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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얘기만 너무 많이 했더니 주변에서 질려 한다 <범죄도시> 윤계상
2017년 9월 28일 목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발레 교습소>(2004)로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언 13년이다. 지오디로 활동한 가수 시절이 윤계상의 ‘축복받은’ 20대를 상징한다면 배우 생활은 그의 온전한 노력으로 ‘만들어가는’ 삶일 것이다. 영화와 배우 이야기만 수없이 하는 까닭에 주변 사람들이 질려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감사’라는 말을 유독 자주 반복하는 그에게서 배우 생활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연변 사투리를 구사하는 <범죄 도시>의 강렬한 악역 ‘장첸’을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 역시, 성실하고 진중했다.

개천절, 한글날 사이에 낀 추석 덕에 <범죄도시>는 역대급으로 긴 연휴의 첫 자락에 개봉하는 특수를 누리게 됐다. 소감이 어떤가.
명절 개봉, 특수, 이런 때 영화를 개봉해보는 건 처음이다.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많이 된다. 사실 실감이 잘 안 난다. 내가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도 아니고, 흥행을 많이 해본 배우도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동석이 형의 힘을 믿고 있다.(웃음)

<아이 캔 스피크> 등 호평받은 다수의 작품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추석 연휴에 개봉하는 작품은 모두 눈여겨본 것들이다. <범죄도시>가 개봉하지 않았으면 전부 봤을 거다. 제훈이가 출연하는 <아이 캔 스피크>도 입소문이 엄청나서 너무 보고 싶다. 그런데 우리 영화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웃음)

언론시사회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자리에도 <범죄도시> 공식 티셔츠를 입고 왔다. 파이팅 넘쳐 보인다.
열심히 일한 배우를 대표해 내가 인터뷰를 하는 거니까 당연히 입어야 한다.

연변 사투리를 쓰는 무자비한 조직폭력배 ‘장첸’을 연기했다. 기존 이미와는 다른 거칠고 강렬한 배역이다.
그동안은 착한 사람, 찌질한 사람, 방황하는 청춘, 실장님 같은 역할만 많이 제안받았다. 전부터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역할을 주질 않더라.(웃음)

착하고 찌질한 역할이 워낙 잘 어울린다!(웃음)
이해는 된다. 내가 일하는 곳은 대중예술을 하는 곳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 때 적지 않은 돈을 들인다. 증명된 배우가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첸’역을 맡게 된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비스티 보이즈>(2008) 프로듀서였던 장원석 대표와의 인연이 캐스팅에 한몫했을 것 같다.
<비스티 보이즈>가 원석이 형 프로듀서 입봉작이다. 그땐 형이 이렇게 잘 될 줄 몰랐다. 지금은 제작자도 보통 제작자가 아니다.(웃음) 그 시절 윤계상을 잊지 않고 내 가능성을 봐줬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 행복하다. 형이 이번 영화를 얼만큼 어렵게 준비했는지 알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악역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석이 형, 동석이 형, <범죄 도시>에서 룸사롱 마담 역으로 출연하는 배진아 배우와 나는 모두 <비스티 보이즈> 출신이다. 네 명이 모여서 그때 멤버들이 이 자리까지 왔다며 술자리를 가진 기억이 난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도,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도 <범죄 도시>는 선택할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었겠다.
배우가 똑같은 역할을 반복하는 건 정말 별로다. 이미지가 고착된다. 오래 기다려도 변신을 할 수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역할을 맡는 게 맞다고 본다. 물론 시나리오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뻔한데 뻔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범죄 도시> 속 ‘장첸’은 어떤 인물인가.
굉장히 폭력적인 사람이다. 보고 배운 게 폭력적인 것뿐이어서 그렇게 자라버린 절대 악 같은 존재다. 믿는 건 돈뿐이다. 돈을 얻기 위해서 사람에게 상해를 가하고, 그럼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다.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을 드러내고 폭발한다. 그래야만 ‘장첸’을 잡고 싶은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욕망이 강렬해질 것 같았다.

잔혹하게 사람을 해치는 연기를 반복하는 만큼 후유증도 있었다고.
연기를 할 때는 잘 모르다가 집에 돌아가면 힘들더라. 사람이 비명을 지르고 죽어 나가는 비주얼이 잔상처럼 남아 마음이 계속 찜찜했다. ‘그건 가짜야’라고 계속 생각했다. 일상으로 돌아가서 산책하고, 운동하고, 맛있는 걸 먹으면서 떨쳐내려고 했다.


극 중에서 장발의 머리를 아주 능숙하게 묶더라.
연습을 엄청 많이 했다. 이른바 ‘똥머리’라는 건데 절대 쉽지 않다. 여자분들은 알 것이다. 집에서 연습하다가 고무줄도 두세 개 끊어먹었다. 그래도 촬영장에서는 NG를 안 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도 묶을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됐다.(하하하)

함께 연기한 마동석과 격투신을 소화했다. 아무리 연기지만 위압감이 느껴졌을 법도 한데.(웃음)
언론시사회 날 동석이 형 어릴 때 꿈이 형사였다고 하더라. 속으로 ‘지금도 늦지는 않았어요 형…’ 하는 말이 자연스럽게 올라왔다.(웃음) 지금 형사가 돼도 범죄자를 많이 잡을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 동석이 형 같은 비주얼과 연기력을 갖고 있는 배우가 있다는 게 축복이다. 드웨인 존슨의 아우라 같은 게 동석이 형에게도 있다.

앞으로는 한동안 악역이 많이 들어오겠다.
제발 다양한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다. 돈도 떨어지고 있다. 추석 선물을 돌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하하하)

그래도 2011년부터 1년에 한 작품씩 꾸준히 관객에게 선보였다. 흥행이 잘 되든, 안 되든 말이다.
나도 살아야 되지 않겠나.(웃음)

노동자의 마음이군!(웃음)
그럼 당연하지. 굶어 죽을 순 없다. 내가 CF를 많이 찍는 배우도 아니지 않나.

방송에도 잘 안 나오는 편이다. 영화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출연하지 않는 건가.
방송 출연에 적합한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오디로 활동할 땐 내가 쾌활하고 유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조용하게 지내다 보니 정말 조용한 사람이 됐다. 이제는 스스로가 재미없다.(웃음) 방송에서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자꾸 눈치가 보인다. 그저 집에서 오타쿠처럼 지내는 게 행복하다.

어떤 방면의 오타쿠인가.
음… 일단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아니면 남들은 잘 모르는 취미로 나무를 가꾸거나, 키우는 강아지 ‘감사’와 ‘해요’를 예쁘게 미용해주는 게 좋다. 왜 이렇게 정적인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애정과 열정이 더욱 커진 느낌이다.
내 친구들은 내가 연기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다 피한다.(웃음) <범죄 도시>를 찍으면 그 얘기밖에 안 한다. 어떤 작품에서 본 배우가 좋으면 또 그 배우 얘기만 한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전혀 관심 없는 얘기를 계속하니까 질리는 것 같다. 나더러 술이나 마시고 빨리 집에 가라고 한다.(웃음)

데뷔작은 13년 전 개봉한 변영주 감독의 <발레 교습소>(2004)다.
그때 영화배우로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지 다 배웠다고 할 수 있다. 나 하나를 배우로 만들어보겠다고 얼마나 애를 쓰셨는지… 나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변영주 감독님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흥행을 떠나서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변영주 감독 이후에도 윤계상의 멘토가 된 여러 감독이 있을 것이다. <죽여주는 여자>(2016)를 연출한 이재용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죽여주는 여자>는 소외 계층에 대한 영화가 대중에게 선보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조그만 역할이었지만, 이재용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을 알고 싶기도 했다. 너무나 훌륭한 감독님이셨다. 그 작품 덕에 윤여정 선생님도 뵙고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에도 갔다. 마치 국가대표가 된 느낌이더라.(웃음) 앞으로도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깊게 각인됐다.

앞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나홍진 감독님. 그런데 주변에서 다 말리시더라.(웃음) 모든 감독은 자기 작품에 절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좋으면 된다고 본다. 나홍진 감독님의 모든 작품을 다 봤다. 그의 영화를 보면 땀이 비 오듯이 난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배우 입장에서는 다음 단계를 위한 도전이 가능하거나, 관객에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 아닐까. 그저 재미만 주고 끝나는 작품은 아니길 바란다.

예컨대 <소수 의견>(2013) 같은 작품이겠다. 주제와 메시지 때문인지 개봉이 한참 지연됐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시대적 분위기가 만드는 상황이 따로 있다. 그래도 좋은 영화라는 점이 증명됐지 않나.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좋은 영화의 가치는 언젠가 증명된다고 믿는다. 내 꿈은, 내가 좋은 배우가 돼서 내가 출연한 작품을 사람들이 회자하는 거다. 내 필모그래피에 있는 모든 작품을 다 사랑하기 때문에 꼭 그런 순간이 오기를 염원하고 있다.

주변 사람에게 추천해줄 만한 좋은 영화가 있다면.
<범죄 도시>. 한 글자라도 더 나가야 한다.(웃음) <영웅 본색>(1986)도 좋다. 초등학교 땐지 중학교 땐지 그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다 끝난 후에도 자리를 못 떠나고 앉아있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싶었다. 주제가를 다 외우고 다닐 정도였다.

마지막 질문이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사람이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마음 중 하나가 감사함인 것 같다. 강아지 이름을 ‘감사’와 ‘해요’로 지은 것도 그래서다. 억울한 일이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었는데 (무탈할 수 있어서) 눈뜰 때마다 감사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 감사하는 마음 덕분에 우연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나에게는 행복이다.



2017년 9월 28일 목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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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메가박스플러스엠, 키위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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