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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예쁜 어린이 선발대회에 나갔어요. 초등학교 때인데, 혼혈 같다는 얘기도 듣고 당시에는 예쁜 편이었어요. 한복입고 나갔는데 기립박수 받았고 입상을 했어요. 그때부터 항상 그쪽 세계에 관심은 있었던 것 같아요.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돌아와서 시작을 했어요. 그렇지만 시작을 한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프로필 사진을 찍고 에이전시에 돌리고 그렇게 CF를 찍게 됐어요. 그러다 기획사에 들어가고 한두 번 오디션도 봤고요. 한 번은 오디션 장에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서 A4 용지 4장 분량의 대본을 받아 화장실 구석에서 외우기 시작했어요. 오디션 볼 때 처음에는 대본을 들고 연기하다가 집중이 되면서 대본을 내려놓고 대사를 쳤어요. 대본을 안보니 카메라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고 감정이 더 잘 나오더라고요. 슬픔을 잘 쏟아내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고, 그렇게 자신감과 교만을 안고 데뷔를 했던 것 같아요.
그쪽 세계에 관심은 있었지만 일을 하기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나봐요.
전혀 없었어요. 단지 TV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뭔가 꿈틀대는, 찌릿한 느낌을 받았어요. 시기나 질투는 아닌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운명적으로 뭔가 끌렸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관심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돌리고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길이 열린 거지, 그 전에는 전혀 액션을 취하지 않았어요.
데뷔 초에는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그 이야기 너무 많이 들었어요(웃음). 좋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안타깝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죠. 세대가 바뀌어도 활동 안하다 나오면 유망주다, 중고 신인이다,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다못해 신비주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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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연기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벌써 관뒀을 거예요. 다른 여러 일들을 한 건 예술이 하나로 통한다는 말처럼 그림, 음악, 춤 등에도 관심이 많았고, 하면 곧잘 한다는 이야기를 적어도 한 명 이상에게는 들어서 계속 하게 됐어요. 단편이지만 연출도 두 작품을 했고 상도 받아서 감독 할 거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연출은 감히 제가 하겠다고 쉽게 말할 분야는 아닌 것 같아요. 도전에 의미가 있는 거였어요. 물론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환희를 동시에 느끼며 왜 연출을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도전은 하겠지만 함부로 연출을 하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반면 피사체가 됐을 때 더 짜릿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배우로서 주연도 해봤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들이 나왔지만 연출에 비해 다작을 했고 10년 이상 몸담았기 때문에 배우에 대한 애착은 확실히 더 크죠.
외모만으로도 스타가 될 자질이 충분했고, 연기도 신인치고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 컸고 관심 있게 지켜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상과 달리 활동이 뜸했어요.
첫 번째는 운과 타이밍, 두 번째는 성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데 제가 봐도 답답하고 폐쇄적이었어요. 데뷔 초에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게 독이었던 것 같아요. 교만도 있었고요. 내가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겸손한 마음으로 감독님께 여쭙고 상의하고 그런 과정이 없었어요. 신인에게 파격적으로 이렇게 큰 배역을 줬는데 한 번도 와서 상의한 적 없다고 감독님이 화를 낸 적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회사가 힘든 시기와 맞물려 회사에서 신경을 못 써주다 보니 위축된 것도 있었고요. 한번 위축되기도 했고, 성격이 활발한 편도 아니라 경계도 많아서 주변에서 섭섭해 하셨죠. 배우들하고도 그랬고요. 사회생활의 경험과 기술이 전혀 없었던 거죠. 말을 안 하니까, 여자들은 새침때기로 보고 남자들은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적이지 않았던 거죠. 저를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러니 일도 그렇게 풀리는 거고요. 그 부분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그동안 청순, 신파에나 어울릴 이미지였는데 <잘못된 만남>을 하면서 그 틀을 깨는 과정을 겪었어요. 외롭긴 했지만 남들이 날 어려워하거나 얼음공주처럼 보는 시선에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캐릭터 때문에 틀을 깨야했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격이 바뀌고 사람들이 날 대하는 시선도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연기의 폭이 넓어져서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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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도록 엄마에게 계속 신세를 졌어요. 엄마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거든요. ‘내가 거름이 돼서 네가 꽃을 피우면 되겠지’라는 말씀까지 하셨으니까요. 저 때문에 희생을 많이 하셨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외국어에 소질이 있고 승부욕도 있어서 연예인이 아니어도 먹고는 살았을 것 같아요. 1등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수준의 성과는 이뤘을 것 같아요. 인간은 노동을 하고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해야하는데, 엄마 등을 파먹는 벌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우울증도 왔고요.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정시에 나가서 일 하고 퇴근하고, 힘든 것도 있지만 그래도 기운내서 그렇게 또 하루를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저는 그날이 그날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연기는 하고 싶은데 기회는 없고 인간답지 않은 잉여가 된 기분. 그렇게 우울증도 오고 더 깊은 곳으로 침잠하기 쉬웠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한 번도 안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많이 꺾이긴 했지만(웃음). 13년 동안 좌절도 했지만 한 번도 그 생각을 놓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희망으로 버텼어요. 유망주, 기대주라는 이야기만 계속 듣다보니, 그래서 더 포기 못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데뷔 때도 연기 잘한다는 소리 들었는데,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지금은 예쁜 배우들도 많고, 연기 잘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포기가 안 되는 거예요.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데도 포기가 안 되는 거죠.
배우 최지연을 자주 보고 싶지만 오히려 예능이나 여행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미가 있고 관심이 있어서 출연한 건가요, 아니면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출연한 건가요?
후자에 더 가깝다고 봐야겠죠. 2005년에 ‘스타골든벨’ 고정도 하고 어느 정도 자리 잡았지만 활동을 그만둔 이유가 연기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항상 예능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예능이 싫다거나 편견이 있는 게 아니라, 패널로 잠깐 출연해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영화나 드라마로 돌아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 올 수도 있어서 두려웠던 거죠. 하지만 출연했던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알게 모르게 순발력도 생겼고, 내 안에 웃기는 재주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자신감도 생겼고, 도움이 된 부분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마음은 연기만 하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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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이고 흥행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지만 잘 소화하면 연기력을 입증 받을 수 있는 캐릭터인 것 같다고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건넸어요. 읽어보니 쉽진 않아보였어요. 그래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윤희라는 캐릭터 밖에 안보였고, 스토리도 좋았고, 망설일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스크린 첫 주연작이죠?
원톱이니까 그런 셈이죠.
엄청난 경쟁의 오디션을 통과했다던데요(웃음).
아니에요(웃음). 처음에 감독님은 윤희 이미지를 아줌마로 생각했대요. 조감독이 최지연이라는 배우를 언급했을 때, 감독님이 생각하던 이미지는 전혀 아니었던 거죠. 리딩을 했는데, 북한 사투리도 안 되는 상태라 감정 위주로 연기했고 거기에 감독님이 꽂힌 거예요. 제가 흘리는 눈물은 다른 여배우들과 다르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캐스팅이 된 거죠.
윤희는 탈북자 캐릭터에요. 외모도 그렇고 북한말도 그렇고 캐릭터의 외적 표현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같이 출연한 황석정 언니의 아는 분을 소개 받아서 두만강 인근 지역의 사투리를 배웠어요. 그 전에는 TV에서 본 북한 아나운서의 느낌으로 성경책을 읽으며 연습했는데, 실제 그 지역 분을 만나 고쳤죠. 외적인 건 최대한 안 꾸미고 안 하는 것 밖에는 별다를 게 없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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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에 충실했고, 일관된 감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미흡하고 부족하더라도 감독님이 저를 믿고 맡겨준 이유는 제 연기의 진정성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포인트를 뒀다면, 너무 우는 장면이 많으니까 보는 사람들이 면역이 될 수 있어서 각 장면마다 눈물에 색을 넣는 거였어요. 그래도 감정이 터져야 되는 장면은 거울 신과 마지막 법정 신이었어요. 거울 신은 부담이 좀 됐어요. 그 전까지 감정을 잡아왔으니 여기서 터져줘야 하는데, 막상 터트리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나마 그거 하나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는 걸 못하게 되면 공포가 오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자존심은 있어서 차마 못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고. 촬영 들어가서는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억울했던 감정을 터트렸어요. 소스가 제일 어색해요. 편집도 그렇고요. 법정 신도 그렇고 두 장면이 아쉬워요.
거울 장면도 그렇고 법정 장면도 앵글과 편집이 배우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게 만들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에요. 거울 장면은 윤희의 감정 자체가 표현이 안 된 건 아니지만 면역 효과가 있어서 중요한 장면임에도 그 감정이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반면, 법정에서 딸을 끌어안고 우는 모습에서는 감정이 폭발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거울 장면은 최지연의 감정을 표현한 거였고, 법정에서는 윤희의 감정을 표현한 거였어요. 거울에서는 억울한 게 최지연이 억울한 거였는데, 그래서 윤희의 감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거울 장면과 법정 장면의 차이라면 그 부분이 포인트였을 거예요.
<윤희>를 작업하며 느끼고 얻은 것들이 있다면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워요. 진정으로 진심을 담아서 연기했으니까요. 현장 스탭, 배우들도 저의 부족함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래도 그 순간 제가 진심으로 했다는 건 알아준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목적이 부와 명예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피가 끓어서 하는 것도 있거든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서로 그런 것들을 느낀 거죠. 원톱 영화다보니 배우로서 제가 선장인 셈이잖아요. 처음에는 인정을 안 해주다 점점 인정해주는 분위기로 바뀌니 정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영화인 거예요. 이 영화하길 잘했다, 13년 동안 어눌했고 안타까움도 많았지만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배우로서 성숙해진 부분도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죠. 미완성이지만 이제야 넘어야할 한 고개를 넘은 느낌이에요. 아직 부족하지만, 제가 저를 조금은 배우로 보게 된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대한민국에 최지연이라는 배우가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굉장한 게 아닐까 싶어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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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권영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