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퇴마’의 원조 격인 영화 <퇴마록>(1998)에서도 신부를 연기했었다.
그때는 ‘박신부’였지. (웃음) 한데 신부라는 설정만 같고 나머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시나리오부터 ‘안신부’역에 당신을 염두에 두고 썼다고 하던데, 기분 좋았겠다. (웃음)
해마다 영화에 출연했지만, 관객과 만남이 적어서인지 요즘에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게 많이 편해졌을 정도로 젊은 친구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부분이 배우로서 은근히 고민이던 차에 <사자>는 반가운 작품이었다. 나이가 들었지만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젊은 층이 즐길 요소가 많은 영화인 만큼 앞으로 어린 친구들이 많이 알아볼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안신부’의 어떤 모습이 좋았나. 혹시 캐스팅 수락에 망설임은 없었는지.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돌고 돌아온 배역이었다면 좀 그랬을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나를 염두에 뒀다니 좋았다. 오죽하면 ‘안’신부’였겠는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웃음) 그는 진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따뜻함까지 모두 지닌 인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CG 등 후반작업 비중이 큰 영화라 촬영할 때 느끼지 못 했던 부분이 꽤 있을 것 같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CG가 아주 많은 영화는 아니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이미지대로 형상화돼 좋았다. 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는 게 느껴지더라.
‘안신부’가 간혹 아재 개그를 치는데 시나리오상에 있던 건지 즉흥적으로 만든 건지 보면서 궁금하더라. 특히 두 사람이 짜장면 먹는 신이 그랬다.
김주환 감독과 이야기해보니 유머코드와 생각이 아주 잘 맞았다. 긴장감 있게 몰아붙여 사람을 옥죄는 것보다 중간중간 웃음이 있고 그게 쉼표로 기능하길 바랐거든. 지문에 정확히 쓰여 있다기보다 현장에서 서로의 호흡으로 만든 게 많았고 언급한 그 장면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어떻게 보면 둘이 나눈 가장 포근한 시간으로 몸도 감정도 편안한 상태인 거지. 원래도 맥주를 두어 잔 마시면 얼굴이 붉어져서 실제로 맥주 한 잔 마시고 연기했었다. 잠시 쉬어 가면서 후반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장면이 아닌가 한다.
안신부는 ‘용후’(박서준)에게 아버지 같은 느낌으로 까칠한 그를 인자하게 포용한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두 아들을 뒀고 실제로 아들뻘이지만, 처음부터 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만나자마자 선생님이라고 호칭하길래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다. 현장이 편안해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다. 만나는 게 부담되지 않고 즐거운 마음이 되도록 서로 배려하고 신경 썼다.
우문인데 실제 성격과 얼마나 닮았나. (웃음)
아무리 연기라지만, 어느 정도 내 모습이 들어 있겠지. 극 중 느슨하게 풀려 있는 부분은 대부분 평소 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재? 개그 같은 유머 코드와 짜장면을 실제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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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과 작업하면서 자극받는 부분도 상당할 거다.
아무래도 그들의 에너지를 체감하고 또 대화 중 배우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웃음 코드가 다르구나 등등 말이다.
파트너로 호흡 맞춘 박서준은 어떤 친구던가. 또 극 중 종종 도움받는 최우식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으면 섭섭하겠다.
박서준은 일단 여러 가지 모습을 지녔다. 웃음기 없이 가만히 있으면 굉장히 냉정하고 서늘해 보이는데 웃으면 또 백치미도 느껴지기도 하고 여하튼 귀엽다. 최우식의 경우 짧게 만나 단정하기 힘든데 작은 역이라도 굉장히 열심히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분량이 적어도 대부분 라틴어 대사라 힘들었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더라.
라틴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안신부’의 구마의식이 전부 라틴어 대사다. 준비가 만만치 않았겠더라.
NG 안 내고 내가 생각해도 진짜 잘했다. (웃음) 양이 은근히 많아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느낄 정도로 틈만 나면 외우고 또 외웠다. 평소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봐서 다른 영화에선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지만 참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구마의식이 악령들과 싸우는 거니 감정을 과격하게 나가 진짜 그들을 끌어내는 것처럼 호통치듯 대사했다.
그 뜻을 다 알고 연기한 건가.
일일이 해석하는 것도 시간이 아까워 대략 의미만 파악하고 발음만 써서 외웠다. 이게 중간에 잘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러니 절대 틀리면 안 되는 거지!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중 외울 거리가 많은 거로 손에 꼽힐 정도다.
대사도 그렇지만, ‘안신부’가 육체적으로 당하는 장면도 꽤 있다.
사실 더한 액션을 생각했었는데 무술 감독이 ‘안신부’는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고 하더라. 내가 당할 땐 당하더라도 한 번 정도는 반격해야 할 것 같다고 반문하니 아주 단호히 No 했었다. 직접 액션을 못 해서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야 ‘용후’(박서준)가 와서 구해주는 맛이 살지 않겠나.
사실 안신부가 벌이는 구마의식이 ‘용후’ 덕분에 성공했지. 그(용후)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대부분 실패했을 거다. 그간 얼마나 많이 당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겠나. 안신부의 스승도 구마의식을 하던 중 목숨을 잃었고 말이다. 그 역시 ‘용후’가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웃음) 오로지 믿음에 의지해서 구마를 수행하는, 사실 물리적인 힘은 약한 인물이니 말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 신부의 여러 모습을 체화하는 게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 그 안에 구마의식에 쓰이는 여러 신물이 눈에 들어오던데 혹시 구마의식을 가까이 보거나 또는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는지.
성호를 긋는 단순한 동작이라도 매번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익숙한 건 있다. 성수병의 경우 보통은 그냥 유리병인데 영화 속에는 납으로 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구마 사례를 찾아보긴 했는데 영화적으로 활용하진 않았다. 실제로 그렇게 라틴어로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시나리오에 충실해 그 안에 묘사된 감정과 행위에 충실하려 했다.
지금까지의 필모에서 ‘안신부’는 상당히 역동적인 역할이 아닌가 한다. 장르 영화이기에 특별히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그간 평범한 사람 그리고 현실적인 드라마를 주로 했으니 한편으론 연기 영역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이라면 아마 ‘안신부’의 심리를 좀 더 깊이 들어갔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좀 더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
작업해 보니 김주환 감독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매우 스마트하다. 굉장히 샤프하고 생각과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사자>와 별개로 <청년경찰>(2017)을 봤는데 <투캅스>를 한 입장에서 봤을 때 아주 만족했었다.
연기 경력 62년 차의 대배우로서 앞으로의 바람이나 포부는.
계속 영화 하는 것, 특정 영화가 아니라 현장에 있고 싶다. 선배님들이 현재 돌아가시거나 활동을 접으신 분이 많고 나 역시 언제까지 활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로버트 드니로를 좋아한다. 열 살 정도 연상인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니 나 역시 배우로서 매력을 유지하면서 그 나이까지 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체력을 단련 중이다. 언제 어떤 배역이 들어오더라도 일단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니 말이다. 중요한 건 나뿐만 아니라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 모두 즐겨야 한다는 거다 ‘저 선배 좀 가지..’ 가 아니라 ‘선배님! 있어 주세요’라는 위치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평소 체력 관리 방법은. 또 이번 라틴어 대사를 소화한 것을 보니 암기력은 여전하신 것 같다.
운동은 밥 먹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 사람들이 먹은 후 바로 식량을 구하러 나선 것처럼 그런 느낌으로 운동한다. 사실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다. 예전 같으면 한 번에 할 것을 이제는 서너 번 되풀이하는 거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건 느릿느릿한 말투다. 사실 예전부터 말은 굼떴었다. 과거 인터뷰 영상을 보면 내가 봐도 답답할 정도다. 내가 제일 많이 하는 게 ‘그래가지고’, 이 말이더라니까!
긴 세월 연기하면서 슬럼프인 시기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있었겠지. 그런데 슬럼프가 아니라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기회가 지나가면 다음에 또 오겠지 이런 식이었다. 굉장히 긍정적인 편이거든. 가령 요 몇 년은 슬럼프라면 슬럼프일 수 있다. 역할도 없었고 관객도 못 만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기를 모은다고 할까, 영화만을 생각하며 기다리다 보면 이런 내 마음이 감독을 포함해 영화하는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본다. 누군가 배우 ‘안성기’를 궁금해할 때 준비가 돼 있다면 바로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오랜만에 하게 된 게 <사자>다. 이후 가을엔 독립영화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슬럼프는 없고, 슬럼프는 오히려 기회다.
당신과 박중훈 배우가 주먹을 교환하는 빗속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가 나온 지도 벌써 20년 됐다. 또 올해는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 그 길을 꾸준히 걸어온 배우로서 소회가 남다르겠다.
얼마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함께했던 사람들과 모여 조촐하게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 영화와 쭉 같이해온 셈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규제가 심했던 7~80년대를 지나 90년대 직배사가 출범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을 때도, 한미 FTA에 맞설 때도 잘 버티어왔다. 그 결과 다행히 이젠 영화계가 힘을 지녔고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지 않나 싶다. 어려운 세월을 거치면서도 우리 영화를 잘 지켜왔고,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싶다. 외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에 주력해야 할 거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만들어 가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또 지난 시간이 있기에 현재의 발전과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니 앞만 볼 것이 아니라 선배와 과거 업적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스크린 독과점에 따른 다양성 영화의 입지가 좁혀지는 것에 우려의 시선이 크다. 일각에선 한국 영화의 위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위기라는 말은 항상 있었고 오히려 위기가 아닐 때가 없는 것 같다. 큰 영화와 작은 영화 사이 간극이 너무 큰 건 사실인데 한편으론 관객의 요구이기도 하다. 문성근이 “영화는 관객이 만든다”는 멋있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건 맞는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관객의 요구에 따라가는 건 당연하겠지만, 그런 와중에도 관객을 끌어나가는 적극성이 있어야 할 거다. 물론 대작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령 독립 영화에 뛰어난 작품이 있다 해도 규모가 작다 보니 감동이 크게 다가오지 않거나 소수의 관객만이 맛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전체적인 규모를 키우는 게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이정국 감독과 광주 이야기를 다룬 독립영화를 할 예정이다.
2019년 8월 2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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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