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인줄 알고 보셨다가 이건 뭐지, 라며 보시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코미디 요소가 강하더라고요.
세 작품과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죠.
그런 <탈출>의 시나리오를 받고 당황했을 것도 같아요.
많이 놀랐어요. 고병신, 사탄희 등 주인공 이름은 물론이고 사후 세계며 그곳에 사는 괴물 등 이야기 설정이 낯설었어요. 좀 시간이 걸렸죠. 시나리오를 다섯 번 정도 읽어보니 이해가 됐어요. 처음 해보는 장르라서 감이 잘 안 잡혔지만 해보고 싶었어요. 사탄희라는 인물도 매력적이었고요.
대본 리딩 때 감독님이 공포영화지만 코믹함을 더해서 이야기를 풀어갈 거라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어요. 믿음이 갔어요. 굉장히 디테일하세요. 촬영 전부터 어떻게 찍을 건지 정리가 다 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배우들 동선이나 시선처리까지 직접 알려주셔서 현장에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줄어들었어요. 감독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정범식 감독에게 도움을 받았겠지만 사탄희라는 인물을 구체화시키는 건 배우 몫이잖아요. 독특한 캐릭터인 이 인물을 어떻게 구체화 시켰는지 궁금해요.
사탄희는 여고생이잖아요. 처음에는 흑마술을 하는 친구라서 목소리 톤을 낮게 잡고 말도 느릿느릿하게 했어요. 감독님이 그냥 보통 여고생처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어요. 이후 독특한 모습 보다는 과거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연기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속이 뻥 뚫렸죠(웃음). 나름대로 내지르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요.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였어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지원이처럼 너무 어른스럽고 착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설한나처럼 못되고 표독스럽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 새로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돼요.
걱정이요?
연기는 재미있게 했는데 흑마술에 미친 아이라 모습 자체가 쇼킹하잖아요. 독특한 인물이라서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해요. 욕설도 나오고요(웃음).
욕설이 너무 자연스럽던데요? (웃음)
숨겨진 모습을 조금 꺼내서 보여드렸어요(웃음).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친언니와 친구들이 영화를 봤는데, 그냥 별 말 없었어요. 다들 ‘고경표씨 팬 됐어’라는 말만 하더라고요(웃음).
서운했겠어요(웃음).
원래 그래요(웃음). 언니랑 친구들하고는 쿨한 관계예요. 경표 오빠가 워낙 고생도 많이 했고 연기를 잘 했으니까 이해해요.
촬영 때는 파트너가 그렇게 고생을 한 걸 몰랐나요?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말이 안 될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어느 날은 경표 오빠가 전화해서 뻘에 간다고 했어요. 뻘에는 왜 가냐고 했더니 지옥이 뻘이라고(웃음). 경표 오빠에 비하면 저는 학교하고 집에서만 촬영해서 고생을 덜 했어요. 감독님께 감사드려요(웃음).
믿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세상이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만약 고병신처럼 다른 세계에 갔다면 탈출하려는 용기도 못 냈을 거예요.
공포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나마 좋아하는, 재미있게 봤던 공포영화가 있다면요?
<탈출>(웃음). 워낙 공포영화를 못 보니까 코믹함이 강하게 삽입된 <탈출>같은 작품이 좋아요. 처음부터 무서운 공포영화는 딱 질색이에요. 그나마 봤던 건 <분홍신>이에요. 하지만 후유증이 오래가더라고요. 그 이후로 분홍 구두는 안 보고 안 샀어요.
공포 이미지들이 극명하게 남는 편인가봐요.
심하게 남아요. <탈출>에 엘리베이터 장면이 나오는데 무섭더라고요. 영화처럼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갈까봐서요.
사실 크게 차이는 안 났어요. 1편 때는 하루 꼬박 촬영했는데, 이번에는 이틀 촬영했어요. 감독님이 쫙 뽑아냈어요.
짧은 촬영이라 아쉬움은 없었나요?
촬영 때는 없었지만 편집 때는 좀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현장에서 연기할 때는 연기 호흡을 길게 가져갔는데, 완성된 영화는 호흡이 짧게 나왔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웃을 때 계속 웃을 수는 없잖아요. 영화가 호흡이 짧다보니 웃거나 공포를 느낄 여유가 없어요. 영화를 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더니 같이 보고 계셨던 감독님도 똑같은 심정이더라고요.
아쉬움이 있어요. 하지만 복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많이 하니까 기분은 좋아요. 지인들도 어릴 때 고등학생 역할을 하는 게 복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고등학교 때부터 활동해서 학교를 잘 못 갔거든요. 그 때 못 입었던 교복을 지금 원 없이 입고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이제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나름대로 성숙함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식 시간을 가졌는데 성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지원 역만 보더라도 어른스러운 여고생이라 억지로 성숙함을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애 같은 대학생을 맡던 어른 같은 고등학생을 맡던 자연스러운 변화가 필요하겠죠(웃음).
30년 이상 연기를 해야 배우라는 직함이 어울릴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부끄러워요. 오랫동안 연기를 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배우라는 직함이 어울릴 것 같아요. 연기는 재미있어요. 감정을 담아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거든요. 하지만 아직 배우라는 거창한 직함은 어색해요. 그냥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 이제 3년 했으니까 27년 후면 좋은 배우가 되어 있을 거예요(웃음).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