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꽃 기자]
4년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트릭>을 선택했다.
영화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트릭>은 방송국이라는 좁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연봉을 올리고 싶고, 남보다 빨리 승진하고 싶고,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큰 회사로 이직하고 싶어하지 않나. 그런 때에 성과도 잘 내고 돈도 잘 버는 이석민 PD같은 사람이 있는 집단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다면, 과감하게 ‘싫습니다’하고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시나리오에 마음이 갔다.
연민이라고는 전혀 못 느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사실 인간 이정진이 보기에 이석진 PD 캐릭터는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만약 그가 연민을 갖고 있었다면 내가 연기했던 <원더풀 라디오>(2011)의 이재혁 PD와 비슷한 분위기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리마인드를 했다. 내 가치관이 개입되는 순간 감독이 원한 캐릭터보다 착하게 그려질 것 같았다.
어떤 점을 중점에 두고 연기한 건가.
상대방의 마음을 긁어놓을 수 있는 대사가 뭘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가 찾아낸 방법이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투로 연기하는 거다. 극중에서 굉장히 친절하게 디렉션을 주는 PD처럼 보이면서도, ‘거, 이렇게 좀 안되나?’ 같은 식으로 은근슬쩍 반말을 하고. 태훈이 형은 연기인 걸 알면서도 정말 짜증났다고 하더라.(웃음)
노력만큼 잘 표현된 것 같나.
관객 반응이 중요하다. 다 보고 나서 그저 단순히 나쁜놈이라고만 평가 받으면 그건 실패라고 생각한다. 나쁘다는 것 외에도 짜증난다, 한대 확 때리고 싶다(웃음) 등 많은 표현들이 있을 것이다. 관객들에게 입체감 있는 악역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극중 ‘병상일지’ 시청률이 너무 고비 없이 쑥쑥 오르더라.
미니시리즈였으면 천천히 올렸을 텐데 영화다보니.(웃음) 시청률이라는게 올라갈 때는 장애물 없이 쭉쭉 올라가는 경향이 있지 않나. 마찬가지로 떨어질 때도 가차없이 떨어지고.
배우로서 이석진 PD처럼 시청률에 미치게 되는 순간이 있었나.
미친다기보다,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 영화라면 관객수, 드라마라면 시청률이다. 늘 잘 될 수는 없어도 제작진이 기대하는 최소한의 수치가 있으니 출연진인 나는 최대한 그에 근접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다음 작품을 해야 하니까. 그 수치가 너무 바닥을 기면 몇 년 만에 복귀해서 ‘오랜만에 뵙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된다.(웃음)
이창열 감독은 장편영화가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감독들의 데뷔작에 많이 출연했다. <해결사>(2010)도 권혁재 감독 입봉작이고, <마파도>(2005)도 추창민 감독 입봉작이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해변으로 가다>(2000) 도 마찬가지고. 처음 찍으시는 감독님들이 나랑 하면 잘 되는 것 같다.(웃음) 추창민 감독은 천만 감독이 되지 않았나.
배우로서 본인 위치에 아쉬움이 있지 않나.
지금까지 배우생활을 하고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하다. 20년 가까이 배우생활 하면서 많은 분들을 봤다. 고속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분들, 그렇게 올라가서 여전히 안 내려온 분들, 반대로 빠르게 올라간 만큼 빠르게 떨어지는 분들도 있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지금이 이정진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김태훈처럼 악행을 당하는 쪽을 연기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관객들이 ‘쟤가 나중에 가서 피디를 한 대 때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른다.(웃음) 여태까지 찍은 게 거의 다 폭력적이라서.
정말 그런 역할만 많이 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이미지가 갈린다. 영화에서는 땀이든 피든 많이 뒤집어 쓰고 나온다. 그리고 항상 누굴 때리고.(웃음) 이번 영화가 지금까지 찍은 것 중에는 폭력씬이 굉장히 적은 편이다. 반대로 드라마에서는 주로 선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나왔다. 부잣집 도련님인데도 불구하고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기도 하고.
왜 이미지가 갈린다고 생각하나.
영화와 드라마 관계자 분들의 보는 눈이 다른 것 같다. 이정진이라는 배우에게 원하는 방향도 다르고.
배우로서 어느 쪽이 더 끌리는지.
아직 20년밖에 연기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웃음) 사실 아직도 어느 한 쪽을 고를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역할은 들어오는 시나리오 중에서 선택되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배우가 끌리는 작품을 골라서 촬영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나는 아직 그런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사진작가로도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트와이스 쯔위를 찍은 걸로도 유명하다.
아이돌 사진은 JYP에 소속돼있을 때부터 찍기 시작한 거다. 본래는 케냐나 네팔 같은 저개발국가를 주로 다니면서 담고 싶은 장면을 찾았는데, 회사에서 자꾸 먼 데로만 가지 말고 우리 애들도 좀 찍으라고 하더라.(웃음) 그때부터 수지, 투피엠, 갓세븐을 찍고 두 달 전에는 닉쿤과 포토에세이도 냈다. 이번에 쯔위를 찍으면서 여기저기 홍보가 많이 되는 바람에, 이달 말에 또 다른 걸그룹 사진을 찍기로 예정돼있다. 사람들이 나를 아이돌 전문 사진가로 알 것 같다.(웃음)
본인이 찍고 싶은 사진이 따로 있나.
아이돌 사진은 어쨌든 상대측의 요구에 맞춰서 찍는 거니까 완전히 나만의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풍경이든 인물이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내가 원하는 걸 찍는 게 좋다. 그래서 아프리카도 자주 갔던 거고.
블로그에 공개된 케냐 아이들 사진이 인상적이더라.
사진을 배우면서 그곳에 자주 가게 됐다. 케냐는 아직 카메라라는 물건조차 생소한 나라다. 자연스럽게 내가 카메라로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처마 밑에 큰 가족사진이 걸려있던 게 생각났다. 내가 그들의 가족사진을 찍어주면 의미 있겠다 싶었다. 부모님 사진은 찍어서 아이들에게 주고, 아이들 건 찍어서 부모님에게 주고. 그렇게 시작한 일이 커져서 사진전까지 하게 된 거다.
배우와 사진작가를 쭉 병행할 생각인가.
그렇다. 사진작가의 경우는 완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일단은 8월달에 국제사진페어에 출품을 하고,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열 것 같다. 올해 말부터는 ‘사진을 찍는 배우’로서 배우 선배님들을 촬영하는 게 목표다. 그 분들의 사진을 방송국에 걸어드리고 싶다.
방송국에 그들 사진을 건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방송국 로비를 보면 지금 방영중인 프로그램이나, 과거에 잘 됐던 프로그램 위주로 사진이 걸려있다. 그런데 그 방송국들이 탄탄하게 클 수 있었던 건 선배님들이 지난 3~40년간 연기해온 덕도 있지 않은가. 그 분들의 사진이 방송국 벽에 걸려있으면 의미 있을 것 같다. 사진을 찍는 배우 후배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국도 이런 취지를 들으면 걸어주시지 않을까.(웃음)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최근이라기보다, 새로운 작품을 받을 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직은 나를 기억하고 있구나 싶어서.(웃음) 그 때 제일 행복하다.
2016년 7월 13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pgot@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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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