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준비하다 보니 두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됐다.
어떤 건가?
하나는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 또 하나는 오래 전부터 영화를 작업하셨다는 거다.
그거 다 아는 사실인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서 생각보다 라고 하지 않았나(웃음). <아나키스트>를 제작한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품은 좀 일찍 제작한 게 아닌가 싶다. 너무 시대를 앞서 갔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장동건씨가 나오고 화제는 꽤 됐었는데 결과는 별로 안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제작 됐으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겠나 싶다.
그런데 요번에 최동훈 감독이 제작해서 아주 좋은 성과를 거두지 않았나? 고마운 일이다.
‘의열단’을 다룬 내용인데, 다시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난, <동주>했지 않나!
그렇지만 <동주>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지 않나, 소재도 다르고.
그렇긴 한데, 나이에 맞는 영화에 몰두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나키스트>를 99년도에 찍었는데 그때가 30대 후반이었다. 30대 후반에는 그런 얘기에 몰두하는 게 맞다 고 본다. 지금은 50대 후반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동주>에 몰두하는 게 맞다 고 본다. 과거로 돌아가는 거는 뭔가 후퇴하는 느낌이 든다. 더 (앞으로) 가야지, 어제보다 내일이다!
<동주> 기자간담회에서 <동주>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일본에 갔다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럼 이후 신연식 감독한테 시나리오를 의뢰한 건가?
맞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후 의뢰했다.
원래 친분이 있는 편인가? 왜 신연식 감독이었는지?
친분은 없었다. 단지 신연식 감독이 감독조합 이사고 내가 대표고 그런 정도의 친분이다. 신연식 감독은 나한테 없는 것을 확실하게 갖고 있는 게 있다. 그건 저예산 작품에 대한 노하우와 그에 대한 성과다. 대표작으로는,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영환데, <러시안 소설>이다. 그 작품 같은 경우는 영화를 통해서 문학을 읽는다는 선명한 관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아마 윤동주가 아니었으면 신연식 감독한테 의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윤동주 시인 같은 경우엔 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고 신연식 감독은 현재 시점에서 문학을 영화에 반영하는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윤동주의 시나리오는 신연식이 적역이라고 생각한 거다.
보편적으로 감독들이 시나리오 작업도 직접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맞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진 않는다. 단지 각색을 한다. 써 놓은 시나리오를 고치는 정도다.
일단 내가 글 쓰는 걸 너무 싫어한다. 학교 다닐 때도 필기를 안 했다.
단지 쓰는 걸 싫어하는 건가? 생각은 많은데?
내가 미대를 나왔는데 뭔가를 손으로 쓰는 걸 싫어한다. 지금도 메모를 안 한다. 메모 같은 걸 남기지 않는다. 그림을 좋아했던 소년이 뭔가 펜을 잡으면 글은 생각 안 나고 그림만 생각나는 거다. 타고난 거 같다. 또 그림의 확장 판이 영화니까 그래서 감독을 하고 있고. 시나리오는 온전하게 작가의 몫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나리오는 다 작가에게 의뢰한다. 내가 이런 영화를 찍자, 이런 인물, 이런 배경, 이런 심리, 이런 감정으로 영화를 찍으려 하니 그에 걸맞은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의뢰한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나오면 나는 그걸 가지고 각색을 좀 하고 가지고 가서 현장에서 찍는 거다.
감독은 배우와는 달리 일단 뭔가를 찍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야 하지 않나. 물론 의뢰를 받고 찍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본인 스스로의 창작욕구가 있어야 할 텐데 그런 창작 욕구가 고갈됐다고 느낀 적인 없는지?
그런 적은 없다, 한 번도.
그럼 항상 하고 싶은 작품이 대기하고 있는 상태나?
대기라기보다는 욕구불만?
하고 싶은 걸 다하지 못한 데에 대한?
다하지 못한 데에 대한 욕구불만은 아니고, 하고 싶은 것을 다 만들어내지 못한 욕구불만으로 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고갈됨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건 대단하다!
뭐가 대단하나? 당신도 뭔가 생각이 떠다니지 않나?
물론 떠다니긴 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싶지?' 라는 딱 막힌 순간도 분명 있다.
아니다, 난 그런 적은 없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너무 많은데 그걸 결과물로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데 대한 자기 불만이 많은 거다. 뭘 찍어야 될지 모른 적은 없었다.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내가 원하는 만큼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지, 시도조차 못한다는 건지?
원하는 만큼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한 거다. 시도는 항상 하는 편이다. 하다가 엎는 경우는 있어도. 내가 이 영화를, 이 얘기를 만들어내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그런 안타까움. 억지로라도, 구겨서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주변 작가라든가 다른 스텝들을 달달달 볶아서 만들어냈는데 그 결과가 때로는 성과가 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으면 자기불만에 빠진다. 결국 만족과 불만족의 연속이다.
그럼 지금까지 대중적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작품이 있다면?
없다!
없다?
당연하다. 내가 만족하는 순간 내일의 문을 내가 스스로 닫는 거기 때문에. 오늘의 문을 닫아야 내일의 문이 열릴 수 있다. 오늘 부족한 것을 정확하게 인지를 하고 그것을 꽉 잠가버리고 내일의 부족한 것을 더 열기 위해서 과감하게 내일의 문을 여는 거다.
의도는 다 반영한다. 그런데 결과가 참 미진하고, 의도에 도달하지 못하는 거다. 의도를 달성하지 못한 부족함과 미진함이 많다.
어떤 작품인가? 대표적으로?
많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도 그렇고 <평양성> 도. 의도에 비해서 많이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오죽하면 은퇴선언 난동까지 피우고 그랬겠나? (웃음)
(웃음) 보니까 감독님이 불만족스러워 하는 작품들은 공교롭게도 대중에게도 외면 받은 작품이다.
당연하다. 그건 영화가 가진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난 상업자본으로 상업행위를 했는데 상업적 결과가 실패로 돌아온 건 내가 무엇을 간과했고, 무엇을 과도하게 고집했고에 대한 흔적들이다. 때문에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려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때만이 개선의 문이 열린다. 만약에 그걸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집으로 붙잡고 산다면 내일이 없는 거다! 그래서 모든 결과물은 끊임없는 반성의 결과물일 뿐이다. <동주>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그러니까 <동주>의 결과를 맞은 지금 시점에서는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자기최면을 막 걸고 개봉을 향해 달려간다. 근데 끝나고 나면은 많은 관객들에게 지적 받는 요소들이 발견될 거고, 그 발견된 것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면 ‘아 내가 부족한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자각하게 된다. 그 자각한 것을 메우기 위해 그 다음 영화를 하고. 계속 그렇게 하는 거다. 죽을 때까지.
<동주> 가 19회 차로 완성된 영화라고 하지 않았나? 그 능력이 대단하다.
그건 내 능력이 아니다. 절대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나는 그런 의지를 갖고 한 거고 그 의지를 결과로 달성한 건 이 영화를 작업한 스텝들의 능력과 배우들의 실력이다. 나는 하자, 그만하자 이거 밖에 한 일이 없다는 거지.
그걸 조율하는 게 능력인 거다.
근데 그 조율이 어려운 게 아니다. 생각해 봐라, 나보다 더 시나리오를 달달달 외워서 온 배우가 치는 한마디 대사는 적어도 우리가 준비했던 시간들보다 더 집약적으로 몰입을 하고 내면화해서 구현한 거다. 또 시나리오에 베인 땀과 눈물은 영화를 만드는 동력이다. 난 그냥 하자고 한 거다.
제작비가 5억밖에 안 들었다고 하던데?
맞다.
물론 능력 있는 배우들과 스텝들, 감독님까지 모두 의기투합해서 가능한 결과지만, 앞으로도 이런 영화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동안도 많이 나왔다.
그런데 주목을 못 받지 않았나. 그래서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분이 나서야 좋지 않을까 싶은 거다.
근데 그건 강요하면 안 된다. 각자 개인의 선택은 다양하게 존중 받아야 되는 거기 때문에. 뭐든지 강요하는 건 폭력적이 되는 거다.
강요가 아니라 바람이다(웃음). <동주> 후속 작에 대한 생각도 있나?
있는데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 안돼서 발설을 할 수 없다. 시나리오가 완성돼야 구체적인 플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데 아직 미완이다 보니. 언제 엎어질지 모르니까.
<동주>에서 송몽규와 윤동주는 동전의 양면 같은 느낌이다. 다른데도 같은. 당신은 어느 편에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하나?
양면적이다(웃음). 이중적이고. 근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인간은 이중적이고 다중 적이다. 굳이 얘기한다면 나는 좀 행동주의자에 가깝다.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고, 실패를 많이 하고.
실패 얘기 나와서 말인데 예전 <왕의 남자> 당시 영화 수입하다가 진 빚이 많아서 이 작품을 꼭 성공해야 했었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영화를 볼 때 수입사에 대해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영화 수입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는 흔하다. 이득 본 작품도 있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결산을 했을 때 70억 손해를 봤었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
(잘) 된 거? 망한 거?
됐던, 망했던.
망한 작품으론 K-19이지.
K-19? 제목도 낯설다.
망했으니까! (그런 영화)있다. 해리슨 포드 나온 거.
한 물 갔을 때다, 그때가.
간담회 때 잊혀진 사람을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그 말이 참 다가왔다. 이번 <동주>에서도 윤동주 시인 이상으로 송몽규씨 비중이 크다. 또 당신이 간담회 때 스텝들한테도 감사인사를 하더라. 그래서 당신이 말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보이지 않는 노력과 노고를 중요시하구나 느꼈다.
그건 뭐 당연한 거다.
당연한 거지만 실상은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다.
근데 그건 사람들이 누구나 다 그런 시기가 있는 거 같다. 당연한 걸 행하는 시기와 잘 못 행하는 시기. 나도 오만이 넘치고 호승심, 그러니까 이기려는 마음이 넘치던 때가 있었다. 근데 부딪치고 깨지고 실패를 하고 나서부터는 영화라는 작업이 공동작업이고, 공동작업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각보다는 집단의 무의식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이 그 영화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지금 나이 50후반이 돼서야 알게 됐다. 나도 30대, 40대 이런 때 뭐 엉망진창이었지. 모두가 그렇지 않나? 날 때부터 다 아는 사람이 어딨나!
다행인 거다! 나이 들수록 성숙해지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근데 안 그런 사람도 난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도 하나의 다양성으로 존중하고 싶다. 다양성이 존중 받을 때 진정한 수평사회가 만들어지는 거기 때문에 그것도 나쁘지 않다. 뭐 인생이라는 게 원 없이 살다가는 게 목표 아닌가. 머뭇거리다 쭈뼛거리다 무덤가서 뭐 할 건가?
말씀하시는 거 보면 참 거침이 없다. 원래 성격인가? 아님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속으론 많이 상처 받는 편인가?
나 지금 되게 조심히 말하는 거다!(웃음) 그리고 상처라, 상처 안 받는 사람이 어딨나? 근데 난 일단 아니면 마는 편이다.
영화를 시작하면 힘든 점이 많지 않나, 내 생각했던 방향으로 진행이 안 될 수도 있고. <동주>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그런데 힘든 게 난 너무 재밌다.
그 자체가? 당신은 어려움을 즐기는 사람인가?
맞다, 난 힘든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 순조롭게 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인생은 원래 장애물 경기 아닌가? 좀 자기학대적인가?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그럼 좋았던 점은?
어려운 게 재밌고, 좋은 거라니까! 난 비교해서 우선 가치를 두는 거. 그런 걸 되게 혐오하고 싫어한다. 그 성공과 실패의 가치를 비교하고 평가하고 하는 게 너무 오류가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윤동주는 시집이라는 결과물이 있어서 모두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같이 태어나서 같이 죽은 송몽규는 굉장히 소외되고 무시됐는데 그게 옳지 않다는 거다! 하물며 내 인생의 수많은 결과들에 대해서 평가하고 재단하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패는 성공보다 더 한 가치고 내 인생의 보석 같은 가치다. 또 성공이 주는 보상도 있고 성취도 있지만 그 성취는 또 다른 화를, 또 다른 어떤 옳지 않은 것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성공과 실패의 간격을 무화 시키려 한다.
무화, 없애버리는 거다. 그 간격을. 그게 평화로운 거 아닌가?
근데 그게 쉽지 않을 거 같다?
그래서 재밌는 거다! 쉽지 않으니까 재밌는 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좀 성공적이고 안정된 걸 추구하지 않나?
재미없지 않나?
재미없을 순 있지만 안정적이지 않나?
그럼 내가 질문하나 하겠다. <베테랑> 보면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다’ 이런 대사가 있다. 내가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돈도 없고 가오도 없고 하지만 재밌어’, 반대로 ‘돈도 있고 가오도 있어, 근데 재미없어’ 어느 게 좋나?
음, 당신의 질문 의도 상 '돈도 없고 가오도 없지만 재밌어'를 선택해야 할 거 같지만, 막상 선택한다면 굉장히 갈등할 듯하다!
나는 그건 선택의 몫이 아니라고 본다.
그럼, 뭔가?
결과로 주어진 것에 대한 자기 삶의 의미부여를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라고 본다. 선택이 아니다. 내가 부자를 선택 한다고 부자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내가 가오가 선다는 선택을 한다고 가오가 선다는 보장이 없는 게 삶인데, 그 불확실한 거에 자기의 비교가치 안에서 행, 불행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나. 물론 돈 있고 가오 있고 재밌는 게 최고지. 근데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신이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재미’라는 생각이 든다. 또는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의 즐거움?
맞다. 나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재미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본다. 당신은 재미있는 가난이 좋나, 재미없는 부자가 좋나?
그 역시 또 선택하려면 고민할 듯.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니까!(웃음) 가치부여다. 난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삶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가치는 재미추구다.
그래서 장르는 다 다르지만 당신의 영화는 기본적인 재미를 깔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유희적 본능이 있지 않나. 비극 안에서도 재미를 추구하고 싶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면서 어느 부분은 타협이 가능하고, 또 한편으로 타협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사실 주로 타협한다. 솔직히 못할 거 없다(웃음). 죽음과도 타협할 판국인데 살아있는 동안 뭘 못하겠나.
주로 사극을 많이 하긴 했지만 다양한 장르를 했는데, 만들지 못할 장르가 있다면 뭔가?
공포! 그건 무섭다. 사실 그건 타협이 안 된다(웃음). 사는 게 공폰데 영화에서까지 못 보겠다. 무서워서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검은 사제들> 도 못 봤다. 무섭다며?
글쎄,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잘 보는 편은 아닌데 무섭진 않고 재밌었다.
오컬트? 심령? 이런 거 무서워서 난 못 본다.
영화의 본질과 영화의 사회적 역할. 너무 무거운 질문인가? 하지만 그 역할이 분명이 있다고 보는데?
당연히 있다. 난 영화로 세상을 보고 지식을 쌓은 사람이다. 책도 많이 안 읽었고,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 했고. 영화가 나한테 준 선물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수많은 지식들이다. 미국의 서부영화를 보면서 미국 서부 개척사를 배웠고, 그리스•로마 배경 영화를 보면서 그리스 로마의 비극들을 배웠다. 또 셰익스피어의 비극영화를 보면서 영국 중세의 문화를,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서 일본 에도시대나 막부시대 사회에 대한 지식을 배웠고 중국의 사극 영화를 보면서 중국의 고전 사회에 대해 알게 됐다.
난 다 영화에서 배웠다.
그럼 당신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뭔가? 혹은 당신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이거 하나만은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게 있다면?
내가 뭔가를 전달하고자 고집하는 건 없다. 내가 영화를 통해서 스스로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결과물이고, 그 결과물은 보는 사람마다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의미나 메시지는 부여하는 것이 아니고 부여 받는 거다. 부여하는 의미는 이미 의미가 아니다. 강요고 주장이지. 관객들이 강요하고 주장한다고 동의하나? 안 한다니까. 그래서 나는 아예 의미 부여를 안 한다. 왜? 어차피 전달 안 되니까. 그저 있는 생각과 마음 가는 바를 구현했고, 그것을 보고 관객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해주면 그게 진정한 가치라고 본다.
그간 역사물을 많이 다루었는데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 유난히 사극을 많이 한 이유가 있다면?
뭐 관심이 그다지 많았던 건 아니다. 돌이켜보면 약간의 사회적 상처가 있었던 거 같다.
영화를 수입하러 외국을 자주 돌아다니면서 외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거 아닌가.
나는 어려서부터 서양 교육을 온 몸으로 받았다. 팝송을 듣고, 영어를 배우고, 외국영화를 보고. 딱 보면 이게 영국 건지, 독일 건지, 프랑스 건지 난 너무 잘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다. 근데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걸 보고 몰라. 근데 일본의 역사나 문화, 전통에 대해선 너무 잘 안다. 또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에 대해선 너무 모른다. 화가 안 나나? 그래서 ‘어, 셰익스피어의 광대들이 너희들만의 자랑꺼리라고 생각해? 웃기지마, 조선의 광대들은 영국의 광대보다 그 신명과 신념이 훨씬 우월하다는 걸 보여줄게’ 그래서 <왕의 남자>를 만들었고. <황산벌>은 ‘너희만 뭐 십자군 전쟁 있냐?, 너희만 뭐 트로이 전쟁 있어? 우린 수십만 명이 이미 1300~1400년 전에 어마어마한 전쟁 했었거든? 또 ‘너희만 랭보, 보들레르 시인 있냐? 우리도 윤동주 시인 있다’. 뭐 이런 거다!
통상적으로 그런 생각을 역사의식, 혹은 주체의식이라고 하지 않나?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라고도 하고.
모르겠다. 난 뭐라고 이름 붙이던 하여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근데 이런 면이 있지 않나. 어느 정도 이름을 얻으면 아무래도 영화를 제작하기가 좀 쉬워진다. 제작사를 찾기도 쉽고 투자 받기도 쉽고. 반면 평가 잣대는 더 엄격해진다. 가령 재민 있는데 깊이가 없다, 혹은 깊인 있는데 재미가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평가 기준이 까다로워지는 거다. 그럴 때 ‘아 어디에 맞추라는 거야!’ 하고 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난 경험은 없나?
옛날엔 그랬다. 40대엔 화가 났었다. 근데 50대엔 화가 안 난다. 다 옳은 얘기거든.
50대가 통달의 경지인가 보다!
내가 하도 두드려 맞아봐서. 사실 맞으면 아프다(웃음). 근데 때리는 이유를 알다 보면 아픔도 단순히 아픔이 아니다. 달게 받아야지. <평양성>까지는 아집과 독선이 좀 강했다면 <소원>부터는 ‘어? 비판? 다 받아야지, 뭐 다 옳은 소린데’ 이렇게 됐다. 아픔은 선물이다. 설 명절 선물 같은 거(웃음).
오래 전 영화수입을 직접 한 만큼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눈이 남다를 거 같다. 요즘 국내 영화나 외국 영화나 ‘아 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었다’ 이런 감탄을 자아내는 영화가 있었나?
솔직히 요즘 영화는 다 잘 만들었다. 못 만든 영화가 없다. 너무 다들 잘 만들다 보니까 오히려 보기가 무섭다. 또 열등감 느껴야 되고. 그래서 잘 안 본다!(웃음)
혹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영화 봤나? 많이들 추천 하더라.
봤다. 멋지다. 근데 내가 나이가 들다 보니 과도하게 폭력적인 거. 그러니까 현대인의 현실에서 없어진 어떤 폭력성을 영화를 통해서 대리만족 하는 것이 영화가 갖고 있는 판타진데, 그런 과도한 폭력성이 난 조금 뭐랄까 점점 싫어지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옛날엔 과도한 폭력성의 영화를 좋아했던 한 사람이지만,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해 야 돼? 이걸 보고 좋아해야 되나? 이런 약간의 느낌이 좀 있다. 내가 늙었나 보다! 그런 걸 쾌감으로 자극으로 즐겨야 되는데. 나도 예전 내 영화에서 엄청 죽여 본 사람인데 점점 그런 게 힘들어 진다.
그럼 앞으로 나올 작품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겠다? <소원>, <사도>, <동주> 등.
글쎄, 단언할 수는 없다. 난 앞일을 예측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최근 작품인 <사도>나 <동주>나 다 한 사람의 죽음을 그리기 위해서 두 시간 내내 그 사람의 삶을 그려내는데 매달리는 그런 작업이 돼 버린 거다. 나도 모르게.
<사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인터뷰하던 송강호씨가 이준익 감독님이 너무 인간적으로 좋은 분이라고 하더라?
타협을 잘하니까(웃음), 내가 인간적으로 타협을 잘한다. 송강호도 좋은 사람이다.
근데 내 생각엔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없다. 그 사람의 입장과 처지가 나빠 보일 수는 있지만 사람이 어떻게 나쁘게 태어나나?
하지만 인간적으로 나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교육되고 사회화되는 부분이 많은 거지.
아니 난 그 사람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나쁜 상황으로 내몰린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기본적으로 인간은 선하다는 생각인가?
맞다. 난 모든 생명은 선하다고 본다. 물론 교육을 통해서 인간이 성숙해지는 제도가 지금까지 문명을 이끌어 온 힘인 건 맞다. 근데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 안에서도 교육이 만약 100% 달성 못했다면 그건 교육이 잘 못된 거지, 사람이 잘 못된 게 아니라고 본다. 안 그런가? 갓난아기가 태어났는데 나쁜 거 본 적 있나? 왜 나빠졌는지에 대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 우리가 고민을 해야지. 저 사람의 나쁜 결과를 보고 그 사람을 나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정말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렇다. 개, 돼지도 마찬가지다(웃음). 세상에 나쁘게 태어난 개가 어딨나.
정진영.
배우 정진영씨? 친분이 두터운 가보다?
그럼. 멋진 벗이다. 난 멀리 있는 위인을 존경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친구를 존경한다. 정진영은 정말 존경 받아 마땅한 친구다.
청년 이준익은 어떤 모습이었나?
반 양아치지, 뭐(웃음). 내세울 게 없었다. 세태에 휩쓸려서 이리 저리 두서없이 좌충우돌, 불 완전체였다. 근데 모든 청춘이 그런 거 아닌가?
글쎄.
완전한 청춘이 어딨나?
그렇게 다 동일시하면 안 된다!
내가 그러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 생각하나보다. 여하간 청년 이준익은 부끄러운 존재였다. <동주>에서 나오지만 그야말로 부끄러운 걸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거다.
그럼 당신은 부끄러운 걸 아니까 실질적으론 부끄러운 게 아닌 거다?
그러고 싶은 거다. 그러고 싶은 거! 부끄러우니까 부끄러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뻔한 질문이지만 당신에게 영화 만들기란 뭐와 같나?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난 미술학도였기 때문에 영화는 그냥 팔레트다. 영화 자체는 도구다.
말하고 싶은 걸 표현하기 위한?
그렇다. 어쨌든 동시대를 살아오는 한 개인으로서 ‘내가 본 세계관은 이거야’ 라는 걸 구현하고 싶은데 그 구현하는 도구가 누구는 소설일 수 있고 누구는 음악이나 미술일 수 있듯, 나는 그게 영화가 된 거다. 그냥 도구일 뿐이다. 영화가 목표인 게 이상하지 않나. 흔히 ‘장래희망은 감독이다’ 이런 말 하는데 감독은 그냥 직책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즐거웠던 경험 한 가지만 들려 달라.
<동주> 현장이다.
그럼 <동주> 빼고는?
난 뇌가 용량이 작다(웃음). 그래서 뭔가 하나를 하면 뇌가 그 전 거를 다 딜리트 시킨다. 엔터 치면 싹 딜리트 되는 거처럼. 새로운 영화에 들어가면 그 전 영화는 다 사라진다! <동주> 현장 말고 다른 게 머릿속에 없다.
<동주> 같은 영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주시길 기대한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2016년 2월 1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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