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젊은 세대와 대화를 하던 어느 날, 정영숙은 상대가 배우 김지미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꽈당’ 넘어지듯 무언가를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 역시 모를 수도 있겠구나! 함께 일하던 감독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내 집처럼 드나들던 방송국이 낯설어질 때 그는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었다는 걸 절감한다. 점점 이방인이 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뭇 젊은이들의 인생보다도 긴 50여 년의 세월을 배우로 살아온 그는, 곱고 단단한 성정을 앞세워 삶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려는 중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샤넬 할머니’라는 애정어린 별칭을 얻은 데 이어 영화 <로망>으로 치매 걸린 노인 ‘이매자’역을 선보이는 정영숙을 만났다.
영화 <로망>에서 노년의 남편과 동반 치매에 걸린 아내 ‘이매자’ 역할을 연기하셨어요. 정말 모처럼 스크린 주연으로 만나 뵙는 것 같습니다.
대본을 받았을 때 딱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연극에서 치매 연기를 다져 놨으니까.(웃음) 요즘 ‘막장’이라는 것들이 많은데 <로망>은 한 가족에 관해 많은 걸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가부장제를 공유하는 우리 세대,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아들 세대를 다루고 있는 만큼 다들 자기 가족 안에서 생각할 바가 있을 것 같아요.
극 중 남편 ‘조남봉’(이순재) 선생은 당신을 향해 툭하면 ‘무식한 할망구’라고 핀잔을 줍니다. 자식과 손녀 앞에서도 예외 없이 하대를 하지요. 보는 제 마음이 다 ‘울컥’ 하던걸요.(웃음)
우리 때는 정말 가부장제가 강력했어요. 오죽하면 충청도에서는 아들 상을 따로 차려주고 여자들은 정주(부엌)에서 밥을 먹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여자들이 가슴 아픈 병에 많이 걸렸지요. 영화 속에 드러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게 될 테고,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여러분 세대에서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담은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얼마 전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 내가 출연했던 이원세 감독의 작품을 다시 봤어요. 지금은 어디에서 (그림을) 따올 수도 없는 염전이 영화 배경이더라구요. 영화라는 게 그만큼 당대의 시대상을 담고 있어요. 앞으로는 부부를 다룬 이야기의 소재도 완전히 달라질 거라고 봐요.
부부 역으로 출연한 이순재 선생님과는 연극 <사랑해요 당신>에서도 호흡을 맞추고 계세요.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도 전국 공연 중이신 걸로 압니다.
정작 젊은 시절에는 그와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그는 TBC에서 나는 KBS에서 작품을 많이 했으니까요. 나는 오히려 박근형, 신구와 호흡을 많이 맞췄죠. 이순재는 말년에 와서 많이 만나고 있네요. 그렇지 않아도 연극 때문에 3년간 계속 붙어 있었더니 친구들이 ‘얘, 너희 진짜 부부인 줄 알겠어’ 하더군요.(웃음)
이순재 선생님은 <로망>을 언론에 공개하는 날 회견장에서 황혼이혼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고 하시더군요.
우리 나이가 되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노년의 삶이란 게 그래요. 그런 상황에서 정말 마지막에 남는 건 부부밖에는 없다는 뜻 아닐까 싶어요. 물론 황혼 이혼이 많은 것도 이해는 합니다. 한평생 살면서 얼마나 쌓인 게 많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는 나이 많은 부부가 서로 이야기를 하면 그건 부부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이상한 사이라고 들 하는데, 실제 부부는 그만큼 서로 대화가 안 된다는 의미이겠지요. 우리 집만 봐도 따로 TV를 보지만…(웃음) 그래도 예배할 때는 같이 기도합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눈이부시게>에서는 ‘샤넬 할머니’역으로 출연해 시청자의 큰 성원을 받으셨어요. 남편을 잃고 홀로 남아 쓸쓸한 삶을 살아가는 역할이었죠.
그 여자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요. 너무나 불쌍해요. 그 시절 체코로 신혼여행을 갔을 만큼 여유롭던 삶인데, 남편을 잃고 나서는 집을 팔아 아들을 미국에 이민 보내지요. 정작 본인은 그 시절 향수 때문에 프라하라는 모텔에 들어가 자신이 머물렀던 203호실에 머물러요.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이야기인가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가족의 사랑이 없으면 그건 너무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 영화에서도 사랑이 있기 때문에 노후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연극, 드라마, 영화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계세요.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제가 참 건강하고 바지런한 편입니다. 이순재도 마찬가지죠. 노인 두 사람이 피곤하다고 해야 스태프들도 함께 엄살을 피울 텐데, 우리가 너무 아무 소리도 안 해서 그들도 아무 말도 못 했다고 하더군요.(웃음) 나는 항시 일할 수 있었던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남들은 연극 무대가 힘들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감기가 왔을 때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관객에게 미안했던 적은 있지만요. 그런데 어떤 배우는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목발을 집고 연기하더라구요. 배우에게 약속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예요. 꼼짝 못합니다.(웃음)
최근에는 홀로 되거나 치매에 걸린 안타까운 노년의 모습을 주로 보여주셨지만, 젊은 시절에는 아주 센 기운을 뿜어내는 역할도 많이 소화하셨어요.
우리 직업이 재미있는 점이 바로 그거예요. 배우가 한 번 이런 역을 했으면 그다음에는 작가들이 역할을 획기적으로 바꿔줘요. 예전에는 정말 센 역할도 많이 했지요. 드라마 <야인시대>(2002~2003)에서는 김좌진의 아내를 연기하면서 한국적인 여성상을 보여줬어요. <청춘의 덫>(1999)에서는 쌍꺼풀 수술을 한 뒤 주변에 (도도하게) ‘이거 티 나?’ 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 때는 누군가의 세컨드 역할이었어요.(웃음) 정말 변화무쌍했지요. 하지만 배우로서 시간을 지나보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 적도 많아요.
어떤 때 그런 감정을 느끼셨나요.
영화 <간난이>(1976)에서 신구의 어린 딸 ‘간난이’ 역할을 하던 내가 어느 날 신구와 부부가 되어있더군요. 백윤식과는 부부 사이를 연기하면서 ‘또순이’ 같은 아내 역을 맡았었는데 어느 날 그가 내 아들이 되어있기도 했고요. 기분이 묘했어요.
연상의 남자, 연하의 여자가 쌍을 이루는 게 당연한 시대였으니… 나이 먹어가는 여자 배우의 활용법이 더욱더 그랬겠군요.
방송국에서 아무래도 여자 배우의 나이를 빨리 늙히는 것 같아요.(웃음) 물론 한편으로는 연기자의 묘미를 느낀 적도 많아요.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동네에 영화 촬영이 있었는데 그때 신성일이 함께 온 거예요. 그때만 해도 내가 워낙 새침데기여서, 안 보는 척하고 멀리서만 지켜봤죠. 그 뒤에 영화 <유혹>(1982)에서 상대 역을 맡았을 때는 감개무량하더군요. 자연히 옛날 생각이 났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첫 연기 시작이 궁금해집니다.
본래는 선생님이 되려고 했어요. 조금은 고리타분하고 답답했죠.(웃음) 그러다가 우연히 대학교 4학년 때 학교 신문에 뜬 광고를 봤어요. 그때만 해도 각 대학에서 과에 탤런트가 될 만한 아이들을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띄웠어요. 주변 아이들이 나가보라고 하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나간 거죠.
정말 신비로운 시스템이었네요.
그때만 해도 이화여자대학교는 그런 걸 못하게 했죠. 사회가 우리 직업을 ‘딴따라’라고 생각했거든요. 탤런트 생활을 하느라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고요. 당시 숙명여자대학교에 다니던 나는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택시라도 잡아 타고 악착같이 강의실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생활을 얼마나 반대했는지 몰라요. 엄마와 딸의 관계까지 끊자고 하셨으니까요. 결국 평생 방송국 한 번 안 와 보셨네요.(웃음)
5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셨어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상상이 잘 안 되는 시간입니다. 어떠세요. 요즘처럼 젊은 기자들과 지긋이 대화를 나눠야 할 때의 기분이요.
내가 늙었구나… 느끼는 거지요 뭐.(웃음) 한창 일 하던 때 활동하던 PD는 이미 다 돌아가셨어요. 장례식만 얼마나 갔는지 모를 거예요. 무엇보다, 일을 뜸하게 하기 시작하면 방송국 사람들도 나를 못 알아보게 된다는 걸 느꼈어요. 과거 방송국에 살다시피 하며 그렇게나 왔다 갔다 했는데도 말이에요. 세대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해요. 점점 더 이방인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어떨 때 그런 상황을 실감하시나요.
언젠가 젊은 상대와 대화를 하는데 글쎄 김지미를 모르더라고요. 아, 나도 모를 수 있겠구나 했죠. 꽈당, 꽈당 넘어지듯 하나씩 느끼고 있어요.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같은 (나이 든) 연기자들이 약을 먹고 정신적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잘 소화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하신 순간이 있다면요.
배우의 행복은 별것 없어요. 관객, 대중이 좋은 반응을 보여줄 때 가장 행복하죠. 그들이 없으면 배우가 무슨 재미로 연기를 할까요.(웃음) 그게 첫 번째예요.
사진 제공_(주)메리크리스마스
2019년 4월 1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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