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해당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인 보모 ‘한매’ 캐릭터를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던 게 드라마 ‘프로듀사’ 끝나고나서 였다. 너무나 순식간에 다 읽어 내려가게 되더라. 대개 어떤 시나리오를 읽으면 속으로 이 씬은 없는게 나을 것 같다든가 하면서 나름대로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런데 <미씽: 사라진 여자> 시나리오는 그런 지점이 없었다. 단숨에 읽었다. 그러고 나서는 ‘한매’가 너무나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 마음이 안 좋더라. 동시에 이 역할을 너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흥분도 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 교통사고로 십자인대가 부러진 상황이어서 팔꿈치에 못 비슷한 걸 박아둔 상황이었고, 그걸 제거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미스터리물이다 보니 혹시라도 전력질주를 하거나 엎어지거나 해야 할 까봐 우려했는데 다행히 그런 씬은 없더라. 바로 회사와 역할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어떤 점 때문에 그 역할에 끌리게 된 건가.
감독님도 애초에 나한테 그 역할을 제안한 게 아니라 그냥 시나리오를 준 거다. 그런데 내가 ‘한매’를 하겠다고 하니 주인공은 따로 있는데 왜 그 캐릭터가 좋냐고 하더라.(웃음) 일단 ‘한매’는 사각지대에 놓인 여자다. 자기 아이가 죽어 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119에 전화를 하는데 한국말을 제대로 못 해서 도움도 요청하지 못한다. 너무 가난해서 응급차가 온다고 해도 바로 진입할 수 없는 위치에 살기도 하고. 얼마나 많이 자책했을까 싶더라. 만약 내가 진짜 엄마였다면 그 느낌을 더 잘 알았겠지만, 아무튼 여운이 많이 남는 역할이었다. 다행히 영화를 보신 분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느끼는 것 같더라.
아무래도 중국어를 해야 하는데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연습을 아무리 해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구사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회사에서는 조선족으로 바꿔서 연기해보면 어떻겠냐고도 제안했다. 그런데 특유의 ‘그랫슴다?’하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건 내가 이해한 ‘한매’ 캐릭터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또 그간 한국 영화에서 조선족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기도 했고. 난 중국인을 해보겠어!(웃음)라고 결심 한 다음, 중국어 대사를 그냥 달달 외웠다. 그렇게 촬영 현장에서 처음 중국어 대사를 뱉었을 때는 마치 방귀 트듯이 ‘중국말 텄다!’ 그러고(웃음). 그런데 한국말을 일부러 어눌한 척 하는 것도 정말 어려웠다. 사실 그건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설프게 혀를 굴리면 개그 프로에서 하는 연기처럼 돼 버리더라. 결국 그것도 중국인 선생님이 하는 어눌한 한국말을 그대로 듣고 따라했다. 그러면 또 ‘한국말 텄어!’라고 말 하면서 좋아하고.(웃음)
‘한매’는 혼인이주여성이기도 하다. 캐릭터 해석에 여러모로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을 듯하다.
일단 ‘한매’라는 캐릭터를 처음 봤을 때 <집으로 가는 길>(1999) 시절 장쯔이 이미지가 떠올랐다. 중국에서도 도시 말고 변방, 시골에 사는 여자는 왠지 그런 느낌일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 다만 ‘한매’는 빛이 반짝반짝 나는, 긍정적이고 순수한 여자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쪽 사람들도 한국에 시집가는 게 무슨 왕자님 만나러 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알지 않을까? 또 소문이라는 것도 있는데, 결혼 후에도 행복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한국에 와서는 난생 처음 보는 시어머니에게 폭행 당하기까지 한다. 살 맞대고 사는 남편은 좀 모자란 사람이라 의지가 안 되고. 그런 지경에 처한 여자라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생각해가면서 연기했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강제로 머리를 잘리는 장면에서도 너무나 두려워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순수한 모습보다는,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받아 들이는 체념한 모습을 연기 한 거다.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 꽤 섬세하다.
아무래도 여성 감독님과 일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남녀배우 통틀어 여성 감독과 일해본 횟수는 내가 최다일 거다.(웃음) 임순례, 이경미, 부지영 감독님 하고도 작품 했었고 곧 개봉하는 <싱글라이더>도 이주영 감독님 영화다. 그리고 앞으로도 <화차>(2012)의 변영주 감독, 또 <특종: 량첸살인기>(2015)의 노덕 감독을 비롯해서 아직 같이 못 해본 감독님들 하고도 한 번씩 다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여성 감독을 말하다’라는 책을 써보려고.(웃음) 아무래도 여성배우로서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이 있을 수밖에 없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이건 나 말고 다른 여성 배우들도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일단 배우는 한 작품 안에서 상대와 계급장 없이 경쟁하는 직업이다. 일반적인 직업은 팀장, 부장, 대리 같은 계급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우리 일은 그런 게 없다. 물론 선후배 개념은 있지만 그것도 갈수록 모호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연기 실력으로 승부해야 되기 때문이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연기 능력을 직시하면서 일을 해 나가니까 경쟁심이 생긴다. 그런데, 어떨 때는 내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하고, 씬을 두 배나 많이 소화해도 남성 배우에 대한 칭찬만 나오는 경우가 있다. 특히 드라마를 하면 그런 걸 많이 느낀다. 드라마가 대박이 나도 뜨는 건 다 남성 배우인 것 같기도 하고.(웃음) 댓글만 봐도 반응을 알 수 있으니까. 그럴 땐 ‘뭐 억울하면 남자로 태어났어야지’생각하기도 하는데.(웃음) 어쨌든 그래서 더 여성 감독이 만드는 여성 이야기에 참여해 고군분투 하게 되는 것 같다.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중심의 이야기도 분명 재미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지. 성별 때문에 경쟁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강한거고. 중견 나이대로 접어든 여성 배우로서 ‘그런 현상 저는 몰라요’할 때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각에 비춰봤을 때 <미씽: 사라진여자>는 당신에게 잘 맞는 영화였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빠져들었다. 그런데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촬영장에 계신 촬영감독, 조명감독님 등 남성 스탭들과 의견 차이가 있기도 했다. 감독님이나 지원 언니, 그리고 내 입장에서 ‘지선’이나 ‘한매’는 온 초점이 자기 애한테 가 있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광기에 사로잡힌 한 여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남성 스탭들 입장에서는 완전히 모성을 가진 엄마로만 바라보더라. 물론 일상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엄마라는 존재를 두고 이렇게까지 갑론을박 하지는 않지만, 하나의 작품을 찍어내고 또 인물을 상세하게 표현해내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꽤 중요한 이슈였다.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큰 의견차이가 있었나.
남성 스탭들은 ‘한매’가 ‘현익’과 같이 보내는 시간 중에 너무 즐거워 보이는 건 싫다고 하더라. 곧 아픈 아이를 보러 병원에 가야 할 시간이 돼서 방을 나서야 하는 엄마가 낯선 남자와 웃음기 있는 얼굴로 같이 있는 장면 자체가 너무 싫고, 그게 ‘한매’ 캐릭터를 다 깎아 먹는다는 거다.(웃음) 근데 내 입장에서 그건 되게 단순히 이해될 수 있는 감정이거든. ‘한매’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여자다. ‘현익’을 진심으로 좋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국에서는 나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주는 유일한 사람이고, 모르는 단어가 뭔지 물어보면 친절하게 ‘그건 이런 뜻이야’ 하고 설명해주고, 뭔가를 도와달라고 사주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니까. 인간 관계 자체가 너무 부족한 ‘한매’가 그런 남자 앞에서 웃음기 있는 표정을 지을 수도 있지! 또 아무리 애가 아프다고 사람이 어떻게 슬픔이라는 한 가지 마음으로 한 달, 두 달, 여섯 달을 내내 살 수가 있겠나. 그 와중에도 밥 먹을 때 이것 참 맛있네, 하면서 좋아할 수도 있는 거고 지나가다가 예쁜 꽃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표현 할 수도 있는 거지. 근데 대체 그걸 이해 못 하더라.(웃음)
엄마가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여성이라는 틀 안에 있는 거라고 설명을 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도 자꾸 ‘한매가 그러고 있으면 안돼’라고 말 하니까, 아니 도대체 감독님이 생각하는 여잔 뭐고, 엄만 뭔데?(웃음) 그랬었다. 영화에 좀 여러 가지 감정을 담자, 응?(웃음) 근데 어떻게 보면, 남성 스탭들 입장에서는 ‘한매’를 보호해 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나쁘게 보일 것 같다는 거였겠지. 나도 그렇게까지 의견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그래서 감독님하고 엄지원 언니, 나 셋이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된다’고 하면서 똘똘 뭉쳐서 촬영했다.(웃음)
남성 스탭들이 원하는 모습을 요구하는 게 어떻게 보호해준다는 의미가 되나.(웃음)
그래서 더 생각해봤는데, 그들 입장에서 ‘한매’는 엄마라기보다 자기 부인 입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자기가 갓난쟁이때 엄마가 자기를 어떻게 키워줬는지 기억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한매’ 나이대의 여자는 엄마 보다는 내 부인, 내 아이를 키워낸 엄마로 보일 것 같더라. 그렇게 보니 다른 남자와 교감하는 장면이 싫은 마음도 이해는 됐다.
그런 점 때문에 남성 관객의 공감대를 사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보나.
그런 고민이 있기는 했다. 지금도 고민한다. 그런데, 그렇게 보인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기본적으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남녀간의 생각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 같다.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니까. 다만 영화의 골격 자체가 아이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 스릴러적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그런 장르에 흥미 있는 남성 관객층을 공략할 수는 있다고 본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줄곧 그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중이다. 영화 쪽은 특히나 남성 배우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작품이 많이 나온다. 배우의 성별을 따져보면 그 숫자는 비슷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여성 배우를 원탑으로 내놓은 영화의 예산이 더 적고, 이야기 자체도 소소한 것들이 많다. 반면 블록버스터 영화는 주로 남성 중심의 히어로물이 많고 말이다. 그런 히어로물에서는 분명 원톱을 해도 모자른 너무나 좋은 여성 배우들이 그저 남성 배우들의 안위를 지켜주는 의사나 박사같은, 특정 역할로만 머물고 있다. 그런 상황이 누적되다 보니 왜 똑같이 일하는데 남녀간의 출연료가 이렇게 다르냐는 이야기를 울부짖게 되는 거고. 근데, 이렇게나 전 세계적으로 영화 업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과연 바뀔까?
바뀌기 어렵다고 보나?
꼭 그렇다기 보다는, 일단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데이트를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전통적인 코스 아닌가.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데이트라 함은, 아무래도 남성이 여성의 취향을 존중해줘 가면서 그녀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과정 같다. 외국 영화에서도 보면 남자가 꽃다발 들고 여자 집 앞에 찾아가서 그녀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하지않나.(웃음) 물론 그건 남성 입장에서는 평생 나에게 밥을 해주기 위한 여자를 고르기 위한 정성일 거라고 생각 하는데, 아무튼 영화라는 콘텐츠가 갖고 있는 그런 상징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같이 영화를 보러 가서도 여성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고르게 될 테고, 여성 입장에서는 본능적으로 멋진 이성이 출연하는 영화를 고르고 싶지 않겠나.(웃음)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서 좋아하는 건 되게 원초적인 감정이니까.
여성과 남성은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는듯 하다.
(끄덕끄덕) 대화 하는 내용만 봐도 그렇다. 여자들은 전화로 맨날 수다를 떨지만, 남자들은 그런 거 보면서 ‘휴 끝도 없네’라고 할 거다. 그들이 보기에는 축구, 야구, 정치 이야기를 뺀 사사로운 여성들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은 거다.
맞다! 진짜다. 난 그 두개를 공유한다. 내가 생각하는 여성과 남성의 포지션이 정확히 있다. 엄마와 아빠만 보더라도, 아빠가 엄마와 나를 보호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무슨 내가 공주라서가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힘이 강하고 나보다 더 잘 판단할 수 있으니까. 근데 일 할 때는 전혀 그렇게 생각 하질 않는다.(웃음) 인간으로서의 나, 배우로서의 내가 정말 다르다.
정 반대의 모습이 공존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인데, 중3때 호주 유학을 경험하면서 후천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려는 심리가 생긴 것 같다. 그때만해도 유학생 중에는 여자애들보단 남자애들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나는 한 살 어린 내 남동생과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항상 남자애들 무리 사이에 껴서 놀았지. 그게 무슨 소위 인기녀여서 그랬던 게 아니고, 주변에 같이 어울릴 만한 애들이 남자애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였다. 사춘기 시절에 환경이 그런 식으로 바뀌고, 거기에 적응하느라 내게 다소 도전적인 면모가 생긴 것 같다. 그 애들이 쓰는 말을 같이 쓰고, 걔들 중에 누군가랑 싸워도 절대 안 질 것 같은 여자가 됐다.(웃음) 그래서 데뷔 초반에는 다소 거친 이미지에 욕도 잘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여자애들 틈에서 인형놀이 하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여성성이 많은 아이였다. 여전히 내면에는 그런 측면이 남아있고. 지금도 주변 배우 친구들은 나더러 상당히 여성스럽다고 그런다.(웃음) 그런 과정 때문에 정 반대의 모습을 함께 갖게 된 것 같다. 한 개인일 때는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반면, 일 할 때는 페미니스트인 거다.
두 가지 성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작품을 고르는 경우도 많겠다.
물론이다. 그래서 더 고민스럽다. 완벽하게 여성주의적 성향만 발달한 여자면 모든 거에 다 불만을 가지고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선택하면 되는 건데(웃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남성 관객의 마음도 충분히 고려하게 되고, 그들의 심정도 어떤 건지를 알겠다. 그래서 동성친구만큼 이성친구도 많은 것 같다. 다만, 그런 점 때문에 배우로서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게 된 거라고 생각 할 때도 있다. 물론 굉장히 모순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안다. (젠더 문제와 관련된) 아주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전개되면서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는 나 스스로의 생각도 점점 더 복잡해질 것 같다. 아, 이 문제는 언젠가 다른 주제로 다시 이야기 해야겠다. 거의 지금 인터뷰가 ‘여성을 말하다’처럼 되고 있다.(웃음)
가장 중요한 건 시나리오를 받는 그 순간 그 이야기가 얼마나 나한테 흥미롭게 느껴지느냐 일 거다. 그런데 유독 당기는 캐릭터가 있다. 와, 이런 연기를 하면 내 기분이 어떨까? 싶을 만큼 흥분되는 씬도 있고. <미씽: 사라진여자>는 거의 대부분의 씬이 그랬다.
앞으로 선택하게 될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나는 무슨 역할이든 독특한 지점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 해보고 싶다.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도 두 남자한테 같이 살자고 말하는 양다리 로맨스를 선보였으니까.(웃음) 그런데 막상 파격적인 설정이 들어간 작품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더라. 일을 하면 할수록 대중의 질타가 무섭다.
‘공블리’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인데.
물론 그거야 엄청 영광스러운 말이지. 할머니가 돼도 ‘공블리’였으면 좋겠을 정도니까.(웃음) 누구든지 예쁘기만 하면 붙여지는 ‘여신’같은 것도 아니고, 그건 어떤 배우에게도 없는 별명이라는 걸 잘 안다. 물론 제일 처음 들었을 때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무슨 소리야! 내가 다 민망하다!’ 라고 소리쳤지만.(웃음) 그런데 반대로 악플도 많다. 그런 걸 보면 너무나 굴욕적이다. ‘맨날 똑같은 저 연기, 우는 것도 똑같아!’ 이런 댓글도 기억 나고. 이번 ‘질투의 화신’에서도 한지민씨가 잠깐 출연했는데 때마침 나는 찌질한 분장을 하고 나오는 장면이었거든. 그 때는 또 ‘한지민 나오니까 이제 좀 볼 만 하더라’는 내용도 있더라. 아니 하필이면 왜 그렇게 미녀가 나와가지고.(웃음) 괜히 감독님한테 가서 ‘그거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찍어줬어요?’ 그랬다.(웃음)
익명의 특권 속에서 막말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행복한 때가 있다면.
거진 6개월을 집에서 못 쉬었다. 드라마 한다고 봄, 여름, 가을로 넘어가는 그 예쁜 시절을 하나도 못 보고 매일같이 세트장에 갇혀 있거나 차 안에서 참에 취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그냥 가만히, 아무랑도 말 하지 않고 있고 싶다. 그게 제일 행복할 것 같다. 어떤 토론도 할 필요 없고 어떤 의견도 나눌 일 없는 무(無)의 지경! 이해가 가려는지 모르겠네. 내가 원래 잘 횡설수설 한다.(웃음)
2016년 12월 2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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