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사실 ‘바디체인지’ 물이 썩 참신한 소재는 아니다. (웃음) 시나리오를 받고 선뜻 출연을 결정한 건가.
강효진 감독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식상(?)하면서도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아 베테랑 연기자도 잘 안 하려 한다고 하시더라. 나는 경험이 적어 오히려 겁 없이 도전했던 것 같다. 1인 2역이라 할 수 있으니 하나의 역할로 여러 캐릭터를 경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뻔한 것 같지만 그 안에 반전이 많아 시나리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다.
각종 클리셰가 난무함에도 맛깔나게 조리했더라.
그게 우리 영화의 매력인 것 같다. 슬픈 상황인데 한편에선 빵 터지고 신파인데 한 번 꼬아 놓아 새롭게 느껴진다.
옥상에서 떨어진 후 40대 아저씨 ‘판수’(박성웅)와 영혼이 바뀐 고등학생 ‘동현’(진영)을 연기했다. 즉 외양은 당신이고 내면은 박성웅 배우인데, 정말 박성웅 배우의 모습이 보이더라! 영화 <신세계>(2012)를 수차례 봤다고.
‘동현’의 말투나 행동이 ‘판수’의 언행과 비슷한 게 중요하기에 영화 초반 몸이 바뀌기 전의 ‘판수’ 모습을 정말 많이 보고 유심히 살폈다. 또 <신세계>에서 (박성웅) 선배의 되묻는 습관과 그때의 표정과 서늘한 모습을 참고했다. 그 외에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장치를 몇 개 만들었다. 가령 입을 만지는 습관, 보는 사람마다 넥타이를 고쳐주는 것, 휴지로 항상 테이블을 닦는 것 등등이다.
촬영 외에 박성웅 배우와 자주 만났는지.
마침 고향 선배이시고 내 첫 주연 드라마인 <우와한 녀>(2013)에서 극 중 부자 관계를 연기했었다. 이번에 함께한다고 듣고 든든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우리 집에 놀러 오셔서 와인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하곤 했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극 중 내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녹음해 참고하라며 주신 거다.
정말 정성 어린 도움이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당신은? (웃음)
내가 녹음해 드릴까 했더니 선배님이 괜찮다고 하셔서 맛있는 곱창을 대접해 드렸다.
극 초반 뱃살 두둑한 ‘동현’이 외형답지 않게 카리스마 뽐내는데 아주 코믹했다. 개인적으로 ‘바디체인지’ 하면 떠올랐던 식상함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평소 유머러스하고 코믹한 편인지 아님 연기를 너무 잘한 건가.
편한 자리에서는 잘 웃고 떠드는데 카메라 울렁증이라고 할까. 사실 예능을 잘 못 한다. 예능 나가면 웃기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초반 뚱뚱한 몸으로 분장했는데, 얼마나 무게를 늘린 건가. 또 분장 과정은.
뚱뚱하게 갈지 원래 모습으로 갈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동현’이 극 초반부터 끝까지 주로 등장하는데 계속 한 모습이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서 하고 싶다고 건의했다. 뚱뚱하다 살을 뺀 모습으로 등장하면 반전에 임팩트가 있을 것 같았거든. 이상한 게 분장하고 나면 정말 행동도 따라 바뀌더라. (웃음) 무게를 정확히 얼마나 늘렸는지 모르겠지만 입고 붙이고 하는 등 한 번 분장하는 데 거의 서너 시간 걸렸었다. 새벽 3시에 나가 분장한 적도 종종 있었다.
고등학생을 연기했는데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데 참고한 것이 있다면.
겉모습만 고등학생이고 속은 아저씨라 고등학생 문화를 몰라야 하는 설정이다. 덕분에 준비를 안 해도 돼서 다행이었다. ‘현정’을 연기한 (이) 수민이가 요즘 학생들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화를 간혹 알려주기도 했는데 정말 모르는 게 많더라.
영화 속에 교내 따돌림과 학교 폭력이 묘사돼 있다. 피해 학생이 힘을 길러 가해 학생을 응징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통쾌하더라.
자극적인 활용이 목적이 아니라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폭력의 형태를 막론하고 학폭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고 본다. 또 정의구현(?)의 현장 아닌가. 그런 면에서 나 역시 통쾌했었다.
코미디 장르이지만 액션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학생과 성인 등 액션 주체와 상황에 따라 강약을 잘 조절했더라.
액션 장면에 있어 감독님과 가장 디테일하게 신경 썼던 지점이 액션의 강도였다. 보면 조폭과 조폭, 조폭과 고등학생, 고등학생 간 등등 여러 상황이 등장한다. 그에 따라 강도와 느낌을 달리했다. 조폭들이 학생들을 상대한다고 하면 보통 ‘아기들이니 살살 손봐 줄게’ 이런 식의 약간 무시하는 마인드로, 조폭끼리는 죽자 살자 달려드는 식으로 풀었다 조였다 강약을 조절했다. 좀 위험한 장면이 있었지만, 대역을 쓰면 아무래도 표시가 안 날 수가 없기 때문에 욕심 내봤다. 나름 잘 나온 것 같아 조금 뿌듯하다.
극 중 마음에 드는 장면 혹은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라미란 선배와의 키스신이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다행히 선배님이 리드를 잘 해줘서 무사히(?) 끝났는데 당시 촬영장이 그야말로 웃음바다였었다. 그 후에 뺨 맞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사실 그동안 극 중에서 맞아 본 적이 없었다. 그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되니 좀 무섭더라. 선배님이 한 번에 끝내자고 세게 때렸는데 정말 실제로 휘청거렸었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촬영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을 찔끔 감게 되더라.
아이돌 그룹 B1A4 출신으로 작곡과 연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원래 연기에 관심이 많았는지.
연예인이 꿈이었고 시작은 연기로 했다. 중3 때부터 학원 다니며 틈틈이 보조출연이나 단역 등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출연했었다. 다행히 부모님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지지해 주셔서 혼자 지방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했다. 덕분에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던 것 같다. 드라마 <별순검>, <최강엄마>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대사가 없었다. 단역을 벗어나 대사를 하게 된 게 <우와한 녀>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보조출연자를 보면 예전에 버스에서 대기하던 나 같은 느낌이 들어서 챙겨주고 싶다.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또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나를 비롯해 가족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만나면 같이 극장에 가곤 한다. 당시엔 송강호 선배를 무척 좋아했었다. <살인의 추억>을 보는데 연기 같지가 않고 정말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또 배우에 대해 나만의 판타지가 있다. 연기라는 건 내 인생 외에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것 아닌가. 이만큼 값진 게 없는 것 같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2016)에서 보여준 순애보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 찍었지만, 영화에서는 신인이라 할 수 있다. 관객에게 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멋 모르고 겁 없이 도전했지만, 리딩 연습 들어가면서 답을 못 찾겠더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중년의 감성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나를 보고 관객이 진짜처럼 느껴야 할 텐데 그 방향을 잡는 데 고민이 많았다. 결국 현장에서 맞춰보자고 결론 내렸는데 그렇게 마음먹으니 한결 편해지더라. 아마 정답 혹은 어떤 기준을 정해 놨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감독님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 모두 열심히 했으니 관객들이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
수많은 배우 지망생은 차치하더라도 단역과 보조출연으로 오랜 기간을 지내는 이들이 많다. 아이돌 출신 배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연을 꿰찬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런 시선이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했듯 오래전부터 꿈꿔왔고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마냥 쉬운 길만 걸어온 건 아니다. 한 컷 두 컷 점점 비중이 늘었고, 한마디도 없던 대사가 한줄 한줄 늘어날 때마다 희열을 느꼈었다. 지금은 고생 끝에 낙이 왔다는 생각에 (나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 두려움보다 기쁨이 더 크다.
솔직히 촬영 도중에 여러모로 불안함이 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해내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혀 나중에 연기력 논란이 일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너무 떨려서 모니터 시사에 참석 못 하고 이후 점수만 알려 달라고 할 정도였다. 다행히 4점 후반대가 나와서 한시름 놨었다. (웃음)
그렇다면 완성본은 언제 처음 봤는지. 소감은.
공식적인 언론 시사 전에 일반 시사가 있었다. 반응도 지켜볼 겸 뒷자리에 앉아서 봤는데 학생들이 아주 많이 웃는 거다. 우리 영화가 작품성이 뛰어나지 않을지라도 코미디 장르에 충실해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꽤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한다. 또 웃음이라는 게 전파성이 강하니 많은 분이 관람해서 한바탕 웃고 가시면 좋겠다.
요즘 활동을 보면 연기로 무게 중심이 기울어진 모양새다. 향후 가수와 배우의 비중은 어떻게 가져갈 예정인가.
비슷한 질문을 종종 듣는다. 음악과 연기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엔 둘 다 너무 사랑한다.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둘을 균형 있게 지속하는 게 목표다. 그 결과 조금의 성취가 있었던 것이 바로 <구르미 그린 달빛>의 OST에 참여한 거다. 그렇게 연기와 음악을 병행해 나가다가 언젠가 음악 감독으로도 참여하고 싶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 혹은 캐릭터는.
솔직히 다 해보고 싶다. (웃음) 특별히 꼽는다면…전쟁 영화다. 몸과 정신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영화를 하고 싶다. 총을 쏘고 생사를 넘나드는 극단의 감정이 녹아 있는 드라마가 욕심난다.
마지막 질문! 최근 행복하거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일반 시사에 참석해서 내가 주연한 영화를 보고 웃는 관객의 모습을 지켜보는데 참 기분이 묘하면서 좋았다. 일부러 나를 의식한 것이 아닌 리얼한 반응이니…더할 수 없이 기뻤다!
2019년 1월 14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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