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는 <극적인 하룻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볼 때보다 실물이 훨씬 예쁘다. 실물이 예쁘다는 말이 좋은가, 스크린 속 모습이 예쁘다는 말이 좋은가?
후자가 듣기에 더 좋다(웃음).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다.
이게 끝이 아닐까(웃음)?
다들 한예리의 실물이 더 예쁘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 턱이 넓거나 각지지 않았는데도 스크린에서는 턱이 각지고 넓게 보이고 눈도 더 작게 나온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속상하다. 분장실장님도 실제로 날 보고서는 눈이 크다며 깜짝 놀라셨다. 영화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다고도 하시더라. 특히 촬영감독님께서 실물과 스크린의 차이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셨다. 그래도 본인이 직접 본 것처럼 실물이 최대한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화면에 담아주겠다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다.
이번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더 예쁘게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작인 <코리아> <해무> <남쪽으로 튀어> 등에서는 예쁘진 않지만 능동적인 캐릭터였다. 이전작과는 다른 느낌의 캐릭터였는데, 연기하는 데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상대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후’의 외적인 부분은 스탭들이 도와줬다. 스탭들이 생각한 ‘시후’에 대한 이미지들이 나에게 잘 덧입혀졌기에 ‘시후’가 엉뚱발랄한 캐릭터로 잘 나온 것 같다. 사실 ‘시후’는 특이한 캐릭터다. 그럼에도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기에 캐릭터적인 힘과 현실감을 둘 다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로맨틱 코미디인 만큼, 로맨스는 누구나 다 겪어본 일인 만큼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한 건가?
윤계상 씨나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고자 했다. 매일 아침 모여서 당일 촬영할 신들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리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 속에서 ‘시후’라는 캐릭터가 설명이 덜 되는 부분이 있잖나. 그래서 ‘시후’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넣자고 감독님께 제안하기도 했다.
어떤 장면이나 장치들을 제안했나?
‘정훈’과 싸운 후 ‘시후’가 버스정류장에서 엄마에게 전화하는 장면. ‘정훈’이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이 ‘정훈’의 상태를 말해준다. 그래서 관객들은 ‘정훈’의 심리 상태를 더욱 잘 알 수밖에 없다. 반면 ‘시후’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 대본에는 지금보다 더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께 ‘시후’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 같은 부분들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에서 엄마에게 전화해 죽을 끓인는 법을 묻는 장면이 나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엄마와 전화하는 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관객에게 시후의 상태를 전해주는 수단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그 장면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이 외에 제안해서 넣은 다른 신들이나 애드립같은 게 있나?
애드립은 깨알같이 계속 있었다. 특히 야구경기장에서 ‘정훈’과 하이파이브한 신은 잘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께서는 컷을 빨리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대본대로 연기한 뒤에도 뭔가 더 연기할 수 있도록 열어 두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애드립을 치기가 좋았다.
원래 나는 욕을 더 잘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귀엽게 욕을 하려고 애썼다(웃음). 이 영화에서 리얼하게 욕을 하게 되면, ‘시후’가 악에 바쳐 욕을 하는 것처럼 보여 사랑스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귀여웠다. 평상시에는 그것보다 욕을 더 잘한다는 얘기인가?
평상시에는 욕할 일이 없긴 하지만 아마 욕을 하게 된다면 무서울 거다(웃음).
<극적인 하룻밤>의 중심생각은 ‘사랑을 하다 좋으니 섹스를 할까, 섹스를 하다 좋으니 사랑을 할까’ 아니겠나. 한예리의 생각은?
나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만나 다른 연애를 하는 것이기에, 연애의 방법에 있어서도 정답이나 순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극적인 하룻밤>에서 ‘정훈’과 ‘시후’의 연애도 이런 방식으로 시작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정훈’과 ‘시후’의 사랑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의 중심생각에 공감한다는 건데, 그런 생각이 <극적인 하룻밤>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건가?
그렇다. 공감했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지금 시점에서 현실적이고 공감되는 연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이런 식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작업해본 적이 없다.
<극적인 하룻밤>을 선택한 이유가 단순히 공감했기 때문만은 아닐 텐데?
‘시후’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 캐릭터는 내가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캐릭터이자, 늘 기다려왔던 캐릭터이기도 하다.
‘시후’의 어떤 점이 매력있었나?
‘시후’는 엉뚱하면서도 귀엽고 발칙하다. 반면 유약하면서도 늘 외로워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청춘의 모습도 담겨있기에 현실감도 살아있다. ‘시후’의 귀여움, 외로움, 현실감을 잘 보여주기만 한다면 관객들에게 충분히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후’가 허브잎을 따서 먹는 장면이 귀여웠다.
그 신은 감독님이 미리 구상하신 부분이다. ‘시후’가 더 예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또한 이 허브들은 실제 식재료로 사용되는 것이잖나.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시후’의 직업과도 연결 지어 보여주고 ‘시후’의 자연스러운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 같다. ‘시후’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들이 더 나왔더라면 이 설정이 더 잘 드러났을 것 같아서 아쉽다. 감독님은 시후가 예쁘게 보이는 것을 좀더 중시하셨던 것 같다(웃음).
요가를 하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요가는 ‘시후’가 전 남자친구인 ‘준석’을 잊어가는 단계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준석’을 점점 잊어갈수록 요가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영화에서 ‘시후’와 ‘정훈’이 요가하는 장면이 더 나왔더라면, 엔딩신에서 ‘정훈’이 요가하는 이유가 더 와 닿았을 것 같다.
그런 감정선들이 다소 급박히 진행된 것 같아서 아쉽다. ‘정훈’이 ‘시후’에게 달려오는 엔딩신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딩신에서 ‘정훈’은 ‘준석’의 죽음을 목격하고 현실에 충실하자고 마음먹는다. ‘정훈’의 결심과 증폭되는 감정에 관객들이 함께 공감하며 설레길 바랐는데 관객들과 같이 호흡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장면에서 ‘시후’가 정색하면서도 언제든지 풀릴 준비가 되어있는 듯한, 흔들리는 눈빛이 좋았다(웃음).
‘난 지금 정리 중인데 왜 날 다시 흔들어’ 하는 감정이었다.
나도 ‘정훈’과 ‘시후’가 싸우는 신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 장면은 영화 전반에서 가장 힘이 있는 장면이라서 당시에도 긴장하고 촬영했다. 감정이 떨어질까봐 여러 번 촬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집중해서 찍었다.
본인이 ‘시후’가 겪는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나?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울면서 뛰쳐나가지 않았을까(웃음). 배신감이 많이 들었을 거다.
‘시후’는 원나잇 쿠폰을 제시하기도 하고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살도 결심하는 등 꽤 용감한 성격이다. 그런 성격을 감안하면 ‘정훈’과 ‘덕래’의 이야기가 더 커지기 전에 나가서 말렸을 법도 한데.
어떤 부분에서 ‘시후’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동안 용기를 내왔던 거다. 그렇기에 ‘정훈’이 자신에게서 도망칠 때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가만히 숨죽여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시후’의 그런 감정들에 대해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그때그때 달라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따로 없다. 때로는 감독님, 상대배우, 촬영감독님, 심지어 미술감독님이나 함께 하는 제작사에 따라 출연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것 같다.
다작을 선호하는 건가?
다작을 선호한다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한다.
작품의 흥행성이나 작품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잖나.
아직까지는 흥행을 고려하면서 연기하진 않았다. 그동안 나 혼자 책임지며 짊어질 영화가 없었기도 하고. 흥행을 고려하는 건 좀더 많은 연기를 한 후, 책임을 짊어질 때쯤일 것 같다.
최근까지도 단편영화에 많이 출연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단편영화를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게 주어지는 시나리오 한에서 좋은 영화라면 독립영화, 장편, 상업영화 가리지 않고 출연하려고 한다. 다만 상업영화를 하다 보니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 출연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장률 감독님과의 작품에 출연했던 것처럼 계속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가 다른 매력이 있나?
감독님마다 갖고 계신 색깔이 저마다 다를 뿐이지, 나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인터뷰를 하고 시사회를 크게 한다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무비스트와 6년 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어떤 감독님이 한예리 씨가 남자 감독님들이 좋아할 얼굴이 아니라고 해서 여자 감독님과 많이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남자감독님과 여자 감독님의 차이가 있나?
지금은 남자 감독님들도 내 얼굴을 좋아해준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차이라고 한다면, 여성이 주가 되는 이야기를 할 때 남자감독님과는 좀더 소통이 많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도 사실 감독님께 여자들에게 이런 부분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식으로 소통을 더 많이 해야 했다.
영화를 옆집에 있을 법한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게 하는 게 나의 강점이 아닐까. ‘시후’는 극의 초반에는 코믹하고 엉뚱한 캐릭터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현실감이 살아나야 하는 캐릭터다. 초반에는 ‘시후’로 웃을 수 있게 하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현실감과 로맨스에 무게를 실어 연기할 수 있는 게 나의 힘인 것 같다. 그래서 감독님이 날 선택하신 듯하다.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남성관객들은 베드신의 수위가 약하다고들 하더라.
재미있는 부분이다(웃음). 남성 관객들은 수위가 약하다고 말하고 여성분들은 수위가 높다고 한다. 아마도 남성분들은 노출의 빈도에 대해 얘기하고 여성분들은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강렬하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다. 남녀의 차이가 아닐까(웃음)?
그렇다면 한예리도 여성 관객의 입장인 건가(웃음)?
그렇다. 이게 흔한 베드신이 아닌데(웃음).
어떤 점에서 독특한 베드신인가? 관객들에게 어필한다면?
보면 안다.
생각해보니 영화에서는 두 번째 베드신이다. 앞서 <해무>에서는 박유천 씨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는데 베드신을 촬영하면서 긴장되진 않았나?
박유천 씨와 할 때나 윤계상 씨와 할 때나 긴장되거나 떨리진 않았다. 사실 베드신을 촬영하는 날은 여배우가 대접받고 배려받는 날이다. 오히려 윤계상 씨가 배려를 못 받지 않았나 싶다(웃음).
어떻게 배려를 받는다는 건가?
많은 스탭들이 내가 불편할까봐 걱정해준다. 최대한 내가 불편하지 않은 상황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스탭 수를 많이 줄인다. 또한 감독님하고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감독님이나 윤계상 씨도 내게 괜찮냐고 계속 물어봐 주시고.
시나리오에는 ‘정훈과 시후가 잔다’ 식으로 단순하게 표현돼 있다더라. 윤계상 씨와 어떻게 연기 합을 맞췄나?
사실 연기에 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됐다. 동선 정도를 논의했던 것 같다.
<해무>의 베드신도, <극밤>의 베드신도 죽음과 관련이 있는 베드신이다. <해무>에서는 생존형 베드신이었고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자살하려는 베드신이었고. 이 두 영화에서 각기 어떤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나?
<해무>는 워낙 무거운 소재를 다룬 영화이기에 베드신의 감정이나 행위 자체가 굉장히 슬펐다. 그렇지만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그런 무게감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베드신을 코믹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약에 취한 ‘시후’의 모습이 귀엽게 보이길 바랐다.
한예리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타깃층은?
20대 후반, 30대 중반까지 영화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후'랑 닮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나에게서 나온 시후이기에 나의 모습이 반영됐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예컨대, 만일 나였다면 ‘정훈’이 도망칠 때 ‘시후’같이 행동하지 못했을 거다. 그 장면에서 ‘시후’가 용기있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빨리 포기하는 타입이다. 상대가 지치면 미리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으로, 다소 방관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어떤 점에서는 ‘시후’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정훈’에게 붙은 타이틀이 ‘용기없는 요즘 남자’다. 그렇다면 실제 본인의 성격이야말로 ‘용기없는 요즘 여자’라는 건가?
용기가 없다기보다 그냥 마음을 접는 것 같다. ‘너와 나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다(웃음).
쿨함이 아닐까?
그렇게 쿨하지도 않은 것 같다.
첫눈에 반하는 타입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서서히 반하게 되고 한 번 좋아하면 오랫동안 좋아하는 타입이다. 물론 첫눈에 호감은 느끼겠지만.
연기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연애 경험이 어느 정도는 반영됐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공감되는 신은 뭔가?
내 연애 경험이 반영된 신은 없었다. 그렇지만 내가 연애를 하면서 느꼈던 설레임, 미묘한 떨림 같은 것을 스크린 밖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극장 밖을 나서면서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기 했다.
지금도 배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서도 무용수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더라. 독특했던 점은, 배우로서는 한예리인데 무용수로서는 본명인 김예리로 불리더라. 이름, 성이라는 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원래 무용을 했을 때에는 김예리라는 이름으로 계속 프로그램을 올려왔기에 내게는 이 이름이 굉장히 당연했다. 한예리는 상업영화를 시작하면서 얻은 이름이다. 무용에 있어서는 한예리 이외의 무용수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김예리라는 이름을 쓰는 게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
지금까지는 연하를 연기하는 게 잘 맞는 옷들을 입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할 때, 동안의 얼굴이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다.
앞서도 말했듯이 한예리는 스크린에서 볼 때보다 실물이 더 예쁘다. 실물 그대로가 스크린에 담기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나중에 기술이 더 발전해 좋은 카메라가 나오면 가능하지 않을까(웃음). 예전에 변요한 씨가 격려차원인지, 위로차원에서인지 내가 예쁘게 나올 때도 있고 예쁘게 나오지 않을 때도 있기에 더 좋겠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지치고 힘든 순간을 연기해야 되는 순간조차 예뻐 보인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내 얼굴은 상황에 맞게 힘든 감정이 묻어난다며 본인은 그게 더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고 말해주더라.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 용기가 생겼다.
30대 여배우다. 비록 연하를 연기하지만 30대라는 나이가 여배우로서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나이를 빨리 먹고 싶었다. 30대가 주는 안정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작 30대가 되니 그런 게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웃음). 항상 잘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이 나이 듦이 좋다. 또한 확실히 더 여유가 생기는 부분도 있더라. 현장에서도 불편한 것들에 대해 더 인내할 수 있게 됐고 나이 어린 배우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이 내 얘기를 더욱 잘 귀담아 들어주기도 했다. 소통하는 법이나, 조급함을 다스리는 것도 좀더 원활해졌다.
6년 전 인터뷰에서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고 무대에 서면 설수록 무섭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글쎄, <극적인 하룻밤>에서는 좀더 예뻐야지, <코리아>에서는 탁구를 열심히 쳐야지, 탁구만 잘 치면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웃음). <해무>에서는 여성의 오묘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좀더 수월하게 캐릭터의 포인트를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긴 하지만 연기 패턴같은 것은 없다.
확실히 그때보다는 안정돼 보인다.
이제는 시나리오를 들고 가서 감독님과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웃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도전하고 싶은 장르보다는 앞으로 어떤 역을 연기하게 될지 궁금하다. 어떤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내고 싶다. 나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 역할을 잘 연기하고 싶다는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이 든다. 다만 언젠가 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한다.
이전작을 끝내고 나면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전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좋은 감정들, 현장의 에너지, 현장에서의 소통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연기하는 것 같다.
불안감,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
아직까지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고 즐겁게 연기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시간이 해결해주도록 기다린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 일이 어느 정도 잊혀지곤 한다. 그리고 더욱 시간이 지나면 그 일에 대한 생각이 끊긴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흘려 보내는 건가?
30대니까 가능한 게 아닐까(웃음).
최근에 있었던 일 중 가장 즐거웠던 일이 있다면?
독립영화 작업을 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PD님, 제작부장님과 오사카로 함께 여행을 갔다. <극적인 하룻밤> 촬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4월이었다. 그곳에서 8만 엔, 한화로는 80만 원이 현찰로 들어있는 지갑을 주웠다. 손이 많이 떨리긴 했지만 왠지 이 지갑을 경찰서에 갖다 줘야 <극적인 하룻밤>이 잘 될 것 같았다(웃음). 영화가 잘 될 수 있을지 하늘이 테스트하는 기분이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건가(웃음)?
우리가 그 돈을 쓰면 왠지 <극적인 하룻밤>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웃음).
2015년 12월 8일 화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