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웃음).
연극배우 출신 아버지 반석진의 영향도 있었나요?
아버지가 연기를 하셨으니까 어렴풋이 그런 마음이 없진 않았을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사실 이런 얘기하는 거 안 좋아하셔서(웃음), 가급적 안 하려고해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아버지가 서포트 해주는 거 아니냐는 편견을 가진 분들도 있어요. 솔직히 서포트 해주셨으면 제가 지금보다 좀 더 컸겠죠(웃음). 아버지와 저는 배우 대 배우거든요. 네 갈 길은 네가 알아서 가라, 아버지는 그런 편이고요. 가끔 조언은 해주세요. 제가 연기에 대해서 힘들 때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면 방향성은 제시해주시는데, 일에 대해 도와주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배우 대 배우로 아버지께서 조언해준 방향성 같은 건 어떤 것들이었나요?
연기에 관련된 부분보다 어딜 가든 항상 겸손해야하고 몸가짐 단단히 해야 한다고 굉장히 강조하셨어요. 현장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씀을 많이 하셨고요. 그런 아버지 말씀을 따랐던 것이 혼자서도 10년 넘게 일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래도 혼자 활동하다보면 상처받는 일도 많이 있었거든요. 무시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뭐랄까 여배우라 만만하게 보는 그런 일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더 걱정을 하셨던 거죠.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막연했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입학을 하게 됐어요.
고3때 까지는 아나운서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문계에서 공부하다가 친했던 친구가 한예종 음악원 성악과에 시험을 본다는 거예요. 저는 내성적이었어요. 남 앞에서 얘기도 잘 못하고 한정된 친구들만 만나고 그랬어요.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는지 연기과에 시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연기를 했던 것도 아니고, 끼가 있어서 나서는 성격도 아닌 네가 그 곳 경쟁이 얼마나 센데 될 것 같냐고(웃음). 아, 그렇지(웃음), 수긍하면서 그 당시는 포기를 했어요. 그러다 원서 접수하는 날에 문득 한번 응시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이쪽 일을 하셨으니까 굉장히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처음으로 뜻하지 않게 반항을 했죠. 몰래 원서를 넣었어요.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1차에 된 거예요. 그리고 2차, 3차 계속 잘 돼서 이 길이 내 길인가(웃음), 하면서 학교를 다녔죠. 대학 1학년 때도 굉장히 소심했어요. ‘여기서 꺼져버려’라는 대사를 상대방과 주고받아야하는데 그 대사가 안 나오는 거예요. 목에서 ‘꺼’까지 나오려다 말고, 이런 식으로요(웃음). 친구가 소리 좀 질러보라며 답답해했죠. 1학년 1학기 때까지 교수님도 제가 너무 조용하니까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는데, 연기를 하면서 성격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람들하고도 더 얘기를 많이 하게 됐고, 외향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요.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은 했어요. 연기가 아니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물론 다른 걸 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활동을 하다보면 기복이 있고 공백이 있을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어느 정도 활동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혼자 한다고 열심히 했지만, 나름 중고신인이잖아요. 제 위치가 애매한 거예요. 일이 꾸준히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벌어놓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까지 다른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안정적이진 않았을까, 생각해봤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다른 일을 하기에는 후회가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더 하게 됐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기할 때와는 다른 얻는 것들이 또 있더라고요. 같이 병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취인불명>으로 데뷔해서 큰 인상을 남겼어요. 그래서 다음 활동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도 컸고요. 하지만 그 이후로 눈에 띄는 활동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어요. <수취인불명>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요?
연극부터 시작해서 나름 꾸준히 활동을 하고는 있었어요(웃음). 혼사 사회에 막 나와서 아무 것도 모를 때 주변에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분을 못 만났어요. 그리고 학업에 대한 열정이 커서 그때는 연기에 대해서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스타가 되고 유명해지려는 그런 생각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없었어요. 연기를 평생 할 거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작품이 들어와도 가린 게 많았어요. 흔히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당연히 노출이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는 거예요. <수취인불명>의 은옥은 그런 역이 아니었거든요. 노출도 없었고요. 그런데 보통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은 파격적인 노출도 있었고, 어린 나이에 생각하기에 저한테 얼마나 시너지가 있을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생각하기에 끌리면 하는 거예요. 아니면 안 하는 거고요. 타당성 있는 노출이 아닌, 굳이 필요가 없는 노출이 있는 시나리오들이 많이 들어와서 거절을 했어요. 제가 혼자서 소화하기에는 힘들었을 것 같은 작품들도 있었고요.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연기에 대해서 완벽주의자 같았어요. 은옥을 연기할 때도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은옥은 밥을 먹을 때 어떻게 숟가락을 잡을 것이고, 길을 갈 때 어떻게 걸을 것이고, 그런 하나하나 다 생각하는 거예요. 숨이 막히죠(웃음). 작품 분석이라든가 캐릭터 분석이라든가 거의 일상이 은옥에 묻어갔어요. 연기 시작하고 몇 년간은 저를 옥죄는 완벽주의자처럼 무조건 연기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더 작품성 있는 영화를 원하기는 했어요. 지금은 조금 바뀌었어요. 물론 그때도 상대방과의 호흡이나 스탭들과의 어우러짐은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좀 놓게 됐어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현장에서 좀 더 즐기고 사람들과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하는 것, 그런 쪽으로 연기를 하면서 정말 재밌고 즐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 변화들은 자연스럽게 찾아온 건가요?
우울한 역할, 우울한 작품을 하면 너무 괴로운 거예요. 어떤 연극에서 굉장히 아프고 무거운 역을 했거든요. 사람들이 저를 보면 너 왜 이렇게 피폐해, 무슨 일이야, 그럴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연극을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로워야하지? 물론 그런 작업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즐기는 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울증도 왔고요. 어떻게 하면 이 힘든 것마저 즐기면서 계속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됐죠.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작품이 끝나도 그 캐릭터에 빠져있는 시간이 너무 긴 거예요.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어떤 역할이나 인물에 들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설명이 잘 되어 있는데 끝나고 빠져나오는 과정은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배우들이 우울증도 걸리고,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일들도 일어나는 것 같아요. 쉬는 기간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개개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교육적으로나 주변에서나 조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지? (웃음)
하지만 힘든 과정을 겪고 다시는 그런 작품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어도 막상 좋은 작품을 보면 다시 욕심이 나겠죠.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이 힘든 것 같기도 하고요. 할리우드에서는 작품이 끝나면 배우의 정신과 상담까지, 그 과정이 마련되어 있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병원에 가면 일단 이상하게 보잖아요.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지가 강한 작품으로 데뷔해서 그 후에 ‘각시탈’의 안나도 그렇고 이번 <닥터>의 수간호사 역할도 그렇죠. 사실 정반대의 인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개성 있고 강한 작품들이 많이 기억되는 거죠. 이미지 때문에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같이 피드백 할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의 역할도 많이 하고 싶거든요. 가끔 어떤 작품에서는 제가 했던 이미지들, 배우 느낌이 더 강하니까 가급적이면 얘기하지 말고 웃지도 말라고 할 때도 있었어요(웃음).
배우로서의 이미지 자체가 반민정이 그동안 쌓아온 노력의 대가겠죠. <수취인불명>이 강하게 각인됐다고, 외모의 색이 짙어 보인다고, 그런 단편적인 이유 몇 가지만으로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동안의 행보와 연기와 인성,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만든 배우라는 타이틀은 제아무리 인기 많은 스타라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 부분을 지금껏 잘 쌓아왔으니 대중과 친화될 수 있는 것들과 병행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죠.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이미지나 역할들을 더 이상 하기 싫다는 건 아니에요. 앞으로도 필요하고, 해야 할 것이고요. 배우가 하고 싶은 역할과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가 다를 수도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해서 가고 싶지는 않아요. 저도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으니까요(웃음).
<여자없는 세상> <비상> <특수본> <90분> <닥터> 등 최근 몇 년간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서 그래서 더 반가웠어요.
<비상>은 두 역할 중에서 고민을 했어요. 하나는 신이 더 많고 하나는 제가 생각하기에 더 강렬한 역할이라 후자를 택했죠. <90분>은 여주인공으로 연락이 왔어요. 해외에 있어서 그 기간에 못가고 나중에 뵀더니 주인공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저에게 기자 역할을 제안해주시더라고요. <닥터>도 처음에는 순정 역으로 만나자고 하셨어요.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아픈 거예요. 세포를 찌르는 느낌. 너무 잔인한 거예요. 못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순정은 역할 자체가 저보다는 어린 친구가 더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 다른 역할로 한번 보라고 해서 수간호사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건 아니에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반민정이라는 배우가 연기 폭이 넓다는 것을 다양한 캐릭터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어린 역할도 하고 지금보다 나이 많은 역할도 할 수 있어요. 나이 때문에 결정하는 건 아니에요. 어느 정도 연기를 하다 보니 제 캐릭터만 보는 게 아니라 작품도 같이 보는 거예요. 물론 감독님이 그리는 이미지와 제가 그려본 이미지가 다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저도 보이는 거예요. 내가 소화할 수 있겠다, 잘 어우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이미지와 연기 톤이 안 맞는데도 정말 열심히 잘해보겠다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말씀을 드린 거예요.
맞는 말이에요. 배우가 욕심만으로 결정한다면 오히려 작품에 해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캐릭터의 감정은 표현할 만한 여지가 있는데 나이라든지 다른 조건들이 걸리는 경우가 있을 때, 배우에 대한 감독의 확신이 있다면 배우에 맞춰 시나리오의 설정들이 수정될 때도 있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너무 국한되지 않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욕심 많죠. 저도 배우인데(웃음).
<닥터>의 수간호사 역할은 목소리도 그렇고 톤 자체를 평소 모습과 다르게 잡은 것 같아요. 사무적인 듯한, 엄격하고 에프엠 같은 사감선생님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걸 감독님이 원하셨어요. 영화 속에서 수간호사가 유일하게 인범에게 바른 말을 하고 중심을 잡는 역할이기 때문에 감독님께서 전형적인 인물을 원하셨어요. 영화를 보면서 살짝 아쉬운 면은 없지 않아 있었어요. ‘각시탈’하고 같이 촬영했거든요. <닥터>가 몇 달 딜레이 되면서 하필 ‘각시탈’에서 한창 비중이 많아졌을 때 촬영이 잡힌 거예요. 세트장 때문에 일정을 미룰 수 없어서 정말 강행군이었어요. 합천에서 드라마 촬영하고 인천 세트장에서 영화를 찍었거든요. 1주일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통틀어서 3시간도 못잔 것 같아요. 다행히 촬영장에서는 즐겁게 찍었지만, 그래서 더 인물 자체가 곱게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도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수간호사 역할이 히스토리가 많이 없거든요. 배우는 비중과 상관없이 내가 나온 장면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에요. 하지만 영화 전체의 주인공은 따로 있거든요. 포커스는 당연히 인범에게 있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과 대사 안에서 수간호사의 히스토리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죠.
솔직히 <닥터>를 보면서 신인 여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반민정이 등장하는 순간 그 존재만으로 극에 안정감을 주더군요.
감독님께서 많이 믿어주셨어요.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는 꼭해야하지만 그 외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셨어요. 문어체 대사라 소화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죽기 전에 통화하는 부분처럼 즉흥적인 상황이나 주변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활용해서 애드리브로 연기한 부분이 많았어요.
제가 한번 접해보고 경험한 것과 막연히 간접경험과 상상으로 작품에 들어가는 것과는 연기할 때 차이가 있어요. 자신감이 붙거든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많이 배우고 접하고 경험해보라는 이야기를 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굉장히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직업이라는 얘기,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알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캐스팅이 되고 촬영 전에 배우는 건 의무의 문제지만, 미리미리 다양한 것들을 배운다는 건 의지의 문제거든요. 일에 지치면 심신이 힘들고 쉬고 싶기 마련인데, 그 시간을 쪼개서 투자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거겠죠.
기회가 있을 때 배우게 됐던 거고,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면 우울증이 가끔 오거든요. 전에는 안 그랬는데 세월이 갈수록 존재감에 대해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의 돌파구로 배우기 시작한 것들도 있어요. 학업을 병행하며 후진양성 쪽으로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것도 힘든 시기에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분출한 거죠. 그래서 그 단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관되거나 연관된 것들이 아니라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복싱이라든지 마술이라든지요.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건 제대로 된 특기가 없다는 말일 수도 있죠(웃음). 연기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선택한 거예요.
어학 실력도 수준급, 뮤지컬에도 출연했지만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라고 들었어요. 간판으로 걸어놓은 것 같진 않더라고요(웃음). 복싱을 배울 때 관장에게 선수 제안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거든요.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으셨어요? (웃음) 관장님이 예뻐해 주신 건 맞아요. 이시영씨가 복싱하기 전인데, 저는 몸을 사렸죠. 배우라 몸이 생명인데(웃음). 이시영씨를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각자에 맞는 연기관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아요.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것과 철저히 계산적으로 연기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잘 어우러지게 하려고 많이 노력들을 하고 저도 그래요. 전에는 철저히 계산을 했어요. 작품 분석, 인물 분석을 철저히 하고 그 다음에 감각적, 감성적 부분을 접근했는데 지금은 두 부분을 잘 어우르려고 하고 있거든요. 어쨌든 사람의 감성을 전달하는 게 배우인데 너무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계산적으로 하지 않으려고요. 자기 재능을 믿고 나태해지거나 자만하지 말고, 너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감성으로 다가가면 다 통하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행하는 것들이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건, 관객과 본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인가요?
네, 둘 다요. 많이 감동을 드려야하는데(웃음).
‘단지 믿었던 길을 똑바로 나아갈 뿐이다’라는 일본어로 된 문구도 있던데, 제대로 해석한 것 맞나요? (웃음) 그 믿었던 길이란 어떤 건가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에요(웃음).
배우로서의 길인가요, 인간 반민정의 길인가요?
그것도 둘 다예요. 많은 유혹도 있고 좌절할 때도 많지만 인생은 하나뿐이잖아요. 물론 후세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우선 가는 거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어요. 감동을 주는 사람, 감동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감동을 주는 배우, 그러면서 사람들과 오래 같이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존경 받을 수 있는 배우,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고 보고 싶어지는, 인정받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응징자> 촬영을 마쳤고, 이후 다른 활동 계획은 없나요?
아직 없어요. 그동안 죽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새야 새야’ ‘각시탈’ <닥터> <응징자> 등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열 번 정도 죽은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는 오래오래 사는 역할을 맡아야죠(웃음).
2013년 7월 1일 월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2013년 7월 1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