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봉 했는데 주변 평이 어떤가, 반응이 좋은 거 같던데.
개봉관을 별로 못 잡은 데다 퐁당 퐁당 상영이라서 좀 아쉬운데 그래도 열악한 상황에 비하면 괜찮은 거 같다. 인터뷰 좀 전에 후배들이 와서 내 영화 내 돈으로 표 사주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웃음).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평은 나름 괜찮았다는 말씀?
좋다는 사람도 많고, 좀 아쉽다는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돌연변이> 참 좋게 봤다. 물론 인터뷰 때 아부성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이건 진짜다. 그래서 꼭 뵙고 싶었다(웃음).
고맙다(웃음).
언론 시사회 때도 질문이 나왔는데, 왜 하필 생선인가? 그때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는데 좀 자세히 듣고 싶다.
그게 르네 마그리트 라는 화가의 Collective Invention 이라는 그림이다.
그게 <돌연변이>의 영어 타이틀이더라.
그렇다. 집단적 발명? 이런 뜻의 작품인데.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체가 물고기고 하체가 사람인 모습이 좀 무기력하게 보였다. 그 당시 내 기분이 그래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웃기기도 했다. 인어공주의 반대 같은 거니까. 우스꽝스러우면서 뭔가 우울하고, 좀 불편해 보이고, 이미지가 되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박구(이광수 분)라는 캐릭터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 나이 또래의 청춘들을 대변한다고 했을 때 (내 세대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가장 문제가 ‘우리가 너무 무기력해 있는 거 아닌가, 너무 자신 없고 움츠러들고 있지 않나’ 인데 이 생각과 그 캐릭터의 이미지가 잘 맞아서 생선인간이란 캐릭터를 써 보면 어떨까 했다. 그리고 다른 작품이나 현대 미술을 많이 보기도 했다.
영화랑 별 상관없는데, 인어하면 사람들은 인어공주를 많이 생각하는데 원래는
위가 생선이고, 아래가 사람이다.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어, 감독님도 그 사진 봤나’ 했다.
진짜?(웃음) 마그리트 그림을 참고한 후 온난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봤다. 온난화 때문에 인간이 물속에서 살도록 진화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포스터가 있다. 지금 <돌연변이>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프랑스 현대미술하는 분 중에 생선을 가지고 실제로 잘라서 사람에 대입해서 작품을 만드는 분도 있더라. 여자 분인데 이름은 까먹었다.. 여하간 그런 작품들을 좀 많이 찾아봤다.
평소에도 미술에 관심이 많나.
미술 보는 걸 좋아한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도 좋아하고, 소설 보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하게 이것저것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연출은 시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보니까 비쥬얼라이징 할 때 고전 미술이나 현대 미술, 설치 미술 같은 걸 참고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건데 혹시 잘 그리기도 하나?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한다. 내가 중앙대 영화과를 나왔는데 그때 예술대랑 같이 붙어 있어서 서양학과 친구들이랑 참 친하게 지냈다. 술도 많이 먹고 서양 미술사라든지 공부하기도 했었고.
감독님도 그렇지만 감독들이 참 재능이 풍부하시다. 대본도 직접들 많이 쓰시고. 아무래도 영상화 하다보니까 시각이 남다른 거 같다.
남다르기보다는 다른 매체의 예술을 의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많이 접하고 좋아하는 거 같다. 연극도 되게 많이 보고 좋아한다. 음악도 그렇고. 오래전부터 밴드를 했다. 지금도 하고 있고.
그럼 노래도 잘 부르겠다.
노래는 그저 그렇고, 악기를 주로 다뤘다. 노래는 누나가 잘 한다. 성악가라서.(웃음) 기타나 베이스, 드럼 이런 거를 친구들이랑 취미 삼아서 할 정도로 하고. 같이 모여서 한 번씩 공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젊은데 혹시 결혼했나?
아직이다. 여자 친구는 있다, 아주 오래 사귄.
그럼 곧 좋은 소식 듣는 건가.
그 친구가 음악을 하는데 이제 막 뭔가를 이루려는 순간이라서 당분간은 아니다. 그 친구도 나도 올해 이런저런 일로 바빠졌다. 당장 계획은 없지만 그 친구랑 하는 건 확실하다.
음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돌연변이>가 문제의식을 많이 담고 있는 영화 아닌가. 하지만 무겁지 않고 난해하지 않아서 좋았다. 영화를 유쾌하게 만드는 요소가 두 가지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생선인간을 의외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점과 음악이다. 음악이 정말 좋았다. 혹시 여자 친구가 담당한 건가?
아니다. 그 친구는 대중음악을 한다. 음악 담당은 정현수 음악감독님이라고 작곡가로 많이 활동하셨는데 굉장히 실력 있는 분이시다. 나도 음악 작업하면서 많이 행복했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초창기에 스탭으로 참여해서 얘기할 시간도 많았고.
어떤 애기를 나눴나?
사실 음악은 멜로디도 그렇지만 어떤 악기를 쓰느냐가 중요하다. 악기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관악기나 현악기 등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어느 날 감독님이 아코디언 얘기를 하셨다. 아코디언을 쓰는 게 어떠냐고. 그런데 처음에는 아코디언은 좀, 너무 가벼운 악기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코디언 공연들, 정말 좋은 아코디언 음악들을 찾아보니까 장난스러우면서도 굉장히 서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더라.
영화 음악이 아코디언 연주였나? 막귀라서 미안하다. 좋다고는 느꼈는데 어떤 악기인줄은 몰랐다. (웃음)
아니다, (웃음) 다 아코디언은 아니고 메인 테마를 잡아서 아코디언으로 만들고 거기에 다른 악기를 첨가했다. 아, 오늘 OST 나왔다! 들으면서 왔다.
나도 듣고 싶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음악이 너무 튀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영화가 나오고 나서는 많이 만족해 하셨다.
궁금한 게 또 있다. 생선 인간의 모티브는 알겠는데 굳이 생선이라 지칭한 이유는? 어류인간, 물고기 인간 등 다른 명칭도 많은데.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어류인간’이라고 쓰다가 생선이란 단어가 주는 친근하면서도 웃긴 느낌이 좋아서 바꿨다. 좀 희화화 했다고 해야 하나? 우리 영화도 사람들한테 그런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어류인간’은 좀 학술적인 느낌이다.
그렇다. 영화 분위기와 맞지 않는 거 같더라.
<돌연변이> 각본 쓰면서 염두에 둔 배우가 있었나?
사실 처음에는 지금이랑 분위기가 좀 달랐다. 훨씬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라서 배우를 딱히 떠올리진 않았다. 완성이 되면서는 거의 내가 원했던 배우와 작업을 한 것 같다.
이광수씨가 얼굴은 안 나와도 키가 훤칠해서 시원스러운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처음에 박구(이광수 분)가 여자 친구 주진(박보영 분)을 찾아온 장면이다. 여자 친구는 몰래 나와서 ‘얘 팔면 얼마 주냐고 ’전화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벽에 기대어 무릎을 안고 앉아있는 옆 모습이었다.
고맙다(웃음). 그 장면도 그렇고 욕조에서 박구(이광수 분)와 상원(이천희 분)이 얘기하는 장면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생선 인간이 표정 변화가 없는데도 목소리 톤 때문인지 슬픔, 기쁨, 이런 희로애락이 다 느껴져서 좋았다.
이광수씨, 천희형한테 고맙뿐이다(웃음).
같이 본 기자와 얘기하다 보니 결말에 대해 의견이 좀 엇갈렸다. 개인적으로 박구의 선택, 박구가 보라카이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지 않나. 그것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좋은 해변에서. 굉장히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회에서 강제 탈락 당했기 때문에 암울한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더라. 감독님의 의도는?
나는 희망적인 결론을 좀 더 염두에 뒀다. 변 박사가 상원한테 이런 대사를 한다.
‘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데 부럽더라고’. 사실 그 다음 대사가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어떤 것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듯하다’라는. 나는 관객들이 박구의 선택을 탈락이나 도피로 보지 않았으면 싶었다.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등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아무 것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삶이라... 여운이 깊은 대사다.
나는 박구가 도피했다거나 탈락한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냈고, 다른 삶을 선택했고 행복하게 보이는 바닷가에서 헤엄치고.
상원이도 그렇게 들어가고 싶던 방송국을 나왔지만 원래 자기가 하고 싶었던 꿈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원래 기자가 되는 게 (그가 하고 싶은)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는데 그 자체가 목적이 되다보니 원래의 목적은 잊어버리는 상황이 많았지 않나. 결말에서 상원의 선택은 목적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 거다. 여하간, 결말이 희망적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었다. 우울하게 보신 분들은 아마도 그 앞에 깔아놨던 현실이, 실제 그게 우리 현실이니까. 거기에 감정이입을 해 그렇게 보신 게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변덕스러운 대중문화, 파업, 비정규직 등. 그 중 가장 부각된 문제는 청년 실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면 딱 그 나이대인 감독님이 이 얘기를 함으로써 관객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클 듯하다. 왜 연배가 너무 높은 사람이 얘기하면 그냥 공허한 외침이 되는 경우가 적잖이 있지 않나. 실제로도 취업에 대한 고민을 자주 접할 거 같다.
그렇다. 내가 이 시나리오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가 20대 말, 막 30대 들어갔을 때다. 내 주위 친구들이 다 취업준비,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특히 영화를 꿈꾸다가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기보다는 그냥 현실이었다.
감독님은 그래도 남들보다 좀 쉽게? 빨리 데뷔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많다. 일정부분 사실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제작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았을 거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처음에 CJ와 영상원이 산업협력프로젝트 공모전을 열었다, 내가 선정된 게 1회 였다. 원래 그 프로젝트 취지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거였다. 내가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영상원으로 대학원을 갔는데 그때 공모전이 생겼다. 그리고 공모자격이 대학원 1학년을 마치면 되는 걸로 자격이 바뀌었다. ‘어, 그럼 써봐야지’ 해서 공모했는데 마침 됐고 최종적으로 선정이 됐다. 그때 같이 올라갔다 떨어진 작품이 <도희야>다.
그런데 <도희야> 가 먼저 개봉했다!
그러니까(웃음). 운 좋게 <돌연변이>가 선정은 됐는데 그때부터 힘든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기업과 학교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까 준비가 덜 된 문제들과 조율할 문제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1년을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아 이거 엎어지나’ 하고 그때 술 많이 마셨다. 그때 살이 10kg 이나 쪘다, 이거 그 때 찐 살이다(웃음). 그러다가 1년이 지나고 드디어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간단히 얘기하면 그렇다. 그런데 그 과정의 우여곡절은 진짜 말하려면 끝이 없다.
최근에 <비밀> 감독분들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다. 감독님들 말씀이 아무래도 제작 조건, 특히 예산에 맞추다 보니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하더라. 보통 잘 찍었다고 생각한 부분도 나중에 보면 아쉬움이 생기지 않나. 감독님도 아쉬운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솔직히 감독입장에서는 아쉬운 것만 보인다(웃음).
특히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장 아쉬운 거는 역시 예산인거 같다. 사실 보영씨나 이천희씨, 이광수씨 등 상업 영화에서도 이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해줬음에도 예산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산학협력으로 진행하다 보니까 예산이 커질 수가 없고 어떻게든 맞춰야 했다. CG나 이런 부분도 아쉽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난 왜 모르겠나. 하려면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CG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데 그게 다 돈이니까. 또 촬영한 횟수도 적었고, 일반적인 상업 영화의 반 정도밖에 안 되는 횟수로 찍었다. 미술도 그렇고.
촬영을 겨울에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혹 다시 촬영하고 싶은 장면이 있다면?
그것도 돈이 없다 보니. 너무 추울 때 찍어서 스텝들이나 배우들을 많이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돈이 부족하니 아무래도 아무도 안 찍을 때 찍게 된다! 따뜻한 날에는 워낙 많은 영화들이 촬영을 하니까 피해서 찍다 보니 그렇다. 다시 찍고 싶은 장면… 따지자면 너무 많다.
그럼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뭔가? 내가 구태의연한 질문 좋아한다. 이런 ‘가장, 제일’ 이 붙는 질문들(웃음).
아까도 말했지만 상원이랑 구가 욕조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또 보영씨가 처음에 나와서 헛소리 하는 장면(웃음).
나도 그 장면 재밌었다. 보영씨 너무 귀여웠다!
그 장면이 사실 배우의 개인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그러니까 에너지로 돌파하는 장면이다. 우리가 시간이 많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던 장면인데 보영씨가 너무 잘하는 거다. 준비를 많이 해왔더라. 너무 잘해서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사실 그런 일이 촬영하면서 별로 없다. 그래서 빨리 끝났으니 맛있는 거 먹자 했다.
그 장면에서 보영씨 매력이 잘 드러났다, 원체 귀엽지 않나. 요즘 <오 나의 귀신님>으로 한참 인기 있기도 하고.
완전 동의한다!
작품얘기는 이 정도 하고 감독님한테 궁금한 게 많이 있다. 꿈이 원래 영화감독이었는지?
아주 어릴 때는 목사님 이었는데(웃음). 지금은 교회 안 다닌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거 같다.
그럼 영화감독이 되는 게 주 목표였던 건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어, 직접 만들어 볼까?’ 이런 건 아니라.
그렇다. 감독이 되고 싶었고 각본을 쓰는 게 가장 연습이 되니까 각본을 많이 썼던 거 같다.
다른 감독님들도 각본을 많이 쓰긴 쓰는데 감독님은 유난히 시나리오 쓰는데 재능 있는 거 같다.
그렇진 않다. 사실 처음에 영화 학교를 갔는데 당황했던 게 영화 한 편을 만드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였다.
학생들도 돈을 내나? 개인적으로?
돈을 내서 만든다. 학비 자체도 비싼데... 단편 영화 하나 찍는데 아르바이트를 방학 내내 해도 힘들고. 우리 집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고. 또 그때는 사실 집안 형편이 더 힘들었다. 도저히 힘들어서 영화를 해야 하나, 계속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두려고도 했다. 직장 다니고 월급을 받아서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나 싶고.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 형들한테 얘기 들어보니 제작지원이라는 게 있으니 그걸 한 번 도전해 보라는 거다.
제작지원에 당선이 되면 제작비를 준다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당선이 되냐 물으니 다른 거 없고 무조건 시나리오가 좋아야 한다고.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엄청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시나리오는 빈손으로도 쓸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엄청 많이 썼다. 질보다 양이라고 쓰다 보니 제작지원을 받게 되더라. 여기 저기 당선도 되고 졸업할 때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장점이 된 거 같다. 많이 쓰다 보니 내가 다 찍을 수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주게도 되고, 그렇게 준 작품이 상도 받고.
<세이프>가 칸느영화제 단편 부문상 탄 거 늦었지만 축하한다. 아직 못 봤는데 짧지만 강렬하다고 칭찬 많이 하더라.
진심 고맙다(웃음).
개인적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만들고 싶나.
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하기 전에는 좋아하는 장르가 있었다. 그런데 학교 와서 공부해보니 좋은 영화가 너무 많은 거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아하는 감독 중에 빌리 와일더 감독이 있다. 그분이 상업적인 시스템 안에서 여러 장르의 영화, 즉 코미디면 코미디, 르와르면 르와르, 법정 드라마 등 굉장히 사회성 짙고 풍자적인 영화도 만들고, 모든 장르를 만드신다. 그런 식으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장르에 대한 실험도 많이 하면서. 딱 한 장르를 선택하긴 어려울 거 같다. 앞으로 ‘이 감독은 이런 영화 만드는 감독이야’ 이런 것보다. 친구가 하는 광화문 하우스에서 음악 다큐멘터리 같은 걸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고, 굉장히 상업적인 액션 영화 같은 것도 만들고 싶고. 다 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장르는 다양해져도 감독님이 담고 싶은 일관된 가치가 있다면?
그게 없을 수는 없는데 딱 하나라기보다는 그 영화의 형식과 이야기, 주제에 따라 정해질 거 같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감독님인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아주 추악하고 아주 절망적인 세계를 그리더라도 인간에 대한 어떤 애정이나 희망, 이런 것을 놓지 않으신다. 난 사실 그런 점이 이창동 감독님과 다른 감독님들을 구분 짓는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을 닮고 싶은 건 있다. 현실은 사실 굉장히 어둡고 밝지만은 않지 않나. 때론 감당하기 힘들 만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우리는 수 만년 동안 살아왔다.
지금까지 쭉 얘기하다 보니 감독님은 희망을 중요시 하는 거 같다.
인간에 대한 애정, 가능성, 희망을 놓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 어떤 장르든지. ‘뭐 이런 거 아냐?’라고 냉소적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 더 있는 영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가 좋다. 사실 잘 만든 영화는 많이 있다. 획기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많고.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 뭔가를 남기는 거, 영화를 관통하는 일관된 뭔가를 남기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거 같다.
얼마 전 어쩌다 보니 류승완 감독님을 뵈었다. 나도 <돌연변이> 감독으로서 참석하긴 했지만 ‘아, 저런 분이야 말로 진짜 영화감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류승완 감독님은 9편의 장편영화를 만들면서 겹겹이 감독으로서의 역사를 쌓아오셨는데 그게 너무 부럽고 멋있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감독님만의 뭔가를 갖고 있다는 거! 9편 동안 때로는 칭찬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판 받기도 하면서 어떤 단단한 류승완 감독의 지침같은 게 만들어진 거 같았다. 바람이 있다면 그런 감독?, 예술가로서 직업인으로서 한 겹 한 겹 싸여서 ‘전 이런 감독이에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감독, 내가 쌓아온 작품으로 말할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 <베테랑>도 재밌게 봤고.
이건 좀 생뚱맞은 질문일 수 있는데 우리나라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눈치 보이나?
눈치 보인다기보다는 너무 많아서(웃음). 농담이다.
‘가장’이라고 물어보지 않았나(웃음). 왜냐면 최근에 영화를 만드셨기 때문에 생생한 경험이 나올듯하다.
사실 내가 이제 겨우 한 편 찍어놓고 그런 걸 말 한다는 게 우습다. 또 나도 다 잘 모르고. 그냥 생각나는 건, 개인적으로 대중이 있고 영화가 있는데 대중과 영화가 같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면, 대중을 만족시키는 영화는 물론 좋은 영화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영화의 가치 중 하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대중의 기호를 따라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비슷비슷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
또 한 가지는 좋은 영화는 대중의 영화 보는 안목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같은 영화를 보면 대중들이 생각하지 못했었던 비주얼, 대중들이 한계라고 생각한 부분을 넘어서 제시해준다. 그런 영화는 관객들이 같이 성장할 수 있게 한다. 요즘은 너무 관객을 따라가고만 있지 않나, 시스템 자체가. 그런 영화를 만들려면 사실 도전 정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만드는 사람이 도전을 안 한다기보다는 구조 자체가 뭐랄까 도전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든다.
예를 든다면?
영화 촬영할 때 멀티캠을 많이 쓰는데 멀티캠은 사실 안전한 방식이다. 나중에 편집하기도 쉽고 실수할 확률이 적어진다, 그런데 분명한 건 힘이 분산돼서 좋은 샷, 명확한 인물은 나오기 힘든 방식이다. 또 멀티캠으로 찍으면 영화들이 비슷비슷해진다. 그러면 관객들이 비슷비슷한 영화를 보게 되고 다양한 안목을 키우지 못할 수도 있다. 좀 천편일률적으로 제작되는 면이 있는 거 같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막연하게 이런 건 좀 아쉽지 않나 싶은 거다. 내가 뭐라고 이런 얘기 하겠나, 한 다섯 편쯤 만든 후에 얘기하면 몰라도(웃음).
그럼 다섯 번째 작품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질문하겠다(웃음). 여하간 감독님이 말한 것처럼 점점 상업적인 영화만 성공하는 거 같다. 새로운 시도는 사라지고. 이게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 듯싶다. 영화계도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일정부분 그렇다. 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 나는 영진위에 굉장히 고마워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제작 지원 받고, 공부도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영진위가 점점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 대한 지원을 줄여가는 거 같아서 심각한 문제인 거 같다. 더 늘려야 되는데 말이다. 왜냐면 독립영화나 단편영화는 자양분이다. 상업영화에서 그런 시도를 하기 힘들다면 독립영화나 단편영화에서 여러 시도를 해보라고 지원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하는데 그런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 대신 어떤 잘 만든 단편영화나 영화제에서 상 받는 영화, 이런 것에 집중하는 거 같다. 그런 것 보다 오히려 영화가 다양화 될 수 있게 지원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잘 모르지만.
이제 마지막 질문 들어가겠다. 인터뷰 말미에 매번 하는 아주 판에 박힌 질문이다! 감독님 인생의 영화가 뭔가?
너무 많다.
그래도 고른다면.
인생의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 집에 가서 꼭 <빌리 엘리어트>를 본다.
좀 의외다.
그 영화는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냥 편안하고 좋은 영화다. 물론 그게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니다. 계기가 된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다. 그 영화도 무지 좋아하고, 아까 말한 빌리 와일더 감독 작품들도 좋아하지만. <빌리 엘리어트>는 진짜 좋아한다. 술 취하면 보고 싶고 꼭 본다. 보면 첫 장면부터 운다. 첫 장면이 뛰면서 발레 연습하는 장면이다. 사실 그 이후 장면과 내용을 잘 알고 있는데, 술 취해서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난다. 나 어렸을 때 생각도 나고. 가난한 탄광촌에서 자란 친구가 꿈을 이루는 얘기가 너무 좋다. 영화적인 잣대로 보게 되지 않는 영화, 그냥 좋은 영화다. 남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을 때. 아, 뭔가 창피하다! (웃음)
술 취할 때 보고 싶은 게 정말 좋아하는 거다(웃음).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다섯 번째 작품 후 인터뷰, 예약한 거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다!(웃음)
2015년 11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 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