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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기다림대로 의미가 있다 <방안의 코끼리> 미람
2016년 3월 3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예명이 좀 특이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특별한 의미는 없다. 뜻은 단순하다. 빛날 미, 예쁠 람. 이름 바꾸고 나서 ‘라이더스: 내일을 잡아라’에 출연하고, 이번 역할도 맡게 됐다. 좋은 일이 생기는 거 같다.

직접 지었나?
그건 아니고 몇몇 지인과 상의하고, 작명소도 가봤다. 영화는 어떻게 봤나?

개인적으론 좋았다. 영화에 대해 본인 만족도는 어떤가.
일단 3D멜로가 처음이라 감독님도 그렇고 스텝들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실 나는 흥미롭고 신선하게 봤는데 관객들도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 관객들의 반응이 되게 궁금하다.

다른 작품 <치킨게임><자각몽>도 봤나? 봤다면 어떻게 봤나?
우리 작품인 <세컨 어카운트>는 스토리 위주인데 비해, <치킨게임>은 좀 더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있는 거 같다. <자각몽> 같은 경우는 자아와의 싸움을 판타지 액션으로 풀었다. 3D라고 하지만 방식을 다르게 촬영한 거라서 내가 저 현장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연기, 캐릭터들이 다 달라서 되게 재밌게 봤다.

<치킨게임> 신동미씨 역할은 다소 비현실적 캐릭터를 과장된 몸짓과 대사로 연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세컨 어카운트>의 인경역은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절제력 있게 표현하더라. 만약 당신이 신동미씨 역할을 했으면 어땠을 거 같나?
선배님이 원체 너무 잘하셨다. 해봐야 알겠지만 선배님만큼 유머러스하진 못해도 되게 재밌을 거 같다. 스크린에서 무대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이번 작품을 에로틱멜로라고 표현하는데 그다지 에로틱하진 않다. 오히려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 많고 현실감 있는 캐릭턴데 마냥 현실적이지도 않다. 표현하는데 힘들지 않았나?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난 이걸 단순히 사랑이야기라기보다 인경이라는 인물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SNS를 통해서 남자들을 만나다가 삼겹살이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고 그런 후 자아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달라도 어떤 낯선 감정들을 표현하고 싶었고 그런 것들에 흥미를 많이 느꼈다.
노출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거 같은데?
베드씬이나 그런 것들은 이 인물이 삼겹살을 만나기 이전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 그러니까 벽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물을 구축하는데 그 장면들이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필요한 거였다. 개인적으로는 수위 높은 장면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인경과 연령이 비슷해서 공감대가 클 거 같다. 또 요즘 세태도 많이 반영 돼 있지 않나. 공감하는 부분도 크고 못하는 부분도 많지 않나?
나는 사실 SNS를 안 한다. 그래서 영화를 준비하며 스텝들과 같이 SNS 계정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실제 활용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오랜 시간 관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세상에 표출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다들 현실에서 표출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들을 세컨 계정을 이용해서 표현하더라. 인경과 닮은 점이라고 한다면 실제 일을 하는 모습들이다. 마치 열여덟 서투름처럼 나이 들고 시간은 흘러가 있지만 여전히 처음 하는 일은 낯설고 어색하다. 나이랑 상관없이 우리는 계속 성장하는 과정이고 낯선 것들을 겪어 내게 된다는 점. 그런 것들을 굉장히 공감하면서 촬영했다.

인경의 성격이 양면성이라고 할까. 동료들과의 관계를 보면 굉장히 내성적이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과감하기도 하다. 당신은 좀 전에 SNS를 잘 안 하는 편이라고 했다. 본인의 성격은 어떤가.
난 친한 사람한테는 쾌활하고 장난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엔 그림을 그리던 음악을 듣던 잘 즐긴다. 그래도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림을 잘 그리나보다?
잘 그리진 않는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작품이 있지 않을 때는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평소에 어떻게 해소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 화가인 친구와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됐다. 뭔가를 같이 보고 느낀 점을 그려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는 누드 크로키도 한 번 해봤는데 완전 신세계더라. 잘 그리든 못 그리든 크게 상관 없이 잘 즐기고 있다.
어떤 그림일지 궁금하다.
(웃음) 나중에 실력이 좀 좋아져서 작게라도 개인전시회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정말 좋겠다.

인스타와 같은 SNS에 올리면 좋을 거 같다. 궁금해 하는 팬도 많을 듯하다.
아직은 부끄럽다. 그렇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보여주고 싶다.

이번 작품 <세컨 어카운트>의 일회성 만남이나 프리섹스가 외로움의 표현일 수 있으나 한편으론 쾌락만능주의로 보일 수 있다. ‘어 예술적이야’ 이럴 수도 있지만 ‘어 이거 뭐니’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점이 굉장히 신경 쓰였을 듯한데. 인경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맞다, 그 부분 감독님도 신경 많이 쓰셨다. 나도 그렇고. 또 영화 자체가 1시간 30분 동안 스토리를 펼쳐 나가는 게 아니고 30분 정도의 길이다. 그래서 이 안에서 표현을 좀 달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 부분에서 인경이 남자를 일회성으로 만나는 모습들을 어떻게 그릴까 고민을 했는데 우선 이미지적인 것들에 신경을 썼다. 그 당시에 길었던 머리를 자르는 것도 감독님한테 먼저 말씀을 드렸다. 인스턴트식으로 만나는 남자들한테 예뻐 보이려 한다기보다는 마치 싸우러 나가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냐면 외로움, 사람과의 부딪힘, 그리고 나 자신과 부딪치는 약간은 전쟁 같은 느낌. 그래서 싸우러 가는 건지, 남자들한테 잘 보이려 나가는 건지 잘 분간이 안 되는 메이크업과 의상을 택했다. 의상색도 다 어둡지 않나. 또 목도리를 계속 하고 있다. 뭔가 칭칭 감는 느낌으로. 여하간 티는 잘 안 나지만(웃음) 나름 고심한 측면이다.

또 남자를 만나러 나가는데 노출을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어딘지 모르게 감추고 있는 느낌들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 말씀 드렸었다. 다행히도 감독님이 배우한테 열려 있으신 분이라 소통이 잘 됐다. 캐스팅 이후로는 인경 캐릭터에 대해 전적으로 나한테 맡겨주셨다. 색감 또한 이미지나 인물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큰 영향을 끼치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인경이 붉은 속옷을 입으면 너무 안 어울리지 않겠나. 내면에 있는 어둡고 뭔가 해소하고 싶은, 억눌려 있는 욕망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나중에 삼겹살을 만나면서는 예뻐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려 했고.

그래서 삼겹살을 만나고부터는 코트들이 다 화사해진다. 핑크 빛 코트도 입고.
맞다(웃음).

당신의 시도가 영화에 잘 반영된 듯하다. 목도리, 코트, 구두 색깔 변화, 다 기억에 남는다. 또 인경이가 1회성 시도를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다 실패한다. 그리고 삼겹살을 만나고 진짜 원나잇을 실행에 옮긴다. 나름 원칙 있는 여자다! 현실에서 이성을 만날 때 당신도 인경같이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
원칙까지는 아니지만 내 기준에선 기본적으로 선하고 착한 사람이 좋다. 물론, 아무한테나 말고 나한테만! 또 성격은 크게 상관이 없는데 나랑 대화가 통하는 남자였으면 좋겠다. ..
지금 사귀는 사람은 있나?
진짜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없다.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다. 당신이 배우가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한예종 출신인데 그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
처음에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고 무대에 섰을 때, 그러니까 두 시간을 달린 후에 박수 받는 기분이 어떨까. 달린 후 그 느낌이 과연 뭘 해낸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 호기심으로 출발했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좋은 선배들과 동기들을 만나면서 좀 치열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책임감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연기를 통해 여러 사람과 접하다 보면 가끔은 나를 배우로 보지 않고 내가 분한 캐릭터를 실제와 동일시하는 분들이 있다. 작품 속 인물을 보며 때론 위로도 받고 때론 같이 분노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또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고민했던 게 있다.

뭔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왜 누군가가 와서 시간과 돈을 들여 봐야만 하나 이런 물음. 앞으로 배우생활을 계속 하는 한 이 문제는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인 거 같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어떡하든 가치를 만들어 내야하고 감사의 의미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이 좀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조금이나마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

순간 마음이 찡했다! 내가 하는 연기를 관객들이 왜 두 시간 동안 돈을 주고 봐야 하는가를 고민한다는 말에서.
그런가. 내가 좋아서 하는 건 어떤 면에선 이기적인 거 같다. 항상 이유를 찾으려 노력한다.

인터뷰 준비 중 드라마시티에서 주연한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못 봤다. 지금까지 조연으로 출연한 작품이 꽤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동료나 후배들이 소위 잘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안 느낄 수 없을 거 같다. 그럴 때 자기를 어떤 방법으로 다스리나.
다행히 내 성격 자체가 남들과 그다지 비교하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먼저 잘 되는 게, 어떻게 보면 참 식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뒤쳐져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난 그냥 속도와 방향이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는 개성 있고, 어떤 친구는 되게 예쁘고 연기도 잘한다. 난 어떤 걸 잘할까, 내가 해온 길은 어떨까, 그런 것들을 항상 체크를 해 보곤 한다. 그래서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좀 생겼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오기까지를 잘 견디기 위해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웃음)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하고 음악 듣고 그림 그리고, 요리도 한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다. 그리고 믿음, 내가 스스로 나를 믿어주면 크게 문제될 건 없는 거 같다.

그렇다면 굉장히 큰 자산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일단 남과 비교하지 않는 거.
그렇긴 한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웃음).

또 하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 이 두 가지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 아닌가.
둘 다 사실 노력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비교를 안 한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아예 안 볼 수는 없지 않나. 만나서 같이 시간 보내는 걸 너무 좋아하고 또 만나서 배움도 얻고, 에너지를 얻는 것도 있기 때문에. 문제는 얼마나 사심 없이, 욕심 없이 주변을 바라보냐 이다. 배우라는 직업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기에 항상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에서 보면 삼겹살 역의 서준영씨가 무척 귀엽다. 특히 마지막 대사 ‘뭘 바래요? 세컨 계정으로 만났으면서’가 인상 깊었다. 호흡은 어땠나?
준영 오빠는 일단 현장에서 너무 유쾌하다. 말도 정말 재밌게 하고. 오빠가 현장 분위기 많이 띄워줬던 거 같다. 나는 좀 캐릭터의 색깔이 있다 보니 가만히 있는 편이었는데 오빠가 번개처럼 나타나서 즐겁게 해주고 그랬다. 또 배려가 많다. 사실 짧은 영화에서 짧은 만남인데 오빠가 빠른 시간 안에 마음이 편해 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 그 마지막 장면도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거 외에도 오빠가 이렇게도 해보고 싶다며 다양하게 시도를 했었다. 그게 인경한테도, 물론 절제해야 하다 보니 표정에는 직접 나타나진 않지만, 마음 안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삼겹살과 그렇게 헤어진 후 인경이 커피를 사러 간다. 그때 바리스타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나? 그때 딱 김춘수 시인의 '꽃' 이 생각났다. 결국 우린 이름을 불러주는 이가 필요한 존재 아닌가.
그런데 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왜냐면 그 전에도 바리스타가 인경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맞다. 그런데 그때는 인경이 자신의 이름이 불린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한다.
사실 인경이 자기를 만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다. 똑같이 이름이 불리지만 인경 내면의 변화가 있은 후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을 보면. 결말이 어느 정도 낭만적인 결말이다. 그런 면이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다.
그 장면이 어느 정도 로맨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감독님도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장면이다. 일정 부분 열린 결말을 의도하신 듯하다. 아주 해피엔딩도 아니고 아주 비극적이지도 않고.

당신의 얘기를 들으니 새롭게 영화가 다가온다. 좀 뜬금없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뭔가?
그냥 친한 친구 집에 운동 겸 한 시간 정도 걸어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수다 좀 떨고 다시 걸어오는 걸 일상에선 좋아한다.

친한 친구 역시 배우인가?
아니다. 결혼해서 임신했고 태교를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웃음).
나는 죽어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 보다는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나가는 게 좋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에서 성취감도 중요하고,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궁리해 보는 것들도 내 즐거움 중 하나다.
그럼 당신이 잘 하는 일은 뭔가.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나는 배우로서는 캐릭터 분석을 웬만큼 하는 거 같다. 상상하는 걸 워낙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배경이나 영상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대본상 나와 있지 않은 것들도 막 머리에 들어온다. 그런 부분을 즐긴다. 또 그냥 잘하는 건 요리? 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해먹기도 한다. 그야말로 집밥을 즐겨 만든다.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상당히 잘 어울린다!
가끔 집에서 식혜도 한다.

식혜? 생각보다 요리 레벨이 높다(웃음). 아까 배우를 하게 된 이유가 호기심이라고 했는데 롤모델이 있다면?
사실 많이 받는 질문인데 참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너무 좋아하는 배우가 많다.
너무 좋아하고 멋있고 닮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뭔가 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가 최근에 <캐롤>에서 ‘루니 마라’라는 배우를 봤다. 알고 보니 이전에도 내가 봤던 영화들에 많이 출연을 했는데 미처 인식을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 느낌이 참 신선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 작품, 저 작품에서 보는데도 잘 못 알아보는 기분을 내가 다른 배우를 보면서 느낀 거 같아서. 이 배우가 이전 작품인 <밀레니엄>에서는 엄청 센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너무 사랑스럽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자기 안에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새로움에 도전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선택을 받았다는 게 멋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아직은 그 배우에 비해 작은 존재지만 노력하다 보면, 내 길을 걷다 보면 좀 더 영향력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테고, 그 상황이 되면 내 스스로 잘하고 있다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 믿는다. 먼 곳에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본 거 같아서 정말 반갑고 위로가 됐다.

지금 <캐롤>을 얘기해서 말인데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뭔가?
너무 많기도 하고. 또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달라서 어느 한편을 꼭 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여하간 오늘은 <캐롤>이다.

<캐롤>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은가.
내가 동성애나 이런 면에 대해 어떤 편견도 호감도 없지만 영화 보는 내내 진짜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다.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 영화 속에는 남성성, 여성성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보통 동성애라 하면 조금은 누가 더 남자답고, 조금이라도 누가 더 리드 하는 거 같고 이런 느낌이 있는데 <캐롤>에서는 그냥 둘 다 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를 한다. 누가 더 리드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남성성을 내보이려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속에서는 그저 공평하다. 평등한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게 생겨난다. 난 그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편견이 없는 영화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있는데 <캐롤>은 편견이나, 사랑은 꼭 이래야 한다든지, 누구랑 해야 한다든지, 이런 게 없다. 이런 것들을 살며시 소리 없이 영화 끝날 때까지 느끼게 한다.
20대 여성으로서 연애, 결혼, 출산, 육아는 하나의 관문이다. 물론 비혼이나 딩크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고 하나의 선택이겠지만.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내가 철이 없는 진 모르겠는데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정적이라고 할까 그런 면이 많아서 아마 결혼하면 잘하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일도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해 본거 같다(웃음). 연애를 하든 못하든 지금의 인연에 대해서 잘 유지하고 싶다. 늘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항상 건강한 만남들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방안의 코끼리> 중 <세컨 어카운트>를 보고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할 거다. 주인공으로서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영화를 봤을 때 처음에는 에로틱멜로라는 타이틀도 있고, 또 세컨 계정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테니까 처음엔 낯설게 시작하지만 이게 (나와는) 먼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극장 문을 나서면 만족하고 감사할 거 같다.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이게 너무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배우로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점차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영화가 아니라고 느끼게 됐다. 고민이나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낯섦과 외로움, 이런 부분은 인간이 다 갖고 있는 거 같다. 결국 그렇게 이상해 보였던 누군가도 어떻게 보면 내 옆에 있을 거 같고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그렇게 느끼며 영화관을 나선다면 만족할 거 같다.

다음 준비 중인 작품은?
일단 이번 영화 <방안의 코끼리> 활동을 잘 하고 다 마칠 즈음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우리 무비스트 인터뷰의 공통 질문이기도 하다(웃음). 요 근래 기뻤던 일이나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
내가 작년 크리스마스 때 혼자 있다가 한 친구에게 ‘친구 커플사이에 껴서 놀았다’며 하소연하고, ‘넌 뭐 했냐’ 고 물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주저주저하며 고아원 동생들하고 보냈다고 하는 거다. 처음에는 그냥 동생이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꼬치꼬치 물으니 고아원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봉사라는 표현을 안 했다. 본인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거니 봉사가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친구가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가족과 혹은 사랑하는 사람하고 함께 있는 거 아니냐’면서 아주 명쾌하게 얘길 하는데 그게 굉장히 신선하고 놀라웠다. 나는 왜 받는 것만 생각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거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생각 중이다. 나름대로 조금씩 하고 있다. 내 마음에 큰 변화가 온 거 같다.

2016년 3월 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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