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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놀다보니 거기가 영화팀이었다 <범죄의 여왕> 이요섭 감독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동료이자 아내인 전고운 감독을 따라 간 자리에서 ‘광화문 시네마’ 사람들을 만났다. 소속 감독 우문기는 이미 <족구왕>(2014)을 내놓은 뒤였다. 집과 사무실이 가까워 일주일에 세네 번씩 놀러 다니다 보니 은근슬쩍 광화문 시네마 멤버가 돼 있었다. 다같이 꼼장어를 먹던 자리에서 다음 작품을 맡았다. <범죄의 여왕>의 태동이다. 그의 창작활동은 상상만큼 거국적이지 않다. 재밌게 놀다 보니, 거기가 영화팀이었다.


*이 인터뷰에는 <범죄의 여왕>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범죄의 여왕>으로 장편 데뷔했다. 축하한다.
기분이 좋다. 안그래도 어제가 VIP시사였다. 그간 영화를 제대로 볼 겨를이 없던 스탭들까지 다같이 관람할 수 있는 자리였다. 지영 선배 측근들도 다 찾아왔다. 그리고 쫑파티 한다고 오늘 새벽 5시까지 술 드시더라.(웃음) 난 오늘 인터뷰 스케줄 때문에 많이 먹진 않았지만 배우들이 집에 갈 때까진 자릴 지켰다.

고시생과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영화 주인공으로 삼았다.
사실 처음에는 고시생이 필수 소재는 아니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어떤 시험을 봐야만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취준생정도로 생각했다. 그들이 준비하는 시험이 되게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고른 건, 그들의 상황에서 어떤 아이러니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1차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해서 법조인이 되려는 거겠지만, 명목상으론 분명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갖고자 하는 직업 아닌가. 그런데 그들이 시험을 앞두고 바로 옆에서 살인사건이 나면, 시험 보는 걸 포기하고라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개입할 수 있는지 궁금하더라. 내 생각엔 그동안 시험에 공 들인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절대 그렇게 못할 것 같았다.

당연한 마음 아닐까.
당연하겠지. 근데 그게 바로 직업적 아이러니 아닐까?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않은 뒤에 그 사람이 판사가 되면, 어떤 인간일지에 따라서 좀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그 기억이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포인트를 살려서 이야기를 구성했다. 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신선한 느낌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90년대 드라마 보면 사법고시 준비생은 항상 추리닝만 입고 나와 늙수그레한 느낌을 주다가, 시험 붙으면 뒷바라지 해주던 여자친구를 차버리기나 하고, 그런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웃음)

극중 살인을 저지르는 ‘하준’은 완전히 상상의 인물인가.
아니다. 여러 인물이 투영됐다. 내 주변만 해도 영화 하겠다고 10년 정도 시나리오만 쓰면서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병이 생겨도 계약하기 전 까진 치료 못 한다고 미룰 정도다. 그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반영됐다. 하준은 살인범이지만 그 전에 유부남이기도 하다. 나도 결혼을 했으니 분명 내 모습도 들어있을 거다.(웃음) 솔직히 말하면 영화 찍는 유부남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돼 있다. 가장인데 돈을 못 벌면, 자격지심이 든다. 옆에서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그렇다. 미안한 마음이 화로 표현되기도 하고. 하준을 연기 한 정도형한테도 “형, 결혼하면 알 수 있어. 다 억울하고, 막 화가 나. 다 때려치우고 싶어. 근데 그런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냐. 되게 미안해”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해하더라. 형이 유부남은 아니지만 배우로서 무명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그런 심정을 잘 반영했던 것 같다.

허정도가 그 역할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정도형 얼굴이 너무 좋다. 단편 영화 <껌>에 출연한 걸 봤는데, 고딩한테 삥을 뜯기는 어른 역할이었다. 근데 삥을 어떻게 뜯기냐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난 너희에게 지지 않았어, 다만 그냥 주는 거야. 니가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야. 이런 식이다.(웃음) 자기 기세를 죽이지 않으려고 할 때 더 찌질해 보이는 모습을 아주 잘 살렸다.(웃음)

아내와의 관계가 비춰질 땐 마음이 참 무겁더라.
아마 하준이 아내를 원망하는 장면일 거다. “왜, 검사 마누라 검사 마누라 하더니 이제는 못 기다리겠냐?” 라는 말을 한다. 내가 쓴 대사인데 그걸 전고운 감독이 각색 하면서, 아 참, 전고운 감독은 내 와이프기도 한데 아무튼. 보고 나서 “너 나한테 이런 말 하고 싶었냐?”라고 묻더라.(으하하) 사실 내 가슴에 와닿는 장면이었다.

왜 와닿았던 건가.
아내 역할을 맡아준 장하란 선배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내 아내가 떠올라서 그랬다. 그 심정을 상상하게 됐다. 지금 그녀는 하준을 바라보며 왜 저런 자세로 서있을까, 왜 저런 표정일까, 마구마구 눌러 놓았던 용수철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처럼 왜 갑자기 화가 터져 나올까. 이런 것들 말이다.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남편이 오히려 자기보다 더 약한 인간인 것처럼 고시원 방에서 쭈그리고 누워만 있으면. 아마 아내는 그동안 가방에 이혼 서류를 늘 들고 다녔을 것 같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도 여러 번 질렀을 것 같고, 그러다가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맘도 몇 번 먹었을 거다. 그러다가도 사랑보다는 더 큰, 의리 같은 게 남아있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겠지. 여러 번 ‘그 날’처럼 먹을 것만 주고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죄다 20대 아니면 30대다. 청춘들이 너무 무기력하게 그려졌다.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야기 안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그렇게 됐다.(흐흐) 사실 나랑 비슷한 군상들이기도 하다. 시험이란 경계 안에 묶여있는 존재들은 눈치를 많이 본다. 내 주변 친구들만 봐도 그렇고. 무언가를 즐긴다고 할 만한 것도 상당히 소소하다. 하루 종일 독서실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고, 노트북으로 영화 한 편 보는 게 낙인 친구들도 많다. 심지어 영화는 생각도 하기 싫다고 그냥 티비 프로그램 아무거나 틀어 놓는 친구도 있다. 내 경우는 홈쇼핑을 틀어 놓는다.(웃음) 왜냐면 홈쇼핑은 감정이 일관되니까. 모든 게 다 적극적이고, 웃고 있고, 긍정적인 분위기다. 등을 돌리고 있어도 웃음소리가 계속 나고. 영화 채널을 틀어놓고 자면 중간에 공포영화 같은 게 나와서 자다가 막 악몽을 꾸더라.(웃음)
박지영 배우가 상당히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고 나온다. 영화의 주된 배경인 고시원은 너무 남루하고 망가져 있어서 대조적이더라.
영화 하는 사람들끼리 흔히 하는 말로는 ‘불씨’(웃음)라고 한다. 이야기에 활력 하나가 탁 들어오는 그런 기능을 하는 걸 말한다. 이 여자가 오면서 고시원의 분위기가 바뀌게 되니까. 그 공간의 컬러 컨셉과는 정반대되는 쪽으로 의상을 정했다. 특히 의상 실장님께는 지영 선배를 스페인 여자처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귀향>에 나오는 페넬로페 크루즈 처럼.(웃음) 나는 스페인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이 너무 좋다. 한국의 엄마나 여자는 늘 뭔가를 가리고 있다. 감정적으로 강해 보이는 여자도 꼭 뭔가를 하나씩 억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스페인 여자는 감정을 정말 솔직히 표현한다. 슬프면 눈물 뚝뚝 흘리고, 강할 땐 주먹으로 때리고 싸우기도 한다. 문화권 차이일 수 있는데, 어쨌든 그런 감정 표현이 너무 좋았다. 거기에 맞춰서 원색적인 색감을 더하면 좋겠다 싶었다. 고시원은 주로 블루나 그린 계열로, 지영 선배가 입는 옷은 레드 계열로 맞췄다.


‘미경’(박지영)을 그렇게 솔직하고 망설임이 없이 행동하는 캐릭터로 설정한 이유는 뭔가.
사실 내 습관 중 하나가(웃음) 주인공을 능동적으로 설정하는 거다. 그러면 시나리오 쓰기가 엄청 편해진다!(웃음) 능동적인 캐릭터는 자기가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소극적인 인물한테는 앞에다가 과자 부스러기를 계속 떨어트려야 따라오는데, 미경은 과자 부스러기를 막 밟고 지나올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잡았더니 시나리오 쓰기 정말 편하더라.(흐흐) 또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좀 사람 사는 곳처럼 느껴지게 만들려면, 미경이 우리가 생각하는 능동성을 뛰어넘을 정도로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표현 돼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시원은 옆 방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어쩌다 마주쳐도 눈인사도 없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공간이니까. 그곳과 완전히 상극인 성격을 집어넣고 싶었다.

박지영 배우가 아니면 소화하기 어렵겠단 생각도 들더라.
지영 선배가 재미있었던 건 이런 거다. 우리(광화문 씨네마)를 처음 만났을 때, “너희 하고싶은 대로 하고 싶어서 광화문 시네마라는 제작사 만들었다며? 그럼 우리가 다 도와야 돼. 서로 얻어가면서 만들어야 돼” 라고 말이다. 어제도 VIP시사 끝나고 쫑파티에서 술 마시면서 먼저 “너 나한테 고맙지?”라고 하더라. (으하하) 그래서 고맙다고 대답했더니 “나도 고마워”라고 하고.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속내를 먼저 까서 보여주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상대가 이만큼 자기를 표현해주면 그에 맞춰서 따라가게 된다. 그게 아마 지영 선배가 가진 힘일 거고, 미경 역할에도 그런 점이 녹아들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배우가 그렇게 나와주면 소통은 정말 편했겠다.
진짜 그랬다. 먼저 와서 어떻게 할까? 물어주니까. 그런 사람과 같이 영화를 찍는다는게 너무 신나더라. 세트장에 스탭들과 다같이 모여있다가 문이 벌컥! 열리면서 쫑알쫑알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지영 선배가 들어 오는 소리다. 그러면 아, 이제 오늘 촬영 시작이구나, 했다.

세트는 직접 다 만든 건가.
복도, 방, 관리사무소, 합격탕을 만드는 창고까지는 다 만들었다. 외부에서 조명되는 건물 모습만 실제 아파트다. 그런데 영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공간으로 비춰지다보니 주민들이 아파트 이름이 알려지는 걸 걱정하고 싫어하셨다. 그래서 공개를 자제하고 있다.

복도에 깔린 타일 모양만 봐도 그렇고, 세트를 만들 때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미술감독님과 그 건물의 역사에 대해 많이 상상했었다. 이 건물이 가장 처음 지어졌을 때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아마 가족들이 살지 않았을까, 그렇게 가정해봤다. 적어도 지금 고시원 방의 두 개 정도는 합친 공간이었을 거라고. 그러다가 모텔로 용도가 변경 된 거다. 그래서 ‘익수’(김대현) 방에는 꽃무늬 벽지를 발라 놨다.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든 건물이 됐지만 여전히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상상을 하다 보니 방마다 구조들은 다 똑같으면서도 방 내부의 느낌을 바꿀 수가 있더라. 덕분에 그 사람의 캐릭터를 잘 보여줄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진숙’의 방이 가장 독보적이겠다. 거긴 생긴게 완전 PC방 아닌가.(웃음)
그래서 촬영 할 때마다 그 방에서 과자를 빼먹었다.(웃음) ‘진숙’역을 맡은 이솜씨는 키도 크고 예쁘장하니까. 그런 이미지와 연동해서, 그렇다면 그런 진숙의 꿈은 뭐였을까? 아버지 그늘 아래서 벗어나기 위해 뭘 하고 싶었을까? 이런 생각을 계속 생각해봤다. 그러고 보니 스튜어디스가 어울리겠더라. 하지만 시험은 한 번도 보지 않은.(웃음) 막연한 꿈은 있고 실행은 안 해보는 상태 말이다. 그러면서 집에서 계속 인터넷 쇼핑만 하니까 아버지가 화가 나서 소리친 거다. 그럴 거면 나가서 공부나 해라! 하고. 그래서 그 고시원에 들어왔는데 아마 등장 인물들 중에서는 용돈도 가장 넉넉하게 받을 거다. 그래서 자기만의 요새를 건설 한 거지.(웃음)
‘개태’(조복래) 나 ‘덕구’(백수장)도 그렇고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들이 많이 나오는데, 영화 속에서 밸런스가 잘 맞아 떨어졌다.
그건 그냥 다행히도.(으하하) 처음 <범죄의 여왕>을 만들 때 어쨌든 스릴러라는 장르를 선택했으니 기본적으로 수사원과 조사원, 이렇게 두 캐릭터를 설정했다. 그럼 나머지는 셋트로 맞춰진다. 예를 들면 미경은 셜록, 개태는 왓슨, 진숙은 목격자, 덕구는 정보원! 특히 덕구 캐릭터는 <브릭>이라는 영화에서 참고했다. 거기에 보면 정보원 역할을 하는 배우가 항상 도서관 한 구석에서 큐브를 맞추고 있다. 누가 와서 뭘 물어보면 “어디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봐” 라고 말한다.(웃음) 진숙은 시퀀스 안에서 볼 때 목격자이기도 하지만 살인의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살인의 추억>에 나오는 언덕녀를 상상해가며 만들었다.

‘덕구’는 사실 정보원이라기엔 좀 바보 같더라.(웃음)
덕구 캐릭터가 좀 모자라다.(웃음)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이건 진숙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 인물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좀 흐트러트릴 필요가 있었다. 오로지 미경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서다. 덕구나 진숙이 하는 얘기는 가만 들어보면 그렇게 신뢰가 가는 얘기도 아니고 반대로 그렇게 틀린 얘기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믿으면 믿는 거고, 안 믿어도 그만인 얘기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결국 미경이 그 말을 믿었다는 거고, 모두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아무도 미경을 배신하지 않았다. 그럼 덕구와 진숙은 어땠을까. 모자라보이는 자신들의 얘기를 믿어줬을 땐 미경에게 더 잘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런 그림을 생각했다.

결국 그들을 과감하게 믿어버린 것도 미경이라는 캐릭터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잘 믿어야, 잘 움직이니까.(웃음) 능동적인 주인공들은 자기가 나서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범죄의 여왕>이라는 이야기의 결을 보면 그런 캐릭터가 어울린다. 수동적인 느낌의 캐릭터는 어떤 세상을 그저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주니까.

박지영 배우 말로는 당신이 ‘개태’랑 연인 느낌이 나도록 연기해달라고 강력 주문 했다더라.
역주문인 것 같은데!?(으하하) 인물 간 성적 긴장도가 유지 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미경은 시나리오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딱 봐도 혼자 아들을 키우는 사람 같다. 법적으로도 싱글일 수도 있고. 그러면 개태와 만나도 상관 없고, 또 그게 젊은 남자여도 상관 없고, 마침 돌쇠처럼 잘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고, 속은 도저히 모르겠지만 단순한 것 같고!(웃음) 그러면 충분히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하준의 방에 두 사람이 잠입했을 때 둘이 착 붙어있는 장면에서, 미경이 개태 가슴에 손을 떼고 있다가 다시 대면서 움찔 놀란다. 정말 아줌마라면 개태를 그냥 마구 다뤄도 되는데, 이런 조심성을 보이는 건 엄연히 남자로 보고 있다는 거고. 안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한다. 마지막에 미경과 개태가 미용실에서 함께 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럼 둘이 어떻게 된 거냐고. 지영 선배는 “뭐 분위기만 맞는다면 두 번 정도는 잤을 수도 있다”고 대답하더라. 그럼 나는 “그쵸? 역시 그렇죠?”라고 말하고.(웃음)

영화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기분도 좋을 것 같다.
아아, 잘 모르겠다. 왔다 갔다 한다. 왜냐하면, 좋은 말 네 번 들으면 나쁜 말도 한 번 들으니까. 그럴 땐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또 눈에 밟힌다. 댓글도 정말 열심히 본다. 지구 끝까지 쫓아갈 기세로 클릭한다.(웃음) 이 평론가가 주로 어떤 영화를 평가했는지 찾아보고, 아 원래 평점이 짠 사람이었어! 하면서 안심한다. 아니면 또 반대로 어떤 영화를 좋다고 했지? 찾아보면서 나랑 취향이 굉장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스스로 위로 받고.(웃음) 근데 취향까지 비슷한데 왜 내 영화만? 이렇게 되면 자괴감이 든다.(웃음)

그동안 상당히 많은 영화를 봤을 것 같다.
왓챠를 하면서 내가 본 영화에 별점을 매겨봤다. 정말 양심적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보다가 끊은 건 안 치고. 대체 몇 편 정도 봤을까? 나도 궁금했는데 어느정도 채워 나가다 보니 내가 본 영화들 중에서는 더 이상 데이터가 없더라. 그게 1,900개였다. 근데도 내 친구들 중에는 1등이 아니다. 한 3등 정도? 1등은 우리 사무실에 김지훈 피디다. 무려 2,400개다. 형 이렇게 많이 봤어?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웃음)

영화 개봉 하면 대중에게 이름이 좀 알려질 테니 왓챠 팔로워도 늘어나겠다.
아아.(절레절레) 왓챠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모아서 컬렉션을 만드는 기능이 있더라. 난 그게 타인에게 공공연하게 오픈 되는 건지 모르고 ‘아 내 영화 저장해놔야지’ 하는 마음으로 저장해놨는데 알고 보니 다 공개되는 거더라. 이게 뭐야! 하고 바로 지웠다. 이런 기능은 대체 왜 해놓은 거야. 난 개인 서재인 줄 알았다가 깜짝 놀라가지고.(웃음)

타인에게 자기가 공개되는 걸 별로 즐기는 편은 아닌가보다.
난 남이 써놓은 것들을 보는 게 좋다. 관음증 환자처럼.(웃음) 사실 타인과는 거리가 좀 유지돼 있는 편이 더 낫고. 그게 훨씬 보기에 좋다.(웃음) 내 성격상 웹상에서 아는 사람에게는 어느정도 이상은 다가갈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광화문 시네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일종의 창작 연대인가.
대외적으론 그런 것 같다.(웃음) 근데 내부적으론 조기축구회 같은 분위기다. 때 되면 만나서 놀고 헤어지고 하는. 총 7명인데 3명만 만나서 놀고, 어떤 때는 두 명만 만나고. 이런 걸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집단인 것 같은데.(웃음)

당신은 좀 나중에 들어가게 된 걸로 안다. <족구왕> 연출을 도운 게 계기였나.
그런 개념이라기 보단, 다 같이 노는 데 껴 있다가 그렇게 된 거다.(웃음) 물론 전고운 감독이 다리를 이어 주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들이야! 이러면서.(웃음) 원래 광화문 시네마 사람들이 다 나랑 동기이긴 한데, 안 친했다. 그러다가 와이프랑 같이 살게 되니까 집이랑 사무실도 바로 옆이 되고. 일주일에 세 네 번씩 모여서 술 마시고 놀게 된 거다. 사실 광화문 시네마에서는 우리 둘이 부부라고 별로 안 좋아 한다.(웃음) 감독 개인으로 볼 때가 서로 제일 편하고 좋으니까.

은근슬쩍 멤버가 됐다고 봐야겠다.
그렇다. 그렇게 거국적이지 않다. 그냥 잘 노는 형들 있다 그래서 따라가보니 거기가 영화 팀이고 그런 거다.(으하하)

논다는 게 참 중요한 거다.
맞다. 우리도 진짜 열심히 논다. 내 경우는 1년을 놓고 보면 알바 하는 게 한 2개월 정도다. 아, 그 기간 동안 한다는 게 아니라 총 시간을 착 밀착시켜 놓으면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까진 그냥 거의 논다.(웃음) 와이프한테도, 나 글 쓰러 카페 가~ 하고 나가서 계속 커피 리필 해먹고, 해 지고 안 더운 것 같으면 집에 들어간다.(웃음)

어떤 알바를 했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 광고물을 만드는 거다. 요즘 옷 가게 가면 브랜드마다 모니터가 하나씩 있고 거기에 패션 영상물이 나오지 않나. 그걸 거의 4-5년정도 만들었다.

하고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생활비를 뒷받침 했던 건가.
정확히 그거다. 인생이 진짜 힘들다 싶을 때쯤엔 만화 학원에 들어가서 입시반 애들을 가르쳤다. 주변에 애니메이션 과 다니다가 졸업 후에 학원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사실 그럴 땐 자괴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아이들한테 희망을 주면서 해야 하는 일인데 정작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래도 살아야 돼서, 별의 별 일을 다 했다고 생각되는 시절도 있다. 내 인생에 제일 황당한 알바 경험은 우담바라를 찍으러 강남의 모 주차장에 간 일이다.(웃음) 친구 어머니가 그 주차장에 우담바라가 피어 있으니 꼭 좀 찍어달라는 거다. 그게 무슨 곤충의 알이었는데 우담바라와 모양이 비슷하니까.(웃음) 행운의 상징이라면서 가족들이 다 모여서 사진 찍어달라기에 접사로 찍어드렸다. 그러곤 10만원 받고, 그 집에서 운영하는 주꾸미 집 상품권도 받고.(으흐흐)

그러다가 어떻게 <범죄의 여왕>을 찍게 된 건가.
사무실 사람들이랑 꼼장어집에서 밥을 먹다가 누가 다음 작품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와이프한테 해보겠냐고 물었는데 자긴 아직 글 쓸 때가 아니라고 하더라. 그 다음에 나한테 제안이 들어와서 해보겠다고 했다. 사실 그러고 나서도 <족구왕> 다 찍을 때까지 글 한자 안 쓰고 있었다. 때 마침 <족구왕>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돼서 갔는데 영화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그때 너무 놀라서, 우 씨!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하고 알았지.(웃음) 다들 쫑파티 한다고 술 먹고 노는데 난 그 자리에 도저히 못 가겠더라. 카페로 가서 글 쓴답시고 계속 앉아 있었던 게 생각난다.(웃음)

다음 작품은 아내인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로 알고 있다.
광화문 시네마 다음 작품이다. 그게 잘 풀려야 된다. <범죄의 여왕>보다 훨씬 드라마적인 성향이 짙다. 또 워낙 시나리오 완성도가 높게 나와서 내부에서도 다들 너무 좋다고 하더라. 본인이 고치고자 하는 방향대로만 손보면 될 것 같다고. 아마 여태까지 광화문 시네마에서 나온 작품들과는 결이 좀 다른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한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아마 좀 걸릴 거다. 일단 겨울을 배경으로 찍고 싶어 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소공녀>가 나오면 그땐 전고운 감독을 인터뷰 해야겠다.
오! 그러면 아마 엄청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다. 그 친구, 웃느라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웃음)

요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이것도 되게 찌질한 거긴 한데. 요즘 <범죄의 여왕> 시사회를 한다. 나는 요즘에도 알바를 하느라 밤새 영상을 수정하곤 하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다. 그리고 시사회가 끝나는 시점이 보통 밤 10시경이다. 그때부터 두 세시간 정도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가가 올라온다. 그걸 하나하나 읽어보는 재미가 되게 쏠쏠하다.(헤헤헤)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나.
뭐였더라. 엄마랑 싸운 사람이 있던데? 엄마가 시골에서 자길 보러 왔는데 이상하게 밥 차려놓은 걸 보니 막 짜증이 났다고 하더라. 그래서 엄마 두고 혼자 극장에 갔다가 <범죄의 여왕>을 보고 돌아왔는데 밥이 그대로 있더라고. 미안했다고 쓴 표현을 봤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게 되게 좋더라.

2016년 8월 29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 제공_ 콘텐츠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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