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난영화들을 재밌게는 봤지만 내가 저 역할을 했다면, 대입해서 본 적은 없었거든요. 재난영화라는 장르를 생각지도 않던 찰나에 재난영화 시나리오를 받게 된 거죠. 저에게는 같이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작업이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했어요. 여태까지 늘 남녀가 극에 달하는 상황까지 갔거든요. <감기>는 배우들의 협업이 중요한 작품이고, 그렇게 이뤄내야 하는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 많은 배울 점이 있겠다 싶었죠. 김성수 감독님이 현장에서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게 쉽지 않고, 그걸 해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크다고 생각해요. 힘들어서 배우들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혁이 오빠, 해진 오빠한테도 그렇고 감독님은 더할 나위 없고요. 매번 질문도 엄청 많이 했대요(웃음). 그래서 긴장도 늦출 수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촬영이 없을 때는 풀어진 나의 모습을 보일 수 있었어요. 여러 가지가 공존했던 현장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힘들어서 다른 배우들에게 의지했던 건가요?
일단 제가 늦게 캐스팅이 됐고, 배우들과 리딩할 때 감독님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셨어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모습들을 보인다는 생각을 하니 부담이 되더라고요. 리딩을 하고 그날 멘붕이 왔는데, 혁이 오빠가 제 마음을 헤아리고 있더라고요. 불과 몇 달 전에 본인도 그랬다면서요(웃음). 그래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들을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하다 보니 혁이 오빠가 다 받아줬어요. 가장 필요한 건 내 얘기를 들어줄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에요. 저에게는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돼주었죠.
장혁씨도 수애가 비슷한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제가요? (웃음)
일단 수애가 촬영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지만(웃음), 여배우의 편견을 넘어서는 모습들을 현장에서 보여줬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다더군요.
맞아요. 상대적인 것 같아요. 내가 그만큼 현장을 즐기고 있고 현장을 떠나가 싫어하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진짜 좋아했거든요. 오빠들도 좋아해주셨죠(웃음).
최근 출연 영화들을 보면 액션, 스릴러, 재난 등 장르적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었어요. 작품 선택의 기준에 장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건가요?
드라마 ‘천년의 약속’ 끝나고 많이 지쳐있었어요. 심적으로 무언가 호소해야하는 역할을 본의 아니게 했던 것 같아요. ‘천년의 약속’은 김수현 선생님의 작품을 하고 싶었고, 완벽한 시나리오 안에서 배우들이 놀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나 생각해서 선택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끝나고 지쳐있는 상태에서 <감기> 시나리오를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죠. 처음에 고사했던 이유는 다른 이유보다 들킬 것 같았어요. 제가 결혼을 안했고, 모성애 연기를 해야 하는데 들킬 우려가 있지 않을까 싶어 고사를 했다가 감독님을 뵙고 선택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야왕’을 선택했죠. ‘야왕’도 그런 흐름이 될지 모르고 선택했던 거라 의도치 않게 흘러갔던 방향이 분명 있었고, 심적으로 표현된 것이 많아서 유독 재작년, 작년, 올해 작품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저 또한 말은 이렇게 하지만, 또 어떤 시나리오를 받고 매력을 느낄 진 모르지만, 다양하게 장르적으로 캐릭터적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아, 그래요? 그때 신인 때인데(웃음).
헌데 이후 행보들을 보면 연기력을 인정받고 배우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지만, 장점이었던 무게감에 캐릭터로 더 무게감을 덧쌓는 느낌이었어요. 연기 잘한다는 확신은 주었지만, 다른 부분으로 힘을 발산했다면 애초에 갖고 있던 그 무게감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거든요.
시나리오를 택했을 때 매력을 느꼈던 부분이 지금까지는 비슷했던 것 같아요. 일단 외유내강형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서 선택을 했고, 그 안에서 저는 다양하게 표현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가족> <나의 결혼 원정기> <그해 여름> <님은 먼곳에> <불꽃처럼 나비처럼> <심야의 FM> <감기>까지 왔는데, 영화 필모는 다양하게 접근을 한 것 같아요. ‘천일의 약속’과 ‘야왕’ 드라마 두 작품이 워낙 세서 근래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고, 저 또한 지쳐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로맨틱 코미디가 됐건 그런 식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1박 2일’에 출연한 것도 있어요. 편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이유도 있어요.
앞으로 다양한 작품, 캐릭터에 도전하겠지만, 지금이 그 시점이란 생각이 들어요. 전보다 힘을 뺐지만 그래도 무게감 있는, 역시 수애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기를 보고 싶은 거죠.
그러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 찬사를(웃음), 저도 욕심이 생겼어요.
영화에서는 흥행 성적에서 유독 좋지 않았어요. <불꽃처럼 나비처럼> 때 영화를 제작한 김미희 대표와 인터뷰를 했는데, 수애에게 흥행배우 타이틀을 선사하고 싶다는 강한 바람을 내비쳤거든요.
지금도 미희 언니와 친분이 두터워요. 아이러니하게 대표님이 제작한 <숨바꼭질>과 같은 날 개봉을 하는데, 통화를 했죠. 빨리 끝내고 다 훌훌 털고 같이 여행가자고(웃음). 매번 작품들이 기대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성적이 좋지 않잖아요(웃음). 배우들은 그런 수치, 통계로 평가 받아야하는 거잖아요. 당연한 거고요. 그게 배우들의 애환이라고 저는 생각해요(웃음). 제가 얼마나 즐겼든, 현장이 얼마나 즐거웠든,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하고 그 영화를 얘기하는데 있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원해 만든 영화인 게 사실이죠. 나 하나 즐겁자고 만든 영화는 아니니까요(웃음). 이번에도 흥행을 바라고 그때보다 더 많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흥행 욕심이 있어요. 그런데 매번 욕심은 있었거든요(웃음). 욕심낸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책임감도 있는데 부담감은 덜해요. 배우들도 많고 감독님도 있어서 그런지, 저 혼자 혹은 남자 배우와 끌고 갔던 영화에 비해 부담감은 좀 덜고 이 순간을 즐기고 있긴 해요.
(웃음) 그래서 더 선택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저 한편에서는 들었어요. 워낙 예산이 크잖아요. 그런 큰 예산의 영화 <님은 먼 곳에>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경험해보니 해야 될 몫이 많아지고 부담은 커지는 거예요. 저예산으로 정말 즐겁게 할 수 있는, <가족>같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면 오히려 선택했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부담됐어요. 또 나에게 뭔가 상처를 주는(웃음). 며칠 전에 배우들 통계 낸 걸 봤어요. 저는 마이너스가 너무 많아서(웃음), 깜짝 놀랐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접근했다면 저예산의 덜 부담되는 작품을 오히려 선택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런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작품을 선택할 수는 없겠죠(웃음). 관객들이 <감기>를 두고 어떤 선택을 할진 모르지만, 빨리 수애가 흥행배우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면 좋겠네요(웃음).
아마 이번 <감기>로(웃음). 제가 <가족>이 최고 흥행작이에요. 200만. 그걸 넘은 적이 없어요. <감기>로 기대를 조금 하고 있죠(웃음).
본인 기록을 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웃음).
그렇죠. 근데 어쨌든 10년 동안 <가족>으로 흥행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이제는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웃음).
TV 드라마의 뜨거운 반응들에 비해 유독 영화에서는 왜 흥행이 부진할까 생각을 해봤나요?
생각 많이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빨리 해답을 찾아서, 다음 작품은 그걸 비껴가야 할 텐데(웃음). 저는 작품마다 의미가 너무 커요. 그래서 매 작품마다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누군가에게 마이너스를 안겼다는 사실은 참 슬프잖아요. 또 그런 배우가 된다는 것도 서글프고요(웃음).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유는 정말 모르겠어요.
저도 생각해봤지만 명확한 이유가 딱히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인지도의 문제라면 드라마에서도 별 반응이 없어야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어마어마한 반응이 오거든요. 영화에서는 작품이 안 좋았나, 연기를 못했나, 생각하면 또 아니고요.
그런 핑계를 댄 적 있어요. 나는 흥행이나 상업영화를 추구하지 않는다고(웃음). 편한 자리였어요. 지금처럼 친한 누군가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해서요(웃음). 모순이라고, 대작 영화를 해놓고 흥행과 무관하다하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돌이켜보니 어쨌든 예산이 많다는 건 흥행과 비례하는 거고, 생각해보니 맞더라고요. <가족>같은 작은 영화도 있었지만 그 후로는 예산들이 컸고, 100억 단위의 영화를 두 편이나 해놓고 흥행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하니 저는 핑계 댈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운이 아닐까요? (웃음) 흥행만큼은 배우도 감독도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바이기도 하고, 그걸 저도 잘 아니까요.
방금 한말이 마냥 핑계로만은 들리지 않아요. 물론 규모가 큰 상업영화지만, 작품 면면을 보면 흥행이 쉽게 점쳐지거나 하는 작품들 위주로 선택하지는 않았던 것 같거든요.
그렇죠? (웃음) <님은 먼곳에>까지는 이준익 감독님도 계시고 해서 철없이 굴었어요. 처음 책임감을 크게 느낀 게 <불꽃처럼 나비처럼>이에요. 대표님이 제작비를 어떻게 마련했는지 그 과정을 제가 다 봤거든요. 그래서 ‘무릎팍도사’도 나가고 할 수 있는 건 다했죠. 결과적으로 썩 좋진 못했지만 배우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렇죠. 그런데 초반에 감독님이 인혜와 지구가 재난영화라서 많이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가볍게 접할 수 있게 스타트를 하자고 했어요. 감독님이 저를 사석에서 보고 편안한 모습도 많은데 이런 것도 적절하게 좀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내심 걱정을 했거든요. 로맨틱 코미디를 안 해봐서요. 감독님에게 오히려 부탁드렸죠. 배우들과 호흡 다 맞추고 중간에 찍자고. 감독님은 이상하면 재촬영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촬영을 했어요. 캐릭터가 물론 이기적이지만 싱글맘이 될 수밖에 없는 과정, 상처도 있었겠죠. 그래서 남자에게 잘 보이는 건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설정을 잡고 촬영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촬영 끝나고 로맨틱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배우가 재밌어야 관객들도 재밌고, 그것이 1차 관문인데 저는 지금껏 그것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늘 숙제로 다가가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아마 로맨틱 코미디도 되게 어렵게 했을 거예요. 하정우씨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촬영할 때도 초반에 살짝 그런 잔잔한 재미들이 있어요. 어떻게 담길 진 모르겠지만, 촬영하면서 제가 엄청 고민을 하더라고요. 즐겁지 못하게. 그때 생각이 나서 이번에도 살짝 지레 겁이 났는데, 촬영하면서는 상대와의 호흡과 감독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다음부터 계속 로맨틱 코미디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다니죠(웃음).
밝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는 좋지만,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보이면 후에 모성애가 부각되지 않는 건 아닐까, 고민되진 않았나요?
초반에 지구와 인혜가 너무 떠있는 거 아닌가, 라는 평도 봤어요. 반성도 좀 하고요(웃음). 인혜는 모든 면에서 덤벙대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여자지만 가족애가 강해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아이에게 미안한 엄마일거라 빤하게 캐릭터를 잡아갔는데 감독님이 아이에게 무심하게, 친구같이 행동하라는 거예요. 의아했어요. 그래서 초반에 NG를 많이 냈고요. 아이가 엄마를 포용할 수 있는, 그래서 오히려 아이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 정도로 빈구석이 많은 사람.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가 일할 때는 조금 완벽하게 그리려고 저희들끼리는 생각을 했는데(웃음), 잘 모르겠어요. 초반에 너무 장르적으로 맞지 않다는 그런 얘기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이와의 관계 설정이나 의사라는 직업적 설정에서는 큰 무리 없이 봤어요. 다만 앞부분의 설정은 톤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극단적 표현을 살짝 죽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은 들더라고요.
아이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되고 지구에게 발각되잖아요. 그것 때문에 둘이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마저 없던 신이에요. 편집본을 보고 감독님이 인혜가 너무 이기적일 것 같다고, 아이에 대한 심정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추가로 만들어진 신이거든요. 감독님 의도로는 지구와는 상반된 이기적일 수 있는 캐릭터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인혜가 영화적으로는 중립이라고 생각해요. 마동석씨가 악역이고요(웃음). 여자는 인혜 혼자니까 동선이나 행동들이 많이 보이나 봐요. 그래서 민폐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게 저는 의아했죠.
의사라는 직업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가족도 중요하지만 모든 사람의 생명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래서 내적 갈등이 분명 생기겠죠. 그 갈등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딸을 택했다면 어쩔 수 없이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공감할 여지가 있을 텐데, 초반에 타인에게 막 대하는 사람으로 비쳐지다보니 당연히 직업윤리도 없고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딸만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민폐 캐릭터로 보일 여지가 있는 거죠.
그렇군요. 감독님 눈에는 인혜가 귀엽대요(웃음). 감독님이 생각한 귀여운 캐릭터는 그런 건데(웃음).
일단 인혜는 지구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지구의 무한한 사랑으로 인해 어떤 동료애를 느낀 건 사실이지만 중후반에도 거의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엔딩에서는 인혜 눈에서 하트가 보였으면 좋겠다고(웃음). 그때야 비로소 심적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인혜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여자들 있잖아요. 이기적인데, 상처가 많아서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상처가 많아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사람들이 있죠.
마지막 부분에서야 인혜가 지구의 그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인혜는 더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웃음). 지구는 계속 사랑을 주고 인혜는 계속 사랑을 받지 않으니까요(웃음).
어느 시점부터 인혜의 지구에 대한 감정이 이성으로서의 호감인지 인간으로서의 호감인지는 애매하지만 변화가 있긴 했어요. 그래서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언제부터 생기게 된 건지 궁금했던 거죠.
감염수용소에서 항체를 구하고 아이를 빨리 데리고 가야했잖아요. 그때 인혜와 지구가 미묘하게 눈빛을 주고받는 신이 있었어요. ‘고마워’의 선을 넘은 눈빛. 그런 감정을 감독님이 편집하셨더라고요. 너무 과한 것 같다고. 그 시점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인간적으로 따뜻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남자로서 느끼기에는 많은 것들이 더 차단되어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에필로그가 웃겨요(웃음).
개인적으로는 너무 오글거려서(웃음). 굳이 꼭 넣어야했나, <영어완전정복> 생각도 나고(웃음). 방금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큰 상처가 있음에도 마음을 연 인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인 거네요.
마음을 열고 사랑을 하면 뜨겁고 정열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닫아두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에필로그 촬영할 때는 어땠나요? 오프닝과는 또 달랐을 것 같아요.
거의 엔딩 후반부에 찍었어요. 에필로그 찍고 단체사진 찍었으니 보충촬영 말고는 마지막 촬영인 것 같네요. 마지막을 즐기듯이(웃음),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다고 해서 즐기듯이 많이 내려놓고 촬영했어요. 인혜와 지구보다 해진 오빠 나오는 장면이 저는 더 재밌었어요(웃음). 제가 영화에 대해 너무 관대한가봐요(웃음).
협업하는 것 외에 <감기> 통해서 얻은 것들이 또 있었나요?
현장에서 대본 없이 많이 내려놓고 촬영했다고 했잖아요. 저는 파고드는 스타일인데 그런 작업을 하지 말라고 감독님이 당부하셨거든요. 그 말인즉 현장에서 즐겨달라는 건데, 실제 그렇게 하기도 했고요. 많은 NG를 겪기도 했지만, 끝나고 나서 혁이 오빠가 이런 작업을 거쳤는데 다음 작품에서 정말 즐길 수 있겠다고, 더 놀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야왕’을 찍었는데 드라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더 치열했거든요(웃음). 어쨌든 저에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못하면 지적을 받는데도 창피하지 않더라고요. 해진 오빠도 모니터를 보면 표정으로 좋다, 안 좋다가 나타나요. 안 그래도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하는데 그 안에서도 또 평가를 받으면 많이 불편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해진 오빠의 표정을 보고 다시 테이크를 가고 싶기도 했고요. 이상하면 바로 물어봐요. ‘수애야, 너는 어떻게 느꼈어?’ ‘혁아, 너는 왜 이렇게 연기를 해야만 했니?’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깊게 생각하면 배우로서 창피할 수도 있는 건데, 그조차도 좋았어요. 초반에 감독님이 ‘수애씨, 엄마로 안보여요’라고 말씀하셨어요. 가장 치명적인, 제가 놓치고 간 초반의 실수였거든요. 이런 것들을 여과 없이 바로 얘기해주세요. 그러면서도 즐길 수 있는 현장이 있을까 싶은 거죠.
그동안 수애가 연기해온 캐릭터들을 통해 추측하건데, 깊게 파고들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할 것 같아서 동료, 스탭들에게 피해주는 걸 굉장히 싫어할 것 같았거든요.
맞아요.
그런 것들을 완전히 깨는 현장이었던 거네요. 많은 것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여도 마음 한편에는 낯 뜨겁고 화도 나고 그럴 수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장이었으니까요.
자꾸 현장에서 노래하고(웃음), 그런 분위기 있잖아요. 진짜 현장을 즐겼던 게 아닌가 싶어요.
작품 성향이나 현장 분위기에 따라 연기하는 방식도 다르게 활용될 수 있는 여지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에 맞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을 테고요. 내려놓고 즐긴 경험이 좋았다고 모든 작품을 다 그렇게 할 순 없잖아요. 그 경험이 유사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거겠죠.
저도 모르게 습득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은 들어요. 지금은 자신 없거든요. 또 하라면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성공 여부를 떠나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째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예상하는 거죠(웃음).
그런 부분은 제가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감기>에서 제가 맨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너의 엄마야, 엄마만 믿어, 이런 연기를 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오히려 아이에게 의지하는 엄마 역을 해서 그런지 그 부분이 많이 와 닿지는 않아요. 주변에서도 아직 그렇게 인식하지는 않는 것 같고요.
‘엄마가 아니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아이를 구하려고 했을 것 같다’고 언론시사회에서 했던 말이 와 닿았어요. 모성애에 천착했다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잃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맞아요. 그랬으면 아마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오히려 작은 것에서 들킬까봐 조바심을 많이 냈어요. 아이를 안고, 눈 맞추고, 이런 행동들. 머리가 무거워서 갓난아기는 목을 받치고 안는다더라, 이런 너무 많은 상식들을 전 모르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올해도 쉼 없이 달려온 것 같아요. 그래서 쉬고 싶다는 건 아닌데(웃음),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다양하게 하고 싶다고 말씀은 드리는데 어떤 작품에 또 꽂힐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감기>보다 더 심한 재난영화가 될 수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다양하게 시도하고 싶은 욕심은 지금 상당히 커요.
영화는 오랜만이에요. <감기>가 촬영을 작년에 하긴 했지만 개봉 시점으로는 3년만이거든요. 출연했던 드라마들이 워낙 잘돼서 영화는 좀 소원해진 건 아닌가요? (웃음)
저도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웃음). 드라마가 워낙 힘들기도 하고요. 이제는 드라마의 장점도 정확히 알고 영화의 장점도 알아요. 만약 로맨틱 코미디를 한다면 공들일 수 있는 작품을 영화로 선택하고 싶어요. 저도 영화로 꾸준히 뵙고 싶어요(웃음).
<님은 먼곳에>가 연기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 된 영화였어요. 그 후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어떤가요?
지금 이 시점이 배우로서 생각이 가장 많아요. 많이 돌이켜보거든요(웃음). 쉼 없이 열심히 왔구나, 라는 생각은 들어요. 잘 왔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제 선택 위주로 해왔고,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조금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좀 다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가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웃음).
2013년 9월 5일 목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