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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워내야 나를 얻는 딜레마 <특종: 량첸살인기> 조정석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얼마 전 <특종: 량첸살인기>의 VIP시사회를 했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주변 분들은 <특종: 량첸살인기>를 나쁘지 않게 보신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나?
<특종: 량첸살인기>를 제일 처음 봤던 건 기술시사회 때다. 저런 장면들이 있었구나, 저렇게 결말이 났었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영화를 제대로 보진 못했다. 언론시사회 때 비로소 <특종: 량첸살인기>를 제대로 봤다. 나는 그냥 재밌었다.

<특종: 량첸살인기>를 선택한 기준은 뭔가?
일단 나는 작품을 선택할 때 시나리오를 제일 우선한다. <특종: 량첸살인기>의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다. 다음 내용은 어떻게 될까, 허무혁이 어쩌려고 이런 행동을 하지? 조마조마해 하면서 이야기에 흠뻑 취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특종: 량첸살인기> 시나리오를 받고 다음날 출연하겠다고 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뚜렷이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이런 문제의식이나 메시지에 대한 공감이 출연에 영향을 미쳤나?
사회적인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특종: 량첸살인기> 자체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기자간담회 때 기자의 모습이 왜곡돼 있다거나 혹은 각종 사회적인 문제들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시나리오에 기자의 모습이나 사회적인 문제의식들이 녹아 있단 걸 깨달았다. <특종: 량첸살인기>는 단지 재미있어서 선택한 작품이고 촬영할 때도 문제의식, 사회적인 문제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특종: 량첸살인기>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다는 건가?
말 그대로 <특종: 량첸살인기>의 시나리오 자체가 재미있었다. 극 중 허무혁이 처한 상황들이 만화책 보듯 그려졌다. 허무혁이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이런 선택을 했을까 이해가 됐고 이 다음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오마이갓! 하면서 읽었다. 허무혁이 자꾸만 악수 중의 악수를 두면서 상황이 꼬여가는 게 정말 웃겼다. 탄탄한 구성력에서 재미를 느꼈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특종: 량첸살인기>는 조정석이 처음으로 원톱주연을 맡은 영화다. 부담감은 없었나?
내가 원톱으로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특별한 부담감을 갖고 <특종: 량첸살인기> 작업을 한 건 아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늘 하던 대로 열심히 했다. 차라리 완성본이 나오고 개봉을 앞둔 이 시점이 더 부담된다. 언론시사회 때도 떨렸다. 게다가 첫 질문부터 ‘기자의 모습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아서 더욱 놀랐다. 만일 부담감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아예 <특종: 량첸살인기>에 도전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원톱주연을 맡은 건 나에게 기회일 수 있다. 이런 기회가 생겼을 때 도전을 하느냐 안 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도전을 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노덕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노덕 감독님과 작업을 하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노덕 감독은 굉장히 점잖으면서도 진중한 면이 있고 또한 위트가 있다. 세밀하고 디테일하면서도 호쾌한 한 방을 가진 사람이다. 감독님의 이런 면모가 많이 느껴져서 믿음이 갔고 작업환경이 나에게는 인간적으로 와 닿았다. 또한 노덕 감독님이 <특종: 량첸살인기>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지점들, 그리고 영화에 바라는 바가 나와 잘 맞아 떨어졌다. 허무혁이 이 상황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향성같은 것들이 감독님의 의견과 일치했다.

<특종: 량첸살인기>는 노덕 감독이 <연애의 온도> 이전인 2003년도부터 구상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그 얘기를 감독님 본인에게서 들었는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란 점에서 노덕 감독님이 <특종: 량첸살인기>에 애정이 있다고 단적으로 느꼈다.

허무혁은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고만 하는 허술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성격이 점차 변화한다. 다소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 허무혁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허무혁 캐릭터 성격의 논리적인 비약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특종: 량첸살인기>에서는 초반부터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확고했다. 그래서 설사 캐릭터가 논리적인 비약이 있는 행동을 할지라도 캐릭터의 성격이 이를 충분히 납득 가능하게 만들어 주리라 생각했다. 나중에 허무혁이 저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고 외쳐도 정작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라도 가야겠다, 라는 선택을 했던 것도 나는 이해가 됐다. 나는 캐릭터에 대한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한 채 이야기에 흠뻑 취해서 읽었다. 다른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극 중 수진이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캐릭터 성격의 맥락에서 이 역시 충분히 이해됐다.

‘허무혁’이라는 캐릭터는 감정의 폭이 크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했나?
허무혁이 감정의 폭이 큰 캐릭터니까 어떻게 준비를 해야겠다기 보다는 허무혁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고자 굉장히 노력했다. 그 상황에 몰입하면 허무혁의 어떤 면면들이 나올 게 아닌가. 마치 나무를 잘 가꾸면서 숲을 풍성하게 만들어야겠다는 느낌이었다. 긴장하고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들을 잘 쌓아가지 않으면 후반부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흐트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허무혁이 느끼는 불안한 감정들을 힘 있게 끝까지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9시 뉴스를 많이 봤다고 들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보여주려 한 건가, 아니면 상황 속의 사람을 보여주려 한 건가?
전문직을 보여주기 보다는 위기에 처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비유를 해서 말하자면,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저금통을 깨서 오락실에 간 걸 엄마에게 들켜서 거짓말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오락실 주인 아저씨가 ‘너 왔잖아, 왜 잡아 떼’ 하고 편을 들어주지 않는 바람에 종아리까지 맞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너 학교 생활은 어때? 친구 관계는 어떠니? 어떤 고뇌가 있어? 어떤 아픔이 있기에 저금통에서 돈을 빼 오락실에 갔니’하며 파고들지는 않지 않나.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이 이야기가 재밌다고 했던 건 허무혁이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이야기를 밀도 있게, 재미있게 끌어주니까 그랬던 것이고 그런 상황들에서 겪는 감정에 공감하고 싶었을 뿐이다.

조정석이 맡은 허무혁은 기자 역할이다. 이 역할 이후에 기자를 다르게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든가, 혹은 기자들이 다르게 보였던 지점이 있나?
기자들이 좀 더 좋은 쪽으로 보였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서의 기자를 십분 이해했다. 왜냐하면 나는 직장인이 아니기에 평소에 친구들이 상사가 술을 너무 많이 먹였다든지 혹은 쪼아댄다든지 하는 얘기들을 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감정이 어떤 걸까 고민하며 접근하기 보단 그저 위로해줄 뿐이었다. 그런데 허무혁을 연기하면서 직장인이 겪는 상황적 압박들이 느껴지니까 그 동안 몰랐던 직장인들의 감정이 내 마음으로 전해졌다. 기자들이 겪는 데스크에서의 압박, 특종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 먹고 살 길이 없는 와중에 실오라기 하나라도 잡아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겠다, 하면서 허무혁이 민방위나 지방방송이라도 들어가려 하는 절박함이 이해됐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조정석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감사하다. 정말 극찬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 말하자면 후반부의 스릴러, 긴장김이 있는 장면에서 조정석의 연기를 처음 보시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간 볼 수 없었던 조정석의 모습을 봤기에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다.
앞서 기회가 생기면 도전한다고 말했다. 도전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뭔가?
그건 내 성격인 것 같다. 예전에 함께 교회에 다니던 누나가 있었다. 당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던 나는 시험을 본 걸로 속상해하고 있었다. ‘아 누나, 첫째 날이랑 둘째 날에는 기가 막히게 시험을 잘 봤는데 오늘은 완전히 망쳤어’하고 누나에게 푸념을 늘어놨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하던 그 누나는 ‘코피 흘리면서 공부해 본 적이 없다면 그렇게 체념하고 푸념을 늘어놓을 자격없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지만 그때 교훈을 얻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이 내 성격하고 잘 맞았다. 나는 친구들과 농구를 할 때 거의 진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20점 내기에서 19 대 12 점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자고 말한다. 끝까지 해 보고도 패배한 다음에야 내가 졌다는 걸 인정한다. 인생은 한 번뿐인데 그 한 번뿐인 인생을 조마조마해하고 걱정만 하며 망설이기보다는 끝까지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사고방식에 의해 형성된 나의 성격인 것 같다.

연기는 몹시 어려운 길이다. 주위에서 오랫동안 무명 생활로 힘들어 하는 분들도 계시지 않나. 그런데 왜 하필, 연기에 도전한 건가?
한 마디로 감정훈련을 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소모하는 과정 자체가 나의 적성과 잘 맞았다. 연기는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연기는 내가 느끼고 깨달아야 표현할 수 있는 거고, 연습은 표현하는 능력을 키울 뿐이다.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 모니터링 해주는 선생님이 계시는 거고. 결국 연기는 연기술인 거다. 그 기술을 발전시키는 거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거지만 연기를 하기 위한 재료는 나의 깨달음이나 감정적인 부분이다. 이 재료를 쌓는 과정에서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이 되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게 연기의 매력인 것 같다.

연기가 본인의 적성에 맞다고 느낀 계기는 뭔가?
나는 연기를 놀이처럼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를 떠올리며 심각하게 접근한 게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연기는 놀이, 노는 것, 말 그대로 PLAY다. 제일 처음 연기를 해 본 건 교회에서였다. 문학의 밤 때 친구가 자기는 성가대를 할 테니 나는 연극을 해 보라고 했다. 뭣도 모르고 그렇게 시작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보더니 소질이 있다고 했고 나 역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연기가 내 꿈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던 시기에 기타가 내 마음에 들어와서 결국 기타를 전공하기 위해 3수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사님이 신촌의 한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나를 불러냈다. 전도사님이 식사를 하시면서 내게 연기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 너는 기타도 좋지만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 당시에는 전도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 나의 달란트를 발견한 듯 와 닿았다. 그래서 CDMA라는 크리스천 드라마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했다. 당시 연극을 연출했던 서울 예대 고학번 출신의 형에게 한 달 동안 교습을 받고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렇게 연기로 전향을 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꼬질꼬질했겠나. 우리 집의 형편이 좋은 편도 아니었고 친구들은 대학가서 미팅하는 데 반해 나는 독서실과 연습실만을 오갔으니. 그러던 내가 대학이라는 곳에 붙었구나, 나도 대학을 왔구나, 싶은 게 정말 기뻤다. 아직도 입학식 날이 기억이 난다. 서울 예대 정문에 발을 들여놓기 직전 딱 멈춰 서서 ‘내가 여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작을 내겠다’ 하고 들어갔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에 붙고 나서,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열심히 했다. 20대의 기억은 열정, 눈물, 이런 단어들만 떠오른다. 어우 입이 터졌는데(웃음), 학교 다닐 때 막심 고리끼의 ‘밑바닥에서’라는 연극의 알콜 중독자를 맡았다. 4개월 동안 준비해서 중간고사처럼 치르는 연극이었는데, 그 준비 기간 동안 아침 저녁으로 술을 마셨다. 술기운을 항상 느끼기 위해서다. 그동안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같은 감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봤는지. 20대 내내 그런 열정이 넘쳤던 기억이 난다.
실제 성격에서 끄집어내기보다는 시나리오 상에 있는 인물을 만들어 연기를 하는 편인가?
시나리오의 인물을 만들어내 연기를 하고자 집중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조정석이라는 몸뚱아리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이기에 조정석의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조정석을 비워내려고 노력하는 게 어쩌면 나의 숙제인 것 같다. 조정석을 비우고 그 곳에 캐릭터 이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완벽히 나를 비워내는 게 가능한 경우가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몰입으로 요약해도 되는 건가.
완벽한 몰입이 맞는 말일 것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완벽히 배역에 몰입하는 타입의 배우다. 그는 실제로 배역 그 사람이 되려고 하고 그 인물로 살고자 하며, 심지어 한 달 동안은 아예 그 사람이 돼서 살아가기도 한다. 나도 완벽히 배역 자체가 되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조정석이라는 인물의 인생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그래서 현장에서만큼은 나를 버리고 극중 캐릭터가 되고자 노력한다.

배역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는 과정이 어려울 것 같은데.
배역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는 건 어렵다. 예전에 ‘스프링 어웨이크닝’이란 공연을 할 때는 시종일관 우울했다. 그때 당시에는 조정석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도 없다. 말씀드렸듯이 열정이 넘칠 때라서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짜 이 배역이 되고 싶었다. 이 인물이 나중에 자살로 치닫을 때의 감정, 그때 그는 어떤 마음일지 아예 이 인물이 돼 보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연극이 끝나고도 우울했고 평상시에도 위축돼 있었다. 그때 내 친구가 공연을 보러 와서는 내가 너무 우울하고 다크해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석아, 너도 너의 인생이 있는 거잖아’라고 얘기해줬다. 그때 조정석이란 인물의 삶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 조정석은 조정석, 연기는 연기, 무대 위는 무대 위, 그렇게 차이를 두면서 정확히 해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됐고 지금은 어느 정도 숙련이 된 느낌이다.
중년의 배우들은 정신수양을 위해 등산을 많이 간다더라. 조정석은 정신수양을 위해 따로 하는 게 있나?
특별히 정신수양을 위해 활동을 하진 않는다. 다만 음악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사색을 많이 하는 편이다.

사색은 집에서 혼자 하는 건가(웃음)?
집에서 혼자 할 수도 있다(웃음). 학창 시절에는 감수성이 예민해서 시도 몇 자 적는 학생 중 하나였다(웃음). 그리고 운치 있게 최신가요보다는 옛 가요를 찾아듣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내가 늦둥이 막내라서 형과 누나들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내가 노는 모습을 보면 애 같은데, 생각하는 것은 애어른 같은 구석이 있다고 주변에서 말하더라.

요즘에는 어떤 음악을 듣나?
요즘에는 내가 뭘 듣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쁘다(웃음). 최근에는 '슈퍼스타K'에 나오는 클라라 홍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클라라 홍의 목소리가 바쁜 와중의 나를 한숨 돌리게 해 준다.

클래식 기타를 좋아했던 이유는 뭔가?
클래식 기타를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참 신기하다. 그저 자연스럽게 좋아했다. 태권도도 어릴 적 엄마 아빠에게 끌려서 자연스럽게 했었고 7살에 이미 1단을 땄다. 태권도를 자연스럽게 하게 됐듯 클래식 기타도 그냥 자연스럽게 했다. 그러고 보면 태권도, 클래식 기타, 연기 모두 무언가를 탐구하고 궁금하면 못 참는 성미에서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인내하면서 연습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건가? 성격이 정말 애어른스럽다.
내가 뭘 집중하면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못한다. 그래서 꼼꼼한 것 같기도 하고 끈기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 누가 왜 이렇게 땀을 흘려, 옷 좀 벗어, 해야 아 내가 땀을 흘리는구나, 하는 성격이다.

외골수인 건가?
약간 그런 것 같다(웃음). 문자를 하다가 누가 말을 걸면 ‘잠깐만, 미안해’ 하면서 문자를 보내고 나서 왜 불렀냐고 물어보는 타입이다. 집중력이 좋은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내가 이것만은 배우로서 철저히 하겠다는 게 있나?
드럽게 없다(웃음). 사실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다. 진지한 편이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재밌고 유쾌하게 살고 싶은 거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는 거다. 내가 고지식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이 고지식한 면이 나의 상상의 나래를 자꾸 방해한다. 그래서 자꾸 철없는 생각을 해 보려 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 철저하게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것보다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철없는 발상을 많이 하고자 한다.

실제 성격은 진지한 것 같다.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성격과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사이에 괴리가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의 역할 중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한 건 뭔가?
‘오 나의 귀신님’에서의 강선우와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를 섞으면 내 실제 성격과 비슷할 것 같다. 강선우처럼 버럭버럭하진 않지만 살갑게 말하지 못하고 퉁명스러운 편이다. 물론 배려하고 챙기는 마음은 분명히 있다. ‘밥 먹었어, 밥 안 먹었으면 밥 먹어, 왜 안 먹어’ 하면서 퉁명스럽게 챙기는 타입. 그리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할 때에는 납득이처럼 편하게 장난을 잘 친다. 강선우의 퉁명스러움과 납득이의 장난기를 섞으면 내 성격과 비슷할 것 같다.

3수를 하고 눈물과 고생으로 점철됐던 20대에 비하면 지금은 정상에 있는 셈이다. 앞으로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가 두 편이나 있고.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점점 무게감이 생기는 것 같다. 아까도 다른 기자님이 공연하는 후배 중에 나를 롤모델로 하려는 분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가며 만나는 후배 중에도 나를 보며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진짜 잘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선배님도 계시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런 무게감을 갖는다는 게 어떻게 보면 웃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 한 명만이라도 나를 롤모델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낀다면, 같이 열심히 해야한다는 무게감이 든다. 20대에는 열정이 넘치다 못해 눈물이 났다면 30대에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힘들어서 눈물을 흘렸다기 보단, 열정이 너무 넘치는데 욕심만큼 연기가 잘 안 되니까 자기 자신이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있다(웃음). 힘들어서 눈물 흘린 적이 많다(웃음).

<건축학개론> 이후 탄탄대로다. 당시에만 해도 감초 조연이 나타났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서 주연을 맡더니, 이젠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원톱주연까지 맡았다. 감회가 어떤가?
<건축학개론> 당시 나에게 대운이 들어왔었나 보다(웃음). 그 뿌듯함 중 하나만을 말해보자면, <건축학개론> 시사회 때는 의자에 파묻혀서 조마조마해 하면서 봤다. 내 스스로도 신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관객들도 신기하다는 듯 봐 줬던 것 같다. 그런데 VIP 시사회를 할 때에는 사람들이 내가 나오는 장면을 익숙하다는 듯이 봤다. 그때 ‘이야, 정석이 많이 컸네, 뿌듯하다’ 싶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보다 더 뿌듯하고(웃음), 어깨가 무겁다. <특종: 량첸살인기>가 정말 흥행했으면 좋겠다. 사실 영화 촬영할 때는 이런 부담감이 없었다. 그런데 <특종: 량첸살인기>기술시사회, 언론시사회도 하고 개봉을 앞두니까 정말 미치겠다.

공연 출연 계획도 있나?
내년에는 공연을 하고 싶다. 작년에는 ‘블러드 브라더스’에 출연했지만 올해는 못했으니 내년에는 연극을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 그러나 아직 출연이 예정된 연극은 없다.

바빠서 좋을 것 같다(웃음).
앓는 소리 해도, 어차피 다 이겨내야 하는 거니까 다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진심으로 바빠서 좋다(웃음).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 글_이지혜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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