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극중 1인 2역을 맡았다. 어떤 차별점을 두려고 노력했는지.
촬영을 들어가기 전부터 다방면으로 연구를 했다. 고민 끝에 제일 먼저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인물의 ‘태도’였다. 특히 카지노 대표인 강인한 성향의 ‘장태영’을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까다로웠다. 카리스마가 필요했고 화면 속에 등장할 때마다 전체를 장악하는 힘을 보여줘야 했다. 또 명령하는 어투로 말투를 다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반면 투자자 ‘장태영’은 화면에 비칠 때마다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전달하도록 표현했다. 표면적으로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여야 했으니 당연히 말투도 달리 했다. 말끝을 늘리는 식으로 말이다.
둘 중 누구에게 더 애착이 가나.
개인적으로 투자자 ‘장태영’에게 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극중 카지노 대표 ‘장태영’을 투자자 ‘장태영’이 항상 관찰하고 따라 하지 않나. 그런 면모가 (연기자인) 나와 비슷한 것 같더라.
투자자 ‘장태영’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 친구가 카지노 대표 ‘장태영’을 따라 하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하게 그를 쫓아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같은 색깔의 옷을 입어도 미묘하게 톤이 다르다. 혹은 질감이 다를 때도 있다. 투자자 ‘장태영’도 ‘송유화’(설리)를 좋아하지만 끝내 그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완벽하지 못한 점들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가면의 매력을 느꼈다. 가려진 만큼 연기를 과감하게 펼칠 수 있더라. 실제로 연기를 한 뒤 모니터를 해보면 가면을 쓰지 않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상반된 캐릭터를 구축해야 했기에 주변 조언도 많이 들었겠다.
평소에 캐릭터를 분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가장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혼자서만 생각했던 것들을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하고 상의를 거친 뒤 완성을 시키는 과정 그 자체가 즐겁다. 촬영을 할 땐 미세하게 표정 같은 걸 수정하고 촬영을 다 마치고 난 뒤에는 후시 녹음으로 오디오를 입히는 과정에서 목소리 톤을 조정했는데 그렇게 하나하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재미 때문에 바로 연기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 평소 캐릭터를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고르겠다.
그런 편이다. 물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겠지만. 평소 연기해보고 싶었던 캐릭터인 경우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편이다. 이번 <리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의 숫자가 많다는 점에서 다소 고민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잘 완성시킬 수 있었다.
캐릭터가 워낙 개성이 넘치고 또 다양한 면모를 보여줘서, 혹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해 본적 없었나.
그런 종류의 부담감은 어떤 작품에서든 느낀다. 연기란 게 어찌됐건 시나리오 속 캐릭터를 현실세계로 재생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연기하는 나조차도 100% 확신을 갖고 표현하기 어렵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성향을 끄집어 내는 게 아닌 이상, 언제나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함께 으쌰으쌰했던 스태프 분들 덕분에 그나마 부담감을 떨쳐내고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촬영장에서 언제나 그들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팍팍 느껴졌다. 스태프들 나이대도 (타 촬영장에 비해) 낮은 편이라서 막내 스태프들에겐 ‘형’ 소리를 들으면서 작업했고 말이다.(웃음) 이런 소소한 부분 덕택에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나도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바뀌었다. 전보다 훨씬 더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다.
변하게 된 이유는.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처럼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변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사소한 경험이나 남들이 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체험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현실에서 하지 못하면 작품 속에서 경험하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점점 보편적으로 지녀야 할 감정들마저 무뎌지게 되더라. 이런 삶이 계속 쌓이고 쌓이다가,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뒤틀리고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게 됐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별 것 아닌 일을 커다란 고민처럼 여기는 일들이 반복됐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니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었는데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됐다. 마음 속으로 ‘나’ 자신을 위한 행복을 찾자고 결심을 세웠는데 그러다 보니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30대가 되니 달라진 게 많던가.(웃음)
주변 환경은 달라진 게 없다. 변한 게 있다면 마음가짐 정도다. 단지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을 뿐이고 말이다.(웃음)
배우 인생에서 30대란?
이제 막 30대가 됐는데, 배우로서 보여야 하는 태도나 추구하는 방향성이 전보다는 안정된 것 같다. 물론 나에게 있어 30대의 배우활동은 본격적으로 군대를 전역한 이후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제대한 뒤의 활동이 기대된다.(웃음)
카지노 대표 ‘장태영’과 투자자 ‘장태영’의 모체가 되는 존재가 바로 르포작가 ‘장태영’이다. 어떻게 보면 1인 3역인 것인데, 솔직히 모체가 되는 ‘장태영’을 표현하는 게 가장 수월하더라. 르포작가 ‘장태영’은 관심이 가는 취재거리가 생기면 목숨을 걸 정도로 매달리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다소 나약하다. 어딘가 부족했던 르포작가 ‘장태영’이 되길 바랐던 사람이 바로 모든 것을 다 가진 카지노 대표 ‘장태영’인 것이고. 그러다 보니 카지노 대표 ‘장태영’을 연기할 땐 누구나 되고 싶어하는 워너비 캐릭터라고 상상하면서 차근차근 빚어냈다.
카지노 대표 ‘장태영’을 연기할 때 특히 주력한 부분은?
에너지가 넘치고 스스로에 대한 애착이 넘치는 인물이다. 우주가 ‘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서 연기에 임했다. 그런데 그런 인물 앞에 다른 자아가 불쑥 나타났다면 어떨지 생각해봐라, 당연히 거슬려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극중 또 다른 자아를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 그래서 언제나 껌이나 고기를 씹는 행동으로 주체 할 수 없는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아, 뿐만 아니라 카지노 대표 ‘장태영’에 대한 전사도 적극 활용했었다. 영화 맨 첫 신에서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지 않나. 원래는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카지노 대표 ‘장태영’이 실제로 겪은 일이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래야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겠더라. <리얼>이 ‘믿음’에 관한 이야기인데, 연기하는 나조차도 캐릭터의 거짓된 과거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연기해야 해서 개인적으론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
지금 대답하는 것도 그렇고, 연기할 때보면 발음과 발성이 유난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특출 났나.
그렇지 않다. 학창시절 때 선생님이 일어나서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버벅거리곤 했다. 고등학생 때 연기학원에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자꾸 깨려고 노력했었다. 또 연기할 때는 아무래도 긴장감을 갖고 대사를 뱉으니까 발음이나 발성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친한 지인들이나 가족과 있을 땐 성의 없이 이야기하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그렇다.(웃음)
연기 학원을 다닐 때, 이처럼 대성한 본인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뭐… 워너비였지 않았을까.(웃음) 영화 속 카지노 대표 ‘장태성’처럼!
평소 연기 연습은 어떤 식으로 하는가.
우선 대사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매일 대사를 입에 달고 살 정도다. 또 캐릭터 역시 내 모습인 것처럼 평소에 체화시켜 놓는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1인 다역을 맡았기 때문에 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난 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안 앞서 연기한 캐릭터는 내면 어딘가에 저장해놔야 하는 과정이 필요해서 조금 어려웠다. 물론 이런 점들 때문에 <리얼>에 출연하게 된 거지만 말이다.(웃음)
원래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의 모습에서 바로 빠져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작품도 그러겠거니 생각했다. 막상 촬영을 마치고 나니 여운이 오래 가더라.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장태영’이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캐릭터의 모습을 털어내고자 작년 가을쯤 일본 북해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중도 하차 하긴 했지만 산도 타고 그랬다. 케이블카도 타봤는데 워낙 즉흥적으로 간 여행이라서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웃음) 그곳에 있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기차도 원 없이 타봤는데… 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으니 그걸로 된 거겠지.(웃음)
확실히 이번 작품이 당신에겐 각별한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이상하게 이번 캐릭터를 연기할 땐 초반에는 에너지를 아끼고 싶었다. 자기 애착이 흘러 넘쳤다고나 할까. 그래서 에너지가 후반부에 치중된 걸 영화에서 볼 수 있다. 이전에 참여한 다른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약 조절에 신경 쓰면서 연기에 임했다면, 이번에는 초, 중반에 에너지를 아낀 나머지 후반부에 쏟아 부었던 거다.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나서도 힘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남은 힘을 볼링에 쏟아 부은 건가.(웃음)
하하하. 볼링은 정말 매력적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운동 아닌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단련해주는 스포츠다. 그래서 연기하는 데도 도움된다. ‘나’ 자신을 하나의 레인에 집중시켜야 하는 몰입력이 연기를 할 때도 캐릭터에 잘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당연히 스트라이크다. 연속으로 스트라이크를 치게 되면 더 좋고 말이다! 다섯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친 적도 있는데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웃음)
이제 인터뷰를 끝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리얼>은 당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지.
결과에 상관없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 사랑할 작품이다. 길지 않은 배우 인생, 그간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모조리 이 영화에 털어냈다. 가슴을 깨끗이 비운 느낌이다. 그만큼 원 없이 쏟아냈다. 그래서 인지 촬영을 끝마치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관객에게 선보이기 전인데도 말이다. 거기에다 1인 다역이라는 도전 아닌 도전을 이번 작품을 통해 하면서 많은 공부가 됐다. 어쩌면 덕분에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남은 시간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오히려 제대 이후를 더 기대하고 있다. 많은 기대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리얼> 촬영을 끝냈을 때다. 그리고 시사회를 통해 관객 분들에게 영화를 선보이게 됐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이처럼 스스로도 기쁜 마음으로 잘 마무리한 작품이니, 부디 많은 관객 분들이 와서 즐길 수 있길 바란다.
2017년 7월 6일 목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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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코브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