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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 유다연 기자 이메일


Q. 첫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을 차지했다. 부산에선 어땠나.
부산에 가기 전엔 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불안감이 심했다. 전에 단편 작업을 할 땐 작품을 완성한 후, 관객 입장에서 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이 잘되는 편이었다. 반응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도 있었고. 그런데 <돼지의 왕> 같은 경우는, 첫 장편이다 보니까 그런 게 잘 안되더라. 그래서 부산에 내려갈 땐 거의 공포에 가까운 심정이었다.(웃음)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는 또 관객처럼 보게 되더라.

Q. <돼지의 왕>은 계급사회의 축소판이다. 이야기 모티브를 어디서 얻었나? 꿈 이야기라는 말도 있던데?
군 시절 꾼 꿈이 시놉시스의 모티브가 된 건 맞다. 하지만 <돼지의 왕>은 꿈 하나로만 쓰인 내용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거의 추적에 가깝게 썼다. 사실 처음엔 90년대 감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90년대에는 386세대가 느낀 특유의 정서가 있더라. 국민들의 의지로 문민정부가 세워졌는데, 바뀐 게 없지 않았나. 그때 느껴지는 허무함 같은 것들이 그 시대에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느꼈던 내밀한 감정들, 그런 것들이 이해가 가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Q. 그래서였나, 사회의 축소판을 묘사하기 위한 무대를 굳이 중학교로 잡은 이유가?
비주얼적인 면도 고려했다. 남자아이들은 고등학생 무렵이면 대부분 어른의 외형을 띠지 않나. 그런데 그보다 어린 중학생으로 설정을 하면, (이야기의) 임팩트가 더 셀 것 같더라.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분노가 고인 감정 씬들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Q.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건 언제부터지?
2006년에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개인적으로 조금씩 작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제작비가 마련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잠시 보류해 두고, 2008년에 다른 이야기로 단편 <사랑은 단백질>을 발표했다. 그리고 작년에 KT&G 상상마당에서 투자지원을 받으면서 1년 만에 <돼지의 왕>을 완성하게 됐다.

Q. <돼지의 왕>을 보고 궁금했던 건, 이 이야기가 혹시 감독의 경험담은 아닐까 하는 거였다. 학교 다닐 땐 어떤 타입이었나? 극 중 종석이나 경민(돼지, 약자)에 가까웠나, 아니면 반장무리(개, 강자)에 가까웠나?
그 시절 난 딱히 가난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다. 극에 등장하는 ‘청바지 일화’는 실제 내 중학교 친구의 경험담을 본 딴 거다. 당시 난 ‘착한사람 콤플렉스’ 같은 게 있어서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작품 속 에피소드가 벌어졌다. 실제로 종석이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가 특정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왔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당한 거다. 그날 하교길 정문 옆에 그 친구가 청바지 대신 추리닝을 입고 친구들 몇몇과 모여 있다가, 날 보고는 “상호야!” 하고 부르더라. 그때 난 그냥 그를 무시했다. 그 친구가 있는 무리는 그날 소위 반에서 ‘찍힌’ 그룹이 돼버렸지 않나. 내가 거기서 아는 척을 하면, 나도 똑같이 그 카테고리로 나눠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유치하지만 그런 것들, 그로 인해 중학생이던 내가 느꼈던 것들이 <돼지의 왕>에 많이 반영됐다.
Q. 그때 느낀 기분은 죄책감이었을까?
그런 게 컸지. 또 뭐랄까, 스스로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됐고. 착하게 산다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뭐 이런 생각을 그때부터 한 것 같다. 사람들이 착하고 온유하게, 순하게 말하는 것들 있지 않나. 그런 게 더 이상 (계급사회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더라.

Q. 그럼 중요한 게 뭘까? 악?
악은 아닌 것 같고…, 움직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난 감독으로서 <돼지의 왕> 홍보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부산에 내려갔을 때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1인 시위 제안이 들어왔다. 그때 우습게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걸 하면 조선일보 같은 커다란 언론의 인터뷰를 못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작품홍보가 안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웃음) 사실 사람이 그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시위를,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 그런 것들이 사소한 판단기준이 바뀌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Q. 움직인 결과, 조선일보 인터뷰는 했나.
내일 ‘조중동’에서 ‘중’ 만 빼고 인터뷰가 잡혀있다. (웃음)

Q. (웃음) 초등학교 동창들의 학창시절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진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시점에 따른 차이가 전혀 없게 만들고 싶었다. 과거엔 얘가 어땠는데 지금은 다르게 성장했다는 식이 아니라, 과거에 이랬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걸 정확히 보여주고 싶었다.

Q. 제목도 그렇고 돼지, 개, 고양이 등 각각의 동물들은 어떤 의미인가?
난 <돼지의 왕>과는 상관없이, 돼지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비뚤어진 시각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개를 좋아하는 분들이 유기견 보호운동 등을 하는 걸 보고 맘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개와 같은 동물인 돼지에겐 그런 것들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서다. 굳이 따지자면 지능 면에서도 개 보다 돼지가 지능이 높다. 그런데 개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해서는 안티세력이 뚜렷한데 반해, 돼지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입장이 없다. 이런 걸 보면서 ‘동물도 그들의 인권보호(?)를 받기 위해선 일정 레벨 이상이 되어야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보니 ‘돼지의 왕’이란 제목도 자연스럽게 뽑아져 나왔다.

Q. 혹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읽었나? <돼지의 왕>을 보고 그 작품이 연상되기도 했다.
응, 읽었다. 거기선 돼지가 지능이 높고 상위 계급의 동물로 나오지 않나. 방금 내가 말한 것과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Q. 종석의 눈에만 보이는 고양이의 환영은 어떤 의미인가?
<돼지의 왕>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균형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이야기의 균형감을 주기 위한 중요한 매개체다. 대부분 관객은 자연스레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몰입하지 않나. 그래서 당연히 주인공이 정의와 한 편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난 거기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정당성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고양이에 대해 죄책감을 갖도록 했다. 그러니까 자신들은 누군가가 괴롭히는 걸 싫어하지만, 결국 저 자신도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심지어 죽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거다. 고양이를 통해 그런 것들을 짚고 싶었다.

Q. 그런 역할로 굳이 고양이를 택한 까닭은 뭔가?
개와 돼지가 이미 나오는데다가, 동물사회에서 개·돼지·고양이 셋의 계급이 다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변의 개를 찾아보면 대다수가 애완견이다. 길거리에서 주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개들은 많이 없지.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곳곳에 길고양이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동물들 저마다의 계급이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돼지의 왕>에서 역시 그런 식으로 계급을 나누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Q.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경민이 아내를 죽인 장면, 왜 이런 식의 오프닝을 넣었나?
난 전부터 오프닝은 강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돼지의 왕> 오프닝도 어떻게 가야할까 고민하다가 그런 식의 장면이 나온 거다. 그런데 그게 또 영화 전체로 보면 동반자살인 셈이다. 그러니까 <돼지의 왕>은 사업에 망해 동반자살을 벌이는 남자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큰 얼개라고 볼 수 있다.

Q. 혹시 영향 받은 작품이 있나?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미스틱 리버>를 봤다. <미스틱 리버>는 초반엔 스릴러의 느낌을 갖고 간다. 그런데 스릴러 영화로써의 임무는 중간쯤에 끝나고, 이후 다음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을 띠더라. 연출을 잘 못하면 되게 재미없어질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걸 스릴러 형식으로 대처해 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돼지의 왕>도 그런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돼지의 왕>은 중반까지는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식의 학원폭력을 다룬 영화처럼 보이도록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경우는 옥상 싸움장면에서 영화가 끝나지 않나. 그런데 <돼지의 왕>은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간까지는 관객이 장르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로 영화를 보다가, 그 이후부터는 그 장르를 비꼬는 식으로 볼 수도 있는 거다.

Q. 이야기의 출발도 그렇고, 전체적으론 계급사회에 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분노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다.
사실 이 이야기는 계급과 사회에 대한 우화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논리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그 논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고. 몇 년 전 내가 최규석 작가와 함께 ‘노골리즘(연상호·최규석이 만든 용어)’ 선언을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엔 소위 ‘먹물’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난 누구나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노골리즘’ 정신을 토대로 고민하다가 나온 게 ‘감정’ 이었다. 내가 세운 논리를 감정으로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영화에서 그 감정만 느낀다고 하더라도 성공인 거지. 더불어 그 이상의 것에 대해 파악할 수 있거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좀 더 논리적인 것들을 발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게 작업할 때 세운 목표였다.
Q. 기자간담회에서 “극 중 모든 장면은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엔딩의 임팩트가 세다. 철이의 ‘공개자살’도 그러한 엔딩을 위한 수단이었나?
실은 복수를 위해 공개자살을 한다는 설정이 일반적으로 먹힐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명제가 성립 안 되면 다음 이야기로 진행이 안 되니까. 그래서 관객들이 초반부터 공개자살 씬까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세게 밀어붙이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Q. 공개자살 씬의 반전에서 오는 충격이 있더라. 이런 식의 반응은 의도한 건가?
<돼지의 왕>과 같은 주제의 영화는 자칫 재미없어질 수 있다. 그래서 영화적 재미를 위한 반전이 꼭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걸 어떤 형식으로 보여줄지 고민하다가 그런 설정이 나왔다. 비슷해 보이는 두 캐릭터를 내세운 후, 둘 중 한 캐릭터를 점점 의심스럽게 만드는 거다. 그런 후 의심스러운 캐릭터가 아닌 극의 내레이터가 사건의 주도자로 등장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반전이 아니다. 시나리오적으로 ‘반전’이라고 하면, 초반에 어떤 명제가 설정이 돼서, 이후 그걸 뒤엎는 뭔가가 나오는 거잖나. 그런데 <돼지의 왕>은 명제 자체가 거의 답이 나오기 직전에, 늦게 던져진다. 따라서 관객들이 짧은 시간동안 그 다음 이야기를 예상하고,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Q. 논리적이네. 반전만큼 인상적인 게 또 있다. 대사가 좋았다.
아, 그런가. 그 부분, 실은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Q.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엔딩씬에서 종석이 내뱉는 말이었다. 그 때 퍼뜩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엔딩이 겹쳐졌다. 거기서도 그러거든. 미도리가 “자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하면, 주인공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면서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돼지의 왕>의 종석은 “거기 어디냐”는 여자 친구의 질문에, 긴 대사를 호흡을 나눠 방점까지 찍어가며 인상적으로 읊더라.
사실 그 부분 쓰고 나서 욕을 많이 먹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친구들한테 보여줬다. 그런데 “이게 무슨 책인 줄 아냐” “갑자기 문학적인 대사가 뜬금없이 왜 나오냐”, 이런 말들을 하더라. (웃음) 그런데 이 부분은 연출한 거다. 난, 문학적으로 가고 싶었거든. 애니메이션에서 문학적인 대사를 내뱉는다는 게 뭔가 묘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굉장히 차갑고 세게 달려가다가, 갑자기 손발이 오그라드는(문학적인) 대사가 나옴으로써 관객들의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다음, 마지막 컷을 차갑게 자르자고 생각했다. 따라서 관객들은 손발이 오그라든 걸 반전 때문에 소름 돋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웃음)

Q. (웃음)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양익준 감독이 대사처리 때문에 힘들어하진 않던가?
사실 마지막 대사를 고치자는 말도 많았다. 그냥 심플하게 앞부분을 자르고 가자는 말도 나왔는데, 내가 지금과 같은 긴 문장을 끝까지 고집했다. 그리고 아주 다행스럽게도 종석이 목소리를 맡은 양익준 감독이 그 대사의 뉘앙스를 잘 살려줬다. 너무 감정이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잘 처리해줬다.
Q. 국내 애니메이션으론 드물게 ‘성인잔혹스릴러 애니메이션’을 표방했고, 그림체 역시 예쁘다기보다 거칠고 사실적이다. 더빙 또한 전문성우가 아닌 일반 배우들을 기용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정석을 따르지 않고 일부러 비뚤게 가려고 한 건지 궁금하다.
작품의 모든 구성이 내 아이디어라고 하기가 힘든 게, 이야기 구성의 커다란 라인은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원류(原流)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들은 이미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에 ‘헬로우 미스터 블랙잭’ ‘사채꾼 우시지마’ 같은 것들이 있는데, <돼지의 왕>도 사실은 그러한 이야기들의 원류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거다. 난 그런 식으로 일상의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Q. 그런 선명한 이야기가 담긴 <돼지의 왕>에서 가장 감독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누굴까?
당연히 철이! 철이를 그리는 거 자체가 좋았고, 그냥 단순하게 철이를 많이 그리고 싶었다.

Q. 왜? ‘돼지의 왕’ 이니까?
그렇기도 하고, 얼굴 모양새도 괜찮았다. 기본적으로 그냥 철이를 좋아한 거다. 철이 다음엔 종석이. 경민인 안경 때문에 그리기 힘들었고. (웃음) 종석이 같은 경우는 어른일 때도 그렇고, 학창시절도 그렇고 감정표출을 가장 많이 하는 친구라, 그리는 동안 행복했다.

Q. 그럼 개인적으로 본인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아! 나랑 똑같은 얼굴이 이야기 중간에 한 번 나온다.

Q. 엇, 누구지? 박찬영?
아니, 찬영이 보다 더 나를 그대로 빼닮은 친구가 있다. 옥상씬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무리 중 한 명으로, 엑스트라다. 내 학창시절 모습과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 같다. (웃음)

Q. (웃음) 목소리 캐스팅이 흥미롭다. 특히 양익준 감독, 오정세와는 <사랑은 단백질> 때도 함께 작업했었다.
익준이 형 같은 경우는 형이 연기자던 시절에 처음 만났다. 어느 단편영화제에서 둘이 술을 먹다 친해졌지. 이후, 익준이 형에게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보내줬다. “한 번 읽어봐 주세요”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전화가 와서 “잠을 못잤다”고 하더라. 그리고 “내 시나리오도 읽어봐 줘”하면서, <똥파리> 시나리오를 보내줬다. 그런데 이야기가 생각보다 너무 길더라. <돼지의 왕>은 68페이진데, <똥파리>는 140여 페이지라서, 휴. (웃음) 아무튼 그렇게 친해졌다. 그러면서 형이 먼저 <똥파리>를 만들게 됐고, 영화가 잘 됐지. 형이랑 <돼지의 왕>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렇게 오래 전부터라, 익준이 형이 종석이 목소리 연기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았다. 사실 다음 작품도 같이 하고 싶은데, 또 한다고 할 진 모르겠다. (웃음)
Q. (웃음) 그러게, 둘 다 바빠져서 쉽진 않겠다. 오정세는 어떻게 참여한 건가?
<사랑은 단백질> 때 익준이 형이 정세씨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정세씨가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다. <사랑은 단백질>에서 그가 맡은 ‘홍찬’이가 좀 밋밋한 캐릭터거든. 그런데 정세씨가 캐릭터를 참 잘 세워줬다. 그래서 그 때 ‘앞으로도 정세씨랑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지.

Q. 중학생 소년들 목소리로 김혜나, 박희본, 김꽃비 등 여성 배우를 썼다.
원래는 정세씨나 익준이 형이 캐릭터들의 어린 시절의 목소리 연기까지 다 해줬으면 했다. 그런데 익준이 형이 중학생 목소리는 못 내겠다고 하더라. 애매했다. 중학생 소년 역에 아예 다른 성인 남자를 쓰자니, 성인 남자 둘이 아이들의 분위기를 잘 살려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렇다고 아역을 쓰자니 대사가 좀 어려운 것 같고. 그렇게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가 여자 배우를 써보자는 거였다. 중학교 1학년은 육체적으로도 계급차이가 많이 나는 때다. 중학생 중에는 초등학생 같은 애들도 있고, 어른 같은 애들도 있잖나. 그래서 여배우를 써서 그러한 계급 차를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결과적으론 낮은 계급의 억눌림에 대한 분노가 더 잘 드러난 것 같다.

Q. ‘돼지의 왕’은 철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건 종석과 경민이다. 둘의 투 샷에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둘은 선녹음을 했다. 원래는 전체 선녹음을 하고 싶었는데, 예산상의 문제로 그러질 못했다. 그러나 종석과 경민의 옥상 씬 같은 경우는 감정이 디테일하게 살아야 하는 부분이라서, 선녹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명만 선녹음을 한 후 그들 목소리의 감정을 따라갔다. 그런데 그러길 잘했다고 생각한 게, 종석이가 막 소리 지르는 장면에 익준이 형이 녹음을 하면서 슬픈 느낌을 넣어줬다. 단순히 욕하는 듯한 느낌으로 세게 끝나버릴 대사에 슬픈 느낌이 섞이게 되니까 훨씬 좋더라. 그렇게 선녹음을 한 후, 음악감독이나 작화맨들이 다 거기에 맞추어서 그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갔다.

Q. 만화 ‘습지생태보고서’의 최규석 작가와 함께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둘이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안다. 아까 ‘노골리즘 선언’도 둘이 함께 했다고 했고.
규석이는 좋은 대화 상대이자 아이디어 파트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 작업 진행이 빨라진다. 둘 다 작품 색깔은 비슷한데, 접근방식이 다르거든. 나는 일단 구성을 잡고 들어가는데 비해, 규석인 취재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가 구성을 이야기 하면, 규석이가 취재에 들어간다. 굳이 역할분담이라고 하기보단, 둘이 노가리 까는 거라고 보면 된다.

Q. 서로 도움이 되는, 윈-윈 하는 관계구나?
응, 그리고 이제 서로 크레디트엔 안 넣기로 했다. 그런데 <돼지의 왕> 이후부턴 이제 그런 걸 넣으려고. ‘노가리: 최규석’ 이런 거? (웃음) 그리고 규석이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자기 스타일대로, 만화로 그려보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Q. 만화버전도 기대된다. 그렇지만 연상호의 <돼지의 왕>은 3D 더미 애니메이션 방식이다.
더미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건 작업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거였다. 난 대학 졸업 후 OEM 회사라고 불리는 어느 하청업체에서 1년 반 정도 일을 하며 좋은 경험을 했다. 그렇게 일을 해보니 전체적인 애니메이션 작업공정 시스템이 보이더라. 동화맨, 원화맨, 편집자 등 서로 다른 직무를 맡은 개개인들의 애로사항이 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그래서 작업 방식이나 시스템을 바꾸면 더 쉬워지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이 <돼지의 왕>까지 이어졌다. <돼지의 왕> 작업 당시 인건비가 많지도 않았지만, 다른 애니메이션에 비해서 많이 적은 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이 되는 건 시스템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고, 작업 효율을 올리기 위해 3D 더미 애니메이션 방식을 채택했다.

Q. 3D가 확장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3D 효과를 드러내는데 더 용이한 장르기도 하고. 추후 3D 애니메이션을 시도할 생각은 없나?
물론, 생각 있다.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선 연구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완벽하게 하고 싶은 스타일을 이미 누군가가 했더라고.

Q. 그게 누군가?
스티븐 스필버그. (웃음)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란 작품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3D 작품은 워낙 예산이 많이 들어서 함부로 뛰어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계획은 갖고 있다.

Q. <돼지의 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했다. ‘저 얘기를 실사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이 이야기를 실사영화로 만들었을 경우, <돼지의 왕> 같은 느낌이 안 났을 거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은 미묘하게 차이가 많이 나거든. 대사 처리 같은 경우에도, 아역배우들이 <돼지의 왕> 같은 대사를 하면 지금 같은 느낌이 전혀 안 들 거다. <돼지의 왕>에서 이야기를 끝까지 빠르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이 내뱉는 단호한 대사였다. 만일 이게 실사영화였다면, 그 대사들이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 또 다른 설정이 필요하고, 결국 이야기의 핵심이 멀어졌겠지.

Q. 그럼 그런 식의 대사를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을 수도 있을까?
응, 애니메이션만이 가진 장점이 판타지가 다는 아닌 것 같다. 대사를 쓰는 방식이나 연출 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일본의 경우는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만들 때, 만화 설정을 그대로 가져가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만화 원작의 영화를 보면 마치 코스프레 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원작 만화의 느낌을 살리려고 그대로 재현하니까 어색한 거다. 반대로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애니메이션 <내일의 죠> 같은 경우, 고아원에서 고독하게 자란 복서가 굉장히 철학적인 대사를 뱉어내는데 그게 전혀 안 어색하다. 그 차이는 장르에서 발생하는 거다.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실사영화에서 배우가 그대로 내뱉는다면 아마 ‘발연기’ 같은 얘기가 나올 거다.
Q. 그런 뚜렷한 특징을 지닌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스튜디오 다다쇼 대표이기도 하다.
응,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이지. (웃음) 지금은 동생(연찬흠 기술감독)과 함께 작업을 하는데, 동생은 직원은 아니고 프리랜서처럼 수당이 지급된다. 그렇게 둘이 의지를 하고 있다.

Q. 스튜디오 다다쇼는 1인 제작시스템을 고수하는 또 다른 방편으로 보이기도 한다.
난 이 방식이 괜찮은 것 같다. 투자를 받고 영화작업을 진행하려면 영화제작사 같은데서 공동 작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 그런데 나처럼 1인 시스템인 경우엔 투자를 받고 제작을 진행하기까지의 과정이 좀 힘들다. 투자자 등 외부에서 인정을 안 해줄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이렇게 형태적인 면에서 1인 제작시스템을 체계화함으로써, 진행이 한결 수월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제작단계에서도 큰 프로세스를 짜야하는데, 1인 시스템의 경우엔 애초의 의도 그대로 가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Q. 전작들부터 상상력이 범상치 않다.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기인하는 건가?
사실 난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이다. 그래서 방대하게 아이디어 채집을 한다. 대부분 아이디어에 가까운 생각들을 적어놓곤 한다. 어떤 대상이나 스스로에 대해서 가끔 욱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주로 그때의 감정을 적어두는 편이다. 그런 것들을 적어놓고 묵히다 보면 어느새 저절로 이야기가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 억지로 쓰려고 하진 않는다.

Q. 애니메이션은 만화와도 밀접한 관계다. 몇 년 전부터 인터넷 만화 연재가 많아졌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난 긍정적으로 본다. 물론 종이만화 시장이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인터넷 연재는 만화가 다시 붐이 이는 계기를 만들어준 수단이잖나. 그런 면에서 좋다고 본다. 또 다른 만화 문화라고 생각한다.

Q. SNS는 하나?
응. 나 트위터, 페이스북 다 한다. ‘맞팔’ 신청해라. (웃음)

Q. (웃음) 오케이. 감독과 사람들 간에 SNS 소통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SNS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공간 자체가 가상이고, 따라서 가식적일 수밖에 없는 면도 있지 않나. 그런데 살짝 말을 걸거나 어떤 사안에 대한 흐름을 읽고자 할 땐 편하더라. 하지만 난 아직까진 오프라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그럼 계정은 왜 만들었나?
홍보! 다 영화 홍보 때문에 하는 거다. (웃음)

Q. (웃음) <돼지의 왕> 이후엔 어떤 작품이 연상호의 SNS로 홍보될까? 차기작이 궁금하다.
<사이비>라고 하는 작품인데, 사이비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시나리오 작업이 끝나고, 지금은 콘티 작업 단계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의 시각은 아닐 것 같고, 좀 다른 시각이 될 것 같다. 왜, 누구나 저마다 갖고 있는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 이야기다. 다음 작품에선 자기가 믿는 가치에 대한 근거, 그걸 흔드는 얘기를 해보고 싶다.

Q. <돼지의 왕>은 어떤 사람들이 봐야 할까?
모두 다 같이 봤으면 좋겠다. 계급 문제나 사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여태껏 그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던 분들도 <돼지의 왕>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 이건 아까 얘기했던 ‘노골리즘’과도 맥락이 닿는데, 인권영화 같은 경우 대다수는 이미 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다. 그런데 <돼지의 왕>은 그런 걸 좀 탈피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니까 이전까지 ‘계급’ 소리만 들려도 짜증내거나 지루해 했던 분들이 <돼지의 왕>을 보고 (영화가 유도하는) 어떤 감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Q.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음…. 이런 얘길 하고 싶다. <돼지의 왕>은 그 과정이 어찌됐든 독립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 감독으론 첫 장편인 셈이다. 혹시라도 <돼지의 왕>이 그전의 일반 상업 애니메이션과 뭔가 다르다고 느낀 분들이 있다면, 이런 걸 알아줬으면 한다. 지금 독립 애니메이션계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 판타스틱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다는 걸 말이다.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
2011년 11월 4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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