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말 지나면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랐죠. 촬영장에서 개봉일 성적이 <트랜스포머>를 앞섰다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소식이라 그냥 어수선하고 흥미진진하네요.
피곤해 보여요.
새벽 4시에 촬영이 끝났거든요. 그래서 피곤해 보이는 거지 지금 기분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기분은 너무 좋아요. 야호! (웃음)
<신의 한 수>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릴 만큼 확고한 이유가 있었던 거겠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작품이었고, 프로덕션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니 당연히 기다릴 수 있었던 거죠. 마침 <감시자들>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감시자들> 촬영하면서 기다리면 되는 거였으니까 어떤 큰 인내를 감수해야하는 기다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신생 영화사에서 준비하는 작품이라 좀 더 탄탄한 준비의 시간을 갖길 원했고, 그런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결과물로 보인 것 같아서 더 좋고요.
<감시자들> 때 흥행에 목마르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감시자들>이 흥행에 성공했고, <신의 한 수>도 출발은 나쁘지 않아요.
완성된 결과물에 좋은 평가들이 나오니까 안도를 한 거고, 이제 개봉했으니 지금부터 잘 굴러가야하는 거겠죠. <감시자들>은 사실 <신의 한 수>를 먼저 선택하고 약간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한 영화였어요. 4~5년의 공백기 후에 <신의 한 수>는 액션을 보여줘야겠다는 작정을 하고 준비한 영화였고요. <감시자들>의 제임스는 영화를 완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겠구나, 생각이 들어 좀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근데 어쩌다보니 <감시자들>이 먼저 개봉하게 됐고, 오랜만에 관객들에게 선보인 작품이 된 거죠.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했어도 제가 참여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 기다렸던 시간이라 더 흥분되고 좋았고 그랬던 거죠(웃음).
<신의 한 수>는 작정하고 준비한 액션영화라고 했는데, 그만큼 현장에서의 느낌과 경험이 다른 작품들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현장에서 더 치열하고 싶었어요. 태석이 포석을 깔아놓고 복수의 행보를 걷는데, 사실 캐릭터들끼리 부대끼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주님과의 끈끈함이나 하목수와의 감정 교류, 꼼수와의 드라마가 없다보니 좀 허전한 느낌이 있긴 하더라고요.
더 하고 싶어요(웃음). 더 할 수 있고요. <신의 한 수>의 시나리오가 갖고 있는, 시나리오에서 할 수 있는 액션은 무엇일까 고민을 했고, 그것을 충실하게 어느 정도는 다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정두홍 무술감독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액션을 잘하는 배우로 정우성을 언급했어요.
액션을 잘 연기하죠(웃음). 액션을 잘하는 배우인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어떤 격투기나 권법을 늘 수련하는 그런 전문 액션 배우는 아니잖아요. 다만 현장에서 몸을 조금 덜 사리고, 겁 없이 덤비는 그런 배우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운 좋게 화면에 잘 담겨서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으니까 액션을 잘하는 배우라고 칭찬까지 듣게 됐네요(웃음).
<신의 한 수>에서 교도소 액션, 냉동 창고 액션, 살수와의 액션 등 다양한 액션 연기를 선보였는데, 각 액션마다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한국 액션영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스스로 넓혀온 배우로서 액션 연기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네요.
테크닉이 발전하다보니 요즘 액션영화는 촬영할 때 컷을 많이 나눠요. 근데 컷을 많이 나누면 사실은 길게 갔을 때 보다 심장 박동수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심장 박동수를 컷마다 연기하게 되죠. 컷을 많이 쪼개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액션일수록 롱테이크로 가고, NG가 나는 부분에서 보강 숏들을 다시 찍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연기를 하는 배우를 더 가혹한 상황으로 집어넣는 거죠. 그런 액션을 이번 영화에서 보이고 싶었어요. 물론 테크닉도 함께 가지만, 컷을 나누고 프레임을 조절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연기하는 액션을 롱테이크로 충실하게 해내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시도를 했고, 그렇게 시도를 하니까 오히려 현장의 어떤 긴장이나 악을 쓰는 모습들이 더 리얼하게 담길 수밖에 없거든요.
액션 연기를 해본 적 없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런 심장 박동이나 특유의 리듬감 같은 것들이 눈에 명확하게 들어오는 건 아니잖아요. 느낌상으로 무의식중에 체감이 되는 것일 텐데, 관객들이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볼 수 있는 팁은 없을까요?
그런 부분이 가장 잘 산 장면이 마지막 액션이에요. 살수파와의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 살수와의 일대일 싸움까지 연결됐고, 그리고 마지막에 살수를 난도질하잖아요. 난도질하는 장면은 프레임 장난을 하지 않고 정석으로 촬영을 했어요. 행위 자체를 정직하게 화면에 담았거든요. 그래서 인상 깊은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프레임 장난을 하면 뭔가 빠르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멋이라는 생각은 안 들 거예요. 실질적인 행위 속에서 액션 연기가 이뤄지고 그 현장에서의 치열함이 담겼기 때문에 뭔가 좀 더 인상 깊은, 명확하게 캐치하기는 어렵지만 인상은 깊게 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신의 한 수>에서의 액션은 재미있게 마치 챕터마다 미션을 완수해나가는 듯한, 그리고 각 캐릭터와의 싸움에서 개성을 너무나도 확연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거든요. 딱밤을 액션화시킬 수 있다는 것부터 굉장히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사실 제가 볼 때도 재미는 있는데 이게 잘하면 위트지만 잘못하면 유치라서 어떻게 전달될까 궁금했어요. 근데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고, 냉동 창고 같은 특색 있는 장소를 통해 영화적 설정을 가져갔어요. 바둑의 정서와는 완전 판이하게 다른 행위들이니까요. 그런 극과 극의 접점이 만나면서 하나의 조화를 이루니까 관객들이 그런 면에서 <신의 한 수>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기도 해요.
시나리오에서는 굉장히 뚱뚱하게 그려졌어요. 근데 살을 갑자기 찌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특수분장으로 어떻게 해볼까 했는데, 특수분장팀에서 더운 날씨에 촬영이 시작되다보니 큰 스크린에서 봤을 때 분명 완성도의 문제가 노출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특수분장팀에서 수염을 제시했어요. 그리고 제가 골격이 좀 있어서 큰 사이즈의 옷을 입으면 덩치가 더 커 보이거든요. 일부러 의상 사이즈를 더 크게 주문했죠. 그런 부분이 잘 먹힌 것 같아요. 말투도 어눌하고 좀 순진하게 연기 톤을 잡았죠.
<신의 한 수>는 태석의 성장을 다룬 히어로물과 유사한 스토리 라인을 따르잖아요. 교도소에서의 성장 과정까지 스토리 라인이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이를 표현하기가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프롤로그의 태석의 감정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첫 단추를 잘 꿰어야했어요. 태석이 그 감정 안에 놓여 있을 때 절규 같은 것들이 진짜로 전달되어야, 그것만 잘 해 놓으면 이후의 변화는 어떤 형태라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영화들이 순서대로 촬영하는 건 불가능한데, 그래도 어느 정도의 배열은 맞춰 놓으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신의 한 수>는 좀 그렇지 못했어요. 프롤로그 신이 거의 촬영 뒤쪽으로 갔죠. 후반부 태석을 먼저 잡아 놓은 상태에서 전반부 태석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또 그게 좋은 작용을 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앞부분의 태석을 멋스럽게, 나름 멋을 부리지 않는 어떤 멋스러움을 잡으려고 했어요. 그것 역시 멋이니까요. 후반부의 태석을 연기할 때는 그냥 완전히 놓을 수가 있었던 거죠. 잘 만들어야 된다는 부담보다는 프롤로그에서 보이는 태석을 더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슬픔으로 표현해보자, 그것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외모나 말투에서 캐릭터의 성향이 드러나긴 하지만, 전사가 뚜렷하게 그려지고 구체적으로 설명되진 않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태석의 슬픔이나 깊이들을 중점적으로 표현할 때 어떤 것들을 신경 썼나요?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이미 너무 명확한 사건이 있잖아요. 판은 짜여 있으니 거기에서 내가 그 깊이, 진짜 그 상황에 놓일 때 목소리는 어떨까, 울음은 어떨까, 슬픔은 어느 정도일까, 어떻게 애원할까, 그런 것들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극중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잖아요.
다른 캐릭터들과의 상대적 밸런스의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다른 캐릭터들의 개성이 살면 살수록 더 밸런스가 맞고 협주가 되는 구조라 그 안에서 태석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했어요. 복수를 하면서 팀과 함께 어울리고 싶기도 하거든요. 사실 현장에서 연기하다보면 더 살가워지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어요. 근데 그 경계선을 잘 지키지 않으면 오히려 그런 밸런스가 더 허물어지는 경우들이 있죠.
깜깜해지네요(웃음). 제가 시력을 잃은 것 같아요(웃음). 그 당시 상황이라면 대안을 찾았겠죠. 찾았겠지만, 지금의 주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는 전혀 알 수가 없죠. 영화는 밸런스가 상당히 중요한데, 안성기 선배님이 주님으로 태석 옆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셨기 때문에 태석 캐릭터도 더 굳건하게 자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정을 한다면 정말 깜깜하네요. 시나리오를 읽고 앞이 안보이지만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배우는 누가 있을까, 당연히 안성기 선배님이 생각났고 그래서 영화사에 제안을 했어요. 근데 배우는 캐릭터로 움직이지 누군가의 부탁이나 어떤 외적 상황으로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안성기 선배님께서 주님 캐릭터를 매력 있게 보고 응해주셨으니 천만다행이죠.
이시영은 본인이 연기한 배꼽과 태석의 관계를 좀 더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란 이야기를 했어요.
시나리오에는 더 깊은 애정신도 있었어요. 그런데 촬영을 하면서 감독님의 판단에 의해 삭제가 됐어요. 저는 영화를 봤을 때 오히려 키스신마저 빠져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반적으로 배꼽과 태석의 러브라인이 정교하게 가지는 않거든요. 애초부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영화가 시작됐고, 그래서 베드신이 들어갈 여지는 있겠죠. 하지만 베드신이 있었다면 오히려 더 거북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활’편 이후 속편에서는 베드신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요? (웃음)
이시영이 기자간담회에서 정우성의 키스가 능수능란했다던데요(웃음).
그 능수능란함을 판가름할 수 있는 경험은 어디에서 온 건지(웃음). 어색할 수도 있는 신이잖아요. 배꼽도 태석과 심리적으로 끌림에 있어서 디테일한 멜로적 감정은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키스신이 이어지고 이럴 때 약간 서먹할 수도 있거든요. 아마 그런 상황에서 편하게 리드를 해줬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능수능란함이라는 표현이(웃음).
<신의 한 수>까지 세 작품을 함께한 이범수는 정우성은 한결같이 겸손하고 배려가 깊다고 칭찬을 하더군요.
그래요? (웃음) 제가 나이가 어리지만 먼저 영화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우성씨라고 부르며 존중해주는 모습을 볼 때 오히려 제가 더 숙연해지는 것 같아요.
네, 작정을 한 거예요.
계획대로 돼가고 있는 건가요?
계획대로 열심히는 하고 있어요. 계속 촬영을 하고 있고요.
힘들진 않나요?
힘들지는 않아요. 뭐 피로도는 있으니까, 오늘처럼 새벽에 촬영이 끝나면 약간 졸리고 나른해진다거나 그런 거겠죠. 근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활동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면 뭘 하고 지내나요?
한 번도 스스로에게 여유를 줬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녀본 적도 없지만, 여행을 가도 3박 4일 지나면 그때부터 일을 하고 싶고, 일이 궁금해서 돌아올 것 같아요. 지금은 꽤 달렸죠. <감시자들> 촬영하고 개봉시키고, <신의 한 수> 촬영하고 <킬러 앞에 노인>이라는 단편 연출해서 홍콩영화제에 보내고, <마담 뺑덕> 촬영하고 끝나고 바로 <나를 잊지 말아요> 촬영하면서 <신의 한 수> 개봉시키고 있고(웃음). <나를 잊지 말아요> 촬영 끝나고 <마담 뺑덕> 개봉시키면 그때는 한 번 여행을 가보자, 생각은 들어요.
출연작들이 해외영화제에 출품되진 않을까요? (웃음)
영화제요? 그러면 영화제 가서 노는 거죠. 근데 좀 피곤하겠죠. 영화제 가면 주로 다들 술이니까(웃음).
여행은 이정재와 함께 가는 건가요? (웃음)
미쳤어요? (웃음) 우리는 좋은 친구지 좋은 여행 파트너는 아니에요(웃음). 여행을 같이 가고 싶은 대상은 아니에요. 물론 같이 갈 수도 있지만, 첫 번째로 꼽을 대상은 아니라는 거죠(웃음).
다소 시간차는 있지만 친한 친구와 함께 제 2의 전성기도 맞이했어요.
기쁘죠. 좋죠.
정우성 닮은꼴로 예능프로에 나왔던 사람을 시사회에 초대했어요. 정우성 닮았다, 닮고 싶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글쎄,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웃음). 일단 저에 대한 호감이니까 감사하죠. 그분을 초대한 것도 그 마음이 고마워서였어요. 제가 그분 선배였다면 빨리 너를 찾으라고 이야기해줬을 거예요. 저도 나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이는 편이거든요. 외형적인 걸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을 찾는 게 더욱 중요하니까요. 저는 단 한 번도 어떤 영화, 어떤 배우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거든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고, 정우성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를 찾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잖아요.
단편 <킬러 앞에 노인>을 연출했는데, 그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요?
홍콩영화제에서 제안이 왔어요. ‘Three Charmed Lives(三生)’라는 프로젝트인데, 감독을 하는 배우들이 연출하는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섹션을 만들고 싶다고요. <신의 한 수> 끝나고 바로 <마담 뺑덕>을 준비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내가 잠 좀 덜 자면 되는 거니까요. 재밌게 작업해서 보냈죠. 소유권은 홍콩영화제 쪽이 다 갖고 있어요. 한국 릴리즈도 그쪽 권한이고요.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다고 하던데 저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죠. 한국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는 어떤 루트가 생긴 거니까요.
이렇게 영화 촬영으로 바쁘니 장편 연출 계획은 더 밀리는 건 아닌가요?
뭐 여태까지 계속 미뤄왔기 때문에(웃음). 배우로서 4~5년의 공백을 빨리 충족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걸 위해서 하고 싶은 작품들을 작정하고 계속해서 달리고 있고, 그러다보니 공교롭게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제작까지 하게 됐어요. 장편을 겁 없이 연출하고 싶었고 할 자신도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이렇게 밀린 건 나한테 시간을 주기 위한 거였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스스로에게는 오히려 조바심보다 감독을 할 때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으로 다가와요.
액션 이후 멜로를 선택했어요.
<나를 잊지 말아요>는 단편이 먼저였어요. 이윤정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스크립터 출신이고, 그 이후 시나리오들을 써서 저에게 보여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친구가 정우성의 골수팬이기도 하고요.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면서 단편을 만들었다고 보여주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러면서 단편 찍어놓은 것과 나머지 촬영을 짜깁기해서 장편을 만들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다르거든요. 그건 온전한 장편이 못되거든요. 그런 대화들을 하다가 주인공 이름이 W라는 이니셜로 되어있는데, 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면서 우성이라고 쓰기는 뭐하니까 W라는 이니셜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나에게 시나리오를 안 보여줬느냐, 왜 시도도 안 해보고 지레짐작 겁을 먹고 포기했느냐, 그래서 장편을 제대로 써보라고 했죠. 장편 시나리오 쓰는 걸 보고 흥미가 있어서 출연한다고 했고, 제작자를 찾아주려고 했어요. 시나리오가 약간 독특한 풀이의 스토리 진행방식이 매력이기는 한데 누구나 바라는 멜로 라인을 제작자들은 계속 원하다보니 시나리오가 변질되는 거죠. 그러면 안 되겠다 싶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럼 내가 제작을 할게, 이렇게까지 발전이 됐던 거죠. 그 와중에 <마담 뺑덕>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스토리는 재밌는데 굉장히 모험적인 캐릭터인 거예요. 중년 남자가 어린 친구랑 잘못된 사랑에 빠져서 인생 몰락하는 이야기인데 연기하긴 너무 재밌겠는 거죠. 지금 내 나이 때 안 해보면 언제 해보나, 지금 정우성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이면 매력 있고 그 몰락이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런 이유들로 작품들이 선택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액션 이후에 멜로를 해야지, 멜로를 찾아야지, 그렇게 결정된 건 아니에요 좋은 멜로, 좋은 액션은 모든 남자 배우들이 찾겠죠.
데뷔 20주년인데 지금까지 2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많은 혜택을 받으면서 참 좌충우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고 지나온 것 같아요. 많은 혜택이라는 건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만 가지고 현장에 뛰어들어서 연기도 배우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 방식도 배우고, 그러면서 또 나에게 주어진 어떤 배우로서 수식어의 가치를 거부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참으로 혜택 받은 20년이구나, 싶어요. 그런데 또 그렇게 많은 작품을 한 것 같지도 않고,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20년을 생각하면 이제 뭔가 더 잘 할 수 있는 준비된 신인이구나, 20년 동안 한 번 더 신나게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좌충우돌하면서 실수하는 모습도 영화에 많이 남기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실수를 좀 줄이면서 작업을 좀 더 세련되게 멋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앞으로 20년은 어떤 배우, 어떤 감독의 길을 갈 건가요?
좋은 동료, 좋은 선배, 좋은 영화인이 되고 싶죠. 그리고 정우성.
2014년 7월 9일 수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