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작품과 작품 사이 그 길고 고독한 시간, 이와이 슈운지 감독
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한국에서 기획전을 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기획전이 열려서 굉장히 감사하다.

가끔 당신의 영화를 다시 찾아보기도 하는가.
과거 작품들을 스스로 찾아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이제까지의 작품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

최근에 연출한 영화가 당신이 초창기에 연출한 영화와 달라졌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나.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한국에서 상영하지 않은 TV 시리즈 ‘불꽃놀이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와 단편 <피크닉>과 <언두>는 어떤 영화인가.
‘불꽃놀이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는 원래 ‘모시모(만약이라는 뜻)’ 형식의 TV 시리즈였다. 어떤 인물이 다른 선택을 내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인데 초등학교 아이들의 여름 이야기를 다양하게 그렸다. 그래서 이야기가 중간에 두 가지 방향으로 갈라진다. <언두>는 한 커플에 관한 이야기인데 여자가 정신강박증을 앓게 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피크닉>은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탈출한 뒤에도 담을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담 위를 걸어간다.
그간의 작품 중 당신이 가장 아끼는 영화와 촬영하면서 가장 고생한 영화를 꼽아 달라.
애착은 어느 작품에나 있다. 모든 영화가 내가 살아온 인생의 여러 가지 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느 작품이 특별히 더 좋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가장 고생한 영화라면, <피크닉>과 <언두>는 정말 죽을 정도로 더운 날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촬영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러브 레터>다. 중간에 스탭들이 많이 사라졌다.

사라지다니?
스탭들이 어느 순간부터 현장에 오지를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영화를 거의 혼자 찍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 스탭도 그 작품에 맞는 스탭이 있고 맞지 않는 스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러브 레터>가 가장 힘들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같은 경우는 잠 자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애니메이션이라 컴퓨터 작업이 많은 영화였기 때문에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수정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내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부분도 있고 다른 스탭들이 한 것을 체크해야 되는 부분도 있어서 시간이 굉장히 모자랐다.

또 다시 애니메이션을 연출할 생각이 있나.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첫 번째 애니메이션 작품이라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만들 생각이 있다. 또 다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지난 번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
사실 완성된 결과물을 놓고 보면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가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감독으로서 연출을 할 때는 두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본인이 이미지화 하고 싶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음악을 선택하는 것과 같은 부분은 마찬가지다.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은 실사의 움직임을 먼저 촬영한 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바꾸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했다. 그런 작업과정과 당신의 기존 작품을 보고 추측컨대, 당신은 사물이나 인물의 움직임이 주는 뉘앙스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 감독의 일을 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작품 전체를 감독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촬영현장을 감독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촬영현장에서 감독이 배우에게 어떤 움직임을 시키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일 중 하나다. 당연히 배우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생각도 많이 하고, 그런 움직임 속에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차 한 잔을 마시는 장면도 그 자체가 특별한 움직임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행동 속에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바람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가끔은 배우가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말이다. 움직임을 연출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기 보다는 그런 부분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기본적인 업무 중 하나다.

당신은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만든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학창시절은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한 일이지 않나. 직업으로 친다면 학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본 직업인 거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이 정말 다양하기 때문에 특정 직업군의 사람을 다루면 그 직업을 경험해 본 사람의 수는 적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지낸 아이였다.
주로 어떤 일들을 했나.
독서를 하고 싶을 때는 독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는 그림을 그렸다. 주위 사람들 얼굴을 본 떠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지금 영화감독으로서 하는 일은 모두 학창시절 때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교 때는 영화를 찍었고 그 이후로 만화도 그렸다. 그때 그렇게 여러 가지 작업을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을 보면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순간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순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연출하는 건가.
나는 최근의 일을 더 기억 못하는 것 같다. 이상하게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많다.

과거 특정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다 보면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도 있지 않나.
나의 추억을 그대로 영화에 담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기억이나 추억이 고갈될까봐 걱정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개인적인 추억이나 기억을 그대로 살려 영화로 만든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 어떤 이야기를 생각할 때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기 적합하다고 느끼나.
사실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나 아이디어는 자주 생긴다. 하지만 나의 내면에서 나온 영감을 가지고 영화로 만든 적은 거의 없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 누가 나보고 이런 기획을 영화로 만들자고 해서 만들었다(웃음).

그나마 처음부터 당신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 작품이 있다면.
무슨 영화를 만들지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이야기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작품이든 일단 이야기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내 의지가 많이 반영된다. 처음 영화를 기획할 때는 내 아이디어가 아닐지라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모두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만든 모든 영화에는 내 생각과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서 기획하게 된 영화는 <3.11 이와이 슌지와 친구들>이다.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영화는 한 번 밖에 찍을 수 없는 것이다. 촬영기간이 끝나면 작업도 함께 끝나기 때문에 사전에 이야기를 열심히 구상하고 많이 고민해서 현장에서는 결정을 되도록 빨리 내리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

3D를 비롯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영상 기술 때문에 관객들이 영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영화 연출가로서 그런 기술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 있나.
여러 가지 기술이 많이 생기고는 있지만 그 기술들이 모두 나에게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중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기술을 골라 사용하고 인용한다. 감독으로서는 기술의 발전이 영상을 만드는 데 있어 선택의 범위를 넓혔다고 생각하기에 반가운 일이다. 예를 들어 디지털 시대 이전의 필름 영화들은 물론 영상이 아름다운 장점도 있지만 편집과정에서 여러 가지 힘들고 성가신 부분이 많았다. 실제로 필름을 하나하나 보고 잘라가면서 편집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렸고 한 번 편집해 놓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 있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굉장히 이른 시기에 디지털로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기술을 조사하고 알아가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빨리 찾아가려 노력한다. 다시 말해, 내가 필요로 느끼는 새로운 기술들은 나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하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만들며 지치는 순간은 없었나.
한 영화를 완성시키고 나면 그 다음 영화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그 시기가 사실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시점에 섰을 때는 매번 너무 괴롭다. 때로는 내가 과연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방금 완성시킨 영화가 내 인생의 마지막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야 아, 내가 이제 현장에 왔구나,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구나, 라는 실감이 든다. 그리고 편집할 때는 영화가 완성되어 가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에 또 굉장히 즐겁다. 그러나 영화를 완성한 뒤 그 작품과 이별하고 다시 ‘무’의 상태로 돌아가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 과정은 매우 지난하고 힘이 든다. 비유를 하자면 결혼식을 끝내고 피로연을 하고 신혼 여행을 가는데 그 신혼 여행을 사막으로 혼자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과거에 연출한 작품이 내가 새로운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만들면 만들수록 매번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힘든 시기를 끈질기게 견디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구상하고 작업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화를 계속 만들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지금이 딱 <립 반 윙클의 신부>의 작업을 끝낸 시기라 가장 힘들 때다. 이제 다시 가혹한 1~2년을 보내면서 다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힘든 데도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힘든 시기인 건 맞지만 그런 부분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인생이 어두워진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내 인생이지 않나. 인생은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를 의무감에서 만들지 않으려고 하고 나름대로는 힘든 시기도 심각하게 생각하며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영화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야 비로소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작업이다. 작품을 선보이는 순간은 너무 좋지만 사실 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은 정말 길고 힘들다. 그런데 내 인생의 대부분은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는 순간이 아니라 어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힘든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힘든 시간을 즐기지 못하면 영화 작업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힘든 일이 닥쳐도 너무 심각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건 연출가의 일을 체험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충실해지기 힘든, 그 불안전한 상태를 계속 살아가고 이겨내는 것이 나의 일이다.
최근 당신을 가장 웃음짓게 한 일은 무엇인가.
<립 반 윙클의 신부>를 만들고 있는 시기였다. 한 명의 여성이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하는 이야기인데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기대하겠다.

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장소 협찬_더팔래스호텔 서울

0 )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