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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HAPPY PRINCESS, <용의주도 미스신> 한예슬!
2007년 12월 12일 수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원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미니홈피에 ‘Falling slowly’ 가사를 포스팅 해놓았던데.
좋았다. 최근에 봤는데 좀 꽂혀서, 내가 원래 아이리쉬 음악 밴드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미니홈피를 자세히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음악을 듣다 보니까.
자세히 보게 됐구나!

<원스>OST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까지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웃음)
그렇구나. 나랑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만 일렉트로니카 계열은 말고, 조금 더 약간 기타음이 들어간 음악이 좋다.

쟁글거리는 기타팝 부류의?
맞다. 그런데 음악 취향이 아주 좋으시네. (웃음)

사실 옛날엔 약간 과격한 음악을 좋아했었다.
나도, 얼터너티브(alternative) 락 같은.

나도 한때 그런지(grunge) 풍의 음악 많이 들었다. 너바나(Nirvana)는 지금도 좋아하고.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시애틀 그런지(Seattle Grunge)!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좀 서정적인 쪽으로 가는 거 같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게 막 느껴지는데. (웃음)
조금 더 가면 완전 올드팝으로 빠질 지도 모른다.

아, 누가 보면 음악 매거진인 줄 알겠네. (웃음) 그런데 본인의 히트곡도 있지 않나. ‘그댄 달라요’같은. 난 사실 그 노래를 군대에서 줄기차게 들었다.
진짜? (웃음)

고참들이 너무 좋아해서 말이지. (웃음) 그런데 음악 매거진 인터뷰도 아니고, 이젠 음악 얘긴 그만. (웃음) 미니홈피를 보고 얼마 전, 청룡영화제 사건에 관련된 스타일리스트 분의 글을 보게 됐고, 본인의 코멘트도 읽게 됐다. 사실 말로만 들었었는데.
아, 그 해프닝에 대해서?

그에 대해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많더라. 어떻게 보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덕분에 그런 후일담 같은 사연까지 노출된 것인데 사실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게 흔히 말하는 공인으로서 꺼려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배우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과 간접적으로 만난다 해도 결국 직접적인 대상은 나인 셈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삶과 사생활의 선을 긋는다는 건 진짜 힘든 일이다.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배우들은 다 짐을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런 대중들의 관심이 자신의 커리어와 이어지는 것이니까.사적인 대중들의 관심도 없다면 그건 무관심일 테고, 그렇다면 커리어를 지켜나갈 수 없는 거다. 물론 너무 관심을 갖고 사랑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선을 조금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연히 짊어가야 할 짐인 거 같다.

얼마 전에 야심만만에 출연했는지 인터넷에 기사가 도배됐더라. 내용으로 봐선 상당히 솔직하게 대답을 한 것 같던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나 보다.
물론 그런 면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는 건 안다. 배우로서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도 바람직하거나 똑똑한 대처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상이 대중들에게 있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토픽(topic)이라면 굳이 드러내도 상관없겠다고 느껴졌다. 물론 내가 사생활을 드러낸다고 해서 남자친구와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몇 년을 사귀었는지, 그런 아주 사적인 내용들을 얘기한 것까진 아니니까, 그냥 내 일상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개인의 세계관 같은?
맞다. 대중들한테 예전에 있었던 해프닝 정도를 얘기하는 것까지 크게 숨겨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너무 숨기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런 솔직함이 어떻게 보면 한예슬의 숨겨진 매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은 그런 단면이 잘 드러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환상의 커플>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캐릭터라는 정체성과 환상을 동시에 만들어 준 작품인 것 같다.
배우들이 좋은 역할을 많이 맡고 싶어하는 건 대중들이 그만큼 공감해주기 때문이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는 그런 색깔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정말 둘도 없는 애정이 가는 역할이었지. 나도 그 순간만은 나상실로 살면서 행복했던 거 같다.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났다는 건 좋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축복이지. (웃음)

사실 나상실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타이밍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용의주도 미스신>은 나상실의 연장선상처럼 보인다. 이미지 굳히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상실처럼 <용의주도 미스신>의 신미수도 겉으론 못마땅한 구석이 많아 보일 수 있다. 좀 도도하고, 용의주도하다는 면이 어떻게 보면 꼴불견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불쾌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상실이 갖고 있었던 어떤 순수함처럼 신미수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다. 나름대로 신미수로 하여금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상처가 있고, 내면에 여린 마음도 있고,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귀엽고, 상큼하고, 그런데 한편으론 덤벙거리기도 하는 부족한 여자다. 사실 <용의주도 미스신>의 영화적 포인트는 신미수가 많은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이다. 그게 재미있는 건 이 여자가 용의주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너무 완벽하게 용의주도하면 뻔하지 않나. 이 여자는 용의주도하려고 무진장 노력하지만 다 어설픈 거다. 그리고 이제 관객들이 봤을 때 그런 신미수의 어리버리함으로 빚어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지.

결국 나상실처럼 신미수도 양면성이 있는 캐릭터다. 어쩌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계속 연기하게 된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뭔가 약간 특별한 색깔이 있는 역할을.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을 보면 굉장히 다 정상적이지 않은 거 같더라. (웃음) 알다시피 정상적인 멜로라던가, 그런 역할을 한번도 해본 적 없기도 하고.

사실 시작부터가 정상은 아니었다. (웃음)
<논스톱4>에서부터 그랬지. 한 색깔로 꾸준히 지속되는 역할보단 복합적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사람들이 나상실에 열광했던 건 뒷면이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도도하고 새침하지만 뒤로는 소심하고 때론 천박스럽기도 하다. (웃음) 자장면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로 어필되는 거 같기도 하다. 화려한 스타와 평범한 일반인의 입체감을 동시에 형성한다고 할까.
맞다. 나 정말 평범하다. (웃음) 실제 생활도 정말 평범하고.

그런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건 직업상 요하기 때문에, 당신도 만약에 배우 생활을 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거다. 사람은 직업에 따라서 풍기는 아우라가 틀려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선생님은 선생님 같고,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생겼고, 음악가는 음악가처럼 아티스틱(artistic)하게 생겼고. 이렇게 직업에 따라서 풍겨지는 이미지가 틀려지는 거 같다. 당신도 계속 일하다 보면 더욱 기자스러워지는 면이 있을 거다. 배우도 신인 때는 배우로서 2% 부족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 배우다운 아우라가 나올 때가 있겠지. 나도 그렇게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점점 배우 같은 이미지가 조금씩 소화되는 거 같다. 하지만 내가 학교 생활하던 학생이었다면 지금 같은 이런 느낌은 안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외모가 어디 가겠나? (웃음)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혹시 한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는 없었나?
난 나만의 성격이 있다. 나만의 색,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얘길 할 때도 그래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신인이었었을 때는 너무 솔직하고 당당한 것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쟤는 뭘 믿고 당당할까, 건방지다, 아니면 도전적이라서 기분 나쁘다. 이렇게 오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에는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까 이젠 사람들이 그걸 다르게 해석한다. 쟤는 프로 정신이 있는 것 같다, 당당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그런 식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렇게 위치에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천차만별인 거 같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런 점들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받은 교육 방식은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합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할 땐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거 해!’ 이런다고 하는 게 아니다.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들어야 하고,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 거지. 그런데 신인 때는 내가 꼭 ‘왜 이걸 해야 해요?’ 이렇게 캐묻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던 거 같다.

체계에 대한 하위적 일방성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한 게 사실이다.
한국은 항상 어른들 말씀하실 때는 대답 짧게 하거나 자제하고, 그저 조용조용히 있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미국은 항상 주위에 반대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가 열려있다. 그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있고,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있고, 선배와 후배의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좀 낯선 분위기다.

쉬는 동안에는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무른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자신의 개인 생활을 하고 배우로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아지트처럼 보인다.

맞다. 한국에 있다 보면 배우들이 자유자재로 활동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집에서 잘 나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외국으로 더더욱 나가려는 이유는 배우라면 자꾸 감성 훈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서,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행복해하는 것, 내가 슬퍼하는 것, 내가 외로워하는 것, 이런 걸 충분히 만끽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자꾸 배워나가야 된다. 왜냐면 나중에 배우로서 성숙한 역할을 표현해야 할 때, 인생을 모른다면 그걸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단세포적으로 아주 일차원적인 역할이나 어린 아이들이 하는, 아이돌 역할만 할 수 없잖아. 그렇지 않기 위해선 자꾸자꾸 커져야 한다. 그런 인생 공부를 하기 위해선 내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영역을 갖고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물론 그게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직접 느끼는 걸 더 좋아한다.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생각보다 감성적인 성향이 짙어 보인다.
감성적인 면도 강하고, 또 직업상 감성적인 면도 훈련해줘야 되는 것이고.

상당히 말을 조리 있게 한다. 평소에 대화를 즐기는 편인가?
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하진 않는데, 다만 내 생각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건 좋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많이 느낄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건 아니니까. 더욱이 지금처럼 한국에 와서 지내는 경우엔 더더욱.
외로움 잘 탔지. 예전에 20대 초반 때, 한국에 와서 혼자 활동하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어리니까 굉장히 외로웠는데 그게 하나의 훈련이 된 거 같다. 지금은 그런 외로움을 어떤 일을 하거나 작품을 완성하고, 그에 대한 성취감으로 충족시킨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역할을 맡고 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친구 삼아 사는 거 같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은 많이 만난 것 같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번에 스타일리스트와 관련된 일도 결국 사람간의 문제였다. 어쨌든 관계를 돈독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결과가 된 셈인데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강한 것 같다. 자기 컨트롤에 능하다고 할까.
그것도 항상 잘했던 건 아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진 거지. 처음부터 자기 컨트롤 잘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거다. 얼마만큼 훈련하고, 얼마만큼 자제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틀려진다. 난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훈련을 성공적으로 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 생활 속에서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 그 반대로 자기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건,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많아질 텐데 그것들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컨트롤할 수 있는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행운이 오거나 큰 일들이 주어진다 해도 모두 흩어져버리고 오히려 내가 그것들에게 삼켜지는 꼴이 될 테니까. 때론 갑자기 큰 관심을 얻었다가 그걸 힘들어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성공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계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절차를 성공적으로 밟았다고 생각된다. 자기 어떤 컨트롤이지. 참아야 될 건 참아야 되고, 인내해야 될 건 인내해야 되고, 넘겨야 할 건 넘겨야 되고.
연애 같은 경우도 배우로서 하나의 사생활인데, 그것이 종종 인내해야 할 것처럼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본인도 TV에서 그에 대한 질문도 받기도 했다.
연애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겠지. 때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건데, 단지 함부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위치가 있고,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사실 진실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힘든 일이다. 난 연애를 대충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지, 난 배우니까 아직 연애하면 안돼, 이런 건 아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왜 못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하면서 연애를 같이 감행할 경우엔 그에 대한 어떤 충분한 가치가 있어야 된다. 쓸 때없이 그냥 연애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

사실 연애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거지! 특히 배우의 감수성에 있어서 사랑은 더더욱 중요한 거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출연작 중 가장 많은 남자를 만난 케이스고, 앞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그렇겠지. 그런데 난 신미수란 여성을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신미수는 굉장히 사랑 받고 싶어하는 여성이지만 그 사랑을 찾지 못하는 거다. 사람이 정말 먹고 싶은 건 없어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된다. 이 여자도 외롭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지만 사랑을 만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자기의 사랑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거다. 내가 이 남자를 왜 만나야 되지? 그렇게 사랑이 없으면서도 사랑해야 되는 이유를 찾는 거지. 그래, 얘는 재력이 있잖아, 모든 사람들이 재력을 좋아하고 또 존경해주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랑 연애를 해도 정당성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법고시 고시생이랑 연애할 때도, 장래성이 있는 예비 검사니까 날 지켜줄 수 있을 거야, 그런 조건도 사랑을 합리화시키는 거지.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면 신미수가 처음부터 갈등할 이유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성을 만날 때 조건을 따진다는 게 굳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고, 이 남자를 사랑해야 될 어떤 정당성을,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 중,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태를 풍자한 캐릭터 같다. 요즘 애정이나 사랑을 조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감정을 이성으로 해결하려 든다.
특히 한국 사회는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다. 외국 같은 경우는 개인과 개인의 결혼이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집안과 집안의 결혼이라 해야 맞는 거 같다. 한국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오누이, 며느리, 친정 아버지, 친정 어머니, 이렇게 챙겨야 할 가족 시스템(system)이 워낙 많기 때문에 개개인이 결혼해서 행복하자고 해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면 모든 가족이 다 융화가 되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조건을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왜냐면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혼수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맞아, 그런 거. 혼수 문제 때문에 얽히고 설키다 보면 또 서로에게 자꾸 섭섭한 게 생긴다. 아무리 우리 엄마가 그랬다고 해도 우리 엄마한테 너 이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감정상하다 보면 그렇게 되겠지.

<환상의 커플> 이후로 공백이 있었다. 사실 배우로서 상종가인 시기에 기회가 상당했을 텐데, 오히려 몸을 추슬렀다는 게 다소 의외였다.
난 오만 방자하기 싫었다. <환상의 커플>로 사랑을 받게 돼서 캐스팅 섭외가 많아졌고 자칫하면 그릇된 초이스(choice)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발자국 물러서서 지금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에서 나한테 가장 걸맞은 역할을 하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환상의 커플>로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대중들에게. 그리고 거품에 쉽게 휩싸이지 않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었다.

결국 자기 보호를 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관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그런 이미지로 각인될 위험도 크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는 건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지금 한 색깔을 고집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훌륭한 배우들이 많다.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도 있고, 미쉘 파이퍼도 그렇고. 훌륭한 배우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배우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 같다. 또한 역할의 변신에 따라서 몰입도가 각각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만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 단지 나만의 카리스마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 어떤 일정한 캐릭터에 갇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들이 날 볼 땐 한예슬의 색깔을 보겠지만 그것도 다른 인터프릿(interpret),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색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난 대중들이 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에 묶여서 배우 생활을 하는데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 난 배우로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면서 대중들과 어떤 영감이 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싶다?
교감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 난 다음 작품에서 다른 역할을 했을 때, 굳이 변신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 역할로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전에 일단 난 배우이기 때문에 그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름의 태풍>같은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극적인 캐릭터도 언젠가 다시 도전해야 할 산이 아닐까.
좋다. 어떤 하이라이트나 악센트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원스>같은 영화라면. 정말 물 흐르듯이, 그런 잔잔한 역할도 너무 좋다. 어떤 역할에 대한 복합적인 느낌보다는 그 영화 자체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도 좋다.

단순히 어떤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두드러져 보이기 위한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좋다는 말인가?
그 영화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잖아. 왜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았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 버리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그런 것들이 너무 좋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는 영화마다 너무 매력이 많다. 그렇지 않나? 물론 드라마도 좋지만 드라마는 아무래도 영화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영화라는 장르는 나로 하여금 다른 세계에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배우 활동을 함에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다양한 삶을 인생에서 여러 번 사는 것도 바쁜 거지.

마치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랄까.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난 솔직히 처음엔 연기가 싫었다. 내가 왜 연기를 해야 되는지 몰랐는데, 그냥 끌리는 거 있잖아.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수 없게 끌리는, 그래서 난 처음에 연기할 땐 정말 울면서 연기했다. (웃음) 정말 싫은데, 그걸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안가는 거다. 그래서 엄마한테 매일 전화해서, 엄마, 나 미국 갈 거야, 미국 갈 거야. 그랬었다.

뭐가 그렇게 싫던가?
모르겠다. (웃음) 그게 왜, 신 내리면 무당이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잖아. 그런 걸 운명이라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일단 한 작품이 끝났고 지금은 한창 영화 홍보에 바쁘지만 솔직히 6개월 정도 쉬면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다음 작품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푹 빠져버린 거 같다.
헤어날 수 없는 거 같다. (웃음) 내가 정말 너무 연예인 생활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이미 정신적으로 헤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일과 사랑에도 중독되기 쉽다던데, 그렇게 일에 중독됐나 보다.
그런 가봐. 어떡해~. (웃음) 내가 예전에 인터뷰 할 땐, 항상 내 개인적인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춰서 행복한 여자로 살 수 있도록 정말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며 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이 얼마나 좋으면 내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이게 더 좋은 거다. 그건 위험한 거지, 솔직히. 그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선을 넘는 순간인데, 그만큼 일이 좋아진다는 건 정말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선에 가까이 가고 있구나 싶다. (웃음)

그만큼 연기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삶과 일반적인 삶에서 줄 수 없는, 그런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너무 좋은 거 같다. 더 이상 그것만큼 내게 삶의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도 없는 거 같다. 너무 따분해지는 거 있잖아. 일상 생활이. 항상 다른 역할로 살다가 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매일 하는 식사와 그냥 주위 사람들과의 뻔한 대화와 일반 사람들과의 생활이 내게 더 이상 새롭지가 않은 거지.

그건 좀 위험한 것 같다.
예술가들 중 보통 왜 저렇게 살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분들이 많잖아. 이해가 갈 거 같더라. 왜 저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인지. 예를 들어 그림 그리시는 화가 분들 중 아예 사회와 교리를 끊고 정말 그림만 그리시는 분들 있잖아. 왜 저렇게 살까 하면 그분은 그 세상에서 하는 일이 즐거운 거겠지.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나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선을......(웃음)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용의주도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데, 용의주도의 의미를 사전으로 해석했더라. 용의주도란 매사에 신중하게 꼼꼼히 따져서 일을 그르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뜻으로 해석한다면 용의주도하다는 건 필요한 거 같다. 그릇됨이 없이, 그르침이 없이. 하지만 일반 생활에서 해석되는 용의주도함이란 어떻게 보면 잔머리 굴리고, 어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뭐든지 한다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그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항상 진실되지 않은 행동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득이라고 생각될지언정, 그것도 진실이 아니라 가상으로 만들어낸 어떤 거품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진실로 이뤄낸 모든 일들은 그 일들이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진실되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현실에서 용의주도한 삶이란 거짓 같은 인생에 가깝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은 용의주도한 편인가?
난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용의주도했다면 <환상의 커플> 끝나고 내게 들어왔던 CF에 모두 계약하고, (웃음) 그 다음에 섭외됐던 대작들을 모두 섭렵하고, 쉬지 않고 활동했을 거다. 나는 차근차근 수위를 높여가고 싶다.

배우가 된 뒤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 저희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반대하셨다. 굉장히 보수적이시다. 사실은 내가 데뷔를 더 일찍 할 수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먼저 손을 뻗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일찍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했다. 그래도 일단 일을 시작하게 돼서 이젠 인정해주신다. 어머니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날 도와주시는 편이시다. 저희 어머니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고 꿈을 펼치라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이시다. 아마도 내가 그만 둔다고 그러면 어머니께서, ‘너 미쳤니? 왜 그 재능을 썩혀?’ (웃음) 그러면서 날 오히려 더 밀어 넣으실 거다.

<환상의 커플>로 많은 관심을 얻은 후, 그런 관심으로부터 다시 멀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난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다. 밟아도 밟아도 뿌리 뻗는 잡초처럼. (웃음) 난 내가 잠시 얼굴을 안 비춘다고 대중들한테 잊혀지는 그런 배우였다면 이렇게 연기를 꾸준히 할 수 있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자신감 있기 때문에, 그리고 대중들한테 보여줄 게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고, 대중들이 내 모습을 보길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잡초치곤 너무 예쁜 거 같은데. (웃음)
밟아도 밟아도 라는 말이 너무 웃기지 않아? (웃음)

미니홈피에서 인상적인 글을 하나 읽었다. 난 우주인이며 이중인격자다. 하지만 난 나를 사랑해주는 지구인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계속 이 별에 눌러 살아야지. 물론 거기서 지구인은 팬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지. 그건 내가 신인 때, 미니홈피 막 시작하고 썼던 글이다. 이제 삭제할 때도 됐는데, 그냥 그때 그렇게 내가 적어놓은 글을 보면 그 생각들이 너무 귀엽다. 나의 세계관을 풍자해서 적은 글이라고 보면 된다. 나의 세계관은 비록 다른 사람과 틀리지만 나의 이런 점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맙다는 걸 재미있게 풀어 쓴 거다.

지워버리긴 아까운 거 같다.
그럴까?

그리고 역시나 우주인 치곤 너무 예쁘다. (웃음) 그리고 오랫동안 눌러 살길 바란다.
2007년 12월 12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7년 12월 12일 수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41 )
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28 12:59
sungmo22
영화때문에 호감으로 바뀐 배우~   
2008-04-24 14:59
opallios21
한예슬 마트에서 싸인회할때 봤는데!!   
2008-02-11 22:04
real82
사람이 아니라 인형같은..-_-;;;   
2008-01-31 17:41
rudesunny
너~~~~~~~무 좋아요^ ^   
2008-01-14 13:18
ewann
좋아요   
2008-01-11 12:43
joynwe
좀더 흥행했었다면 좋아을 것을...좀 아쉽네요...   
2008-01-10 21:25
koyo1012
특유의 말투가 매력적이에요   
2008-01-1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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