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 이후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는데, <봄, 눈>을 촬영하고 있었던 건가?
<최고의 사랑>이 여름에 끝났으니까, 5-6개월 공백이 있었다. 중간에 <화차> 카메오 출연한 것 빼고는 촬영이 없었던 거지. <최고의 사랑>이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섭외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텐데.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공백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냈다. 여름과 겨울 방학시즌마다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지방 선교활동. 선교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했는데, 마침 작품이 없어서 편하게 선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트위터에서 봤다. 선교 활동에 열심이더라.
그걸 하라고 (그 분이) 나에게 배우를 시키신 것 같다.
아, 그렇게 생각하나?
왜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게 하셨을까. 왜 나이가 많은 나이게 이런 기회를 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나 명예를 주시기 위해 배우를 시킨 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작품을 통해 얻은 사랑이 선교활동을 하는데 큰 힘이 된다.
벌서 5년이 흘렀다. 2007년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와 <은하해방전선>의 연속 주연을 맡으며 주목받았다.
아, 영화 봤나?
그 해 가장 주목받은 독립영화들이잖나. 인상 깊게 봤다. 독립영화로 당신을 먼저 만난 관객 입장에서 드라마에서의 감초 연기는 다소 놀라웠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내가 과연 튀는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답은 독립영화에서의 경험들이었다. 기존에 맡았던 역할 특징들을 하나씩 가져와서 <역전의 여왕> 비서 캐릭터를 만든 거지. 처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연극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시청자들이 그 캐릭터를 이해하고 좋아해 주시더라. <최고의 사랑> 끝나고 고향 부산에 내려갔을 때였다. 부산역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택시기사 아저씨께서 룸미러로 나를 스윽 보더니, “탤런트 아닌교?” 이러시는 거다. 쭈뼛쭈뼛하면서 “아… 네” 하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역전의 여왕> 비서 역할이 가장 좋았어예” 이러는 게 아닌가. 고향 분들도 많이 좋아해주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금의환향이네.
그런 셈이지. 내가 ‘좌천 4동’에 사는데, 좌천 4동 청년회장님께서 심지어 “다음번에 오면, 플랜 카드를 걸어 주겠다”고 하셨다.
맞다. 내가 어느덧 서른 중반인데, 서른 즈음이었나? ‘이 일을 계속 붙들고 가야 하는가’, ‘이 나이를 기준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내 동기들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뭔가 아들로서의 모습을 갖춰 가는데, 나는 이룬 게 없는 것 같아서 심란했다. 내 인생뿐 아니라, 아들로서의 삶도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죄송스러웠던 거지. <역전의 여왕>에서 출연 분량이 조금씩 늘어나면서야 아들 노릇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 작은 역할만 맡았을 때는, 아들이 나오는 그 한 씬을 보기 위해 부모님이 화장실도 못가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역할로 중간 중간 자주 나오니까 동네 분들이 “아들내미 나오는 거 잘 봤다”고 하는가 보더라. 그런 말에 좋아하는 부모님을 보며, 이렇게나마 즐겁게 해드리는 게 효도라면 효도가 아닌가 싶었다.
<봄, 눈> 얘기를 해보자. 내용상으로는 민규동 감독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긴다. <친정엄마>나 <애자>와도 엮일 수 있고. 앞선 영화와 차별화되는 <봄, 눈>만의 특징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봄, 눈>은 연출은 맡은 김태균 감독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감독님이 10남매 중 막내셨는데, 10년 전 24세 연상의 누이를 암으로 떠나보냈다. 누이와 이별하기까지의 과정,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솔직하게 투영한 영화다. 억지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영화가 아니고 말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이미 많은 영화들이 다뤘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재가 감동적일 수 있는 건, 지금 내 주변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젠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별을 경험하게 되니까. 우리는 뭔가를 잃고 나서야 소중한 것을 깨닫잖나. 나 역시 3년 전에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야….(잠시 공백) 그렇게 빨리 동생과 헤어질 줄 몰랐다. 동생에게 친절하지 못한 오빠였고, 무뚝뚝한 오빠였다. 또 동생을 철없다고 생각하는 오빠였는데, 그런 철없는 동생이라도 곁에 있는 게 소중하다는 걸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자상한 오빠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모님에게는 어떤 아들인가?
교회에서는 교회오빠 이미지가 있다. 친절하게 상담도 들어주는. 그런데 왜 그러는지, 집에만 가면 말 수가 없어진다. 무뚝뚝해지고. 동생과 이별한 후에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생과의 이별 후에 심적으로 바뀐 게 있나? 인생관이라든가.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것은 모두가 살아있을 때 너무 감사한 존재라는 거다. 슬픔에 잠겨 있는 부모님께도 말씀드렸다. “지금 당신 앞에 아들이 있지 않냐”고. “이별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하면 좋겠다”고. 내가 선교활동을 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는 어떤 상담들을 해 주나?
상담을 해준다기보다 하소연을 들어준다고 하는 게 맞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먼저 와서 이성문제라든지 가족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얘기해 주고.
자연스럽게 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웃음)
<봄, 눈>은 전작 <최고의 사랑>과 상반되는 느낌의 영화다. 당신이 체감하는 촬영 현장 분위기에도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최고의 사랑>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굉장히 밝았다. 그러다보니 스태프들과 장난도 치고 어울리면서 지냈다. 그에 반해 <봄, 눈>에서는 전반적으로 울고 아파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 스태프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러고 보니, 스태프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방송국에서 촬영 스태프를 2년 했다. 그때 미니시리즈를 하면서 3-4개월 잠도 못자고, 엄청 고생했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 아무것도 몰랐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시 그 일을 선택한 이유는, 현장을 경험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 생활비는 충분히 벌 수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들은 현장에 있었으니까.
촬영 스태프로는 어떤 드라마에 참여했나?
처음 들어가서 투입된 게, 고현정씨 주연의 <봄날>. 그때 고현정 선배가 스태프 이름을 다 외우고 다니셨다. “지규씨 안녕”, “누구누구 씨 안녕”하면서. 와~ 주연배우가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힘들고 지친 하루에 힘이 막 생기더라. 배우가 스태프에게 힘을 줄 수 있구나, 싶었지. 나? 나는 기억력이 딸려서 이름을 잘 못 외운다.(웃음) 대신 촬영 끝날 때마다 한 명 한 명에게 인사는 꼭 하려고 하는 편이다.
스태프-배우의 관계가 아닌, 당신이 배우가 되고 나서 배우-배우로 만난 사람이 있나?
아직은 없다. 대신 함께 작업했던 촬영팀․조명팀을 <역전의 여왕>과 <최고의 사랑>에서 만났다. 좋더라. 반사판도 하나씩 더 대 주시고.(웃음) “잘 되고 있는 모습 보니까 좋다고” 응원도 많이 해 주셨다.
이런 말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으면 아이돌 멤버 제안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외모다.
아, 그런가? 지금 메이크업을 해서 그런 거다. 하하
동안이라는 말, 지겹게 들어 봤겠지?(그는 1978년 생이다.)
조금 듣는다.
그랬었지. 하하하.
동안이라는 평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나쁘지 않다. 외모 때문에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많이 맡는다. 이미 내가 지나온 시간을 연기하는 셈인데, 왜 그 시간을 거치고 나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잖나. 그런 면에서 이미 그 시간을 경험한 나로서, 조금 더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나 싶다.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믿는다.
구혜선의 감독데뷔작 <요술>에서 소심한 성격의 첼리스트 명진을 연기했다. 명진은 당신의 외모적 특성을 최대한 반영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배우 입장에서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과 다른 걸 보여주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 같다.
이전에는 외모적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히키코모리로 나온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에서는 요상한 가발을 쓰고 다녔고, <은하해방전선>에서는 수다스러운 감독 지망생을 연기했으니까.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그런 면에서 <요술>은 외적인 면에서 가장 나다운 작품이었다. 특히 연출이 배우출신이다 보니, 연기자의 입장을 너무 잘 이해해 줬다. “지규씨 어떤 앵글을 가장 잘 받죠?” 등등 내 장점을 잘 활용할 수 있게끔 해줘서 현장이 너무 즐거웠다.
나를 믿어주는 연출가를 만났으니, 힘이 많이 났겠다.
정말 그랬다. 배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연출자였다. <요술>이 많은 관객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혜선이라는 사람과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 사실 그녀에 대한 어떤 편견들이 있었는데, 함께 작업하면서 그 편견들이 모두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어떠한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지만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원하는 게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면서. 그런데 내가 만난 구혜선이라는 사람은 당돌하고 당당했다. 이 사람은 일단 도전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정말로 원해서. 나에게 없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구혜선씨가 이 인터뷰 봐야겠다.(웃음)
하하. 이 자리에 혜선씨 편들려도 나온 건 아니지만, 그 사람을 만나면 아마 누구나가 다 좋아하게 될 거다.
2007년에 헌팅프로그램 <리얼중계 시티헌터>에서 활약했더라. 여성들의 심리를 알아보는 ‘작업남’으로 출연했다고.
내가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잘 하는 스타일이 못된다. 말주변도 없고. 그런데 그때는 생활비가 필요했다. 리얼이 아닌, 연출이라는 얘기를 듣고 출연하게 된 거다.
다른 사람들 나오는 편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리얼이 아니었다. 마침 상대 출연자도 연기를 하는 친구라 편한 마음으로 촬영했다. 나중에 실제로 해 보자고 했는데, 그건 안 되겠더라. 못하겠다고 했다.
여성의 심리를 파악하는데, 그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던가?
전혀.(웃음) 그때 “저의 무기는 잘 생긴 외모입니다”라는 멘트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정말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걸 했다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시키는 걸 다 한 것 같아서 말이다. 고민 없이 연기하는 게 배우는 아닌데… 물론 그 역할이 배우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무기는 뭔가?
평범함. 회사 대표님이 나를 캐스팅한 이유이기도 한데, 처음에는 무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디션 볼 때마다 평범하다는 이유에 발목이 잡혔었거든. 물론 배우로서의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뽑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외모가 좋으면 캐스팅 될 확률이 높잖나. ‘좌천 4동’에서는 잘 생긴 축이었는데, 서울에 오니까 승부가 안 되더라.(웃음) 특히 화면에 나오면 더 평범해 지는 얼굴이다. ‘왜 이렇게 나오지’라고 낙담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평범함 때문에 여러 역할을 자연스럽게 입을 수 있으니까. 구용식(박시후) 비서! 독고진(차승원) 매니저! <과속스캔들> 황정남(박보영) 남자친구! 많은 사람들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모르시던데, 그게 기분 나쁘지 않다. 이전에는 약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장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기자 이전에 모델을 꿈꿨다. 대학 1학년 때 자퇴하고 서울로 올라온 걸로 아는데, 이 삭막한 도시에서 갈 곳은 있었나?
먼 친척 분이 있었다. 그 집에서 3개월 정도 살았다. 서울에 온 건 돈을 벌거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모델에 대한 꿈이 컸다. 그런데 3년 동안 모델로서의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단편영화 때문에 내 인생이 모델에서 배우로 바뀐 거지.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계획대로 된 게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운전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택시 기사가 되고 싶었다. 이후엔 모델이라는 걸 하고 싶었는데, 지금 이렇게 배우가 됐고.
전공이 수학이다. 바보 같은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수학과에서는 초반에 어떤 것들부터 배우나?
고등학교 때 배운 미적분을 다시 배운다. 그런데 그런 거 있잖나. 처음에는 이해 안 갔는데 한 해 두 해 지나고 나서 보면, “아, 쉬운 거였구나” 싶어지는 거.(웃음)
탄다. <최고의 사랑>때는 알아보시는 분도 있고 해서 경로석 쪽 구석을 자주 애용했었다.
지하철을 많이 즐겨두면 좋을 것 같다. 배우들이 가장 즐기지 못하는 게 지하철 아닌가. 언젠가는 타고 싶어도 못 탈 수 있다.
내가 사람들 관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지하철에는 영화에 나올법한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상한 습관을 가진 사람들을 기억해 두려한다. 연기할 때, 응용하려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지도를 그려 넣은 게 있나?
없다. <과속스캔들> 찍으면서 ‘나는 영화배우로 살 거야’라는 그림을 그려 놨었다. 영화야말로 내가 잘 놀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감초 연기를 하면서 내가 드라마에서도 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드라마의 장점이 뭔지도 알게 됐고.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만 고집하던 내 사고의 틀이 확장됐다. 내가 그린 그림대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고.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니까 지금의 내가 돼 있었던 거지. 영화든 드라마든 한 걸음씩 가다보면, 그때도 뭔가가 완성돼 있지 않을까란 믿음이 있다. 지금 내 앞의 일을 제대로 해 나가는 것. 그게 지금의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2012년 5월 2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5월 2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