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 이후 3년 만의 영화 출연이다.
영화는 항상 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 드라마를 할 때는 많은 이들이 나에게 바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영화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연기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너의 결혼식> 시나리오를 받았고 ‘환승희’에게 매력을 느꼈다. 실제 내 모습과는 상반된 느낌에 끌렸다.
어떤 모습이 다르다고 느꼈는가.
‘승희’는 자기감정에 매우 솔직하고 결단력이 있다. 다른 사람 의견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고 우유부단한 편이라, 그런 모습을 잘 표현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너의 결혼식>의 ‘환승희’는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한 ‘황우연’(김영광)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인물이다. 두 배우의 화학작용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김)영광 오빠를 보면서 이렇게 찰떡같이 ‘황우연’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더라. 배우가 캐릭터를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내 역할이 크게 미워 보이지 않도록 표현을 잘해준 것 같아서 고맙다. 이런 게 배우가 가진 힘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물론 함께 촬영하다가 영광 오빠 연기에 진짜 감정이 상한 적도 있지만.(웃음)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오는데…
정말 넌덜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아무리 연기지만 상처가 되더라. 너무 흥분해서 대사를 계속 틀렸다.(웃음)
다만 영화의 시선이 ‘황우연’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기 때문에 당신이 연기한 ‘환승희’의 심리까지 정확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에 아쉬움이 있었을 법한데.
관객 입장에서는 ‘환승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야말로 여우처럼 못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역할의 마음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신이 많은 편은 아니니까. 작품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본다. 하지만 왜 ‘환승희’가 왜 ‘황우연’을 좋아하게 됐고 반대로 왜 그에 대한 마음을 접게 됐는지 확실한 계기들이 분명 있었는데 그 장면이 다 편집됐더라. 언론시사회 때는 기자회견 준비를 하느라 마지막 부분을 채 보지 못했고, 어제 비로소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봤는데 하아…(웃음) 좀 아쉽다.
작품 특성상 그런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는 건 캐스팅 단계부터 이미 예상했으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욕심을 따지면 영화 공백기가 5년까지도 늘어날 수 있을 것 같더라.(웃음)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인터뷰할 때마다 너무 죽는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다. 종종 인터뷰에서 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많이 힘들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주란’이나 <돌연변이>(2015)의 ‘주진’ 같은 역할은 대중적인 드라마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구나 싶어서 말이다.
때로는 영화보다 드라마의 파급력이 훨씬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미지가 잔상처럼 남아있는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는 그런 것 같다. 영화 캐릭터에 기존의 이미지가 덧씌워져서 나온다. 그건 내가 씌운 걸 수도 있고 보는 이가 그렇게 보는 걸 수도 있다. 요즘은 이런 현상을 내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건지 고민하는 중이다. 앞으로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말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이나 <힘쎈여자 도봉순>의 연이은 인기도 그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운도 좋았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까지 그렇게 잘 풀릴지는 모를 일이다.(웃음)
아쉬운 점을 꼽자면, 비슷한 이미지를 오랫동안 품고 있다는 게 배우로서 늘 장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때는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말이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다른 모습도 많은데 왜 자꾸 그 말만 할까 싶은 생각 때문에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과도하게 부정하게 되더라. 마치 그런 면이 아예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애교도 아예 없다는 투였다. 사실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다.(웃음) 그냥 그런 모습이 나의 전부는 아니라고만 표현 했어도 됐는데…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 있었다.
관객도 아마 그 지점이 궁금할 것 같다.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앞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깨고 나갈 것인지 말이다.
나도 고민스럽다. 스스로 한계를 많이 느낀다. (사람들이) 지겹다는 데도 계속 비슷한 연기를 하는 게 과연 괜찮은 건지 말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모습을 완전히 버리는 건 또 자신이 없더라. 결국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조금씩 달라진 얼굴을 보여주기로 했다. 조금씩 한계를 깨나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작품을 고를 때도 내가 해보지 않았던 역할을 위주로 선택하려고 한다.
조금씩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작은 조각이 맞춰져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할 때가 있으리라고 본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종종 배우라는 길이 나와 맞는 건지 고민할 때가 있는데, 만약 그런 때가 온다면 적어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게 될 것 같다. 아마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할 것이다.
앞으로 계획하는 활동이 있다면.
작품도 다 인연이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건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 중에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는 거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웃음) 나도 내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하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지난해에는 유독 일하는 게 힘들고 벅찼다. 그래서 시골집에 내려가 농사를 지은 적도 있다. 일할 때 입는 바지에 장화를 신고 걸어 다녀도 마을 분들은 그냥 제일 안쪽 집에 사는 아이가 내려와서 왔다 갔다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더라. 고추와 상추 모종을 잔뜩 심었고, 낮에는 풀을 보고 밤에는 별을 보면서 돌아다녔다. 물론 상추 모종은 고라니가 다 뜯어 먹었지만.(웃음)
이제는 조금 괜찮은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책도 읽고 한동안 나를 다독였다. 그러고 나서 <너의 결혼식> 홍보 활동을 시작한 건데, 요즘에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구나…(웃음) 그게 최근 느낀 가장 소소하지만 행복한 순간이다.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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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