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침 동물원이 이전된다는 소식이 들려 (소재로) 제격이다 싶었다. 그렇게 2015년부터 촬영해 2016년에 30분짜리 단편을 완성, 공연과 함께 상영했고 이후 장편화 작업을 이어갔다.
영화 전후로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혹은 느낀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또 야생 동물을 보며 느낀 감탄과 연민과는 별개로 현재는 멸종된 많은 동물이 불과 몇십년 전까지 우리 곁에서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표범이 마지막으로 붙잡힌 게 1960년 대로 장소는 소백산이라고 하더라. 이후 창경원에서 80년대까지 살았다고.
동물원을 향한 찬반논쟁이 뜨거워진 요즘이다. 동물권에 대한 높아진 의식의 반영일 터인데 당신의 의견은.
어렸을 때 가본 이후 따로 돈 내고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없었고 막연하게 기본적인 반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연(야생)이 터전인 동물을 잡아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구경거리로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거리감을 지키며 촬영했다. 그러면서 점차 생각이 정리되더라.
어떻게?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으나 받아들여 실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동물원) 존재 자체에 찬성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너무 이분법적이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환경 파괴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 등등 동물원을 삶의 터전으로 한 수많은 동물이 울타리를 벗어나 생존할 수 있을까. 때문에 기존의 동물원을 폐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원이 존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 안의 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게 현재 내 생각이다.
동의한다. 극 중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사육사와 수의사 등 청주동물원 사람들의 모습이 발전적 대안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동물, 원>은 동물의 이야기이자 그들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맞다. 극 중에서 보듯 동물원의 환경이 많이 열악하고 노후했다. 특히 동물 중심 아닌 관람 편의 위주 설계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나 쉽게 구조 변경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동물원이 지닌 가용 자원 역시 충분하지 않은 형편에서 동물에게 좀 더 편안한 터전을 제공하고자 사육사 이하 많은 스태프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청주 분들이 의외로 츤데레 같은 면이 있는데, 이건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 반응에서도 느꼈던 점이다. 툭툭 무심히 말을 건네면서도 출산한 물범 가족을 위해 물범사를 정비하고 새끼를 살뜰히 보살피는 등 유사한 사례를 아주 자주 목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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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난다. 또 “그냥 동물이 좋다”면서 활짝 웃던 한 젊은 사육사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그 장면은 나도 좋아하는 장면이다. 어떤 말이나 설명보다 동물원 사람들의 본심을 전달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에는 그가 너무 해맑아 보여 편집해야 할지 살짝 망설였는데 기우였다. 관객들이 긴장하며 영화를 보다가 그 친구의 말을 듣고 확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감정이 진솔하게 드러나는 인터뷰가 중요하다고 본다.
촬영 중 죽음을 맞이한 늙은 호랑이 ‘박람이’, 갓 태어난 새끼 물범 ‘초롱이’ 그리고 인공 수정을 시도한 삵 등 극 중 여러 동물이 떠오른다. 특히 돌잔치 영상 속 어린 ‘박람이’의 모습이 매우 귀엽더라. 극의 건조한 분위기에 감성을 불어넣었다. (웃음) 연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객관적이고 어느 정도 거리감 있게 만들고자 했고 대체로 그런 편인데 감성적으로 느껴졌더니 의외다. 마지막 ‘박람이’의 어린 시절 영상은 너무 감정에 호소 즉 신파로 치우질 수 있을 것 같아 고민했던 지점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다 보니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이 자주 언급되는데 그런 부정적인 측면만 보여주고 싶지 않더라. 또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물원 사람들을 영웅처럼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에 중점을 뒀었다.
촬영 종료 후 아쉬운 점도 있을 거다. 재촬영하기 힘드니 말이다.
원래는 삵의 인공 수정 과정을 따라가는 게 영화의 큰 축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인공 수정을 하는 삵의 모습을 영화의 도입부로 정했고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인공 수정에 성공해서 새끼를 낳고 일정 기간 사육 후 청주에 있는 하천 인근에 자연 방사한다는 큰 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촬영 도중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아마 계속했다 해도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라 카메라에 담기는 한계가 있었을 거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후 처음 촬영한 부분을 덜어낼지 가져갈지 고민하다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는데 전체적인 그림에서 볼 때 어우러지지 못해 보인다. 또 ‘박람이’를 좀 더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그를 좀 더 지켜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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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복원을 위해 인공 수정 당하는 삵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그 점이 고민이었다. 삵의 인공 수정은 고양이과인 스라소니, 표범 등 멸종된 대형 고양이 종 복원으로 이어지는 연구의 첫걸음이었다. 전체 종을 위해 한 개체가 희생되는 게 정당하냐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데 뚜렷한 정답은 없지 않나 싶다. 사육사와 의사 또 연구자의 입장이 모두 다를 것이다. 극 중에서도 호랑이 ‘박람이’의 수술을 둘러싸고 사육사와 의사의 의견이 충돌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상당히 긴 시간 촬영했는데, 촬영 종료 시점을 어떻게 정했나.
길다면 길지만, 처음 1년 반은 리서치 촬영이었고, 이후 기간은 풀로 촬영한 건 아니다. 사계절과 그 변화를 담는 것을 목적으로 처음 촬영에 들어갔다. 아까 말했듯 2016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촬영해 30분짜리 단편을 완성했고, 이후 2017년 가을이 되니 얼추 사계절을 다 담았더라. 또 극영화 같은 서사는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역시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내러티브가 완결되는 시점까지 촬영했다. 2018년 여름까지 좀 더 보강 촬영을 해 작년 DMZ 영화제에 지원해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개봉했다. (웃음)
<동물, 원>으로 작년 제10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젊은 기러기상’과 올 제16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한국환경영화 대상’을 수상했다. 늦었지만, 축하한다. 간략하게 그간의 이력과 작품 활동을 소개한다면.
독일에서 10여 년 영화 공부했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공동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시작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다큐 촬영 감독이 설 자리가 많지 않아 다른 생업이 필요하다. 아마 꾸준히 일이 들어왔다면 이번 작업을 하지 않았을지도. (웃음) 잠시 말했든 청주 미술관에서 했던 공연을 인연 삼아 단편 영화를 찍고 장편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이렇게 주목받을지 미처 몰랐는데 매우 감사하다. 특히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제작 지원을 받은 덕분에 후반 작업이 가능했기에 더욱 그렇다.
촬영 감독으로 출발한 것에 이어 다큐멘터리 <목숨>(2017) 조감독과 <동물, 원> 연출까지 다큐멘터리를 쭉 작업해오고 있다. 극영화로 영역을 확장할 의향은.
음, 극 영화 감독에게 다큐멘터리 만들 생각이 없냐는 질문은 보통 잘 하지 않는데 반대로 다큐멘터리 감독에겐 종종 하는 것 같다. 극 영화가 무언가 더 높은 지향점으로 여겨져서일까?
그런가, 개인적으론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유사 질문이 많은 까닭은 극영화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특별히 고수한 건 아니고 시작을 그렇게 했고 일이 계속 이어져 온 거다. 또 극 영화를 하려면 독립 영화 혹은 상업 영화로 가야 하는 데 그러기엔 내 위치가 애매하다. 독립영화를 하자고 하면 젊은 친구들이 불편해할 것도 같다. 또 극영화가 직접 이야기를 만든다는 매력은 있지만,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 아닌가 한다. 다만 전체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에 언젠가 도전하고 싶다.
향후 활동 계획은. 또 최근 주된 관심사는.
그간 준비하다가 엎어진 게 몇 개 있고 지금은 나무가 소재이자 주제인 다큐멘터리를 막연히 준비 중이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친자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왠지 때 되면 제철 식재료를 먹어줘야 할 것 같고 말이다. 요즘은 나무에 꽂혀 있다. 대나무의 경우 뿌리를 잘라 미국에 심으면, 확실한 건 아닌데, 같은 꽃을 피운다더라. 또 지구상에 가장 큰 생명체가 나무라고 들었다. 울창한 숲처럼 보이는 데 사실은 한 그루의 나무인 거지.
마지막으로 예비 관객께 <동물, 원> 홍보 한마디!
요즘 어린 자녀와 실내 동물원을 찾는 부모님이 많다는데 그보다는 우리 영화를 같이 보는 건 어떨지! (웃음)
2019년 9월 1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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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시네마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