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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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을 연기한 <뷰티풀 데이즈>로 6년 만에 스크린 앞에 섰다.
시나리오를 읽고 윤재호 감독님을 꼭 만나보고 싶었다. 이 작품을 왜 썼는지, 탈북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통념과는 조금은 다른 듯한 모성애를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 건지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윤재호 감독의 전작 다큐멘터리 <마담B>도 같은 소재를 다룬다.
그 작품을 찾아본 뒤 감독님에 대한 어떤 확신이 들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니 역시나 내 생각대로 명확한 주제 의식이 있었다. 나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는 작품이었다.
작품 색을 고려하면,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에 출연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가 있었을 법도 하다.
다들 이 작품 출연을 만류했다. 너 또 왜 그러니… 하는 식이었다.(웃음) 주위의 걱정을 잘 새겨듣는 편이다. ‘이쯤에서는 이런 작품을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편이고, 설득당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나라는 사람을 내걸고 내 온전한 진심으로 관객과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말이 장황하지만, 쉽게 말하면 ‘꽂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의미다.
꽂히는 작품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다.(웃음) 활동 기간에 비하면 출연 작품이 많은 편은 아니다.
너무 신중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할 정도다.(웃음) 하지만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참여하고 싶다. 상업영화인지 독립영화인지 그런 게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제작 규모가 큰 작품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역할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독립영화는 상대적으로 이야깃거리와 역할이 다양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을 무조건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다 보면 딱 맞는 시나리오를 만나는 게 어렵다. 다행히 더 늦지 않게 <뷰티풀 데이즈>라는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이나영이기에’ 오히려 맡지 못하는 역할도 분명 있을 것이다.
운이 중요하다. 이미지로만 따지면 <뷰티풀 데이즈>도 나에게 올 영화는 아니었다고 본다.(웃음) 하지만 인연이 닿았다. 이런 과정이 쌓여 다음 행보가 정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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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준다면. 이름 모를 탈북 여성이자,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고아로 자랐고, 자기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10대 소녀 시절을 보냈다. 험난한 탈북 과정을 거쳤지만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으로 팔려갔고, 클럽이나 마약에 노출된 동물적인 20대를 살아낸다. 인물은 현재 30대다. 아이를 버리고 한국으로 왔다. 이 모든 걸 겪은 사람이 과연 어떤 희망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 희망이 아니라 절망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냥 살아가는 여자일 것이다.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살아가는 중인 인물이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자신을 찾아온 아들 ‘젠첸’을 만난다.
이 대목에서, 많은 분이 내가 실제로 엄마가 됐기 때문에 그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았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14년만에 찾아온 아들을 대하는 마음이 어떨지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느껴졌다.
아들 ‘젠첸’역의 장동윤과는 첫 만남이다.
그가 맡은 ‘젠첸’역은 내 역할과는 달리 감정적 높낮이가 크다. 화도 내고 욕도 한다. 혹시라도 내가 말을 시켜 그의 감정을 방해할까봐 조심스러웠다. 3주 만에 15회차 촬영을 모두 끝내야 했던 상황이라 사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가까워질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극 중 두 사람의 사이가 원래 그런 상태라서 연기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화도 내고 욕도 하는 ‘젠첸’과 달리 당신은 전반적으로 정제된 태도를 보여준다.
감독님이 그걸 원하셨다. 내 딴에는 감정을 아주 조금만 표현한다고 한 건데 그마저도 편집에서 싹 걷어내 버리시더라.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도 아니고, 조금 글썽인 건데 그것 마저…(웃음) 영화가 이 정도까지 담백한데 과연 관객이 내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들 정도였다.
그 면에서는 힘 있는 이야기 구성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엄마에게 실망한 아들 ‘젠첸’은 이내 중국으로 돌아가지만, 엄마가 건넨 일기장을 읽으며 그간 알지 못했던 그의 삶을 들춰본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다 보면 결국 당신이 앞서 보여준 정제된 연기 태도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 전반부에서 감정을 확 걷어낸 덕에, 오히려 뒷부분에서 드러나는 이야기가 강하게 느껴지더라. 그 덕에 앞부분의 사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구성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
모처럼 만의 영화인 만큼, 촬영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었을 법하다.
조금 있다.(웃음) 담배를 피우다가 끄는 장면을 열심히 연습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때 비슷한 연기를 해보긴 했지만 평소에는 하지 않는 동작이다 보니 섬세함이 잘 표현되지 않더라. 다른 건 다 두고라도, 이 장면만이라도 재촬영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하시더라.(웃음) 예산이 없어서 그러셨을 거다. 워낙 저예산이었기 때문에 촬영은 물론 의상비까지 모든 걸 아꼈다. 그래도 그런 과정이 꽤 재미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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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저 한 작품에 완벽하게 나를 던져보고 싶었다. 그러면 화면에 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근육을 쓰고 있으며, 어떤 눈빛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보면 내가 어떤 작품에 끌렸고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지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앞만 보고 가는 중이다.
듣다 보니 말을 꽤 잘하는 편이다. 대중과 접점을 좀 더 넓혀볼 계획이 있나. 연기 외 활동을 한다든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든지…
음… 하나의 작품을 두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 워낙 취미가 없는 편인데 유일하게 영화 보는 건 좋아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GV도 많이 참여했다.
그렇다면,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를 추천해주는 것도 좋겠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2017)와 <팬텀 스레드>(2017)를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팬텀 스레드>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웃음) 최근에 본 영화는 아니지만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1999)도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다음 작품 계획은.
내년 2월까지 드라마를 촬영할 예정이다. 그 외의 다른 계획은 없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일단은 드라마부터 잘 해내려고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소확행’은.
소확행…? 그게 무슨 뜻인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웃음)
아… 내가 줄임말을 잘 모른다.(웃음) 그런 거라면, 뭔가 맛있는 걸 먹을 때? 먹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 시절을 기억하거나 떠올릴 때도 누구와 어떤 맛있는 걸 먹었는지부터 생각한다. 요즘은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현명하게 잘 채워나갈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거리지만, 그러다가도 맛있는 걸 먹으면 그래 이러려고 사는 거지… 싶다.(웃음)
2018년 11월 22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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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이든나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