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개봉을 앞둔 <채비>의 주연배우 고두심과 김성균의 인터뷰가 약속된 날은 공교롭게도 故 김주혁 배우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이었다. 고인을 사랑했던 많은 팬에게도 깊은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지만, 아들 같고 형 같았던 동료 배우를 떠나 보낸 심정은 무척 참담했으리라. 고인을 추모하며 조심스럽게 <채비>의 캐스팅부터 준비 과정, 촬영장의 모습까지 이야기를 풀어 놓는 고두심과 김성균.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모양이 영화 속 엄마와 아들 모습 그대로다. 처음 만났는데도 ‘쎄쎄쎄’ 호흡이 척척 맞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해당 인터뷰는 <채비> 관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배우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는데, 故 김주혁에 대한 애도를 부탁한다.
고두심(이하 고) 드라마에서 엄마와 아들로 함께 연기한 적이 있기에 정말 아들 같다. 특히, 선친(故 김무생)과도 너무 잘 알던 사이라서 더욱 그렇다. 어젯밤에 비보를 듣고 너무 놀라서 잠시 멍했다. 세상에 나와서 할 일이 많은데 다 못하고 가서 너무 안타깝다.
김성균(이하 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실 오늘 인터뷰를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미 약속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하게 됐다.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 불과 며칠 전에도 <홍반장>(2004, 故 김주혁 주연)을 보며 감탄했는데 말이다.
개봉을 앞둔 소감은.
고 우리 영화는 제목 자체에서 많은 것을 드러낸다. 사람이 만나면 누구나 헤어짐이 있기에 숨 쉬는 동안은 모든 게 다 채비가 아닐까 한다. 요즘은 모든 게 너무 빨리빨리 돌아가고 있지 않나. 그 와중에 좋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는 거 같다. 그렇기에 한편으론 느리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었고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다.
김 아주 작게 출발해서 예산이 점점 커진 경우라 개봉한다니까 아, 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뭐랄까 새삼스러운 느낌이라고 할까.
상반기는 <보안관>으로 관객을 웃겼는데, 이번 <채비>로는 관객을 울리는 건가.
김 울리기보다 엄마와 아들 간의 일상을 통해 미소짓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언론시사회 때 보니 별로 웃지 않으시더라.(웃음)
<굿모닝 프레지던트> (2009) 이후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다.
김 TV에 집중했던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큰 대형 스크린에 나를 노출한다는 게 두려웠다. 또, 요즘에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흔히 ‘보따리 싼다’라고 얘기할 정도로 지방 촬영이 많았다. 그래서 집을 오랜 시간 비워야 했고. 그게 싫더라. 집에 있는 걸 너무 좋아한다. (웃음) 드라마는 방송국에 잠깐 다녀오면 되고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편하다 보니 영화를 자꾸 기피하게 되더라. 또, 내가 볼 때 영화 내용이 너무 무서우면 못하겠더라. 어떻게 보면 너무 졸렬한 생각인 거지. 어느덧 나이가 드니 이젠 맞는 역할이 없다. (웃음)
드라마에서 충족하지 못한 연기적 갈증은 없었는지.
고 그래서 꾸준히 연극을 했다. 드라마로 해결 안 되는 부분은 연극으로 푼 거지. 연극을 하면서 사람끼리 부딪치고, 조곤조곤 모여 같이 대사 연습하고 그런 게 참 좋다. 아, 그리고 영화는 예전에는 가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는데 요즘은 통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캐스팅 제의가 온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고 당연하다, 배우라면 다 하고 싶지. 단, 아주 짙은 멜로는 못하겠다. 내가 애마 부인에 뽑혔었다. 몰랐던 사실이지?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도저히 감당이 안 돼서 포기했었다. 감독님들~ 어떤 역할이든지 줘 보세요. 고두심도 할 수 있답니다! (웃음)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고 현역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배우로서의 앞으로 계획은....음, 없다. 나는 선택 당하는 입장이라 계획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걸 잘 알고 있다. 어떤 역이든 주어진 역을 얼마나 잘 할까를 고민하는 게 빠르다.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고두심’이 아닌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한다.
극 중 딸 ‘문경’을 연기한 배우 유선이 캐스팅에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다.
고 당시 드라마 <우리 갑순이>에서 유선과 모녀(母女)로 출연 중이었는데, 어느 날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더라. 촬영 중인 상태라 솔직히 신경을 안 썼다. 작품을 하는 중에 다른 작품에 신경이 분산되면 안 되니까. 촬영 종료쯤 해서 유선이 날 붙잡고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읽어보니 딱 내 역할인데 싶었다! 아들 역을 누가 할지 궁금했는데, 김성균이 한다니 너무 좋은 거다. 감독님은 처음 뵙는 분이었지만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정말 잘 만났다 싶었다.
김 유선 누나가 시나리오를 줬는데 솔직히 내가 아들 ‘인규’역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박계장’(박철민 분) 역할인가 했는데, 누나가 안 할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인규를? 하고 반문할 정도였다. 게다가 엄마역은 고두심 선생님이라기에!
결국 출연의 결정적 이유는 상대역이었던 건가.(웃음)
김 시나리오도 마음에 들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누나(유선)가 엄마역에 고두심 선생님이 캐스팅됐다는 한마디였다.
평소 배우 ‘김성균’에 대한 생각은.
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너무 잘한다 싶었다. 그다지 잘 생기지도 않은 배우가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번에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더라. 어디서 저 내공이 나올까 싶었던 차였다. 김성균이 아들을 한다고 생각하니 나와 그, 모자(母子) 그림이 딱 그려졌다. 솔직히 나는 그간 어머니 역할을 많이 해와서 어떻게 보면 거기서 조금 플러스알파를 하면 되는데, 김성균은 발달 장애 역할이라 정말 힘든 역 아닌가.
대선배(고두심)와 연기한 소감은.
김 뻔한 대답이라 느끼겠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현장에 나가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다. 정말 합이 잘 맞았을 때 맛볼 수 있는 느낌이랄까. 그 전에는 선생님을 뵌 적이 없음에도 처음 만나서 ‘푸른 하늘 은하수’(쎄쎄쎄)를 하는데 너무 호흡이 착착 잘 맞더라!
모자 연기를 했는데, 실제 두 사람이 닮은 점이 있던가.
고 소탈한 성격이 닮은 거 같다. 배우로서는 내가 다양한 역할을 안 해봐서 언급하기 힘들고. 또, 음,,,,긍정적인 마인드? 왜냐면 그도 이미 충분히 유명한 배우인데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니 말이다.
김 연기는 성품에서 나오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성품이 워낙 좋으셔서 엄마 역할도 잘 하시는 거 같다. 현장에서 고민 상담을 하면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주셨다.
상담 내용이 궁금하다.(웃음)
김 음... 내가 배우로서 얼마나 갈까?
고 이렇게 물으면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혹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 생기더라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빨리 푸는 게 좋다고 말이다. 살면서 느낀 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스스로한테 너무 힘든 일이라 미운 사람 만들지 않는 게 최고인 거 같다. 물론 라이벌 상대를 시기나 질투, 견제할 수도 있다. 특히 이 세계는 그게 심하다, 그럼에도 만나면 겉으로는 진짜 친한 척하고!(웃음)
좀 전에 아들 ‘인규’역을 제안한 건지 몰랐다고 했는데 이유는.
김 어, 그게 처음 시나리오 읽으면서 ‘인규’는 좀 예쁘게 생겼지 않았을까 했다. 아이돌? 같은 젊은 친구가 해야 할 거 같더라. 그래야 귀엽다고 느낄 수 있지 않나! 나 같은 놈이 하면 정말 때리고 싶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발달 장애를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자료가 있다면.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
김 ‘엄마와 크레이’ 등 즐거운 영상을 많이 봤다. 보다 보니 감독님이 이런 걸 보고 각본을 썼구나 싶은 부분이 있더라. 극 중에서 ‘인규’가 아무거나 다 잘 먹을 거 같은데 반찬 투정하고 옷도 마음에 드는 거로 입으려 하지 않나.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응도 그렇고, 여섯 살인 우리 아들을 많이 참고했다.
‘인규’ 콘셉트를 중간에 바꿨다고 들었다.
김 그게 처음에 ‘인규’가 장애가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겁게 접근했던 거 같다. 처음으로 촬영한 장면이 엄마가 인규를 시설에 맡겨야겠다고 결심하고 함께 시설을 방문한 장면이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조언해주신 게 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김 그 장면을 촬영하는데 “좀 정신 사납게 움직여봐! 주위 아랑곳없이 칠렐레, 팔렐레 하면서” 이러시는 거다.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시설을 찾아간 엄마와 뒤에서 해맑은 아들, 그렇게 생각하니 딱 그림이 나오더라. 그 장면을 찍고 내가 잡았던 무거운 콘셉트를 아예 바꿨다. 정말 선생님께 감사하다.
고 그 장면을 상상해 봐라. 아들을 시설에 맡기려는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나. 내가 평소 선배든 후배든 남을 터치하는 걸 싫어한다. 좋은 마음으로 조언해도 ‘너나 잘하세요’ 이 소릴 들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다행히 성균이가 내가 조언한 걸 기분 좋게 받아 들여줬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뿌듯하더라.
스스로 꼽는 가장 슬픈 부분은.
고 특히 두 가지 장면이 기억이 난다. 하나는 아들을 부탁하려고 딸의 옷가게를 찾아간 장면이다. 딸이 결혼했지만 배우자도 이상한? 놈을 만나 고생하고 또 허황되게 살지 않나. 또 하나는 중국식당에 모여 손수 짠 스웨터를 선물하는 장면이다. 손녀가 삼촌 기억 잘 한다고 하니까 ‘인규’가 누나 결혼식 날짜를 얘기한다. 그런데 자신은 참석 못 했다고.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감정 이입됐었다. 아마 실제로도 집안 행사에 안 데리고 가는 가정이 많을 것이기에 정말 눈물이 났다.
지금 그 장면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짓는 걸 보니 참 감성이 풍부하신 거 같다. 반대로 아쉬운 장면은 없었는지.
고 남겨진 아들이 혼자 살아갈 거 상상하니 너무 끔찍해서 차라리 같이 가자 이런 마음을 순간 먹지 않나. 그래서 테이프로 창문 틈을 막고 연탄을 피우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김 선생님이 그 장면에서 테이프를 쫙! 쫙! 찢어서 좀 더 야무지게 붙였어야 했는데 덜 한 거 같다고 아쉬워하셨다. (웃음)
지금까지 ‘어머니’ 역할을 정말 많이 해왔는데, 이번 ‘애순’을 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고 일단은 그가 아픈 자식을 둔 엄마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 많이 생각해 봤다. 아까도 말했듯 우리는 선택 당하는 사람이지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여배우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어머니 역할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배우가 너무 빨리 나이가 드는 거 같긴 하다. 나이가 든다고 감수성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중장년층의 멜로, 그러니까 노련하면서도 유치한 멜로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작품이 드문 게 아쉽다.
실제로는 어떤 어머니인가.
고 글쎄, 스스로를 평가하긴 힘들고, ‘엄마’라 하면 나는 일단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사회적 명예나 지위가 높은 분도 아니고 평생 농사만 지으신 분이지만 부모님과 다음 생에도 또 인연을 맺고 싶다. 언젠가 엄마의 손을 잡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엄마 해보니 너무 힘드니까 다음 생에는 내가 엄마하고, 엄마가 내 딸로 다시 연을 맺고 싶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아무 말씀 없이 손을 꽉 잡아주시더라. 그런 엄마가 그리고 외할머니가 엄마 연기의 밑거름이 된 거 같다.
외할머니 관련 추억이 많으신 거 같다.
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회사 다닐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염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켰었다. 예전 드라마 ‘춤추는 가얏고’ 작품 할 때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슷하게 연기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기억에 남는 작품 혹은 역할이 있다면.
고 나는 친정엄마 역할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는 자신이 없다. 잘 안되더라. 아주 예전 작품인데 ‘사랑의 굴레’라는 드라마에서 의부증 등 약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정신과 의사들이 상을 준다고 하기까지 했었다! 망설이다가 결국은 못 갔지만(웃음). 배우로서 이런저런 역을 섭렵해야 하는데 남을 괴롭히는 역이나 못되게 굴어야 하는 역은 내가 잘 풀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굴레’에서 안하무인 의부증 아내 역할이 참 기억에 남는다. 원래 밉고 시청자들에게 욕먹을 수 있는 역인데도 내가 하니 하나도 안 얄밉다고 작가가 날 너무 좋아했었다. 내가 너무 잘난 척인가.(웃음)
김 그런 말씀은 해도 되십니다. 하나도 안 얄미우세요. (웃음)
마지막으로 <채비>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김 사실 처음 읽고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너무 뻔한 스토리에 예상한 그대로 흘러가니 말이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보던 아내가 우는 거다. 정공법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니까, 기교가 없어도 진심으로 나가니까 알면서도 슬프다고 말하더라. 그 얘길 듣고 다시 보니 정말 그런 거다. 그래서 친한 선배한테 보여주니 자기는 돈 한 푼 안 받아도 찍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아, 내가 정말 시나리오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 정말 신기한 게 같이 봤음에도 제각각 모두 다른 곳에서 슬픔을 느끼더라. 그게 특이한 매력인 거 같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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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