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자주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성극단 소품팀으로 공연에 참여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연기자들과 함께 무대에서 인사를 했는데 펑펑 울었어요. 그때 운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날 이후부터 연극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그래서 고등학교는 일부러 연극동아리가 있는 학교로 갔죠. 처음에는 꼭 연기가 아니어도 좋으니 소품팀이든 무대팀이든 조명팀이든 그냥 연극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배역이 하나 비어서 연기를 하게 됐는데, 연기도 연극의 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연기를 조금씩 배웠고 2학년 때 국악예술고등학교로 편입하게 됐어요.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무대에서 하는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는 차이가 있던가요?
누구는 무대 연기와 카메라 연기는 다르다고 해요. 하지만 표현법의 미세한 차이는 있어도, 연기를 한다는 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카메라 기술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한 두 작품 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들이고요. 연기라는 기본과 틀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매체가 있나요?
언제나 무대에요, 언제나. 무대는 제 고향이에요. 지금 고향을 떠나 있지만 언젠가 다시 무대로 돌아가 고향 밥을 먹어야죠.
무대를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극은 보통 8주 정도의 연습 기간을 가져요. 그리고 매일 보는 대본으로 대사 연습을 해요. 그럼 호흡이 생기는데 호흡이 점점 쌓이면 밀도가 생겨요. 그리고 그 밀도가 점점 깊어지고요. 밀도 높은 대화가 모여서 장면이 되고, 장면이 모여서 작품이 되면 그 밀도 높은 장면을 관객들한테 보여드리는 거예요. 연극 할 때는 밀도가 점점 높아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어서 좋았는데 드라마는 순발력 있게 해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내가 100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을 연습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100 안에서만 계속 깎아먹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가다보면 금방 밑천이 드러나겠다는 걸 저는 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저에게는 고향이고 배움터죠.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왕세자 실종사건’이라는 뮤지컬이 있었어요. 우선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공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슬로우 모션이에요. 모든 동작이 다 이렇게 (팔을 느릿하게 움직이며) 움직이는 동작인데 대사는 빨라요(웃음). 연기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알려줬어요. 몸이 느리니까 디테일해지고 모든 것들을 준비하게 됐어요. 표현하는 방법들도 느껴졌어요. 그 작품 할 때 엄청나게 큰 한계를 느껴서 극복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눈 깜박이는 속도를 맞추려고 배우, 연기자들 열댓 명이서 동그랗게 앉아 눈을 느리게 떴다 감았다 깜박이는 연습을 하기도 했어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가장 큰 도움을 준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가장 많이 성장한 작품이었군요.
그랬던 것 같아요. 마인드도 그렇고요. 선배님들이나 연출가님 모두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거든요. 나를 다시 한 번 다 잡게 되고 앞으로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작품이었어요.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소녀괴담>은 저에게 오래 남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작진 모두 함께 모여서 꽁꽁 머리를 싸매고 진심을 다해 찍으려고 노력했거든요. 부족한 시간 안에서도 한 번만 다시 가자, 한 번만 다시 가자, 하면서요. 촬영감독님은 허리도 아프면서 이 정도면 됐을 법 한데 계속 다시 한 번 하자며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소녀괴담>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고 고생한 모든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 정도가 됐으면 좋겠어요. 하루도 인상 찌푸릴 날 없이 너무 행복했어요.
김소은과는 대학 동기라 친하다고 들었어요. 촬영장에서의 호흡은 어땠나요?
소은이랑 엄청 친해요(웃음). 촬영장에서 대화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정말 너무 편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소은이도 잘 맞춰주고요.
감독님하고는 호흡이 어땠나요?
잘 맞았어요. 정말 다시 한 번 작업하자고 해도 선뜻 할 수 있는 분이었어요.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연기자들과 소통을 많이 했어요. 하나하나 다 같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그런 선장님 같은, 진짜 감독님 같은 감독님이었어요.
<소녀괴담>에서의 모습은 드라마에서 봤던 모습과 또 많이 달랐어요.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것 같은데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실제로 허당기가 있어요. 연기하거나 운동할 때는 완벽주의 성향이 나오는데 평소에는 굉장히 우유부단하고 진짜 해야 되는 것이 아니면 귀찮아해요.
연기할 때는 어떤 경우에 스스로 완벽주의라고 느끼나요?
연기해야 되고 고민해야 되는 시기가 오면 아무것도 못 봐요. 몇 시간이 흐르던 전화나 핸드폰도 안 받고 거기에만 계속 매달려 고민해요. 연기할 때 계산해 놓는 것들이나 집중하는 부분에서 완벽주의 성향이 조금 나오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어요.
그렇죠. 한계가 왔을 때 엄청나게 수렁으로 빠져요. 슬럼프라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감정적으로 자신한테 많이 실망하고 내가 이거 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음악 듣고 자전거 타러 나가서 기분전환하고 다시 한 번 도전해봐요.
<소녀괴담> 촬영하면서도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공포를 표현해야 하는 부분에서 그랬어요. 흔하게 봐왔던 표현 방법 대신 공포를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것들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안하기 시작하면... 사실 어디서 본 것 같다는 건 사람들이 그만큼 일반적으로 많이 공감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부분도 포함이 돼야 장면, 연기, 표현이 독특하다고 느껴지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으면 공감이 안가고 이 인물이 도대체 뭐라는 건지 알 수가 없게 느껴지기 마련이에요. <소녀괴담>에서 그걸 많이 느끼고 배웠어요. 연기에 있어서 어느 정도 통상적인 표현은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기대와 걱정이 있었어요. 감성공포라는 장르가 얼마나 잘 표현될까, 기대감이 있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예산 때문에 걱정도 됐어요. 시간상 촬영 전날 콘티를 보면서 뺀 장면이 너무 많아요. 그 장면들이 안타까운 거죠. 빈 공간들이 생기는 거잖아요. 빈 공간들이 어떻게 표현됐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물론 영화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있고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을 테지만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 어쩔 수 없는 여건에서 정말 잘 나와 줬다고 생각해요. 노력해서 찍은 것에 보답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빠진 장면 중 특히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요?
귀신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마스크 귀신의 시점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장면이 있어요. 밖에서 누군가 우리가 한 행동을 따라가면서 보는 시점이요. 그런데 그런 장면들이 시간과 여건상의 문제 때문에 다 빠지게 되었죠. 도망치는 인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창 밖에서 교실 안의 풍경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이 담긴 장면이 있었으면 조금 더 섬뜩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죠.
<소녀괴담>에는 코미디, 로맨스, 공포 등 여러 요소들이 있잖아요. 밸런스를 잡는 것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톤이 튀면 영화가 튀어버리니까 톤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영화를 봤을 때 눈에 많이 거슬리는 것들은 없더라고요. 그래도 노력한 만큼은 나와 주지 않았나 싶어요.
캐릭터 설정은 어떻게 했나요?
시나리오에서 대사 외에 인수 캐릭터가 표현된 부분이 아주 적었어요. 그런데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영화에 어울리려면 인수가 영웅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감독님을 설득했죠. 어차피 상황도 그렇게 흘러가는데 인수가 터프하게 내가 지켜줄게, 이러면 굉장히 오글거리는 상황들이 연출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인수를 조금은 허당기 있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캐릭터로 만들려고 노력했죠. 그게 얼마나 잘 표현됐는지는 관객들이 판단해주셔야 하겠지만요.
그런 성향의 남자 주인공은 공포영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잖아요.
흔하지 않은 캐릭터라 좋았어요. 좀 찌질하고 삐리한 (웃음) 캐릭터가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공포영화 주인공들은 능동적이지만 인수는 수동적으로 시작해 어떤 계기를 통해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캐릭터가 더 입체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인수를 보고 이것만큼은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한 부분이 있나요?
감정선을 과하게 표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밋밋하게 흘러 갈 수 있는 캐릭터인데, 그 밋밋함 속에서 공감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끝에 가서 인수가 많이 울잖아요. 그 눈물의 의미를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우는 거야, 라는 의문 없이 관객들이 편하게 잘 따라올 수 있기를 원했어요.
부담스럽다기보다 우는 이유를 타당하게 만들려고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했죠. 아영이를 보내는 신에서도 시나리오에서는 우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인수가 삼촌에게 아영이 소식 모르냐고 묻는 장면도 있고, 인수가 아영이에게 쌓아온 감정이 굉장히 클 텐데 그냥 묵묵히 인사만 해버리면 캐릭터가 너무 일차원이고 단편적일 것 같은 거예요. 조금 더 깊이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인수의 트라우마가 해소되는 장면이라 울어도 되지 않을까, 감독님께 이야기했고 제 의견이 반영된 거죠.
마지막 장면에서도 울잖아요.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감정인가요?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안함이었던 것 같아요. 소녀귀신은 어릴 때 만났던 세희라는 친구고, 다시 만나게 됐을 때는 이미 귀신이 된 후잖아요. 인수가 마지막에 하는 ‘미안해’는 방관자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대사였어요. ‘미안해’라는 대사는 없었어요. 그런데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의 끄트머리죠. 마침표를 찍어야 될 것 같았어요.
소녀귀신을 바라보는 인수는 어떤 마음인가요?
처음에는 소녀귀신이 인수에게 강하게 다가오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아주 예쁜, 어떤 소녀귀신이지만 그 친구와 가까워지면서 점점 알아가고 싶은 거죠. 그런데도 귀신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요. 사실 인수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귀신이니까 좋아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최대한 도와주고 싶고, 그래서 소녀귀신의 이야기를 파헤치고, 소녀귀신이 원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도 원한을 풀어주고 싶었겠죠. 어떻게 보면 인수가 해 줄 수 있는 다른 의미에서의 소녀귀신을 위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인수가 소녀귀신을 처음 봤을 때 귀신인 줄 아는 건가요?
처음 촬영했을 때는 인수가 소녀귀신을 보고 와, 예쁘다 하다가 펜던트가 돌아가요. 펜던트가 돌아가서 고개를 숙이는 건데 그 장면이 삭제됐어요.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인수와 소녀귀신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있잖아요. 그 감정선이 펜던트가 돌아가는 것 때문에 처음부터 딱 끊어지는 것 같다, 관객들은 당연히 귀신인 걸 알 텐데 굳이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저도 동의했죠.
공포는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요?
처음에는 무서워하는 표정을 과하지 않게 거의 무덤덤한 정도로 표현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두 가지 버전을 찍자고 하더라고요. 무덤덤하게 보는 것도 좋지만 편집 과정에서 그림을 붙여 봤을 때 효과가 다를 수 있고, 공포영화니 조금 더 과하게 표현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점점 더 표현을 과하게 한 장면들이 들어갔죠. 무서워하는 표정을 짓는 신에서 조금 더 다듬고 상의했던 것 같아요.
인수가 전학 오기 전에 따돌림을 당하는데 그런 트라우마는 어떻게 표현하려 했나요?
연기를 할 때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고 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그런 것들마저 다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간결한 표현법이 가장 좋아요. 관객의 입장에서 간결하게 딱 느끼게 해주는 연기요. 뭔가 많은 것들이 쌓이면 조잡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인수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간결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연기를 할 때 극 전체 상황 안에서 꼭 필요한 정도까지만 표현하고 버려야하는 선택이 많거든요. 전학 오기 전의 트라우마 같은 걸 모두 표현하고자 한다면 극의 스토리, 감정 라인이 아마 굉장히 망가졌을 거예요. 그런 것도 물론 표현을 해야 하지만, 좀 더 중점을 둔 것은 인수가 귀신을 보기 시작했고 따돌림을 당해서 전학을 오게 되는 딱 거기까지만 이었어요. 그 후까지 생각해버리면 너무 많은 걸 표현하게 되니까 따돌림 당해서 전학을 왔다는 그 팩트까지만 저는 전해주는 거죠.
단 한번도 <소녀괴담>이 첫 주연작이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필모그래피라고 생각하거든요. 훗날 누군가 강하늘이라는 연기자를 검색해 필모그래피를 봤을 때 ‘와, 이 사람 좋은 작품 많이 했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와, 이 사람 주연 많이 했구나’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어요. 작품 안에서 내가 튀려고 하면 그 작품 망가진다고요. 그래서 한 번도 난 주연이다, 이 극을 이끌고 가겠다,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다 같이 촬영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 행복했어요. 그래서 촬영 당시의 재밌고 즐거운 기억들이 행복한 거지 주연작이라 특별한 기대감이 있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뭔가요?
관객들 각자의 가치관이 있을 것 아니에요. 당연히 존중해야 하는 거예요. 그 가치관을 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좋은 자극, 좋은 메시지, 좋은 변화를 일깨워 줄 수 있는 작품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소녀괴담>은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나요?
<소녀괴담>을 선택할 때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를 먼저 봤어요. 이 작품의 주제는 방관자들의 이야기에요. 피해자와 가해자는 어디에도 있죠.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방관자들이 있단 말이에요. 그들에게 너희도 죄인이야, 반성해, 이런 메시지를 주는 계몽적인 영화가 아니에요. 대신 스스로 방관자였는지를 한번 되새겨보게 하는, 딱 거기까지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메시지가 너무 좋았어요. 시나리오를 읽거나, 촬영하면서나,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을 때나 저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봤어요. 사실 누구나 학창 시절에 폭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놀림을 받거나 하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피해가 나한테 오지 않는다고 같이 떠들고 웃고 넘어갔던 일들을 생각해보니 나도 방관자였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우리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그거에요. 관객들이 극장을 나갈 때 반성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고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 고를 때 캐릭터보다 작품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가요?
좋은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 어떤 연기를 하는 건 나중 문제인 것 같아요. 캐릭터를 따지기 시작한다는 건 작품보다 내가 우선이고 내가 돋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작품이 먼저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후에 역할을 만들어가는 거죠. 작품이 있고 역할이 있는 거지 역할이 있고 작품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벌써 데뷔한지 8년인데 그동안 연기관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어요. 제 연기관은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는 거예요. 분량 생각하고 조금 더 예쁘게 나오고 싶고, 그런 생각하는 작은 배우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작은 역할은 없다는 게 좌우명이거든요. 연기라는 건 쉽게 말하면 글을 재밌게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구연동화에요.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연기라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도 이상해지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도 이상해져요. 연기는 관객들에게 주고자하는 메시지를 나름대로 재밌게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 연기관이었고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어요.
부분보다 전체를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연출에도 욕심이 있을 것 같고요.
(웃음) 연기를 할 때 전체를 안보기 시작하면 자기밖에 모르게 되거든요. 밸런스를 생각해야 되는데, 사실 연출은 욕심이 있는 건 아니고 관심은 있어요. 제가 연출을 하면 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웃음). 연기를 할 때 연출적인 부분도 알아야해서 학교에서 연출 공부도 했거든요. 좋은 표현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공부는 했죠.
제 또래인데 아빠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제 인생에 그건 한 번도 없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웃음). 그 인물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느껴보고 싶어요. 공부할 거리도 많을 거고 고민할 거리도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많은 것들이 바뀌잖아요. 주변 사람들의 시선,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의 모습 등 많은 것들이 바뀌니까 아픔, 행복 등 그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이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경험하지 못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나요?
그렇죠. 저한테는 훨씬 더 도움이 많이 되죠. 연기 할 때 가장 도움이 되고 공부가 많이 되는 역할은 나한테 없는 모습, 나와 180도 다른 인물을 맡아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잘하는 역할이나 하고 싶은 역할보다 배울 수 있는 역할에 더 목마른 것 같아요.
그럼요. 아직 저는 배워야 되는 단계고, 많이 힘들어야 되는 단계에요. 잘하는 역할을 해서 잘하면 좋죠. 그런데 우선 더 많이 깨지고 배워야 되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의 꿈은 무엇인가요?
어느 인터뷰에서나 항상 이야기하는 건데요,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꿈이 남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안녕하세요. 배우 강하늘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단 한 번도 스스로 배우라고 이야기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인터뷰한 모든 영상을 다 찾아봐도 상관없어요. 단 한 번도 제 입으로 저를 배우라고 말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배우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것 같아요.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는 스스로 밖에 모를 것 같아요. 저는 아직 배우가 아니고, 더 배워야 해요. 더 많이 혼나고 단점도 지적당하면서요. 그렇게 배우다보면 나중에 배우라고 소개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기준은 뭔가요?
기준을 세우기가 참 애매해요. 연기라는 것 자체가 정답이 없는 행위잖아요. 정답이 없는 행위에 기준을 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모든 작품에 노력하고 정말 최선을 다한다면 그렇게 느끼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어바웃 타임>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빌 나이히를 가장 존경하고 닮고 싶어요. 그분이 갖고 있는 깊이, 그분의 마인드, 그리고 그분이 해왔던 작품들, 정말 좋은 작품이 많거든요. 그런 필모그래피를 쌓는 진중한 연기자이고 싶어요.
2014년 6월 27일 금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