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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잃은 아버지 역할, 행복한 것도 미안하다 <루시드 드림> 고수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인터뷰 말미, 어떤 배우에게나 공통으로 묻는 말이 있다.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대개 배우들은 이 질문 앞에서 가장 오래 고민한다. 그럼에도, 고수같은 대답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도 좀 미안하다” 그는 <루시드 드림>에서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를 연기했다. 행복을 묻는 말에, 자신의 역할이 대변하고 있는 어떤 이들의 심정이 먼저 떠올랐을까? 결과물이 마음에 들 든 그렇지 않든, 영화를 본 관객은 아마 인정하게 될 것 같다. 그가 진심을 다해 자기 역할에 임했다는 것만큼은.

*이 인터뷰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루시드 드림> 시사회 때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강)혜정양이 얘기를 해버려서, 졸지에 울보가 돼버렸다.(웃음)

어떤 점이 그렇게 슬프던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내가 벌이는 어떤 행위가 있지 않나.(웃음) 스포일러라서 말 할 수는 없지만, 그 부분을 보면서 진짜 울컥했다. 실제로 아이를 둘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서 더 몰입이 잘 된 것 같다. 주인공 ‘대호’의 간절한 심정을 전달받았다.

<루시드 드림>은 아이를 찾으려는 아버지 ‘대호’가 자신과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 단서를 찾아내고,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판타지물이다.
시나리오를 볼 때 참 궁금했다. 내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디스맨’(박유천) 캐릭터가 새빨간 석양 아래 놓인 바다를 걸어가는 장면 같은 것들이 대체 어떻게 표현될지 말이다. 최종본에서는 시나리오상의 장면이 다소 편집된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판타지들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 기대됐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비주얼을 보여주는 판타지 영화가 많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 출연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했을 텐데.
참 이상한 게, 어떤 작품을 시작하려고 할 때는 왠지 다 잘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웃음) 그런데 영화를 다 찍고 시사회까지 마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솔직히 좀 여러 생각이 든다.(하하하) 아마 감독님도 나랑 같은 생각 아닐까?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이다. 같은 한국영화 안에서도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결말이 행복하게 마무리된다는 점도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해피엔딩을 좋아하나 보다.
<루시드 드림>의 주제는 희망과 믿음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부모의 희망과 믿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는 그 간절한 마음이 암울했던 현실을 바꾸어 버린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저 꿈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낸다. 그런 결말에서 희열을 느꼈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꿈속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과정이 논리적으로 잘 설득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다.
배우 입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다. 내 경우에는 아이를 잃어버린 그 시점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놓쳤던 미묘한 단서를 하나씩 찾아내고, 범인을 잡아내는 과정에 집중했다. 최대한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마도 <루시드 드림> 자체가 그런 간절한 마음을 반영한 판타지물이다 보니, 당신이 지적한 것처럼 (논리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더 정확한 건 감독님한테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다.(웃음)

이번 영화에서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더라. 그걸 보고 ‘이번 연기, 믿고 봐도 되겠군’ 싶은 생각이 들었다.(웃음)
상당히 짧게 지나가는 씬이었지만 배가 불룩 나온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대호’는 대기업 비리를 고발하는 기자이지만, 그 이전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버지이자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중년의 남자다. 그런 사람들에게 연상되는 평균적인 모습이 있지 않나. 그게 내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고 말이다.(하하하) 물론 아이를 잃어버리고 난 후 영화 내에서는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크게 감량한 상태로 촬영했다.
영화에서는 그 3년을 전혀 묘사하지 않는다. 주인공 ‘대호’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음…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마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잃어버린 ‘대호’의 간절함을 다 알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남의 일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상상을 해보자면, 아내도 없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가 상상하는 그 모든 일을 다 했을 거다. 처음에는 식음을 전폐했을 테고, 많은 시간 울었을 것이고, 아이를 찾겠다며 전단도 많이 돌렸을 거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을 것 같다. 그러다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스쳐 지나갔을 조그만 기사에서 ‘루시드 드림’(자각몽)이라는 걸 알아내면서 영화 내용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루시드 드림>의 내용은 우리 사회가 경험한 어떤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럴 것이다. 영화를 만든 3개월 동안 감독님은 물론 출연 배우들과 스탭들 역시 어느 정도 그 사건을 떠올리며 작업에 임했다. 어떤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다만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은 각자의 상황에서 감정 상태에 따라 영화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모든 평가를 존중한다.

마치 드라마일 것 같은 내용이지만, 정작 장르는 오락영화라는 점도 분명히 해야할 것 같다.(웃음)
그래서 연기 수위 조절을 잘하려고 했다. 오락영화의 특징은 상황이 탁탁 제시되면서 이야기가 가볍게 진행되는 점이라고 본다. ‘대호’는 아이를 잃은 아버지이지만, 오락영화라는 큰 장르 안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대한 구구절절하지 않고 담백해 보이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걸 잘 해내는 게 내 몫이었던 것 같다.

설경구와 처음 만난 걸로 안다. 호흡은 어땠는지.
<오아시스>(1999) <박하사탕>(2002)으로 너무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 선배 아닌가. 이번에도 역시나 캐릭터에 임하는 자세나 열정이 대단했다. 배운 게 정말 많다. 그런데 설경구 선배가 맡은 ‘방석’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반전을 선사할 거라는 거, 당신은 미리 알았나?
몰랐다.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웃음) 설경구 선배는 또 어떻게 그렇게 느물느물하게 사람 속이는 연기를 잘하는지 모른다.(웃음) 그러면서도 그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 역할이니까 그런 반전 행동을 하는 게 이해도 되고, 또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더라.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방석’의 그런 반전 행동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삼겹살집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서 기꺼이 ‘대호’를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배신감을 좀 느낀 모양이다.(웃음)
진짜! 감정 소모가 컸다.(웃음) 배신당했다는 걸 알고는 속이 다 울렁거렸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더라.

배역에 상당히 몰입한 모양이다.
나는 매번 배역에 쑥 빨려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액션 장면도 상당히 열정적으로 소화한 것 같다. 저수지에 빠지거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뻔한 아찔한 장면이 상당수다.
저수지에 빠지는 장면 같은 경우는 내가 실제로 물에 들어간 거다. 차 먼저 저수지에 넣어놓고, 내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서 자동차 문 열고 들어갔다.(웃음) 사실은 영화에 나온 것보다 물 속에 더 깊이 잠겨서 (코 위치에 손을 올리며) 이만큼 정도 되는 위치에서 어푸어푸했는데 그 장면은 편집됐더라.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뻔한 장면도 실제다. 지금 생각해보니 제작비 탓이었나?(웃음) 그 장면들을 촬영할 때 상당히 위험했던 기억이 난다. 아찔했다.
안전장치를 잘 갖추고 촬영했으리라고 믿겠다.(웃음)
안전장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일전에 <초능력자>(2010)라는 영화를 찍을 때 내가 목을 매는 장면 있었다. 양수리에 있는 세트장이었고 때마침 카메라가 나를 정면에서 찍고 있었다. 손을 결박 하고, 내 목은 동아줄에 걸어두고, 의자 위에 서서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는 상황이었는데 촬영 스탭들이 나에게 와이어(안전장치)를 하자고 그러더라. 이상하게 그 때는 그러기 싫더라. 결국 와이어 없이 의자에 올라가서 리허설 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갔는데 어? 어? 하다가 정말로 목을 맨 상태로 의자에서 뚝 떨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순간 피가 머리로 쭈우욱 몰리면서 시야가 새까맣게 바뀌더라. 마치 암전 상태처럼 말이다. 주변에서 “야야 빨리 119 불러 119!”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깨어나기는 했는데 그때 눈썹 있는 쪽에 상처가 크게 났다. (휴대폰에서 당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그러면서 1주일 정도 촬영이 중단됐다. 정말 엄청나게 미안하더라.

자기 자신에게도 미안해해야 할 것 같다. 와이어 없이 목 매는 장면을 소화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혹사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와이어가 필요할 때는 최대한 착용하려고 노력한다. 배우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안전에 점점 둔감해지는 것 같다. 드라마 <그린로즈>(2005)를 촬영할 때에도 인천공항으로 가는 다리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괜찮겠지’ 싶어서 와이어 없이 난간 위에 올라갔었다. 아마 그때도 주변에 연출부가 대기하고 있지 않았으면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자꾸 안전문제를 그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게 된다. 드라마는 워낙 빨리 찍다 보니 시간에 쫓기고, 그 시간 안에 그 장면을 못 찍으면 다음 장면을 못 찍고, 그러면 다음 날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그런 상황을 걱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나면 더 큰 촬영 공백기가 생긴다.
맞다. 위험한 건 좋지 않다.(웃음) 사고가 나면 모두에게 더 큰 민폐를 끼치는 거다. 그래서 요즘은 현장에서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에 촬영한 작품들을 보면 <상의원>(2014) <덕혜옹주>(2016) 드라마 <옥중화>같은 사극이많았다. 현대극으로 관객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라는 느낌도 든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도 <남한산성>이라는 시대극이다.(웃음) 사실 촬영 순서대로 보면 <루시드 드림>이 제일 빨랐다. 개봉이 늦춰져서 그렇게 보이는 거다. 현대극도 많이 하고 싶고, 또 많은 캐릭터를 경험해보고 싶다. 지난 가을에는 옷깃 세우고 바람 맞으면서 지금의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웃음)

가을하면 멜로나 드라마 장르가 떠오른다.
멜로, 물론 좋다. 진~한 멜로?(웃음) 아니면 가벼운 멜로도 좋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너무나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멜로라인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때가 언제일까.(웃음)
지금보다 더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배우로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를 가까운 곳에 두고 배우 생활을 하기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려고 하는 편이다.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또 그러고 싶다는 뜻인 것 같다.
나와 같이 박카스 CF를 찍고, 시트콤을 함께하고, 드라마를 촬영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다들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낳은 부모의 입장이 됐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 또래들에게 큰 힘을 받을 때도 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그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관객에게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시간이 흐르고, 주름이 조금씩 생기고 깊어지면서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과거와 지금을 공유하면서 말이다.

인터뷰가 다 끝나가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생각은 깊고, 말은 느리다.(웃음)
말은 점점 더 느려지고 있는 것 같다.(웃음)

<루시드 드림>이 당신에게, 또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
<루시드 드림>은 나의 진심을 다해 임한 작품이다. 관객에게도 그 진심이 느껴졌으면 좋겠다. 또 앞으로도 한국 영화계에 더 재미있는 판타지, SF물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많이 봐주시길 부탁드린다.(웃음)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행복한 것도 죄송하다. 그렇지만 항상,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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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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