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고구려가 당 태종을 상대로 승리한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 <안시성>과 안시 성주 ‘양만춘’역은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작품과 배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이다. 전환점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하고 시작한다면 그 의도가 다 들키게 돼 있다. 그냥 중압감이 많이 느껴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추석을 겨냥한 이른바 빅 3(<안시성>, <명당>, <협상>)가 격돌하는데, 일단 <안시성>의 평이 좋다.
가장 중요한 관객 평이 남아있지만, 천만다행이다. 정말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자 시사 후 딱 드는 생각이 ‘살았구나, 다음 작품도 가능하겠다’ 였다. 너무 크게 말아먹으면 다음 작품 들어가는 게 좀 힘들어진다. 게다가 <안시성>이 투자배급사 NEW의 10주년 기념작이기에 제작비는 물론 기대가 큰 작품이었다. 압박감이 엄청 났었는데,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를 넘은 것 같은 느낌이다. 기자분들도 한국 영화가 추석 시즌에 몰리다 보니 요즘 바쁘지 않나? 고생하신다.
그런 세심한 배려를! (웃음) ‘양만춘’ 역을 몇 차례 고사했다고 들었다.
장군이라 하면 나조차도 최민식 선배나 김명민 선배가 떠올랐기에, 내가 과연 어울릴 사람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왜 이러시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제작비 220억의 대작인데! 그래서 두 번 정도 거절했었다.
감독님이 왜 당신을 ‘양만춘’에 캐스팅했을까.
음, 감독님이 내게서 ‘강백호’ (기자 주 인기 만화 <슬램 덩크>의 주인공) 같은 느낌을 받았고, 강백호와 조인성을 합하면 신선한 사극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다더라. 또, 우리가 흔히 ‘장군’을 떠올리면 중·장년을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양만춘 장군의 나이가 지금 내 또래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설득 당한건가 .
제작 의도가 새롭고 젊은 역사극을 만드는 거라기에, 외화 역사물처럼 젊은 주인공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게다가 내게 어울릴지 아닐지 하나하나 따지면 막상 맡을 배역이 없다. <비열한 거리>(2006) 당시에도 내 얼굴이 조폭 깡패 역할에 어울리느냐는 의문이 많았었다. 그럼, 나는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 매번 재벌 2세?
음, 그렇네!(웃음)
스스로 기존 틀에서 벗어나보고자 했다. 이번엔 S 사 다음엔 L 사… 뭐 이렇게 재벌 2세로 자기복제만 하다가 끝날 게 아니라 도전해 보고 싶었던 거지. 매번 비슷한 역할 하며 안주하다 끝나느니 결과가 어찌되든 해보기로 했다.
안시성 전투 관련 사료가 많지 않은 거로 알고 있다.
제작진들이 책을 백 권 이상 참고했을 정도로 고구려 역사는 백지상태가 많다. 역사적으로 안시성 전투가 있었고, 안시성주 양만춘이 승리로 이끌었다는 게 전부다. 부족한 사료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본다. 자료가 많았다면 아무래도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인데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 한편으론 캐릭터 구축에 자유로웠던 반면 기준점을 둘 곳이 없어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안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다.
캐릭터 구축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말했듯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기에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연개소문이 안시성을 치러 왔다가 앞으로 안시성을 ‘양만춘’에게 맡기라고 말하며 물러났다는 데 주목했다. 연개소문이 치러 왔다는 건 그(양만춘)가 권력의 주류가 아닌 어찌 보면 중앙 권력에 반하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양만춘)가 권력욕을 내려 놓으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뭐였을까. 나는 그게 안시성과 안시성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성주와 성민 사이에 형성된 강하고 끈끈한 유대를 보여주려 했다. 또, 극 중 누구보다 용맹한 장수인 ‘파소’(엄태구)와 ‘수지’(배성우) 등을 비롯한 부하가 진심으로 ‘양만춘’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나. 그렇게 장군(양만춘)을 섬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 봤다. 지혜, 용기, 카리스마 등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들 사이에 형성된 ‘어떤 공감’일 거라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양만춘’의 모습을 부각했다.
음.
그렇게 성민과 성주간의 관계를 생각했고 그 관계를 극에 끌고 들어가고자 했다. 극을 이끄는 주연배우로서 판단할 지점이 있다. 내 의견을 말하자 동료 배우들이 좋다고, 그렇게 가보자고 호응해줬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젊은 장군, 조인성만의 ‘양만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무게를 싣는 것보다 힘을 빼는 연기가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역할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장군의) 이름(인) ‘만춘’처럼, ‘늦은 봄’을 맞을 수 있으면 좋겠다. 흔히 힘을 빼는 게 웃겨야 한다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번에 힘을 빼면서 힘을 줄 수 있는 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시험해 봤던 것 같다. 혼자 나름대로 시도해 본 부분도 있고, 감독님이 내 의도를 알아주시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것도 있다. 나를 잘 다듬고 빚어 준 감독님께 감사하다.
목소리가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톤의 대사 처리가 살짝 어색했는데, 점차 익숙해지더라.
목소리는 다시 태어나야 바꿀 수 있는 부분이라.(웃음) 전투에 돌입하기에 앞서 ‘양만춘’이 연설하는 부분이 몇 번 있는데, 분명한 콘셉트가 필요했다. 장황하고 진지했다면 너무 답답해서 극을 끝까지 못 볼지도 모른다. 진지함에 질린다고 할까. 또, 성우 형, 설현, 태구 등이 다 자연스럽게 연기하는데, 나만 무게 잡으면 혼자 튀었을 거다. 다행히 주변 배우들과 잘 어우러진 것 같고, 결과적으로 인물 한 명 한 명의 개성이 잘 드러났다고 본다.
처음 ‘양만춘’이 등장할 때 많이 어색하지 않았나? ‘양만춘’이 등장하는 첫 장면이 마침 첫 촬영이었다. 의상도 처음 입어서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고, 당시 당나귀는 또 어찌나 말을 안 듣던지... 게다가 비는 오고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예고편이 안티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웃음)
우리 영화가 예고편 만들기가 어렵다. 여러 서사가 쌓이면서 그 가운데 캐릭터의 면면이 드러나야 하는데, 전투 시작 전 연설하는 장면이 나오니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다. 또, CG 가 극장 전용이라 모바일과 TV로 가져갔을 때, 더 CG 티가 난다고 들었다. 그런 핸디캡이 있었다.
오프닝과 엔딩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는데, 이 또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고대사가 조선사나 고려사에 비해 익숙하지 않기에 방대한 고대사를 함축적으로 브리핑하는 게 필요했다. 자막으로 처리하지 않은 건 전형성을 피하고자 한 감독님의 선택이셨다. 잘 보면 우리 영화가 역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또한 같은 의도로 볼 수 있다.
<안시성>의 묘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세 차례에 걸친 공성전이다. 특히 마지막 토산을 활용한 공성전에서는 아주 고생했겠더라. <반지의 제왕>의 전투신과 비견된다는 평도 있다.
영화를 본 한 지인이 마지막 토산에서 뛰어나오는 장면이 정말 짠했다고 하더라. 그간의 고생과 부상이 쌓이고 쌓여 배우에 대한 연민과 극 중 ‘양만춘’ 캐릭터의 비장함이 더해져서 불쌍함이 증폭됐다고 할까. (웃음) 사실 <반지의 제왕>을 보진 않았지만, 그 정도 명작과 비교된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 그만큼 기술적 발전을 보여준 거니 말이다. 후반 작업팀이 고생 많이 했다.
안시 성민 5,000명과 당나라 20만 대군의 싸움인데, 전투신의 경우 후반 CG 작업을 거쳐 완성되는 부분이라 상상하며 연기하는 게 어려웠겠더라.
블루스크린 촬영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20만 대군을 본 적이 없으니…. 실제는 40~50명이 공성기를 끌고 가는데 보고 있으려니 웃기더라.(웃음) 나중에 기술 시사로 완성본을 처음 봤는데, 와 정말 군사가 많긴 많더라.
극 중 ‘양만춘’ 장군이 사용하는 무기도 여러 가지다. 활과 칼, 후반부에는 주몽이 사용했다는 신궁까지 쏜다. 신궁이 실제로도 더 무겁게 제작된 건가.
긴 칼과 단검 두 개 그리고 화살을 쏜다. 연개소문이 다섯 개의 검을 사용했다는 기록에서 착안한 거다. 신궁의 경우 극 중 표현만큼은 아니지만, 좀 더 무겁게 제작한 건 맞다. 활을 잡아당길 때 텐션을 더 강하게 하긴 했지만 당기기 어려울 정도까지는 아니고 힘듦을 연기한 거다.
<안시성>을 관객이 어떻게 봐줬으면 좋겠는지.
말했듯 어떻게 보느냐는 관객의 몫이다. 내가 어떻게 봐 달라고 부탁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만, 우리 영화를 보고 ‘양만춘’ 혹은 ‘안시성 전투’ 혹은 ‘연개소문’ 등을 한 번 검색해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고구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영토는 아니지만, 고구려의 유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안시성 전투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 아닌가.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보통 시나리오를 본다. 특히 신인 감독의 경우는 전작이 없으니 시나리오를 더 꼼꼼하게 보는 편이다. 간혹 기획이 마음에 들어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안시성>의 경우는 고구려 역사를 다룬다는 게 새로웠다. 요즘 고구려 역사를 소재로 슬슬 기획되고 있다기에 내가 첫 번째로 해 볼까 싶었고, 제작사인 NEW가 경험과 여력이 있으니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다! 하하
뻔한 질문이지만, 이번 추석 대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웃음)
음… 극 초반에 ‘양만춘’이 성 위에 올라가서 이렇게 연설하며 성민들을 독려한다.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는 게 아니다, 나는 불행히도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그 마음 그대로다.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 추석 대전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경쟁작 입장에서는 스케일면에서 <안시성>이 당나라 대군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절대 그렇지 않다! CJ와 메가박스와 NEW가 붙는 건데, 다른 곳은 극장을 수백 개 보유하고 있는 배급사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안시성>이 고구려군이다. (웃음)
촬영하면서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로 강원도 고성에서 촬영했는데, 그곳에 어부 친구가 있어서 회를 비롯해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즐겁게 보냈다. ‘사물’역의 주혁이가 해외 팬 미팅 갔다 사 온 양주 나눠 먹으며 피로를 풀곤 했었다. 주혁이가 젊어서 그런지 해외 스케줄이 많더라. 본인은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좋아 보이는 술을 꼭 사 온다. 그럼 성우 형 방에서 세팅해서 한잔하는 거지.
‘사물’(남주혁)과 ‘양만춘’의 대립과 화해가 영화의 중요 감정축인데, ‘젊은’ 남주혁과의 호흡은.(웃음)
그냥 기특하다. 얼마나 부담됐겠나. 그가 지금 스물다섯 살인데, 젊은 혈기만이 가능한 연기가 있다. 내가 스물네 살 때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했다. 그때 막 ‘으아악!’ 소리 내지르며 얼마나 힘으로 몰아붙였는지 모른다. 하하하! 주혁이도 그때 나처럼 연개소문과 붙는 장면에서 힘으로 치고 올라오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안시성>으로 30대 후반을 멋지게 장식할 것 같은데, 40대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
글쎄, 40대가 되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 지금의 내가 과연 20대 때 그렸던 모습인지 모르겠다. 스스로 객관화하기 힘들지만, 현재까지 계속 활동할 수 있다는 건 나를 좋게 봐주시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기 외적으로는 상대와 좀 더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위화감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데뷔 20년 차임에도 의외로 작품이 많지 않다. 앞으로 자주 볼 수 있을까.
그럴 거 같다. 영화를 하다 보니 꼭 타이틀롤이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캐릭터만 확실하다면 부담감도 적고 효과적으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작품이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 <신과함께>에서 ‘염라 언니’로 활약한 (이) 정재형 멋있었다. (웃음) 예전에는 한창 잘 나가는 반짝반짝한 (젊은) 배우들이 주로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을 했다면 점차 연령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다. 배우가 오래 길게 일할 수 있고, 역할에 있어 확장성이 커졌다고 할까. 반가운 일이다.
배우 조인성의 신념은 뭘까. 궁금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기 치지 않는다면 모든 걸 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차기작 계획은. 또 도전인 건가.
아직 정해진 건 없는데, 다음은 안정적으로 가고 싶다.
최근 행복한 순간이나 인상적인 일이 있다면.
기분이 좋고 나쁜 건 행복한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 일 없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2018년 9월 23일 일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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