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영화? 내 방식대로의 수다 <스물> 이병헌 감독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첫 장편 상업영화 연출작 <스물>은 첫 장편 독립영화 연출작 <힘내세요, 병헌씨>와 느낌이 여러 면에서 다를 것 같아요.
그렇죠. <스물>은 <힘내세요, 병헌씨>와 규모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거든요. 하지만 긴장감에 있어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헌씨>는 흥행을 위해 찍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개봉 전에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세 군데의 영화제에서 상영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조심스레 기대했는데 근처도 못 가더라고요(웃음). 현실의 냉혹함을 깨달았죠. <스물>은 영화 산업 시스템이 제공하는 테두리 안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제작한 것 같아요. 신인 감독치고 간섭을 적게 받았거든요. NEW가 그런 부분을 굉장히 잘 진행하는 것 같아요.

시사회 반응은 어떤가요?
좋은 편인 것 같아요. 뒤풀이 분위기가 좋아서 기뻤어요. 시사회 반응이 나쁘면 뒤풀이 때 앉아 있기 힘들거든요(웃음).

반응이 좋은 만큼 흥행에 기대가 또 다시 생길 것 같아요.
<힘내세요, 병헌씨> 같지는 않겠죠? (웃음) 그러면 안돼요. <스물>은 제 돈으로 제작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잘 돼야 해요.

<스물>의 시나리오를 언제 처음 썼나요?
배우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의 실제 나이와 비슷한 20대 중반에 초고를 썼어요.

연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스물>은 시나리오를 막 쓰기 시작한 20대 중반에 처음 계약한 작품이에요. 당시에는 나이도 어렸고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연출은 생각할 수도 없었어요(웃음). 이제 겨우 작법에 관한 책을 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연출을 맡길 수는 없잖아요. 그때는 순전히 작가로서 일한 거예요. 그런데 <스물>이 계속 투자를 못 받아서 제작이 중단되는 바람에 시나리오만 몇 년을 떠돌았어요. 6~7년 쯤 전에도 지금 <스물>을 제작한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사서 제작해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무산됐고요. 그런데 <힘내세요, 병헌씨>를 개봉한 후 대표님이 찾아와서 <스물>을 직접 연출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스물>은 제 새끼인데 당연히 해야죠. 그래서 곧장 각색 작업을 시작했어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할 기회가 생겨서 굉장히 기뻤을 것 같아요.
감회가 남다르고 뿌듯했어요. 연출을 맡게 된 과정이 조금 드라마틱해서 재밌기도 했고요.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 준비한 시나리오가 10년 만에 상업영화 연출 입봉작이 된 거잖아요.

각색할 때는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썼나요?
초고는 20살이 아닌 20대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였어요. 20대의 버킷 리스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도 있었고, 여러 가지 버전이 있었죠. 그런데 각색하려고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니 <스물>이 왜 그동안 투자를 못 받았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인물도 세 명인데 각각의 주인공들이 20대 초반, 중반, 후반에 느끼는 감정들을 모두 한 번에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거죠.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산만하고 기획 포인트도 뚜렷하지 않았어요. 두 시간짜리 영화로 제작되기는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시트콤으로 풀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20대에서도 특정한 시기를 선택했어요. 사실 어느 시기를 선택해야할지 크게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스물이죠.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감정을 스물에 가장 크게 느꼈거든요.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도 스무 살을 떠올리면 첫사랑처럼 아련하게 느껴지고 여러 가지 추억이 생각나요. 그 감정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스물>은 남자 캐릭터들이 펼치는 발칙한 코미디잖아요. 어떻게 보면 캐릭터들이 찌질하고, 더럽고, 되바라지게 보일 수도 있는데, 스무 살이면 왠지 귀엽게 용서가 될 것 같았어요. 각색할 때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영화를 어느 세대의 감성에 맞출지를 결정하는 거였어요.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낀 현재 스무 살들의 정서와 제 정서가 너무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영화를 현재 10대, 20대 청년들의 감성에 맞춘다면 3~40대 이상의 관객들은 추억하기 힘든 아이들만의 영화가 될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만일 제가 기억하는 스무 살의 정서와 스타일에 맞는 코미디를 만든다면 현재의 10대, 20대 아이들도 재밌어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취재를 통해 조사한 청소년들의 외계어 같은 언어는 모두 잊어버리고 내 정서대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웃음).
자연스럽게 본인의 20대가 많이 투영됐겠군요.
그래서인지 <스물>의 시대 배경이 2002년 월드컵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라고요(웃음). 제 정서대로 만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영화 속 에피소드는 개인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일반 남성이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인물들이 느끼는 고민과 감정이 잘 공감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어요.
<스물>은 각 신마다 의미는 있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중심 이야기는 없는 영화에요. 자극적인 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영화의 코믹한 콘셉트를 위한 설정인데, 기둥 역할을 하는 이야기를 제거해야 인물들이 더 자유롭게 캐릭터 플레이를 하며 영화 속에서 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정 감정이 너무 부각돼서 이야기가 슬퍼지면 코믹한 톤이 깨지기 쉽고 지루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감정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노력한 면이 있어요. 강의실 신이나 은혜와 치호가 헤어지는 신처럼 진지한 감정 신을 촬영할 때는 스탭들에게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 지나쳐서 오그라들지는 않는지 물어봤어요. 이야기의 전형적인 틀 안에서 감정적인 장치들을 어설프게 시도하는 대신 기존에 목표로 했던 코믹한 톤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스물>은 대단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으려면 코미디 리듬을 끝까지 유지해야 됐거든요. 그리고 진지한 듯하다가도 마지막에 조금 비트는 것이 제 코미디 스타일이기도 해요.

기존에 염두에 둔 영화의 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요?
전형적인 플롯팅을 하고 이야기를 꾸미게 될 경우, 이 시점에서는 감정 신이 들어가야 되고, 저 시점에서는 위기가 벌어져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미리 설정해 놓는 면이 있어요. 그런데 <스물>은 특별한 사건을 사전에 설정해 놓고 접근하는 대신 특정 시점에서 유도하고 싶은 감정만 유지한 채 세 인물의 캐릭터 플레이로 마음껏 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바탕 수다를 떤 것 같은 느낌만 가질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만 해내면 충분하니까 제대로 웃기자고 작정한 거죠.

세 인물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에 균형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편집까지 이야기의 균형을 맞추는 부분 때문에 계속 힘들었어요. 잘 한 건지는 모르겠네요(웃음). 편집 때까지도 계속 신 배치를 손봤거든요. 맞는다고 생각한 순서로 신을 배치하니까 낮밤이 바뀌는 경우도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제자리로 돌려놓고 어떻게 수정해야하는지, 이 흐름이 맞기는 한 건지, 끝까지 고민했어요. 시사회에서 보니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시간 분량을 잘못 계산해서 너무 길게 나온 신이 있었거든요. 편집할 때는 정말 1초, 1초가 아쉬웠어요. 감정의 흐름을 유지하고 싶었는데 장면을 너무 빨리 잘라내는 건 아닌지 끝까지 고민했거든요.

소소반점에서 벌이는 격투 신은 조금 길다고 느껴졌어요.
세 친구만의 공간인 소소반점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고, 그곳에서의 격투 신은 굉장히 중요한 감정 신이에요(웃음). 소소반점은 남자들이 꼭 갖고 싶은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스물>은 세 인물이 스물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경험하는 일을 다룬 이야기잖아요. 스물이라는 시간을 소소반점이라는 공간으로 상징화했어요. 영화를 보면 처음에는 경재가 양 갈래길 앞에서 친구들에게 앞으로 나가자고 패기 있게 선언하지만, 영화 중간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술에 취해 널브러진 이미지가 있어요. 한 번 맛 본 바깥세상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대충 알게 되니 나가기 싫은 거죠.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서는 인물들이 소소반점에서 물리적인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나가야되잖아요. 깡패들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표현한 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인물들은 소소반점에서 나가야 할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더 머물고 싶은 거죠. 소소반점에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 두라고 소리 지르잖아요.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은 무조건 지는 싸움이에요. 어떻게 이겨요. 그런 감정을 생각하면 슬퍼요. 격투 신은 그런 감정이 담겨 있는 매우 중요한 신이에요. 격투 신을 조금 더 짧게 편집해보기도 했는데 슬픔 감정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격투 신 중간 중간 코믹한 리듬을 더하기 위해 인물들이 날아오르고 소민이 아빠가 손을 다치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런 모습들을 고속으로 촬영할 걸 예상했어요. 그래서 격투 신이 길게 나올 거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했죠. 역시나 길다는 의견이 나오더라고요. 양심껏 16초 걷어냈어요(웃음).
양심껏! 고생하셨네요(웃음).
소소반점 신은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신이기 때문에 조금 길다고 느껴져도 지금과 같이 편집했어요. 보통은 영화를 볼 때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해석해서 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여러 번 보지 않는 이상 격투 신의 슬픈 감정을 느끼기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점을 모두 고려해서 격투 신을 축소시킨다면 영화가 너무 의미 없어지잖아요.

연장된 격투 신의 길이가 시간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 거군요.
그렇죠. 슬프잖아요.

스무 살에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감정을 많이 느꼈나요?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느끼지 않을까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안나요(웃음).

참여한 영화들의 흥행이 좋은 편이고, 장편 연출 데뷔작 <힘내세요, 병헌씨>가 영화제에서 주목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순조롭게 커리어를 잘 쌓아온 듯 보여요. 하지만 상업영화 연출 데뷔까지 힘든 시기도 분명 있었을 것 같아요.
힘든 과정도 분명 겪었어요. 하지만 그런 시간도 계획의 일부이기는 해요. 그래서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시작하면서 각본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때까지 스스로에게 4년의 시간을 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4년제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셈 치고 시나리오만 계속 썼죠. 결국 <과속스캔들>에 각색으로 이름이 올라갔는데,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름을 올리고 나니 자연스럽게 연출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계획을 세웠죠. 그때가 서른 살이었는데 이번에는 10년 동안 연출 준비를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영화 연출의 길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길게 계획한 거죠. 그리고 그때까지 입봉을 못하면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 이후로 단편부터 시작해서 연출부 경험을 쌓았어요. 강형철 감독님 덕분에 연출부에서 일할 기회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어요. 연출부에 들어간 후,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요(웃음).

어떤 부분이 특히 힘들었나요?
스크립터는 세부 사항을 체크하고 메모하는 일이라 꼼꼼해야 하는데 제 성격과는 잘 안 맞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강형철 감독님이 고생을 하셨어요(웃음). <써니>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상업영화 연출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역시나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제작, 투자 심사받는 과정이 지금보다 길고 어려웠던 것 같아요. 옆에서 상업영화를 준비하는 다른 감독님들이 투자를 못 받아서 힘든 시기를 겪는 걸 많이 봐왔어요. 그런 전철을 밟기 싫어서 <힘내세요, 병헌씨>를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 준비하던 상업영화 하나가 엎어지더라고요. <힘내세요, 병헌씨> 같은 경우도 후반에는 제작비가 떨어져서 조금 삐끗했고요(웃음). 그래서 잠시 계약금을 많이 주겠다던 드라마를 준비하기도 했죠. 그때 준비하던 연출 작품이 또 엎어졌어요(웃음). 분명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봉까지 10년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점점 나이가 드니 초조해지더라고요. 몸에 주름도 생기는 것 같고요(웃음). 사람들은 저를 보고 기대주라고 하는데 도대체 기대주만 몇 년째인지 너무 답답했죠(웃음). 그때 운 좋게 <스물>이 찾아온 거예요. 서른 대여섯에 입봉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스물>이 망하지만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흐름은 괜찮은 것 같아요(웃음). <스물>만 잘 되면 계획대로 마흔 살까지는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웃음).

앞으로 10년의 계획도 미리 세운 건가요?
지금 서른여섯 살인데 마흔까지는 쉬지 않고 영화를 하고 싶어요. 마흔이 되면 그 때의 재산 상태를 보고 연출을 계속 할지 아니면 조금 여유를 가지고 다른 일을 병행할지 결정할 거예요.

한 번 세운 계획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편인가요?
운이 좋아서 마치 계획한 것을 치밀하게 지키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그래도 운이 좋게 영화와 관련해서는 계획한 것들이 그런대로 이뤄진 것 같아요. 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인맥도 없었기 때문에 힘든 시기를 분명 거쳐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4년, 10년, 이렇게 대강의 실행 기간을 설정하고 목표를 세웠고요. 바로 입봉할 수 있을 만큼 현장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편, 연출부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했어요.
쉽게 들려도 4년, 10년은 짧은 기간이 아니에요.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어요(웃음). 취업할 성적도 안 되고 정말 할 게 없더라고요. 집에 돈이 많으면 장사라도 해 볼 텐데 말이에요. 아버지가 지방에서 매우 영세한 납품 업체를 하나 운영하세요.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남은 인생을 재미없게 살아도 괜찮다면 쌀밥 정도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 일을 물려받게 될까봐 두렵더라고요(웃음). 시골에 처박혀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생각만으로도 너무 우울하잖아요. 아버지가 일하는 곳은 2인 체제라서 여직원도 없어요(웃음).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영화 밖에 없었어요.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영화를 좋아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시나리오를 읽게 됐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글 쓰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쓴 건 아니에요. 야설작가로 무적의 중학교 시절을 보냈어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야설을 썼단 말이에요? (웃음)
그때가 진짜죠. <몽정기>에도 나오잖아요(웃음). 야설을 독보적으로 잘 썼어요(웃음). 그리고 글쓰기도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생각했고요.

경험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처음 시작할 때는 막막했을 것 같아요.
그러게요. 돌아보면 스스로도 어떻게 해냈나 싶어요(웃음). 엄청 느슨한 사람인 것 같은데도 할 건 다 했구나 싶고요(웃음). 연출에 대한 마음은 단편을 찍고 나서 확실하게 정했어요. 이틀 동안 친구네 아파트를 빌려 단편을 촬영했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니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스탭들이 모두 떠난 뒤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웠는데 너무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연출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까 한 번 해보자고 결정한 것 같아요. 단편 작업할 때 스스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구체적으로 연출의 어떤 부분을 잘 한다고 생각했나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다음 컷을 생각하는 일이 재밌더라고요.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콘티를 치밀하게 짜놓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촬영할 때 다음에 필요한 컷이 뭔지, 어떻게 촬영해야 감정이 깨지지 않고 이어지는지를 계산하는 것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퍼즐 같은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영화 연출은 배우를 활용해서 그런지 굉장히 재밌었어요. 잘한다고 생각했다기보다 재미를 느껴 버린 거죠. 그래서 조금 긴 호흡으로 영화를 오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면 돈도 벌겠지, 하면서요(웃음).

연출은 시나리오를 쓸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나봐요.
다르죠. 시나리오 쓸 때는 읽는 사람이 조금 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처음 생각했던 톤과 영화 완성본이 100% 일치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쓴 글을 직접 정리 할 수 있는 건 좋은 것 같아요. 직접 연출해도 그림이 생각대로 나오기가 힘든데 남이 하면 50%도 안 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스스로와는 어느 정도 타협을 잘하는 편이기도 해서 직접 연출하는 게 좋아요. 예를 들어 배우가 보여주는 톤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한 톤보다 대중과 가깝다고 생각되거나 적합하다고 생각되면 연출할 때는 적절하게 타협할 줄 알아요. 융통성이 없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상업영화 연출은 처음인 만큼 <스물>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 같아요.
영화 연출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서 선생님이 되는 순간은 없는 것 같아요. 봉준호 감독님도 <설국열차>를 찍으면서 배울걸요?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스물>에서 배운 건 무엇인가요?
이번에 배운 건 체력! (웃음) 젊다고 내 나이를 너무 믿었구나, 하마터면 촬영하다 죽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거든요(웃음). 무엇을 배웠다고 구체적으로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어요. 사실 영상을 연출하는데 있어서는 큰 욕심이 없어요. 영상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추구하는 편이 아니어서 목표 지점이 대단하지 않거든요. 현재로서는 영화를 통해 수다만 잘 떨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하지만 제 색깔을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다작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그리고 다작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웃음). 괜히 시나리오를 어렵게 써서 100회차까지 찍는 일이 없도록 50회차 선에서 끝내는 걸로 하려고요. 너무 힘들어요(웃음).

영상보다는 대사나 이야기 자체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연출한 작품만 봐도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싶은 욕구가 엿보여요(웃음). <스물>과 <힘내세요, 병헌씨> 모두 영화 속에 영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런 편이에요.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왜 즐거운가요?
제 나름대로의 수다 방식인 것 같아요. 술이라도 마셔야 떠들지 평소에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웃음). 사실 말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걸 더 좋아하고요. 그런데 영화를 통해서는 내 방식대로의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서 즐거워요. 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 것처럼 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수다 떠는 것이 재밌어요. 어렵고 거창한 이야기를 힘들게 짜내서 하려는 게 아니에요.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다가 제 스타일대로 예쁘게 재활용하는 거죠.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웃음).

재치 넘치는 대사가 많아서 수다쟁이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과묵한 편입니다(웃음). 제 안에 수다스러운 성향이 많나봐요(웃음). 군 입대하기 전에는 외향적인 성격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밌는 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온 이후 성격이 조금 변했어요. 많이 맞아서 그런가? (웃음) 농담하는 건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제 성향이 영화에 묻어난 것 같기도 하네요. 친구들과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친구들에게 영향 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영화는 어찌됐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대사를 더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면도 있어요. 영상을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하는 것보다 재미난 대사를 만드는 것이 제가 더 잘하는 부분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대사를 더 재밌게 꾸미려고 노력하죠.

대사를 흥미롭게 쓰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정말로 없어요(웃음). 가만히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사실 대사 톤은 본인에게 어느 정도 내재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진지한 대사는 잘 못 쓰는 편이거든요. 자신의 장점을 살려서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대사가 꼭 웃겨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스물> 속 대사처럼 ‘애매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생사를 넘나드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 일을 경험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굉장히 힘든 상황이요. 생활 밀착형 상황이랄까. 의도된 설정인가요,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가요?
우연만은 아니에요. 그런 쪽으로 관심도 많고 제 성격도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코미디로도 접근을 하고요. 재미를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작업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오글거리는 부분을 살짝 비틀어서 더 큰 웃음으로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도 있고요. 아무튼 제 성격, 제 취향이 그 쪽이에요.

그런 상황은 일상생활에서 포착하는 건가요, 아니면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건가요?
두 가지 모두인 것 같아요. 재미난 상황이 확하고 저에게 걸릴 때가 있으면 메모하지만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야할 때는 하루 종일 마음잡고 멍 때리며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스물> <힘내세요, 병헌씨>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강해요. 소재가 고갈되지 않을까 두려움은 없나요?
자전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도 많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안 해요(웃음). 작업을 많이 했거든요. 지금까지 영화로 제작된 이야기들이 자전적으로 보일 뿐이에요. 그리고 <스물>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에요. 주위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기에 익숙한 이야기를 가져다 썼을 뿐이지 자전적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보통 남자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스물>은 어떤 남자가 봐도 자신이나 친구와 비슷한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코미디 이외의 장르에는 관심이 없나요?
못한다 싶은 건 철저하게 외면하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사실 영화도 호러나 스릴러처럼 잔인한 건 못 봐요. 그런 영화는 보기도 힘들고 관심도 없어요. 보고 나면 삭신이 쑤시거든요(웃음). 몇몇 못 보는 장르를 제외하면 사실 남은 장르가 몇 개 없어요.

그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요. 액션은 어떤가요?
액션은 피곤해서 안 돼요(웃음).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머리가 나빠서 못해요(웃음). 그래서 당분간은 멜로와 코미디 위주로 작업해야할 것 같아요. 가족영화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누나와 엄마가 좋아할 수 있는 <과속 스캔들> <써니> 같은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그들은 철저한 TV 관객이라서 극장에 잘 오지 않거든요. 엄마와 누나를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족영화를 한 번 만들고 싶어요. 그때는 엄마가 좋아할 수 있는 아주 정형화된 틀에 맞춘 영화를 만들 거예요. 아니면 아예 엄청나게 발칙한 19금 블랙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본인의 20대는 어땠나요?
특별한 건 없었어요. 영화를 하자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영화 속 캐릭터들과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지낸 것 같아요. 답답했고 술도 많이 마셨어요(웃음).

스물과 비교해서 서른은 어떤 나이인 것 같나요?
스물과 똑같아요(웃음). <힘내세요, 병헌씨>에서도 주인공이 고민하는 건 <스물>과 비슷하잖아요. 뭘 하고 싶은지 정해졌을 뿐이지 어설프고 찌질한 건 똑같아요(웃음). 고민하고 힘든 건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웃음). 저 같은 경우는 서른 살도 스무 살만큼이나 가난했어요(웃음).

30대에 들어선 지금도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받나요?
촉박해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웃음). 뭔가 빨리 이뤄야 될 것 같아요. 지금 병에 걸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20대보다 훨씬 촉박하게 느껴져요. 그런 생각을 할 나이가 아닌가요? (웃음)

영화감독으로서 본인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10년 후에는 <스물>에서 박혁권 선배가 연기한 영화감독처럼 될 것 같아요(웃음). 슬슬 사회에 불만이 깊어질 것 같고요. <스물>에서 감독이 자꾸 넘어지잖아요. 사실 한 번 더 넘어뜨리려고 했어요. 제가 준비하던 영화가 세 번 없어졌으니 세 번 넘어뜨리려고 했죠(웃음).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는 줄 몰랐어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네요(웃음).
그 슬랩스틱은 굉장히 슬픈 슬랩스틱입니다(웃음).

감독으로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독하지 못한 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 같네요. 사실 감독은 타인의 능력을 잘 활용해야하기 때문에 가끔은 싫은 소리도 하고 남에게서 뭔가를 독하게 끄집어 낼 수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피곤함을 잘 느끼고 남에게 싫은 말을 잘 못해요(웃음). 그래서 싫은 소리 같은 건 촬영감독이나 조감독에게 시켜요(웃음). 그런 부분이 감독으로서는 단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성향이 독한 사람들보다 쉽게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면에서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요.

2015년 3월 25일 수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

2 )
fhqlsgnt
저 배우 이병헌인줄 알았는데...^&^ 스물 아주 신세대 영화인 만큼 신선하고 재미있네요^&^   
2015-04-04 15:56
yeonsim21
감독님은 다른 인터뷰에서도 격투신에 대해 굉장한 의미부여를 하셔서 신이 긴 점에대해 설명을 하셨던데 그 글을 읽고 나니 약간의 이해는 되지만 슬픔이 느껴지기전에 지루함이 앞서서 재미나게 즐기던 감정이 폭 사그라들었네요. 저는요.   
2015-04-02 02:36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