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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 <증인> 정우성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이른바 ‘민변’ 출신으로 사회 정의에 부합하는 법조 활동을 고수하던 변호사 ‘순호’(극 중 정우성)는 거액의 연봉을 자랑하는 대형 로펌에 입사한다. 치매 걸린 아버지를 홀로 모시는 상황에 썩 여유롭지 않은 가정 형편을 떠받치던 40대의 그는 이제 인생의 방향을 조금 수정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변호하기로 한 뒤, 공교롭게도 자신의 논리와는 상반된 증언을 내놓는 ‘지우’(극 중 김향기)를 알게 된다. 자폐를 앓고 있는 10대 소녀 ‘지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인 ‘순호’는 결국 그의 증언 능력을 오롯이 신뢰한 뒤 자신의 삶에 평생 영향을 미칠 만한 과감한 결정을 내린다. 그의 행보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언정 인간적인 호감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간 정우성이 평소 그리는 좋은 사람의 모습과도 닮았다.

<증인>에서 민변 출신 변호사 ‘순호’역을 연기했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지만 회사가 옹호하는 기득권의 논리보다는 진실에 기반한 선하고 정직한 가치를 좇는 인물로 묘사된다.
‘순호’는 내가 일상에서 맛보고 싶은 감정을 다분히 대리만족시켜준 인물이다. 그동안은 일종의 가상 도시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거나(<인랑>), 특정한 세트 안에서 자기를 감추고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인물을 맡았다(<아수라><강철비>). <증인>의 ‘순호’는 그럴 필요 없었다. 그가 마치 정우성인 듯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의 촬영은 어떤 세트 촬영보다 기분이 좋았다.

단정한 양복에 백팩을 메고 광화문을 걷는 평범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 촬영이 각별했던 건…
내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타인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곳이니까. 그 장소가 가진 상징성도 있었다고 본다.

‘순호’는 살인 사건을 목격한 자폐 고등학생 ‘지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치매 걸린 아버지 ‘길재’(박건형)와는 결혼을 두고 은근히 옥신각신하고, 같은 민변 출신 동료 ‘수인’(송윤아)과는 온정어린 교감을 이어 간다. 인간적인 감수성을 드러내는 대목이 많은 작품이다.
그간 출연한 장르에 비하면 인간 사이의 교감에 조금 더 집중한 작품이다. 마치 공기 좋은 숲속에서 숨 쉬는 것 같았다. 일을 하기보다는 쉰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자신을 돌보고, 또 누군가에게 보듬어지는 듯했다. 일을 하다 보면 작품 속 캐릭터가 주는 스트레스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증인>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비로소 자각했던 것 같다. 여태 너무 달려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수라>(2016) <강철비>(2017) <인랑>(2018)까지 갈등 구도가 또렷하고 치열한 액션까지 소화해야 했던 최근작에 비하면 모처럼 선보이는 부드럽고 따뜻한 작품이다.
영화계는 사회적 요구나 시류를 즉각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 때문에 특정 시기에는 특정한 부류의 영화가 계속해서 나오는 경향이 있다. 배우들도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긴 여운을 남기는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갈증은 뒤로 접어두고 주어진 시나리오 안에서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극 중 가장 호흡을 많이 맞춘 상대 배우 김향기와의 호흡은 어땠는지. 2003년 한 제과 브랜드의 CF를 함께 촬영했다.
29개월이던 향기가… 어이구, 벌써?(웃음) 내 나이가 갑자기 자각되더라. 6~7살쯤이던 여진구를 무릎에 앉혀두고 촬영한 생각도 떠오르고… 그럴 자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함께 무대에 오를 만큼 잘 성장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내 동료 배우가 된 그들을 보면 분명 흐뭇한 기분이 든다. (김)향기는 <증인>에서 자신이 표현한 ‘지우’를 보고 실제 자폐를 가진 친구나 그 가족이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는 사실까지 염두에 두고 연기를 고민했는데, 정말 큰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일종의 조언을 건네기도 했는지.
각자 인생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충고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본다. 현장에서 함부로 잔소리하기보다는 내가 임하는 자세를 보여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걸 보고 다른 사람이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는 ‘순호’와 ‘지우’의 관계를 통해 좋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 사회에서, 직업 세계에서, 사람 사이에서 과연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예컨대…
내 경우는 촬영장에서 그날 소화해야 할 신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까 피곤하다고 대충 연기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그래야 다음 촬영장에서 그런 실수를 안 할 것 아닌가. 지금처럼 인터뷰를 할 때는 하루 일정을 다 끝내고 쉬면서 앞서 내가 했던 말을 곱씹는다. 내 의도를 제대로 전했는지, 온전하게 표현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한 번씩 자기를 돌아보는 거다.

어쨌든 영화 내에서는 ‘지우’에게 공히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만감이 교차한 신이다.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좋으면서도, 과연 정말 그런 말을 들을만한 인물이었는지 싶기도 하고…

이제는 배우 정우성 하면 가치관에 관한 여러 논의를 떼어놓을 수 없다. 난민 문제 등 사회적 현안에 관한 발언을 꾸준히 이어온 까닭이다. 지지층도 많고, 전에 없던 안티도 생겼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다. 사회는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곳이니까. 때로는 내가 한 말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와 세대가 바뀌면서 더는 그런 방향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걸 두고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서로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긴 시간을 할애하고,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마치 ‘순호’가 ‘지우’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결국은 옆 사람에게 얼마만큼 관심을 두느냐다. 밥은 먹었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묻는 게 사실은 전부 소통이다. 그런 사소한 게 쌓여서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러다 보면 사고가 확장된다고 본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둔 사회 문제는.
시대가 전환되고 있다. 그동안은 당연시하던 편견이나 차별을 바로잡으려는 의지들이 튀어나온다. 일종의 사회적 전환기를 맞은 것 같다. 청년과 기성,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 관한 문제들 말이다. 그게 최근의 사회적 화두 아닐까. 인간에 대한 존중도 중요한 이야기라고 본다. 최근에는 고 김용균 씨의 사망과 관련된 상황을 가장 관심 두고 지켜봤다.

소신 있는 이야기를 하는 배우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느낌인데.
한때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를 얻었지만, 빨리 벗어 던지려고 했다. 오랫동안 스타라고도 불렸지만 그런 수식어로 나를 규정하고 그것이 주는 장점에 만족했다면, 결국 나라는 존재는 어느 순간 사라졌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여러 가지 모습을 세상에 보이려고 한다. 그런 모습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한 인간으로서 삶을 완성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음 작품 일정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라는 영화 촬영을 이미 끝내 놓았다. 요즘은 잠깐 쉬는 시간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행복한가.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을 한 번도 당연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항상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며 그것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사진 제공_롯데엔터테인먼트


2019년 2월 11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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