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스크린에서 당신의 얼굴을 이렇게까지 많이 보여주는 건 <조작된 도시>가 거의 처음이다.
거의가 아니고 그냥 진짜로 처음이다.(웃음)
첫 주연 영화라 애착이 크겠다.
사실 홍보를 더 하라면 더 할 수도 있었다.(웃음) 영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협조하려고 한다.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웃음) 그래서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서 노래도 불렀다. 물론 가수도 아닌 사람이 나가서 영화 홍보나 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가요 한 곡 부르고 왔다.(웃음)
한 평범한 사람이 누명을 쓰게 되자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 나가는 범죄 액션 영화다. 영화 초반부에 게임 형식을 차용한 전투 장면이 임팩트 있게 삽입되고, 주인공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그 장면이 겹쳐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게임 영화’라는 설명도 붙는 것 같더라.
실제로도 영화 전반에서 롤플레잉 액션 게임이 연상된다. 흔치 않은 설정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처음에는 나도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잘 구현되지 않더라. 어쩌면 좀 만화 같기도 한 설정인데 이런 지점이 어떻게 영화로 그려질지 걱정됐다. 그래서 고민도 많았고 부담도 컸다. 게다가 영화 작업 경험도 적고 주연은 처음인 상황이니까. 내가 맡게 될 ‘권유’라는 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중심 인물인데 불안이 커지니 이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되더라. 박광현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광현 감독도 <웰컴투 동막골>(2005) 이후 12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라 나름대로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만나서 대화해보니 어떻던가.
확실히 믿을만한 감독님이라는 것,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든 느낌이다. 다소 만화처럼 느껴지는 <조작된 도시> 시나리오에 관한 생각은 물론 자신의 영화관에 대해서도 많은 말을 전해줬기 때문인 것 같다. 감독님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더라.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가 나왔구나 싶기도 하고.(웃음)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 첫 주연 작품을 즐겁게 촬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낯설게 느껴졌던 시나리오도 새롭고 재미있는 작업 과정의 밑바탕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됐다.(웃음)
아무래도 액션만큼은 그동안 제법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다.(웃음) 그런데도 불구하고 준비할 게 상당히 많았다. 일단 액션스쿨에서 체력적으로 지칠 만큼 훈련했다. 화살 쏘고, 총 쏘고, 와이어 타고, 운전까지 작품에서 선보여야 할 액션의 종류 자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웃음) 정말 위험한 고난도의 장면은 액션 팀 대역의 도움도 받았다.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연기한 경우도 있지만 수십 년 간 액션 연기만 전문적으로 해온 분들에 비해 내 실력이 나을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지 조금 나은 지점이 있다면 캐릭터 특성에 어울리는 몸짓이나 감정을 담아 표현해야 하는 부분들 정도라고 생각했다.
외적 측면에서는 크게 준비할 게 없었을 것 같다. 늘 액션에 최적화된 몸 상태로 보인다.(웃음)
음. 전-혀 아니다.(웃음) 내가 먹는 걸 너무 좋아하고 쉴 때는 관리를 잘 안 한다. 식욕도 많고 또 엄청난 대식가다. 그래서 평소에는 살이 많이 쪄 있는 편이다. 작품에 들어갈 때가 되면 꼭 다이어트를 하고 몸을 만든다. 평균적으로 5~6kg은 감량한다.
의외다. 그간 드라마에서 워낙 여자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매혹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서 타고난 미모와 체력을 유지하는 쪽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과 나 스스로와는 차이가 좀 있다.(하하하) 오히려 <조작된 도시>의 평범한 청년 ‘권유’가 나와 좀 더 가깝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말이다. 특히 이번에는 분장도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내가 진짜 그런 억울한 상황에 처하면 얼만큼 억울하고 또 괴로울까 하는 감정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감정을 연기로 잘 구현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지점들 말이다. 그 점에서는 내 어머니 역할을 연기하신 김호정 선배 덕을 봤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뵈었는데 직접적으로 날 보듬어주는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정말 엄마처럼 느껴져 몰입이 너무 잘 됐다. 상당히 따뜻한 느낌이시더라.
경차가 참 나이스하게 나온다.(웃음) 나도 그렇게까지 대단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경차 카체이싱 장면은 사실 스턴트맨이 대신 소화해준 거다. 내 경우에는 블루스크린 앞에서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웃음) 표정이나 대사 연기를 했다. 그런데 상상으로 하는 연기 역시 진짜 액션만큼이나 쉽지가 않더라. ‘우회전!’하는 소리가 들리면 차 안에서 다른 배우들과 다 같이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부딪힌다!’하는 소리가 들리면 소리를 지르는 식이다.(웃음) 나중에 CG처리 될 화면과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상상에 의존하면서 연기하다 보니 과장된 연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됐다.(웃음)
언젠가 액션 연기에 공들이는 이유를 ‘입금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 한 적도 있다.(웃음)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정말로 열심히 찍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진짜 맞다. 돈 안 받았으면 그렇게까지 열심히는 안 했을 거다.(웃음) 연기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나에겐 그게 일이고 직업이니까. 물론 딱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연기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다른 배우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현장을 즐기는 것도 좋다. 또 자존심 문제도 있다. 내 이름이 걸린 작품인데 설렁설렁 연기해서 엉망으로 나오면 창피하다. 그러고 싶진 않다. 결과가 잘 나와야 내가 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기니까.
어떤 연기를 엉망이라고 생각하나.
음. 일단 연기를 잘하고 못 하고의 차이를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잘 하는게 뭐고 못 하는 게 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말이다. 그보다는 내가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의 문제와 관련된 표현이다. 이 연기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말이다. “에이, 입금됐으니 대강 찍고 끝내자” 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나에겐 그게 바로 엉망이다. 그렇게 일하고 나면 결과물도 당연히 내 마음에 안 든다. 관객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배우의 마음가짐에 따라 분명 결과물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 대충 찍은 건 확실히 대충 나온다.(웃음)
그럼. 나도 사람이니까 간혹 현실과 타협한다.(웃음) 드라마를 찍을 때 몇 번 그런 적이 있다. 긴 촬영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너무 지친 나머지 빨리빨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냥 걸어서 지나가는 정도의 간단한 씬 같은 경우는 대충 연기해도 티 안 나지 않을까? 싶어서 정말 대강 걸어가는데 그러면 나중에 모니터할 때 꼭 티가 난다. 내가 봐도 대충 연기하고 있더라.(웃음) 어떨 때는 내 자신도 건성으로 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서 얼른 다시 한번 찍자고 말하기도 하지만… 100씬 중에 100씬 전부를 다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있다는 건 안다. 당연히 그런 태도가 녹아 든 한 씬 한 씬이 쌓여 전체적인 완성도를 좌우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국내와 중국의 수많은 팬도 ‘열일’의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시사회 당일 당신의 팬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극장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더라.(웃음)
물론이다. 개중에는 내가 엉망으로 연기 해도 좋아해주는 분도 있겠지만 내가 연기하는 모습이 좋아 팬이 된 분들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런 분들에게 창피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간 뮤지컬 <그날들> <쓰릴미> 등으로 다양한 끼를 보여줬는데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주로 액션 위주로 연기했다.
사실 ‘난 액션이 너무 하고 싶어’ 라는 마음으로 고른 작품은 드라마 <무사 백동수> 정도다. 그 외 작품들은 액션이라서 골랐다기보다는 내 배역이 작품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나, 혹은 그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등 여러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무의식중에 여러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유독 액션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드라마 <THE K2> 제작 발표회 때 농담처럼 이게 내 마지막 액션 작품이라고 말했었다.(웃음)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 작품은 진짜로, 정말로 액션은 안 하는 걸로.(웃음)
다양한 얼굴은 이미 있고, 아직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웃음)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작품이 맞춰서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 그 시점에 주어진 작품 안에서 나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다 보면 앞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웃음)
가끔 대중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너무 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배우에게 자꾸 새로운 걸 보여달라고 하는데 사람이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을 가지지 않은 이상 매번 어떻게 새로운 걸 보여주겠나.(웃음) 사람이 가진 얼굴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웃음) 맡는 역할에 따라 분위기가 좀 달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이 끝도 아니고 난 이제 (겨우) 서른이다. 멜로, 로맨틱 코미디, 그냥 코미디, 공포까지 하고 싶은 장르는 당연히 너무나 많지만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지금 지창욱 하면 ‘액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도록 대중에게 이미지화 돼있다면 나중에 액션 요소가 전혀 없는 멜로를 소화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런 것도 내게는 기대되는 부분이다.
자기 페이스를 잘 지켜나가는 스타일인가보다.
사실 귀가 얇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남의 말에 과도하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더 신경 쓴다. 그간 배우로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연기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왜 그런 식으로 해?’ 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정말 입이 10개가 있으면 10개에서 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라.(웃음) 그걸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정작 나만의 스타일이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색깔이 없어져 감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다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을 만족하게 해줘야 할까? 결론은, 그럴 수는 없다는 거다. 대중 하나하나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길을 걷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다만 그런 내 행보를 믿고, 좋아해 주는 분들에게 고마운 것이다.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누군가 욕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웃음) 그건 나와 안 맞는 거다.
나는 늘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 언제까지나 맑고 순수하게 살고 싶고 나이 들어도 철 안 들었으면 좋겠고.(웃음)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만약 평범한 회사원이 됐다면 너무 딱딱한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우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충동적인 삶을 연기할 수 있지 않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 활동이 나 스스로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물론 감정 소모가 굉장히 심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연기라는 활동 자체가 나의 내면적 욕구를 상당히 채워주는 것 같다.
배우 되길 참 잘했다.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은 일 자체가 너무나 잘한 일이다. 당시에는 주변의 반대가 굉장히 컸다. 어머니와도 많이 싸웠다. 담임선생님하고도 싸웠다. 물론 그때 어머니가 굉장히 속 썩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 한 선택이다. 그렇게 싸우지 않았으면 배우가 안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효자다. 진짜 효자다.(웃음) 그 이후로도 쭉 같이 살고 있으니 싸우는 일도 있긴 하지만,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가슴 아픈 얘기지만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어머니는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가끔 내 눈치를 본다. 많이 약해진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잘해야지. 나 하나 키우겠다고 고생 굉장히 많이 하셨다. 이제 내가 어느 정도 잘 컸으니 보상은 받아야 하지 않을까.(웃음)
요즘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쉬는 날 친구들과 커피 마시면서 시답지 않은 농담하면서 시간 보내는 것! 요즘 한증막도 자주 가는데 거기에서 땀 빼는 것도 좋다. 그럴 때가 가장 여유로우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2017년 2월 10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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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